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외1편
이장원
흑백영화 속 나치의 버려진 깃발처럼
창틀에 찢겨 늘어진 거미줄 한 장
찬바람 불어 주인은 떠나가고
날벌레의 은빛 날개만
퍼드득 떨고 있다
지난 여름 어느 아침
촘촘한 거미줄에 이슬방울이 맺히고
방울마다 들어앉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아침 식사를 기다리는
거미의 어둔 눈빛 아래서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유혹이었으니라
태양을 향해 날아가 생을 마치고야마는 벌레
날개를 파닥이는 벌레의 머리통을 먹어치우며
부푼 배 안에 비명을 함께 삼킬 때
거미에게 벌레의 죽음을
애도할 가슴은 있었을까
세상의 모든 거미줄 위에서 삼켜지는 비명과
질펀한 식사 뒤에 나뒹구는 폐허
죽은 벌레의 날개처럼
남루한 계절의 옷깃 속으로
십일 월 오후 같은
서글픔이 파고든다
먹고 먹히는 모든 존재들의 가련한 운명에 대하여
창문을 열고 팔을 길게 뻗어
거미줄을 걷어낸다
바스라지는 사체 몇 점 하데스 깊은
골짜기로 떨어진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제목 차용
점點
이장원
있지만 없는 것
어딘가에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
면面이 되고 선線이 되는 것
면과 선과 다각형 속에서는 존재하지만
홀로 핵이 되어 존재할 수 없는 것
나는 점과 같은 존재일까
선으로 면으로 가각형의 세상으로
맺어지지 않으면
있어도 없는 사람
스스로 핵이지만 혼자서는
핵이 되지 못 하는,
벽이 없는 방안에서
물안개처럼 사라지는 존재
*이장원:한림대학교 커뮤니티교육원 시장작반. 수향시낭송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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