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미즈락(Richard Misrach 1949~ )의 감각적인 컬러로 채색된 풍경사진
김영태 / 사진문화비평, 현대사진포럼대표
풍경사진의 역사는 사진사 180여 년과 맥(脈)을 같이 한다. 19세기에 사진이 발명되었을 때 당시의 사람들은 사진을 예술을 위한 매체로 인식하기보다는 기록을 위한 매체나 회화의 보조적인 수단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사진사에 등재되어 있는 초기 풍경사진은 예술로서의 풍경사진이 아니라 지질조사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사진이다. 아메리카 대륙의서부로 영토를 확장시켜나간 미국인들은 철도를 부설하기 전에 지질조사를 위해서 사진을 찍었다.
이처럼 실용적인목적으로 이용된 풍경사진의 전통은 1970년대부터 시작된 현대 풍경사진에 미학적인 뿌리를 제공한다. 중립적이고 대상의 왜곡을 최소화한 사진 찍기가 포스트모던적인 동시대사진가의 그것과 유사한 점이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풍경사진역사의 또 다른 축은 인상주의 회화의 방법론적인 측면과 교차되는 지점이 있는 순수자연 풍경사진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모더니즘사진의 주류적인 경향인 자연 풍경사진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이나 식물을 빛의 미묘한 변화를 이용하여 재현한 결과물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안셀 애덤스의 미국서부풍경사진이다. 작가는 ‘존 시스템’이라는 자신만의 흑백사진제작시스템을 고안하여 독특하고 개성적인 모노톤의 사진이미지를 생산했다. 이외에도 작가와 함께 당대에 활동한 F-64 그룹 사진가들은 대형카메라의 사실주의적인 재현능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아름다운 톤과 풍부한 계조로 표면을 이루는 흑백사진을 생산했다. 이들은 각자 관심사에 따라 표현대상의 차이점은 있지만 감각적인 미적쾌락을 제공하는 흑백이미지를 생산했다는 점과 자연풍경이나 자연물을 주로 다뤘다는 점에서 만나는 지점이 있다. 그중에서 마이너 화이트는 자연풍경, 누드, 식물 등 다양한 대상을 흑백이미지로 변주하여 자신의 미감, 세계관, 성적인 정체성 등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살펴본 미국 풍경사진의 전통은 1970년대엔 다르게 변모한다. 더 이상 순수자연풍경이나 자연물을 다루지 않고 인간에 의해서 변형되고 훼손된 풍경이나 인공적인 구조물을 기록하는 일련의 사진가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뉴 토포그래픽스 new topograhpics 사진가들이다. 대형카메라를 사용하여 도시외곽이나 변형된 풍경을 다루었는데 개발에 의해서 더 이상 순수자연은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기록했다. 미학적이나 유미주의적인 태도로 현실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무덤덤하고 중립적인 태도로 풍경을 기록했는데 절대적인 중립적 태도를 보이려고 노력했다. 이후 1980년대엔 컬러사진을 수용하여 인공적인 풍경, 훼손된 자연, 도시풍경, 문화적인 풍경 등을 다루는 사진가들이 주목받는다. 리차드 미즈락도 그러한 사진가 중에 한사람이다. 작가는 중형이상의 카메라와 컬러필름을 사용하여 인간에 의해 훼손된 자연과 당대의 문화를 기록했다. 사막, 바다, 사람들이 누리는 문화적인 풍경 등을 비평적인 시각으로 재현한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작가가 재현한 풍경은 색채가 아름답고 감각적이다. 훼손된 풍경이지만 오히려 화려하고 보는 이들에게 미적인 쾌락을 제공한다. 빛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컬러를 매혹적으로 재현했다.
빛의 조화, 컬러 필름의 화학적인 특성, 카메라의 사실주의적인 재현능력, 숙련된 촬영기술 등이 유효적절하게 상호작용한 컬러이미지를 생산한 것이다.
작가는 조형적으로 대상을 재현했다. 사람이 배제된 자연풍경도 있고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담겨져 있는 바다풍경도 다뤘다. 사막, 바다, 인간의 손길이 느껴지는 풍경 등 다양한 대상을 재현함으로써 시대와 조우했다. 1980년대부터는 작가와 유사한 태도로 사진작업을 하는 사진가들이 부각되는데, 이들은 이전의 사진가들과는 다르게 컬러필름을 사용하고 순수자연풍경을 배제한 인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풍경을 재현대상으로 선택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사양사회는 1960년대부터 환경문제가 대두되어 대지예술이 현대미술의 주요 경향으로 등장했다. 이러한 문화예술의 지형에 영향을 받아 자연풍경이 아닌 인공적인 풍경과 인공적인 대상을 기록하는 사진가들이 등장 한 것이다. 이러한 풍경사진은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보편적인 스타일로 자리매김한다. 리차드 미즈락의 풍경사진은 이러한 예술의 맥락에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포스트 모던한 시각으로 동시대 예술을 바라보면 예술은 더 이상 창조가 아니라 풍자, 혼성모방, 재구성 일뿐이다. 모더니즘시대 혹은 그 이전에는 예술가들 천재적이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존재로 이해됐다. 하지만 이미 예술가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19세기 보들레르 시대부터 변화되기 시작했고, 20세기 중,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동시대풍경사진의 경향도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과거 선배 사진가들의 업적을 차용하고 재구성하며 새로운 시대와 만난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리차드 미즈락도 미국 풍경사진의 역사적인 전통 속에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하며 세상과 현실을 바라보는 스스로의 시각을 제시한 것이다. 이와 같은 사진가들의 활동이 거듭되면서 사진의 역사는 또 다른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동시대사회는 텔레비전, 인터넷, 컴퓨터, 스마트폰 등 다양한 미디어로 소통하며 세계가 가까워지고 있고, 문화적으로 절충주의가 진행되고 있다. 예술도 이와 같은 과정 속에서 각각 다른 문화권에 속하는 예술가들이 다르면서도 유사한 이슈, 표현방식 등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동시대사진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은 지형 속에서 리차드 미즈락의 풍경사진은 존재한다. 차별적이면서도 보편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