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다 SGI 회장 강의
희망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
제10회 三澤抄 (미사와초)
- '홀로 서는' 용기를 계승
♣ 강의
도다 선생님은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커다란 숙명과 싸워 인간혁명하려면 커다란 난(難)이 오히려 큰 도약대가 된다. 평탄한 길을 천천히 걸으며 숙명전환이 가능할 리 없다."
난이 있으면 있을수록 위대한 경애를 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장사마'가 다투어 일어나도 결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드디어 숙명전환할 때가 왔다." "어서에서 하신 말씀과 똑같다."하고 '신심즉지혜'의 눈으로 분명히 간파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층 더 깊은 확신과 용기를 지니고 일어서서 제목을 끝까지 부르며 나아가야 합니다.
니치렌 대성인이 "반드시 삼장사마라고 하는 장해가 나타나는데, 현자는 기뻐하고 우자는 물러남이 이것이니라." (어서 1091쪽)하고 말씀하신 대로, '전진하느냐, 물러나느냐'입니다. 그 중간은 없습니다. 또 '무섭고 두려워서 마성(魔性)에 복종하느냐, 도전해서 확신을 깊게 하느냐.'입니다. 그 일념의 차이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대성인도 다쓰노구치 법난과 사도유죄라는 대난을 빙그레 웃으며 정면으로 맞서셨습니다.
대난과 싸움으로써 한 인간의 생명속에 영원한 행복경애가 확립됩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을 본보기로 만인구제의 길을 열 수 있습니다.
마의 본질은 '탈공덕(奪功德)'이며 '탈명(奪命)'입니다. 그 수단은 '마음을 파괴하는 데'에 있습니다. '성불의 길을 걸으려는 마음을 파괴한다.'는 이것을 마가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까지 신심을 관철하고, 전진하는 마음을 계속 견지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마가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마가 틈타지 않도록 '강한 마음'을 단련하는 것이 바로 진실한 신심입니다.
이번에 배독하는 <미사와초>는 부처와 마가 투쟁하는 광선유포의 길을 어디까지라도 스승과 함께 끝까지 걸어야 함을 가르치는 어서입니다.
창가 삼대의 사제가 마성의 권력과 투쟁하면서 '제육천의 마왕'을 타파하고 사제를 불이(不二)로 만든 '사자왕(師子王)의 신심'을 배웁시다.
♣ 본문
설사 말대(末代)의 범부(凡夫)가 일대성교의 원의(原意)를 깨닫고 마하지관이라는 대사(大事)의 문심(文心)을 알아서 부처가 될 만큼에 이르면 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이 이 일을 보고 놀라서 가로되. 아아. 큰일 이로다 이자(者)가 이 나라에 머무르게 된다면 그 자신(自身)이 생사(生死)를 떠나리라는 것은 차치(且置)하고 또한 남을 인도(引導)하리라. 그리하여 이 국토(國土)를 빼앗아 나의 토(土)를 정토(淨土)로 하리니 어찌 하리요 하고 욕(欲), 색(色), 무색(無色)의 삼계(三界)의 일체(一切)의 권속(眷屬)을 모아 명(命)을 내려 가로되, 각기 능력에 따라 그 행자(行者)를 괴롭혀 보아 그래도 되지 않거든 그의 제자(弟子)와 단나(檀那)와 그리고 국토의 사람들 마음에 바꾸어 들어가서 혹은 간(諫)하고 혹은 위협해 보아라. 그래도 되지 않으면 내 자신이 내려가서 국주(國主)의 신심(身心)에 바꾸어 들어가서 위협해 볼 것이니 어찌하여 막지 못하리요 라고 첨의(僉議)를 하였느니라. 니치렌은 벌써부터 이러하리라는 것 을 알고 말대(末代)의 범부가 금생(今生)에 성불(成佛)하는 것은 대사(大事)이리라. (미사와초 1487쪽 11행 ~ 1488쪽 4행)
♣ 현대어역
만약 말법시대에 사는 범부가 석존 일대(一代) 성교(聖敎)의 진의를 깨닫고, 마하지관이라는 중요한 법문의 진수를 이해해 부처가 되려고 하면 반드시 제육천의 마왕은 이 모습을 보고 놀라서 말한다.
"아, 뜻밖의 일이다. 이 자가 이 나라에 발자취를 남긴다면 그 자신이 (성불해) 생사유전의 고뇌에서 벗어나느냐 마느냐는 내버려두고 나아가 다른 사람을 가르쳐 일깨우리라. 그리고 이 사바세계를 탈취하고 내(제육천의 마왕) 영토를 (부처의) 정토로 만들 것임이 분명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렇게 말하고 욕계 * 색계 * 무색계라는 삼계의 모든 권속을 소집해 이렇게 명령을 내린다. "각자 능력에 맞게 저 행자를 괴롭혀 보아라. 그래도 성공하지 못하면 그의 제자와 단나를 비롯해 국토에 사는 사람들 마음속에 바뀌어 들어가 간(諫)하거나 위협해 보아라. 그래도 안 되면 내가 직접 내려가 모습을 바꾸어 국주의 몸과 마음에 들어가 저 행자를 위협해 보리라, 그렇게 하면 어찌 막지 못하는 일이 있겠는가." 이렇게 의논한다.
니치렌은 이전부터 이러하리라고 내다보았다. 말법의 범부가 금세에 부처가 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서 1487쪽 11행 ~ 1488쪽 4행)
진실한 '불법의 스승'은 '제육천의 마왕'에 승리하는 사람
<미사와초> 첫머리에서는 대성인이 간파한 '천자마', 즉 '제육천의 마왕'의 본질이 알기 쉽게 나와 있습니다. 그 까닭은 대성인이 잇달아 받는 대난은 제육천의 마왕이 한 짓이라는 사실과 마왕에게 승리한 사람이 바로 말법에 진실한 '불법의 스승'이라고 밝히기 위함입니다.
<미사와초>는 1278년 2월 23일, 스루가지방 후지방면에 있는 마사와에 영지를 소유하고 살던 미사와라는 분에게 대성인이 보낸 편지입니다. 이 어서에 따르면 이 무렵 미사와는 자주 대성인과 소식이 두절된 듯합니다. 미사와가 신심이 약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스루가지방의 특수성 때문에 대성인이 배려하신 것인지 둘 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마쿠라막부에게 스루가지방은 교통 * 군사적인 면에서 중요한 곳이었고, 호조가문 각 집안에서 직접 관할하는 땅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막부가 경계하던 대성인의 제자들로서는 신중하게 배려할 필요가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어서를 집필하신 1278년에는 이미 아쓰하라의 신도가 압박을 받기 시작했고, 이듬해에는 아쓰하라 법난이 최고조에 이릅니다.
이 어서에서 대성인이 이런 시기와 지역성을 감안해 미사와가 막부의 박해를 받으면 안 된다고 세심하게 배려하시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도록 소식이 끊긴 미사와가 심부름꾼을 보내자 대성인은 이 기회에 미사와의 신심을 깊게 다지기 위해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 어서를 쓰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성인은 미사와에게 다음 세 가지를 밝히셨습니다.
첫째, 지금까지 대성인이 받은 대난은 다름아닌 제육천의 마왕과 벌이는 투쟁임을 자세히 쓰고, 마왕에게 승리한 대성인의 경애를 밝히셨습니다. 이것은 불법에서 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어떤 사람이 진실한 '불법의 스승'인지를 가르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험악한 아쓰하라의 상황을 감안해 미사와 스스로 난을 견뎌낼 수 있는 강한 신심으로 일어서도록 묘법의 진수를 가르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법의 스승은 괴로워하는 사람을 어디까지나 자애로 감싸 안고 지키는 어머니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스스로 행복을 쟁취할 수 있도록 자립을 촉구하는 아버지와 같은 엄한 사랑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대성인이 겪은 힘든 투쟁을 가르친 것은 참으로 아버지의 엄한 자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대성인이 설한 법문에 이른바 '사도전 * 사도후'라는 구분이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즉 부처의 가르침에 방편인 이전경과 진실한 법화경이라는 구분이 있듯이, 대성인이 사도유죄 이후에 설한 법문은 그 이전에 설한 법문과 크게 다름을 이해하도록 강조하셨습니다.
대성인의 경애를 가르치신 것인 '인(人)'의 측면이었다면, '사도전 * 사도후'를 가르치신 것은 '법'의 측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 살피면 사도후, 즉 사도유죄 이후는 대성인이 제육천의 마왕과 싸워 승리한 다쓰노구치 법난의 발적현본 이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전 법문과 사도 후 법문의 가장 현저한 차이는 '어본존' 도현의 여부에 있습니다. 어본존은 대성인이 성취한 가장 존귀한 범부즉극(凡夫卽極)의 경애를 만인성불의 명경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즉 말법의 모든 민중이 자신의 가장 존귀한 생명에 눈뜨게 하기 위한 명경이며 본보기입니다. 이 어본존이 바로 말법이라는 때에 일염부제에 유포해야 할 대법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대성인은 미사와에게 '사도전 * 사도후'의 차이를 가르치고, 이 일염부제유포의 대법과 인연을 맺은 일을 '믿음직스럽게 생각하시라.'하고 격려하셨습니다.
셋째, 지금 막부가 몽고조복을 위해 채택한 진언종의 기도는 오히려 망국의 악법임을, 특히 현증을 제시하며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미사와에게 막부의 종교적인 잘못을 가르치고, 일본이 망할 위기에 처해 있으니 주의하라고 촉구하신 것입니다. 설령 진언종과 공개토론이 있을지라도 신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준비시키는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상 세 가지 요지는 <개목초>를 비롯해 대성인이 사도유죄 이후에 저술한 어서에 수시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이것들은 사람들에게 가볍게 설하면 안 되는 중요한 법리이므로 막부의 영향을 크게 받는 처지에 있는 미사와에게는 상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으셨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루가지방 문하에게 법난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이 시점에, 더욱 깊은 신심으로 서게 하는 것이 바로 '자비'입니다. 그러므로 대성인 불법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간결하게 가르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심은 삼장사마와 벌이는 투쟁
그런데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제육천의 마왕'의 본질을 자세히 논하셨습니다.
먼저 불법을 배우는 사람은 많아도 볼도를 성취하는 사람은 적은 이유로, ① 올바른 스승을 만나기가 어려운 점, ② 올바른 실천에는 반드시 삼장사마가 다투어 일어나는 점, 두 가지를 밝히셨습니다.
몸에 그림자가 따르듯이, 비에 구름이 있듯이, 이 정법을 실천하면 반드시 삼장사마가 출래합니다. 삼장사마 중에서도 사마(四魔)의 마지막 '천자마', 즉 '제육천의 마왕'이 가장 강합니다.
<미사와초>에서는 번뇌장 * 업장 * 보장의 삼장과 번뇌마 * 음마 * 사마(死魔)의 세가지 마를 겨우 극복한다 할지라도 천자마에 패한다면 부처가 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미사와초> 강의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신심을 한다면 사마(死魔)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생명도 연장할 수 있습니다. 몇 사람이나 나는 보았습니다. … 사마에는 이길 수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천자마입니다. 퇴전하는 사람을 보면 대부분 천자마 때문입니다."
도다 선생님은 항상 대확신에 차서 지도하셨습니다. "신심만 있다면 사마조차 극복하고 갱사수명할 수 있음'은 도다 선생님이 직접 증명하신 일입니다. 그런 만큼 도다 선생님은 제육천의 마왕은 정말 주의하라고 일관되게 외치셨습니다.
마지막 천자마가 참으로 성불의 최대강적입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한 마디로 말하면, 천자마의 정체는 자기 생명속에 있는 '원품의 무명'이기 때문입니다.
원품의 무명이 제육천의 마왕으로
대성인은 "원품의 무명은 제육천의 마왕으로 나타났으니." (어서 997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품의 무명'은 자기 생명이 묘법의 당체라는 사실에 대한 無智(무지)이며, 그리고 모든 생명이 묘법의 당체라는 것에 대한 무지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주 전체가 묘법의 당체라는 사실에 대한 무지입니다.
이 근원적인 무지는 여러 가지 불행을 초래하는 갖가지 미혹의 근본이고, 또 모든 악의 작용을 낳는 음침한 충동이 되어 나타납니다. 가장 인식하기 힘든 미혹이며 정체불명이기 때문에 모르는 사이에 우리 생명에 악의 힘이 드리워집니다. 또 모든 생명에 갖춰져 있기에 자타의 생명에 음침한 충동을 나타냅니다.
이렇듯 가장 분간하기 어렵고, 게다가 모든 생명을 악의 힘으로 자유롭게 조종하는 강력한 마성이기 때문에 '타화자재천자마' 혹은 '마왕'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원품의 무명이 강력한 악의 힘을 지녔다 해도 그 정체는 결국 '무지'이기 때문에 '지혜'로 반드시 분쇄할 수 있습니다. 그 지혜를 나타낸 사람이 '부처'입니다. 가장 궁극적인 지혜를 가르치는 법이 '정법'입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석존의 법화경이나 니치렌 대성인의 삼대비법인 남묘호렌게쿄가 이 '정법'의 의의(意義)를 지닙니다. 우리는 이 정법을 믿는 '신(信)'으로써 부처의 '지혜'로 바꾸어 범부이면서 원품의 무명을 타파활 수 있습니다. 즉 원품의 무명을 부수는 힘이 바로 '지혜'이고 '신'이며 '마음의 힘'입니다.
또 이 어서에서 대성인은 제육천의 마왕이 얼마나 무섭고 만만치 않은지를 알기 쉽게 설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육천의 마왕을 타파하는 힘은 '마음의 힘'임을 대성인 자신의 실천을 통해 밝히셨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는 제육천의 마왕이 지배하는 영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욕망적 * 정신적 * 물질적인 행위로써 만든 현실사회가 원품의 무명 때문에 고뇌의 유전을 한다는 뜻입니다.
이 제육천의 마왕이 가장 싫어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 영토에 부처의 세력이 확대되어 소령(所領)을 빼앗기는 일입니다. 정법 행자 한 사람이 성불하는 일은 그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민중이 마와의 속박에서 해방됩니다. 그래서 제육천의 마왕은 모든 권속을 모아 "각각 힘이 있는 한, 그 정법 행자를 괴롭혀라."하고 명령합니다.
이 마왕의 권속은 이른바 '십군(十軍)'을 말합니다. 즉 원품의 무명 때문에 생기는 욕(欲), 우수(憂愁), 기갈(飢渴), 갈애(渴愛, 깊고 강한 결핍을 채우고 싶은 욕구), 수면(睡眠), 포외(怖畏, 두려움), 의회(疑悔, 의심과 후회), 진에(瞋恚, 노여움), 이양허칭(利養虛稱, 물질적인 번영과 명성), 자고멸인(自高蔑人, 자신을 치켜세우고 타인을 멸시하는 것)이라는 여러 가지 번뇌나 미혹이 불도수행을 방해하는 마군이 되어 잇달아 밀려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정법 행자 자신이 이런 마에 지지 않으면 그 다음에는 정법 행자를 따르는 제자 * 단나를 비롯해 국토의 다른 사람들 몸에 들어가 행자를 박해하라고 마왕이 명령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생명속에 있는 원품의 무명이 마의 작용을 일으키는 모습입니다.
석존시대의 제바달다나 선정비고, 아세세왕, 대성인 시대의 산미보나 나고에의 부인 등은 이 마군에 패했기 때문에 사적대(師敵對)에 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닛코 상인의 사제불이 신심을 이해하지 못한 오노승도 결국 대성인을 사적대했습니다.
대성인은 산미보 등이 퇴전 * 반역한 원인은 '겁쟁이' '만심' '탐욕' '불신'에 있다고 통찰하셨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양허칭이나 자고멸인을 비롯해 포외, 의회, 진에 등의 마음 때문에 청순한 신심의 세계에서 멀어졌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신심 그 자체가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기 싫어 올바르게 실천하는 자를 계속 원질하고 오히려 비방했습니다.
마키구치 선생님, 도다 선생님 슬하를 떠나고 은사를 비방한 무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50년 무렵 도다 선생님 사업이 가장 힘들었을 때 일입니다. 그때까지 도다 선생님을 스승이라고 말하던 인간이 완전히 변해 '도다군, 도다군'이라고 깔보며 비판하던 모습을 직접 보았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천박한가. 나는 이 모습이 무명에 지배되기 쉬운 인간세계의 한 실상임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은사를 원망하고 적대하는 인간과 단호히 투쟁하자고 마음속을 굳게 맹세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근간이 되는 사은(師恩)마저 저버린다. 여기에 제육천의 마왕에게 패한 인간의 나약함이 단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사제의 길'을 결코 벗어나지 않겠다고 결의해야 비로소 그런 마성을 '속속들이' 여실지견(如實知見)하고 갈파할 수 있습니다.
나는 사은에 보답하는 삶을 확실히 보이겠다고 정하고 끝까지 실천했습니다. 그런 실천이 있었기에 비로소 무명을 타파한 곳에 나타나는 참된 생명의 강함을 몸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인간주의 종교'를 확신있게 주장하고, 전 세계에 그 흐름을 넓힐 수 있었던 까닭도 사제의 길을 관철하고 마성과 투쟁해서 승리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불법은 궁극적인 인간학(人間學)입니다. 제육천의 마왕과 장절하게 정신투쟁을 하는 속에서 위대한 인간성을 열고 확립하는 '인간을 위한 종교'입니다.
다시 어서로 되돌아가면 마왕의 권속인 마군이 정법 행자를 퇴전시키는 일을 실패한 후에는 드디어 마왕 자신이 천계에서 내려와 국주의 몸에 들어가 정법 행자를 탄압한다고 합니다. 즉 '권력의 마성'의 발동입니다.
'권력의 마성'이란 무엇인가. 모든 생명이 가장 존귀한 묘법의 당체임을 부정하는 '원품의 무명'이 나타내는 궁극적인 악의 작용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생명을 가볍게 여기고 악의 힘을 행사는 수단으로서 다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이용하는 작용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권력의 마성'은 무명의 발동으로 형성된 현실세계에 가득 찬 마성이 가장 강력하게 나타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왕이 국주의 '몸에 들어간다.'라는 말은 원품의 무명이라는 악의 작용이 국주의 생명중심에 자리잡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국주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그 사회의 힘이 모두 무명의 미망(迷妄)과 악의 작용을 바탕으로 가동된다는 뜻입니다.
요컨대 '삐뚤어진 생명'으로 사회가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니치렌 대성인은 이것을 '악귀입기신(惡鬼入其身)'이라고 단언하고, '귀신이 어지럽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니치렌은 한 번도 물러설 마음이 없었노라'
이 어서에서는 제육천의 마왕이 일으키는 대난은 견디기 어려움을 밝히고 나서 대성인의 대투쟁을 언급하셨습니다. 즉 일단 광선유포를 위해 일어서면 이런 제육천의 마왕이 반드시 출현한다. 대성인은 입종(入宗) 전에 이 점을 깊이 깨달으셨다고 술회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이 불법을 설하고 홍통하면 반드시 대난이 있다. 틀림없이 석존시대보다 '백천만억 배'(어서 1488쪽)나 큰 대난이 있다. 그러나 이 불법을 알면서 설하고 홍통하지 않으면 자신이 무간대성으로 떨어질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대성인은 자기 신명을 아끼는 마음을 버리고 민중구제라는 대도(大道)를 위해 일어서셨습니다. 그대 대성인이 결심하신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번 인생에서 어떤 대난에도 퇴전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설해 홍통하자." (어서 1488쪽, 취의)라는 각오였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겠다."라는 깊은 서원을 근본으로 했기 때문에 비로소 말법만년(末法萬年) 진미래제(盡未來際)에 걸친 민중불법이 개막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각오처럼 대난이 계속 되었지만 의심이 조금도 없고 후회 한 점 없이 정말 만족스러운 경애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제육천의 마왕을 타파하는 신심의 진수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홀로 서는' 신심입니다. 다른 누군가가 아닙니다. 자신이 홀로 서서 대난을 모두 받겠다는 서원이 있어야 비로소 불법은 민중에게 넓혀집니다.
'홀로 서는' 신심은 '불퇴의 신심'입니다. 어떤 장벽이 있어도 반드시 전진해 보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설령 생각지 못한 어려움에 부딪히고 괴로운 상황이 닥친다 해도 이를 악물고 버티며 결코 지지 않는다. 그리고 마왕의 힘이 바닥날 때까지 끝까지 참고 버티는 일이 그대로 다음 전진의 첫걸음이 됩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용감하게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간다. 장애에 봉착할 때마다 그 완고함을 더하는 파도처럼 더욱더 생명력을 강하게 한다. 그 '꿋꿋이 승리하는 힘' '조금도 해이하지 않는 마음'이 바로 그대로 마군에 대한 승리를 결정짓습니다.
대성인은 어떤 마도 반드시 타파할 수 있음을 자기 모습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불의 길을 불이(不二)의 제자가 출현함으로써 광선유포가 전진함을 가르치셨습니다.
"니치렌은 한 번도 물러설 마음이 없었노라." (어서 1224쪽)하는 말씀대로 대성인은 제육천의 마왕과 투쟁하며 한 번도 물러서는 마음이 없으셨습니다.
그리고 '권력의 마성'이 발동하고 '사마'가 날뛰던 다쓰노구치 법난에서 대성인은 당당히 승리하셨습니다.
대성인은 "다쓰노구치까지도 이겼고." (어서 843쪽)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한 인간으로서 제육천의 마왕과 벌인 더할 나위 없는 투쟁에서 승리했다는 진실한 승리선언이었습니다.
이 승리에 대해 "지금은 마와도 넌더리를 냈으리라." (어서 843쪽)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자유자재로 마성을 발휘하는 마왕도 넌더리를 냈다는 말은 대성인 한 분만이 승리했다는 것이 아니라 원품의 무명을 분쇄하는 진실한 지혜의 길을 후세사람에게 남길 수 있었다는 뜻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대성인 자신이 돌아가신 후에 마왕의 잔당이 병사를 일으킬지 모르겠지만, 이미 대다수는 대성인에게 항복했음이 틀림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참으로 고마우신 어본불이십니다.
그렇다면 대성인이 남긴, 원품의 무명을 타파하는 진실한 지혜의 길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인법일개의 '어본존'이십니다. 사도전과 사도후의 근본적인 차이는 이 '어본존'을 나타내신 점에 있습니다.
♣ 본문 (어서전집 1489쪽 7행~17행)
또한 법문(法門)의 일은 사도지방에 유배되기 이전의 법문(法門)은 다만 부처의 이전의 경이라고 생각하시라 (중략)
그런데 지난 문영 팔년 구월 십이일 밤 다쓰노구치에서 목이 잘려지려 했을 때부터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노라. 나를 따르는 자(者)들에게 참된 사실을 말하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하여 사도지방에서 제자(弟子)들에게 은밀히 말한 법문(法門)이 있노라. 이는 부처 이후 가섭(迦葉) * 아난(阿難) * 용수(龍樹) * 천친(天親) * 천태(天台) * 묘락(妙樂) * 전교(傳敎) * 기신(義眞) 등의 대논사 * 대인사는 아시고도 그러나 마음속에 감추어 두시고 입 밖에는 내시지 않았느니라. 그 까닭은 부처님께서 제지하여 가로되 "나의 멸후(滅後) * 말법(末法)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이 대법(大法)을 말하지 말지니라."고 있기 때문이로다.
니치렌든 그 사자(使者)는 아닐지라도 그 시각(時刻)에 맞을 뿐만 아니라, 의외(意外)로 법문(法門)을 깨달았으므로 성인(聖人)이 나오실 때까지 먼저 서분(序分)으로 대략 말함이라, 그런데 법문(法門)이 출현하면 정법(正法) 상법(像法)의 논사(論師) * 인사(人師)가 말씀한 법문은 모두 해가 뜬 후의 별의 빛이며 장인(匠人)의 솜씨를 보고 난 후에 졸렬(拙劣)함을 알게 됨과 같으니라. 이때에는 정상(正像)의 사당(舍堂)의 불상(佛像) * 승(僧) 등의 영험(靈驗)은 다 소실(消失)되고 다만 이 대법(大法)만이 일염부제에 유포하리라고 쓰여 있느니라. 여러분은 이러한 법문에 인연(因緣)이 있는 사람이기에 마음 든든하다고 생각하시라.
♣ 현대어역
또 법문에 대해서는 사도지방에 유배되기 이전에 법문은 다만 부처의 이전경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시라. (중략)
그런데 지난 1271년 9월 12일 밤, 다쓰노구치에서 목이 잘리려 한 다음부터는 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가엾다고 생각해 사도지방에서 제자들에게 은밀히 설한 법문이 있다.
이것은 석존 이후 가섭 * 아난 * 용수 * 천친 * 천태 * 묘락 * 전교 * 기신 등 대논사와 대인사는 알고 있으며 게다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입밖에 내지 않은 법문이다.
그 이유는 부처가 말리며 "내가 입멸한 후에 말법시대에 들어가지 않으면 이 대법은 말하면 안 된다."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니치렌은 그 부처의 사자는 아니지만, 말법의 때에 맞을 뿐 아니라 뜻밖에 이 법문을 깨달았으므로 성인이 출현하실 때까지 먼저 서분으로 대략 말한다. 즉 이 법문이 출현하면 정법시대나 상법시대에 논사나 인사가 설한 법문은 모두 해가 뜬 뒤의 별빛과 같고, 명장이 나온 후에 서투름을 아는 것과 같다.
이때에는 정법시대나 상법시대 사당(舍堂)의 불상이나 승려들의 공덕은 모두 사라져 없어지고 오직 이 대법만이 전 세계에 유포할 것이라고 설했다. 여러분은 이런 법문에 숙연이 있는 사람이므로 마음 든든하다고 생각하시라. (어서 1489쪽 7행 ~17행)
인류를 구하는 새로운 대법 흥륭의 때
'사도전 * 사도후'의 원리를 밝히신 유명한 일절입니다. 대성인은 여기에서 제육천의 마왕에 승리하고 발적현본했으므로 드디어 인류를 구하는 대법을 홍통하심을 문하에게 선언하셨습니다.
대성인이 홍통하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는 대법은 언제 어느 때 설해도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대성인이 사도에서 인본존과 법본존을 개현(開顯)하신 의의는 정말 큽니다.
이 대법을 홍통해야 할 때가 도래했다!
성인이 출현할 때까지 내가 홍통했다!
이 말씀은 대성인 자신이 실질적인 말법의 교주(敎主)임을 밝히신 구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성인이 홍통하는 법문의 의의를 선언하셨습니다. 대성인 불법은 태양의 불법입니다. 이 불법에 출현하면 그때까지 있었던 정법 * 상법시대 불법은 모두 태양이 떠오른 뒤의 별빛처럼 된다며 불법의 흥망은 단언하셨습니다.
태양은 만인을 평등하게 비춥니다. 태양빛에는 힘이 있습니다. 어둠을 부술 수 있습니다. 또 어둠이 깊은 시대에는 인간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여는 종교가 필요합니다. 또 어둠이 깊은 시대이므로 모든 마성을 타파하고 원품의 무명인 제육천의 마왕의 작용에 승리할 수 있는 힘있는 종교가 불가결합니다.
대성인 불법은 누구나 가장 존귀한 생명을 지니고, 누구나 태양처럼 빛날 수 있다고 설해 밝힌 희망의 종교입니다. 세계는 인간주의 종교를 대망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니치렌 불법이 인류사의 영광스러운 무대에 떠오르는 아침 해처럼 등장할 시대를 맞았습니다.
대성인은 "나와 함께 투쟁한 여러분은 더욱 이 법문과 숙연이 있는 사람들이므로 마음 든든하다고 생각하시라." 하는 구절로 이 문단을 마무리하셨습니다. 대성인은 항상 문하를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이 대성인에게 직결하는 곳이 창가의 세계입니다. 나는 모든 마성과 싸우고 혼미한 세계를 희망과 소생의 묘법이라는 빛으로 비추는 우리 지용의 보살들에게 "영광 있으라! 행복 있으라! 승리 있으라!"하고 기원하며 외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법련 2008년 9호)
첫댓글 감사합니다.
복사하고 싶습니다. 이메일 matiz2729 한메일로 좀 보내주실수 없을 까요
복사가능으로 변경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