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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1:31-35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속임수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들이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나 그들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몰락하리라 그들이 몰락할 때에 도움을 조금 얻을 것이나 많은 사람들이 속임수로 그들과 결합할 것이며 또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몰락하여 무리 중에서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 이는 아직 정한 기한이 남았음이라”
우리는 지난번에 자기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라는 제목으로 31절부터 33절까지 읽고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박해를 받아 왔는지 그 시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렇게 박해 하였던 세력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교회를 인정하고 받아 들이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국권의 도움을 받아 안정을 누리게 된 기독교가 어떻게 변질 되었는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은 지난번에 다 말씀드리지 못한 내용을 좀 보충해서 말씀을 드리고요.
나머지 35절까지에 기록된 말씀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릴 위해 준비하신 은혜를 함께 나누게 되길 소망해 봅니다.
다니엘서 11장 31절에는 특별한 용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어떤 내용을 말씀드리려 할까요?
예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 라는 말씀입니다.
몇 번 이 용어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용어를 70인 역에는 “성전 위에 멸망캐 하는 미운 물건” 으로 번역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용어가 다니엘서에 세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다니엘서 9:27절입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라는 용어가 보입니까? 예 없죠?
예 9장에는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로 개정 개역에는 번역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우리가 읽은 11장31절에 있는 말씀이고요.
세 번째는 다니엘 12장 11절입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 세울 때부터 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이곳에는 11장처럼 “멸망하게 할 가증한 것을”이라는 용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게 번역되었지만 70인역에는 다 같은 용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럼 70인역은 어떤 성경인지도 조금 말씀 드려야 되겠죠?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예수님 오시기전 약 300년전 이스라엘은 헬라 문화권에 살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헬라어에 익숙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히브리어는 모르고 헬라어만 아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학자들이 모여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기로 하였습니다.
누구에게 이 귀중한 번역을 맡길까 의논하여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성경에 능통한 학자들 6명씩 뽑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72명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제 각기 다른 장소에서 각각 구약성경 전권을 번역하여서 하나로 만드는 작업을 하였다고 합니다.
전승에 의하면 그렇게 번역한 성경이 다 통일 되었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는 70인역 성경이 완성된 가운데 사셨습니다.
그래서 요즘 인터넷에 보면 예수께서 읽으신 성경 이라는 성경 홍보글자가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요.
그 성경에는 오늘 우리가 보는 성경 외에 우리가 외경이라는 성경과 위경이라는 성경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많은 성경을 중세 시대 일어난 성경 학자들이 성경 분리 작업을 하여서 66권 만이 정경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고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보는 성경으로 분리 시켜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카토릭교회와 정교회 등에서는 위경을 성경에 포함 시킨 성경 공동번역 성경은 보고 있습니다.
그럼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은 무슨 말일까요? 그것을 세운 목적이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에 대하여 언급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 24: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같은 말씀이 마가복음 13장 14절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누가는 헬라인들을 위하여 기록되었습니다. 누가가 헬라인이기 때문에 동족을 많이 생각한 것이죠?
유태인들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고 있지만 헬라인들은 모른다는 것이죠, 그래서 해석해 주어야 합니다.
누가복음은 멸망의 가증한 것을 이렇게 해석해서 기록하였습니다.
눅 21:20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누가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무엇이라고 해석했습니까?
예루살렘이 로마 군대들이 에워 싸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석한 누가의 성경해석이 바른 해석이라고 이해됩니까?
예수님께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던 그 다음에 무슨 말씀하셨습니까?
마24:16-18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러니 멸망의 가증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되겠죠.
누가는 정확하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유태인들도 정확하게 이해를 하였습니다.
로마의 속국으로 있었지만 예루살렘을 로마화 하려는 로마의 정책에 불만을 품은 유태인들이 잦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 반란을 진압하려고 케스티우스를 보냈습니다. 대쟁투에는 세스 티우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잠간 말씀드린 인물입니다.
그러나 모든 여건이 승리할 수 있음에도 그는 철수 하였다고 하는데 그때 유태 군대가 후퇴하는 로마군의 후미를 공격하여 마치 승리를 한 것처럼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 왔다고 합니다.
그 무렵 예언을 살피고 있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그 열린 성문을 통하여 다 도망하여 요단 건너에 있는 베뢰아 땅에 있는 벨라성으로 피난하여 한 사람도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언을 살피는 눈이 그래서 더욱 필요합니까?
마지막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을까요? 다음에 다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세워 질 때 우리도 도망하라는 경고를 자세히 살펴야 할까요?
그러기 위하여 지금 우리는 말씀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아멘입니까?
말씀에 주의 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었던 사람들은 로마가 티투스를 선봉으로 세워 두 번째 침공하였을 때 역사가 요세프스에 의하면 약 100만명이 죽임을 당하였다는 역사적인 기록이 있다는 것도 지난번에 말씀드렸죠?
그 참상은 각시대의 대쟁투 예루살렘의 멸망이라는 장에 너무나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우리가 읽은 다니엘서를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단 11:31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며”
로마로 인하여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는 것이라고 증언의 말씀으로 우리는 이해를 하였습니다.
그 일로부터 유태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박해를 받았고요.
지난번에 말씀드리는 것처럼 그러한 일로 인하여서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 배교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움직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살후 2: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먼저 어떤 일이 있을 것이라 합니까? 배도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요?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배도한 그리스도인들과 콘스탄틴의 정치를 위한 전략이 들어 맞아 성소에 들어 놓아서는 안되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다시 세워지게 됩니다.
콘스탄틴에 의하여 내려진 일요일 휴업령이 그렇다고 이해를 합니다.
어쩌면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 싸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일요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아닙니까?
그 일로 교회는 더욱 부패 하여지고 세상으로 향하는 문은 활짝 열려 져서 교회는 세속화의 물결이 교회를 휩쓸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다니엘서 11장 32절은 이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단 11:32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속임수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
어떤 사람들요?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이라고 합니까?
용맹을 떨치리라,, 뭐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온 세상이 배도의 물결가운데 떠 내려 갈지라도 하나님 편에서 이탈하지 않고 진리를 고수하며 전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임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까?
그 다음절 33절은 그들이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와 세상에서 어떤 대접을 받게 될지를 기록한 말씀을 보여 줍니다.
단 11:33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들이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나 그들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몰락하리라”
어떤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까?
지혜로운 자들이,,,어떻게 할 것이라고요?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칼날과 불꽃과 사로 잡힘과 약탈을 당하고 몰락하게 될 것이라 합니다.
종교 자유는 교황의 교권을 잡음으로 인하여 다시 사라 졌습니다.
교황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사용하여서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을 이전에 로마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박해의 깃발을 올렸습니다.
교황권에 저항하였던 대표적인 단체는 왈덴스 인들이었습니다.
왈덴스인들은 다른 말로는 왈도파라고 불리워 졌습니다.
다른 말로는 왈도라는 사람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1140년에서 1217년까지 살았던 창시자 피터 왈도는 프랑스 리옹이라는 지역 출신의 부유하고 영향력이 있는 젊은 상인었습니다.
그는 1173년 성경을 읽다가 예수께서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마가복음 10장 21절의 말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곳에 어떤 말씀이 있습니까?
막 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은 왈드는 그 말씀을 문자 그대로 따르기로 결심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요 의도적으로 가난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후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그는 성경을 번역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고용하여서 그 당시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을 자신의 지역 프랑스어로 성경을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번역본을 로마에 제출하여서 로마 교황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번역본을 가지고 왈도는 공개적으로 성경을 전하고 가르치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왈도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둘씩 둘씩 짝을 지어서 도시와 마을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런 것이 교황의 눈에 거슬렸고 1179년에는 설교하는 것이 금지되었음에도 왈도는 사도 베드로가 사도행전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보다 제 말을 순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면서 설교를 계속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1183년에는 대주교에 의하여 도시에게 추방당하였습니다.
추방당한 왈도는 추종자들과 함께 알프스 산맥 지역으로 이사를 하여서 로마 교황의 눈을 피하여 상인으로 위장하여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왈도가 죽은 이후에도 그의 추종자들의 복음전도는 쉬지 않았습니다.
그후 1251년 로마교회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왈도의 추종자들이 사는 마을이 불에 탔고 그 마을에 사는 왈덴스 인들은 다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1545년에는 십자군을 동원하여 알프스 산중에 살고 있는 왈덴스 인들 22개의 마을에 대한 학살이 있었다고 역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때 약 3000명의 왈덴스 일들이 죽임을 당하였고요.
1655년 1월 부활절은 피의 봄이라고 알려진 대 학살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1685년 루이 14세때에는 다시 왈덴스 소탕령이 내려 2.000명이 학살되었고 8.000명 이상이 잡혀갔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알프스 산중에 왈도의 신앙을 본받아 신앙하는 왈덴스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 2015년 교황 프란치스코가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왈도파 신자들에게 용서를 구했다고 합니다.
다음은 그곳에 방문한 교황의 말입니다.
“카토릭 교회측에서 용서를 구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보여준 비 기독교적이고 비 인간적인 태도와 행동에 대해 용서를 수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를 용서하소서” 라고 했다고 합니다.
카토릭이 잘못을 인정하는 것 같습니까?
그러나 종말의 때에 다시 사탄은 북방왕의 이름으로 나오는 그 세력을 사용하여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를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그런 내용을 우리는 앞으로 살펴보게 될 것이고요.
북방 왕의 뜻을 거절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자 하는 자들을 향한 박해와 관련된 기록을 우리는 보고 있고요.
그런 내용을 다니엘서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다고 했습니까?
단 11:33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들이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나 그들이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여러 날 동안 몰락하리라”
왈덴스 인들 외에도 수 많은 종교 개혁자들이 있었습니다.
죤 위클립이 있었고요, 후스와 제롬이 있었고요. 루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름없이 빛도 없이 순교자의 자리에서 진리를 죽음으로 증언한 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다니엘서는 칼날과 불꽃과 사로잡힘과 약탈을 당하여 몰락하리라는 말씀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다니엘서의 그 다음 말씀은 이런 기록을 보여 줍니다.
단 11:34-35 “그들이 몰락할 때에 도움을 조금 얻을 것이나 많은 사람들이 속임수로 그들과 결합할 것이며 또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몰락하여 무리 중에서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 이는 아직 정한 기한이 남았음이라”
그들이 몰락할 때에 도움을 조금 얻을 것이나 종교 개혁자들이 성공할 것이라는 말씀 같습니까? 실패할 것이라는 말씀 같습니까?
몰락할 것 같으면서도 몰락하지 않고 크게 성공할 것 같으면서도 성공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던 종교 개혁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할 것이라 합니까? 속임수로 결합하게 될 것이다.
종교 개혁은 찬란하게 시작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한 상태로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이해를 합니다.
그 이유는 아직 무엇이 남아 있다고요? 정한 기한이 남아 있다.
우리는 우리 선배들이 피로 지킨 진리 위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장 기초에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이 있고요.
그 위에 사도들의 피가 있고요. 그 위에 피로서 믿음을 지킨 우리 선배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무엇으로 지켜야 됨을 가르쳐 주죠?
너무 안일하게만 믿음의 생활 하려고 생각하시지 마시길 바랍니다.
일부러 어려둔 신앙생활을 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에게 올 것 같은 시련을 미리 겁내요 말씀에 타협하는 그런 신앙은 우리의 궁극적 구원에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죠.
우리 성도님들 다시 한번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아 온전한 믿음으로 살아가야 겠다는 그런 결심들이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축복합니다.
개인 기도.
타협하면서 믿음의 생활을 해 왔던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소서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 어떤 장벽이 와도 극복하는 믿음을 주소서
우리만 구원 받기 위함이 아니라 죽어가는 영혼들을 돌아 볼 수 있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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