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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힘
라이프(Life) 잡지의 어느 기자가 영국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지하철 대합실 식당에 앉아 느지막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데 바로 앞자리에 연로한 부부가 앉아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정답게 앉아 남편은 빵을 주문하고 아내는 차를 주문했습니다.
옷차림으로 보아 노부부는 퍽 가난한 듯 보였습니다.
두 사람은 그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마주보면서 손을 잡고 조용히 주문한 것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주문한 빵과 차가 나왔습니다. 남편은 천천히 빵을 먹기 시작했고 아내는 뜨거운 차를 몇 모금 마시면서 남편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빵을 먹던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동자에는 한없이 고요한 평화가 맴돌았습니다.
그때 남편은 먹던 빵의 반을 아내의 테이블 앞으로 밀어 놓더니 자신의 입에서 틀니를 뽑아 옆에 놓인 냅킨으로 깨끗이 닦아서 아내에게 건냈습니다.
아내는 그 틀니를 받아 자연스럽게 자신의 입에 넣고는 천천히 빵을 먹기 시작했고,
남편은 아내가 마시던 차를 마시며 맛있게 먹는 아내의 모습을 다정스레 바라보았습니다.
코끝이 찡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진 그 기자는,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았다고 합니다.
이들 노부부는 비록 각자의 틀니를 가질만큼 너넉하지는 못했으나, 이것을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랑은 힘이 있습니다.
그 어떤 힘보다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가난도 수치도, 창피함도, 수모도 그 사랑의 용광로에 들어가면 다 녹아 버립니다.
소포클레스는 “참다운 사랑의 힘은 태산(太山)보다도 강하다.
그러므로 그 힘은 어떠한 힘을 가지고 있는 황금일지라도 무너뜨리지 못한다.” 라고 말했고,
체홉은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토마스 만은 “죽음보다 더 강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사랑이다.”라고 했습니다.
삼포능자의 <사랑하며 용서하라>는 책에 1954년 가을 연락선인 토오야 호가 태풍을 만나서 전복될 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승객 몇 천 명 중에서 이 날 밤의 조난으로 사망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도오야 호에는 2명의 외국인 선교사가 승선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구명대가 없는 젊은 남녀에게 자기들의 구명대를 주고는 죽어갔다고 합니다.
그녀는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선교사 사진을 자기 방에 걸어 놓고 있다고 쓰고 있습니다.
사랑은 자기 목숨까지도 희생하는 힘이 있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네 사람의 군목을 위한 기념 예배당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사랑을 기념하기 위해서 입니다.
1943년 1월 22일 폭스, 구스, 폴링, 웨싱턴 군목이 ‘도체스터 호’에 승선하였다고 합니다.
그 해 2월 3일 55분 경 독일 잠수함 u-233이 쏜 어뢰를 맞고 도체스터 호는 점점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네 명의 군목은 잠기어 가는 함정 속에서 병사들을 진정시키고 마지막 남은 구명정까지 모두 꺼내어 주고 그들은 갑판에서 어깨를 맞잡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배는 점점 가라않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 배에 타고 있던 병사 904명 중 605명이 전사하였습니다.
물론 전사자 명단에는 장렬하게 죽어간 4명의 군목도 끼어 있었습니다.
1951년 미국 국민은 네 명 목사의 기념 예배당을 건립했다고 합니다. 1961년 1월 18일 의회 표결로 “그들의 영웅적 행위에 대한 특별훈장”을 수여하였고 그들이 천국에 간 2월 3일을 네 명 군목을 위한 기념일로 정하였다고 합니다.
사랑하면 원수도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면 수모도 참을 수 있으며 심지어는 자기 목숨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어 놓을 수 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무엇이 최대의 이단이냐?
최대의 이단은 교리상의 이단이 아니라, 가장 큰 계명인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것이 최대의 이단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내가 아프리카 흑인들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어찌 내가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할 수 있으리요.” 라고 말하며 “내 사랑의 행위가 남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아직도 내 안에 있는 사랑이 너무나 적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며,
존경하고, 이해하며, 책임을 지고,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며 그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증오하지 않는 것이며,
상대방을 있는 모습 그대로,
그의 상처와 어둠과 가난까지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꽃)다시봐도 마음에 와 닿는
글이라 올려봅니다.
좋은 글 읽고 잔잔하게 흐르
는 음악을 들으시며 멋진 나날 보내세요
(꽃)모리 슈워츠 (1916~1995,미국의 유명한 사회학자)의 교훈---
http://m.cafe.daum.net/beautifultokki/8hY4/1171
J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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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징비의식(懲毖意識)’ ※ 懲 징계할 징. 毖 삼가할 비
‘역사의 연구’를 집필해서 순식간에 세계의 지식인으로 평가받은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를 연구해 보면 민족의 유형이 크게 세 가지 있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는 재난(災難)을 당하고도 대비하지 않는 민족,
두 번째는 재난을 당해야만 준비(準備)하는 민족,
세 번째는 재난을 당하지 않고도 미리 대비(對備)하는 민족들이라 했다.
대한민국은 어디에 해당 될 것인가. 스스로 자문(諮問)해 보기 바란다.
‘징비록(懲毖錄)’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선 선조 때 영의정과 전쟁 수행의 총 책임자를 지낸 유성룡柳成龍(1542~ 1607)이 집필한 임진왜란 전란사(戰亂史)로서,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전란의 원인, 전황 등을 기록한 책이다.
징비록(懲毖錄)은 저자인 유성룡이 자리에서 물러나 낙향(落鄕)해서 집필한 것으로, 제목인 '징비'는 ‘시경(詩經)’ 소비편(小毖篇)의 "여기징이비후환(予其懲而毖後患)", 즉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징비록’에서 유성룡은 수많은 人命을 앗아가고 비옥한 강토(疆土)를 피폐하게 만든 참혹했던 전화(戰禍)를 회고하면서, 다시는 같은 전란을 겪지 않도록 지난 날 있었던 조정의 여러 실책들을 반성하고 앞날을 대비하기 위해 ‘징비록’을 저술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온 山川이 피로 물들고, 계곡마다 하얀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시체 썩은 물과 피물이 계곡을 흐르고,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그 참혹한 전란이 다시는 조선에서 반복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하라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썼다.
이렇게 목적의식을 가지고 전쟁의 최고 책임자가 집필하여 썼지만 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이 책은 조선에서 편찬되지 못하고 1695년(숙종 21) 침략국 日本에서 편찬되었다는 것 또한 슬픈 일 중의 하나다. 17세기에 대마도(對馬島)에서 먼저 읽히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어느 역사학자가 조선의 역사가 5,000년이라고 하나 그동안 조선이 외침(外侵)을 받은 횟수는 무려 931번이라고 한다. 평균으로 5.3년마다 한 번씩 외침을 받았다는 결론이다. 조선은 왜 이렇게 외침을 많이 받았을까? 참으로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토인비가 말한 첫 번째 민족유형이기 때문이다. 재난을 당하고도 대비하지 않는 민족이다.
참혹한 임진왜란이 끝나고 38년 후 조선은 또 다른 치욕의 참혹한 전란에 휩쌓이게 되었고 강산이 초토화되었던,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이다.
징비록에서 그렇게 미리 준비하고, 준비해서 또 그런 비극이 없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는 데도 준비하고 대비하지 못한 지도자와 리더들의 無能과 無氣力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로부터 한참 뒤에는 아예 나라가 통째로 없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참혹한 비극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리더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왜 이렇게 당해야만 하는가를 분석하고 연구하고 다시는 이런 역사를 반복해서 당하지 않도록 대비해야 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바로 징비(懲毖)다.
日帝 강점기(強占期) 비극을 보더라도 왜 강점을 당했는가? 강점한 자들도 문제가 있지만 강점 당한 자들은 문제가 없었는가? 오죽이나 못났으면 맨날 당하고 울고만 있었는가?
외교 분야에서 40년을 지낸 퇴역 외교관은 국제관계는 80%가 힘(power)이고, 20% 정도가 법(law)이라 했다.
그걸 모르는가? 나라를 고스란히 상납(上納)한 자가 君主였고, 강탈 당한 것이 아니라 항복(降伏)한 것 아닌가?
왜 항복해야 했는가? 힘이 없어서다. 왜 힘이 없는가? 준비하지 않았으니 그렇다.
75년이 지난 지금도 친일파니, 죽창가(竹槍歌)니, 토착왜구니 등의 어설픈 감성적 말로 국민들을 선전, 선동하고 표를 위해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 그런 어리석은 짓거리를 할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하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다시는 반복해 당하지 않기 위해 징비(懲毖)를 해야 될 역할이 리더의 역할이다.
그걸 企業이 해냈다. 삼성전자가 일본의 소니를 넘어서는 전략을 준비하고 펼쳐서 일본 전자 업계를 제친 것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이루어 냈다.
그게 진정한 리더 역할이다.
그는 ‘위기’의 아이콘이었다.
역사를 보면 이 나라 리더들은 세상과 주변 나라들의 변화를 읽지도 못하고 미리 준비도 못한 무책임한 지도자의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러한 무능의 역사와 무능한 자들이 지금도 지배자가 되니 더욱 가혹한 안타까움과 자괴감(自愧感)을 떨쳐버릴 수 없다.
무능과 무책임, 그러고도 사익(私益)만을 추구하는 리더들의 DNA 성향이 그리 쉽게 달라지겠는가.
기원 전 로마 시대의 철학자 ‘세네카’는 “평화를 얻으려고 하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역설했다. 평화는 결코 구걸(求乞)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어설픈 상념(想念)이나 말장난으로는 나라와 국민들을 지킬 수 없다.
또 나라 경영의 책임을 진 리더가 ‘애완 비즈니스(Pet Business)’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짐승을 키우듯이 좋아하는 것만을 하면 결코 리더가 아니다. 그건 어린 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지금은 AI가 세상을 지배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오늘 징비하고 준비하는 것에 의해 바로 미래가 결정된다. 미래를 구하는 것은 미래가 아니고 현재다. 대한민국에는 미래를 말하는 자가 없다.
그런데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고르게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지금부터라도 미래를 징비하는 지혜로운 리더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첫댓글 배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오늘도 정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