향곡큰스님 일화 <62> 운봉선사 영정
1950년대 거금 100만 원을 들여…
월내 묘관음사에는 조사 스님들을 모신 영각(影閣)이 대웅전 옆에 자리 잡고 있다. 아주 작은 건물로 근세에 선의 중흥조라 불리는 경허선사를 비롯해 혜월선사, 운봉 선사의 순으로 영정을 그려 모신 곳이다. 특히 운봉 산사의 영정은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화백이 그린 것으로 큰스님께서는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셨다. 운봉 선사가 열반에 들자 큰스님은 전법 스승인 운봉 산사의 영정을 당대에 최고가는 분에게 의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러 군데 알아보니 이당 선생이 초상화는 제일 잘 그린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로 직접 찾아간 것이다.
그 당시의 정황을 큰스님은 내게 상세히 이야기 해주셨다.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가서 만나보니 이당 선생은 기독교인이라 스님의 초상을 그려줄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들어 그것부터 물어 보았다.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고 흔쾌히 허락은 받았으나 돈이 문제였다. 당대 최고의 작가라 100만 원을 달라고 한 것이다. 1950년대에 100만 원이라는 돈은 거금이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수억이 넘는다. 6·25 한국전쟁 직후라 모두가 어려운 때였다. 그러나 어떻게 하더라도 마련하리라 속으로 다짐하고는 부탁하였다. 월내로 돌아와 사중에 있는 돈뿐만 아니라 당신에게 조금 있는 돈까지 탈탈 끌어모아도 모자랐다. 할 수 없이 이리저리 변통을 해서 100만 원을 맞추었다고 말씀하셨다.
“해놓고 보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대가가 그린 기라 뭐가 달라도 달라. 돈만 있으마 다른 큰스님들도 하고 싶었지만 형편이 돌아가야지. 우리 스님 영정만 해드리서 늘 죄송하지.” 영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아쉬운 마음을 내비치셨다. 큰스님 기일이어서 몇 년 만에 월내 묘관음사로 갔다. 큰스님 기제사는 두 군데서 모신다. 월내 묘관음사와 해운대 해운정사이다. 우리 은사 스님은 해운대로 가시기 때문에 월내로 갈 기회가 없었다. 올해부터는 연로하셔서 못 가시기 때문에 오랜만에 월내로 가게 된 것이다.
영각에 들어서니 큰스님 영정뿐만 아니라 다른 선사들의 영정도 싹 다 바뀌어서 내 두 눈을 의심하였다. 주지 스님이 새로 다 바꾼 것이다. 무엇보다 운봉 산사의 영정이 어찌 되었는지 궁금해 하니 곁에 섰던 묘혜스님이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우리 향림사로 모시고 갔어요.” 그 말을 듣자 맥이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섭섭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영각을 지장전이라고 현판도 바꾸고 향곡큰스님의 영정도 새로 모셔서 모습은 일신되었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죽 돌아보니 오른쪽 벽면에 향곡큰스님과 성철 큰스님이 운봉 선사를 위해 쓰신 영찬(影讚)은 예전처럼 걸려있었다. 살아생전 큰스님께서 그 영찬을 보며 새겨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영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사이신 운봉 대선사의 영정을 찬탄함
삼세의 부처님은 눈 속의 꽃이요.
시방정토는 콧구멍 속 먼지 티끌이로다.
주장자를 들어 올림이여!
산이 무너지고 바다는 마르며 마군(魔群)은 도망치고 부처는 꺼꾸러지도다.
불자를 걸어 둠이여!
꽃은 붉고 버드나무는 푸르며 꾀꼬리 지저귀고 제비는 춤추도다.
오는 돌사람은 비로 정상에서 금북을 치고
가는 나무 계집은 벽옥루(碧玉樓) 전에서 취해 춤추도다.
왼쪽에서 피리 부니 오른쪽에서 박수 치네.
아침에 삼천이요. 저녁에 팔백이로다.
쯧! 쪽배가 이미 동정호(洞庭湖)를 지나갔도다.
불기 2495년(1951) 2월 28일
법을 이은 향곡혜림이 두 손 모음
선사이신 운봉 대선사의 영정을 찬탄함
뱀과 전갈의 심장이요.
표범과 이리의 마음이로다.
모든 부처님을 무간지옥(無間地獄) 가운데로 쫓고
모든 중생을 대천세계 밖으로 놓아주었도다.
손을 듦이여! 시체가 쌓인 산은 높디높고
발을 내디딤이여! 피바다가 넘쳐흐르도다.
누가 먼 하늘에 뇌성벽력 치는 것을 올려다보며
누가 감히 광야에 재 날리는 것을 내려다보겠는가.
따로 말하노니 나귀 뺨 말 턱이 홀로 달리도다.
오역죄(五逆罪)를 지은 성철이 삼배 드림
특히 성철 큰스님께서 지으신 이 영찬은 명문으로 유명하다. 큰스님의 영정을 하양 향림사로 모시고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보았다. 향림선원의 큰방에 향곡큰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 삼배를 올리고 다시 올려다보았다. ‘니는 공부는 안 하고 아직도 돌아댕기기만 하나’라고 꾸짖는 듯하다. 월내에서 옮겨와 섭섭하긴 하지만, 주지인 묘혜스님은 어른에 대한 향심이 깊어 잘 모실 것 같아 일단 안심은 되었다.
법념스님 경주 흥륜사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