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남쪽에서는 6월15일이면 모내기철의 적기라고 했다. 그러나 가뭄으로 적기에 모를 심지 못하고 7월 초순까지 갈 때도 많았다. 그럴 때면 힘을 모아 도랑을 치고 보를 막고, 물을 품어 올리며 민 관 군 학생들이 일체가 되어 모심기지원에 총력전을 펼치기도 하였다.
이미 멀 대처럼 웃자라 있는 모판의 모들을 옮겨심기 위해서는 싹둑, 반쯤이나 잘라내야만 했다. 어차피 키가 너무 커버린 모들을 심어놓으면 허리가 부러져 못쓰게 되어 새움이 다시 자라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고향의 옛날 모내기 철 보다는 많이 빠른 이곳 고색동에서는 지난 5월23일에 모내기 행사가 있었던 것이다.
'농자천하지대본' 마지막 남은 고색동의 푸른 들판_1
왜아니겠는가. 드넓은 고색동의 큰말과 작은말의 들판이 산업단지로 바뀌었고, 이제는 마지노선처럼 그 명맥만 한쪽 귀퉁이에 남았으니 말이다. 조상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이곳 농민들에게는 회한어린 땅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곳 '소보들'에 남은 논은 백여 마지기로 1만5천 평에 이른다.
이날 행사에는 고색중학교 학생들을 비롯하여 권선구청장등 지역 유지와 관계 공무원들이 다수 참가했으며, 이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깃발아래 살아온 이곳 농심을 위로하는 자리였다고 생각된다. 또 나이어린 학생들에게는 체험학습장이 되어 직접 무논에 들어가 손모심기를 해볼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농사의 어려움과 쌀에 대한 소중함을 느낄 수 있게 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일로 생각 되었다. 어른이 된 뒤에도 이들 학생들에게는 좋은 추억과 삶의 양식이 되어 쌓여 남을 것으로 보였다.
'농자천하지대본' 마지막 남은 고색동의 푸른 들판_2 요즘과 같이 타들어가는 가뭄 속에 지난 번 심어놓은 모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6.25전쟁기념일이 다가오고 있어 이 또한 고향의 모내기철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당시 평화롭기만 하던 산골짝 논에는 전쟁을 알리는 포탄이 갑자기 쏟아졌고, 모를 심다말고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피난 짐을 싸야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도 심던 모춤을 풀어 헤쳐 던져놓고 달아난 논에서는 곡식을 거둘 수가 있었지만, 그렇지 않고 묶인 채로 버리고 간 논에서는 거둘 수가 없었다는 어른들의 애환서린 이야기가 생생하게 상기되어 오기도 했다.
모를 심어놓은 소보들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고색동에는 서호천의 물을 끌어와 농사를 짓고 있는 곳이다. 그러니 서호에 물이 있어 마르지 않는 한, 고색동 들 논은 예로부터 문전옥답이라고 할 수 있는 수리안전답인 것이다. 서호 하류를 따라 내려오면 첫 번째 보가 '소보'이며, 그 아래로 평고교와 교통량이 비교적 많은 중보교를 지나서 내려오면 중보가 있었는데 지금은 중보와 대보가 모두 철거되어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농자천하지대본' 마지막 남은 고색동의 푸른 들판_3
유일하게 소보와 소보들이 남아있어 이렇듯 하루가 다르게 짙어가는 푸른 들판을 바라보면 가슴이 일렁여온다. 고향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하며 향수가 물씬한 들판을 물들여오면 그것은 어머니의 품안 같은 것, 하지만 어찌 어머니 품만 이겠는가. 물그림자 드리우는 논두렁에는 고깔 쓴 농악대의 상쇠소리가 어깨춤을 불러온다. 농부들이 허리 펴며 줄이야! 외치는 소리도 풍년가 되어 들려오면 배꼽시게, 시장기 달래주던 들밥도 그리워진다. 광주리를 펴놓고 논둑에 둘러앉아 막걸리 목을 축이던 얼굴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보인다.
"어이~어이!"하고 손짓하며 옆 논배미의 이웃을 부르는 소리도 정답게 들려왔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다가 마침내 발길을 돌려 이번에는 물도랑을 찾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내 논에 물 한 방울이라도 더 끌어다 넣기 위해 이웃 간에도 물싸움을 벌여야 했던 치열한 전장 터도 아니었다. 도로를 지나고 건물도 지나며 자동차매매시장을 지나 물도랑은 그렇게 땅속으로 뻗어 지나야 했다. 그러다가 채소밭을 거슬러 서호천에 내려가니 그곳이 바로 소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농자천하지대본' 마지막 남은 고색동의 푸른 들판_4
이런 곳에 물을 끌어올 수 있는 보가 설치되어 있었기에 가뭄에도 끄떡없이 농업용수를 공급할 수 있는 것이며, 많은 전답의 작물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그 옛날의 정조대왕께서 마치 지금에도 살아계신 분만 같았다. 둑을 쌓고 물을 가두어 지금과 같은 과학문명이 발달한 세상에도 하늘만 쳐다보며 기우제도 지내는 판에, 가뭄을 이겨내는 지혜를 주셨으니 어찌 앞날을 내다보는 성군이라 칭송하지 않겠는가싶었다.
올 한해도 가뭄을 잘 이겨내고 모든 들녘에 풍년이 깃들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