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빨래 널어 놓고 장에 갔다 와야지.
아침 일찍 돌리기 시작했던 세탁기를 열어 봤다.
근데 그대로다.
깜박 잊고 물 호스를 열지 않았더니 세탁기가 빨래 하는 시늉만 하더니
두 시간이 넘도록 잠을 자고 있었다.
이런 된장. ㅠㅠ
쌀은 잊지 않고 사와야 하는데 또 잊고 그냥 돌아올까봐
장으로 가는 길이 불안하다.
햇쌀이 나올 때라 지난 번 5킬로그램 짜리를 샀더니 금세 없어졌다.
내가 식충이도 아닌데 소포장 쌀은 헤프다.
잊어 묵고 그냥 돌아오면 다시 나가던가, 그게 귀찮으면 오늘 굶어야 한다.
젊었을 적엔 한 번 새긴 것은 잊어 먹지도 않고 무지 똘망똘망했었는데....
진짜로 똑똑했는데.....
가을은 노란색이다.
다 익어 고개를 떨구다 기어이 떨어지고,
다시 몸의 수분을 다 덜어내고 사라진다.
나락 한 가마에 40킬로나 되다 보니
노인네들이 운반해 널었다 담기가 어려워
요즘엔 나락 말리는 모습 좀체로 보기 힘든데
나가는 길에 보니 나락이 널어져 있다.
하늘은 블루다.
건조기로 말리기엔 양이 어중간해 이렇게 말린다 한다.
어렸을 적 나도 많이 해 보던 것이었다.
그땐 나락 도둑도 많았는데
지금은 아무렴 이런 것까지 훔쳐가진 않겠지.
늘 보는 것이어도 읍내 큰 장은 이런 것 보는 재미로 다닌다.
보고 또 보고, 또 봐도 이쁘다.
근데 구경만 한다.
새로운 게 없고,
시골장이라 해서 딱히 싼 것도 아니라서. ^^*
우리 집 국화는 진즉 펴서 한창인데
꽃망울을 머금고 있다.
향을 맡아보고 싶었지만.......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주인 아저씨가 일어나 다가올까 싶어서
안 보는 척, 다른 데 보는 척 하면서.....
그래도 볼만큼은 다 봤다.
순해 보이는 이쁜 강아지들.
똥개들은 눈이 특히 이쁘다.
공부시키면 잘 할 것 같다.
일어 서, 앉아, 손.... 이런 것들.
지들끼리 서로 기대고, 좁은 공간에서도 장난치는 모습이 이쁘다.
3만 원.
얘들은 4만원.
무게가 많이 나가서 더 비싸단다.
애완견들은 몸집이 작을수록 더 비싸던데,
얘들은 덩치로 값이 매겨진다.
내 몸무게는 60키로,
그러니까 나는 3만 원 쯤 되겠다.
잘 먹였는지 토끼들이 토실토실.
기르고는 싶은데 당최 먹이 챙겨줄 자신이 없어 그저 구경만.....
요녀석들은 몸집이 작다.
햄스터 언니 처럼 생긴 맨 윗 놈은 토끼가 아닌 것도 같고...
바람도 없는 맑은 날인데 한산하다.
그동안 사료만 먹인 애들이 짠해서 영양 보충시켜 주려고
튀김 집에 들러 치킨 한 마리 사려 했는데 오늘은 치킨이 없다.
내가 먹을 반찬 거리만 사려니 좀 미안타. ㅠㅠ
돌아오는 길에 안 까묵고 쌀을 샀다.
성공이다.
근뎅~~
내가 사먹는 입장이긴 하지만 너무 싸다.
이제 처음 나온 햇쌀인데 4만 1천 원.
작년 산 정부 비축미를 반 값에 풀었다더니
쌀값이 맥을 못추나 보다.
이럴 줄 알았다.
여태 뭣하고 있다가 하필이면 이때 비축미를 풀었을꼬.
생각이 없어서 그런 건지, 디져부라고 일부러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욕 먹어도 싸다.
할머니 이것 좀 보세영~"
"으메, 꼬치가 참말로 깨끗하요잉~"
익을 때쯤이면 어김없이 탄저병이 드는데 현재까지는 병이 없다.
이번에 특별히 한 짓이라곤, 고추를 한 번도 심지 않았던 곳에 심은 것 뿐.
올해는 비도 많이 와 늘 불안했는데 참 신기하다.
다들 작황이 좋지 않다고 걱정인데
농약 한 방울 안 한 우리 집은 풍년이다. ^*^
"꼬치가 참 탱탱하기도 하요잉~"
딸 때는 몰랐는데 할머니가 만져서 그런지 탱탱한 것 같기도 하다.
부끄럽꼬롱 할머니는 다른 것도 쪼물락거린다.
더 커지면 어쩔라고.
"긍께 할머니도 농약 웬만큼 치시랑께라"
"그래도 병이 온디 어쩌라고라"
자기가 먹을 것만 조금씩 하는 농사에 농약을 왜들 그리 치는 지 모르겠다.
그럴 거면 그냥 사서 드시지.
사 먹는 거와 지어 먹는 거랑 뭔 차인지....
"퇴비만 했소?"
"예"
"나도 내년에는 퇴비만 해야 쓰것네잉"
우리 동네 할머니들은 내가 하는 것은 더 나은 줄 아신다.
물론 이쁜 놈이 하는 짓이라 뭘 해도 이쁘게 보이것지만,
내가 그렇게도 이쁠까?ㅋㅋㅋ
농사로는 할머니들이 훨씬 더 고수인데도 말이다.
코 앞에 닥쳐야 하는 체질이라 미리 비료를 뿌려 놓는다는 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아
퇴비는 1년 전 것을 쓴다.
금방 뿌린 후 파종을 해도 가스 피해를 입지 않도록
올해 산 것은 내년에 쓰는 식으로...
손바닥 만한 밭을 일구면서 해마다 퇴비를 사두니
우리 집에서 시간 빼고 남아도는 게 있다면 퇴비다.
뿌릴 때는 몽땅 뿌린다.
부작용이라면 덕분에 풀도 훨씬 잘 자란다는 것.
<너무 많이 심었다. 1주 심으나 10주 심으나 하는 일은 별 차이가 없어서 걍 심었다>
풀 뽑을 틈이 없어 풀밭인 게 흠이지만 그래도 농작물은 잘 자랐다.
양념용으로 쓰려고 했던 것인데 양이 많으니 욕심이 생긴다.
이걸로 김장해도 되것는디.....
그런데 허구헌날 비가 내리니 말리기가 쉽지 않다.
현관 문 앞에 널어 말리다 결국 비에 쫄딱 젖었다.
시간 나면 건조대를 만들어 하우스 안에서 말려야지,
다음에 꼭 그래야지.....
그런데 시간이 영 나질 않았다.
진짜로 한가한 틈이 없었다.
또 다른 핑계가 있다면,
얼마 되지도 않는 거 말리기도 그렇고, 그냥 놔두기도 그렇고,
해 비치는 날은 너무 덥고, 비가 오는 날은 일하기 힘들어서....ㅠㅠ
핸드폰이 고장인줄 알았는데 받는 전화도 된다.
전화벨이 울린다.
"겨울에 김장할 때 자네 것까지 하려고 하는데
올해는 고추가 비싸서 미리 사두려고 하는데 얼마나 필요한가?"
"아이구, 하지 마셔요. 별로 먹지도 않는데요 뭐. 근디 얼마나 한대요?"
"한 근에 1만 4천원이라네"
허걱! 작년엔 7, 8천원 했는데....
급하면 없는 시간도 난다.
건조대를 만들었다.
비가 올락말락 날씨가 서늘해서 큰맘 먹고 톱을 들고 대나무를 베러 나가는데
느닷없이 해가 비치기 시작한다.
내가 뭔 맘만 먹으면 날씨는 꼭 일을 하지 말라고 그런다.
그런데 헐~~!
50도가 넘는 하우스 내에서 땀 줄줄 흘리며 기껏 매달아 고추를 펼쳐 널었더니만,
대나무는 휘고 고추들이 한 곳으로 몰려 처진다.
이런 된장.
오늘은 비요일이라 선선하다.
어제 만든 것을 떼어내 보수 하기로 했다.
대나무는 곧게 자란다지만, 옛날 대나무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본 대나무들은 자세히 보면 어느 것이나 울퉁불퉁 눈치껏 조금씩 굽었다.
그래도 한 번 했던 일이라 훨씬 쉽다.
대나무 베어서 자르고 모기장 꿰매 조립하는데까지 1시간 반 걸렸다.
만들 때 잡아 주는 놈(실은 년인데 욕으로 들릴까 봐서 ㅠㅠ)이 있었으면 훨씬 쉽게 했을 텐데
한쪽씩 고정시켜가며 왔다 갔다 하는 게 번거롭기는 하다.
이럴 땐 있는 놈들이 솔직히 많이 부럽다.
(완성품. 일부러 허접하게 만들었다. 누가 훔쳐갈까봐. ^&*)
우리 동네서 공기 다음으로 많은 게 대나무고,
다른 자재는 있던 것을 재활용한 거라 새로 들어간 돈은 없다.
들었다면 따로 계산은 안해주지만 혹시 모르니 내 인건비 10만 원쯤?
만세이~~.
확실히 튼튼하다.
날개 달린 천사라면 그네 침대로 사용해도 될 듯하다.
한달 동안 생각만 했던 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진즉 할 걸.....
오늘은 날씨도 추적추적하고 시간이 남아서 꽃구경 좀 하기로 했다.
목화.
지난 해 고속도로 휴게소에 핀 목화꽃을 봤는데 이뻐서 올해 심어 봤다.
싹이 난 게 10포기라서 딱 그만큼만.
그런데 우리 동네 할머니들은 걱정이 많다.
심으려면 많이 심지 이것 심어서 어떡할 거냐고 묻는다.
이불 만들려는 게 아닌데.....
미모사(신경초).
잎을 건들면 오므리고 햇볕 비치면 다시 활짝 피는 게 신기해서 해마다 심는데
사람들은 하나도 신기하지 않은가 보다.
나 혼자 보고 나 혼자 흐뭇하다.
건드러 보지는 않았다.
얘들이 오므렸다 폈다 힘들어 할까봐....
고추 말릴 걱정을 덜고 나니
마음도 겁나 많이 착해진 것 같다.
첫댓글 어느 모카페에서 익명의 아주머니가 쓴 글입니다
너무 평온한 시골의 삶의 모습과 시골장날의 추억속의 그림같은 정경!!
낙서하듯 써 내려간 여인의 글속에 편안함과
소싯적 즐겨 듣던 부베의 연인이 너무 정겨워
그냥 퍼 왔습니다
넘 재미있게 읽었네요....특히 고추말리려고 만들 대나무발...ㅋㅋ 이런된장 ㅎㅎ 미소가 가득 입니다.
순박한 마음과 모습을 읽을수 있어 편안해 집니다..
옛날 시골 생각도 나구요
정겨운 글.. 감동있게 잘읽었네요..
중간중간 동질성도 느껴지고...ㅎㅎ
그러면서 시간도 세월도 추억도 흐른거겠지요..
제가 사는곳에도 5일장을 서네요..글을 읽다보니 공감이 갑니다..
지금은 장날이라도 옛날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골인심과 따뜻한정은 그대로랍니다..
대형마트를 선호하는 지금세대에는 느끼고 나누지 못한것들이 고스란히 장터에는 남아
있잖아요..그래서 장날만큼은 살것이 없어도 장구경을 나가는게 습관이 된것 같아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