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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kbi-미술이야기 스크랩 장-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녹비 추천 0 조회 103 12.02.02 11:4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나이절 워버턴Nigel Warburton『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 Philosophy the Classics』(도서출판 知와 사랑) 중에서

 

 

 

장-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버려짐abandonment, 불안anguish, 절망despair, 이 세 가지는 장-폴 사르트르의 공개강연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L’Existentialisme est un humanisme〉에 담긴 핵심개념이다. 1945년 10월에 파리에서 시작해 훗날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같은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었으며, 이 책은 아마 그의 철학서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일 것이다. 훗날 사르트르는 강연을 책으로 출판한 점을 후회했다. 하지만 몇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아직도 우리의 상상력에 불을 지피고, 인간의 선택과 책임에 관한 진지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사르트르가 나중에 훨씬 난해한 책인 『존재와 무』를 집필하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실존주의에 대한 그의 강연은 파리가 독일에 점령당한 2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토대로 시작한 것이었다. 강연을 시작한 1945년 10월은, 여느 때라면 평온한 삶을 누렸을 법한 사람들이 독일의 점령, 저항운동, 비시 정부 등과 관련한 지조, 배신, 참여 같은 피할 수 없는 문제에서 막 벗어난 때였다. 사르트르 자신도 참전 후 전쟁포로가 되었다가 독일군에 점령된 파리로 돌아온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사르트르의 사상 가운데 많은 부분은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려는지, 그리고 어떤 존재가 되고자 하는지를 결정하는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실존주의란 무엇인가? what is existentialsim?

실존주의는 철학과 심리학뿐 아니라 여러 예술장르에도 영향을 미친 철학운동이다. ‘실존주의자’라는 용어는 가브리엘 마르셀이 사르트르를 언급하면서 처음 사용했다. 사르트르가 실존주의자라는 명칭을 받아들이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

실존주의자들은 저마다 다양한 신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 따르면, 모든 실존주의자들이 공유하는 신념은 인간의 경우 ‘존재는 본질에 선행한다’라는 것이다. 이 말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선재적先在的 청사진이 없다는 의미이며,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인간의 본성 또한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자신이 되고자 하는 바를 선택한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서는 우리의 본질이 의존하는 정신을 가진 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먼저 존재하고, 행동을 통해 스스로 원하는 바를 만들어간다. 선택을 통해 우리는 각자 어떤 식으로 존재할지 결정한다. 우리는 우리가 되고자 하는 것을 완전히 자유롭게 결정한다. 이와 동시에 사르트르가 보기에는 이런 자유에는 피할 수 없는 짐이 동반된다.

반면 인공적인 사물은 그것의 기능, 본래의 목적에 의해 규정된다. 가령 주머니칼이 있다고 할 때, 만약 그것이 물건을 자르지 못하거나 거기에 접는 칼날이 없다면 그것은 주머니칼이 아니다. 주머니칼의 본질 ?그 밖의 다른 것이 아닌 바로 주머니칼이게끔 하는 것? 은 그것이 탄생하기 전에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정신 속에 있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다르다. 우리에게는 미리 결정된 목적이 없고, 우리의 본질을 자신의 정신 속에서 결정하는 신적 존재도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사르트르는 도덕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인간의 공통적인 본성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선택할 인간의 자유를 강조한 점은 모든 실존주의 사상가들의 특징이다. 비록 사르트르는 무신론자였지만, 가브리엘 마르셀 같은 실존주의자들은 기독교인이었다.

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 what is humanism?

사르트르 강연의 중심축은 그가 표방한 실존주의가 휴머니즘의 한 형태임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휴머니즘’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용어이다. 따라서 사르트르가 이 용어를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 명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휴머니즘은 인간을 만물의 중심으로 여기는 이론에 해당한다. 일례로 르네상스 시대의 휴머니즘은 신의 본성에 관한 고찰에서 벗어나 예술과 문학을 중심으로 인간의 업적에 관심을 갖는 경향이었다. 휴머니즘은 인간적 가치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휴머니즘은 세속적 운동 ?도덕적 원천으로서의 신이 존재한다는 관념에 반대하는 운동? 을 가리키는 용어이기도 하다.

사르트르가 실존주의를 휴머니즘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 즉 모든 가치의 창조과정에서 인간의 선택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를 창조하고, 심지어 도덕까지 창조한다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중요시하는 가치에 책임이 있다. 한편 사르트르가 실존주의를 휴머니즘이라고 주장한 것은 그의 접근법을 인간의 정신과 잠재력에 관한 음울하고 위험한 비관론으로 바라본 비평가들에게 답하는 차원이기도 했다.

비판에 답하다 answering his critics

몇몇 비평가들은 실존주의가 ‘절망에 따른 정적주의靜寂主義’로 귀결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실존주의를 무위의 철학philosophy of inaction, 즉 사람들을 절망에 빠트려 어떤 행동방침도 고수하지 않도록 하는 단순한 정관적 철학으로 여겼다. 또 어떤 비평가들은 실존주의자들의 지나치게 비관적인 태도, 그리고 유독 부정적인 인간 조건에 집중하는 점을 지적했다. 가톨릭 진영의 비평가인 메르시에는 사르트르가 아기의 미소를 잊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실존주의가 개인의 선택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인간의 연대를 도외시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실존주의는 개인을 사회의 필수요소가 아니라 하나의 섬으로 간주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기독교인들은 공통적으로 이 점을 지적한다. 실존주의가 자유로운 실존적 선택이라는 핑계로 극악한 범죄를 합리화한다고 비판하는 관점도 있었다. 실존주의자들은 천부적인 도덕률 개념을 부인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한 사르트르의 반응은 버려짐, 불안, 좌절이라는 세 가지 개념을 분석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었다. 사르트르의 관점에서 이 세 가지 개념에는 특유의 의미가 있었다. 모두가 전문용어인 이들 개념이 함축한 의미는 일상적인 용법에서의 의미와 크게 달랐다. 세 가지 개념 모두 일상적인 용법에서(적어도 영어의 경우에는) 다양한 종류의 무기력과 고통을 암시한다. 하지만 사르트르의 관점에서 이들 개념에는 피상적인 독해로는 알아채기 어려운 낙관적인 측면도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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