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6. 04
‘법을 만든 사람이 법을 어겼다’는 논란으로 영국이 시끄럽다. ‘정치 지도층이 지켜야 할 법과 국민이 지켜야 할 법이 다르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여론 악화로 보리스 존슨 총리까지 코너에 몰려 있다. 보리스 존슨의 수석보좌관 도미닉 커밍스가 코로나19 봉쇄령을 어기고 416㎞를 운전해 부모 집이 있는 고향 더햄에 다녀온 일이 발단이 됐다. 영국의 대표적인 진보언론 ‘가디언’과 보수언론 ‘데일리미러’가 독자들의 제보를 바탕으로 기사화하면서 걷잡을 수 없게 여론이 악화되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커밍스 수석보좌관은 지난 5월 25일 영국 정치사에 자주 등장하는 ‘장미정원’으로 기자들을 불러들여 기자회견을 했다. 장관이나 총리가 아닌 수석보좌관 신분으로는 총리 관저 내 정원에서 열린 역사상 첫 기자회견이었다.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뜻이었고, 동시에 존슨 총리가 전적으로 커밍스를 신임한다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사태 악화 부른 존슨과 커밍스의 오만
커밍스는 기자회견에서 “나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또한 사과도 하지 않았고 사임도 고려하지 않는다면서 정면돌파를 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커밍스는 자신과 아내가 코로나19에 감염되어 만일의 사태가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 4살 아들을 부모 집 농장 별채에 따로 사는 10대 조카 둘에게 맡기러 갔다고 변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행동이 봉쇄령이 언급한 ‘아동과 관련한 특별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강변했다. “나는 합리적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바로 이어서 총리 관저 내에서 열린 코로나19 일일 언론 브리핑에서 존슨 총리도 커밍스의 행동이 위법이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서 그에 대한 신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는 사태를 무마시키려 했다. 영국 사회에서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고 행동이 따라야 한다. 즉 공직자로서는 사퇴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과만 하고 사퇴하지 않는 전례는 없다. ‘말은 쉽다(word is cheap)’라고 지적하는 영국인들은 입으로만 하는 사과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니 커밍스나 존슨이 버틸 수밖에 없다.
물론 이번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고 조기 수습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존슨과 커밍스의 거만과 오만이 상황을 이렇게 악화시켰다는 지적이다. 가디언과 데일리미러는 커밍스가 전국 봉쇄를 깨고 부모 집을 두 번이나 방문했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를 마친 후 총리실에 이를 알리고 반응을 6주간 기다렸다. 결국 대답이 없자 총리실 반응 없이 보도했다. 커밍스를 알아본 주민들이 여러 명 있었다는 사실을 총리나 커밍스가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이 몰고 올 파장을 소홀하게 생각한 측면이 있다. 언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도 총리가 사태를 수습할 생각을 하지 않고 버틴 점이 여론을 악화시켰다. 의회를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고 당내에도 반대파가 거의 없다는 거만이 작용한 듯하다는 평이다. 재적의석(650석)의 과반수(325석)에서 40석이 넘는 365석을 차지하고 제2당인 노동당의 202석보다 무려 123석을 앞서니 거만해져서 사태 수습을 미루다가 일을 크게 만들었다는 비판이다.
보통 영국에서 정치인의 ‘데스노트’는 대표적인 진보언론 가디언과 보수언론 데일리미러가 동시에 비난하는 경우를 말한다. 현재 두 언론이 모두 강력하게 커밍스와 해임을 미루는 존슨 총리를 비난하고 있으니 이미 데스노트는 발행되었다. 특히 가디언지는 연일 표제 기사로 커밍스 사태를 다루고 있다. 존슨 총리 내각에서도 균열 조짐이 보이고 있다. 기자회견 다음 날인 5월 26일 보수당 초선 하원의원이자 존슨 총리 내각에서 스코틀랜드 담당 정무차관을 맡고 있는 더글러스 로스가 커밍스 사태를 다루는 존슨 총리에 반발해 사임했다. 20여명의 성공회 주교들도 커밍스의 해임을 촉구했다. 주교들은 사태를 조기 수습하지 않으면 정부의 코로나19 대처 정책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했다. 보수당 하원의원의 10%에 해당하는 40명의 의원들도 커밍스의 사임이나 해임을 요구했다. 한 보수당 의원은 “나는 마녀재판이나 대중에 의한 여론 린치 집단폭력은 안 믿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라고 했다. 보수당 의원들은 매일 유권자들로부터 100여통의 항의 메일을 받는다면서 항의 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토로하고 있다.
현재 존슨 총리 지지도는 최근 39%에서 20%로 떨어졌고 보수당 지지율도 44%에서 16%로 떨어졌다. 71%의 영국인이 커밍스가 법을 어겼다고 믿고 있는 상태다. 커밍스 사임에 58%가 찬성, 28%가 반대, 20%가 모른다는 조사 결과에 비춰 보면 커밍스와 존슨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사실 사태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로 거의 4만명에 육박하는 사망자를 낸 영국인들은 별별 개인적인 슬픈 사연을 감내하고 있는 상태다. 10대 아들이 평소 앓던 천식이 악화되었는데도 코로나19 사태로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아 아파트에 혼자 남겨져 있다고 호소하는 부모, 암 투병하는 부모를 호스피스 환자와 직원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어 마지막 순간에도 찾아뵙지 못한 자식 이야기까지 수도 없다. 더군다나 스코틀랜드 수석의학관이 주말을 이용해 자신의 시골 별장에 단 한 번 갔다는 이유로 사임한 지가 얼마 되지도 않았다.
▲ 왼쪽부터) 커밍스 집 앞에 그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조금 더 평등하다’는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의 한 대목이 쓰여 있다. 자택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보리스 존슨 총리의 수석보좌관 도미닉 커밍스. 코로나19 봉쇄령을 어기고 416㎞를 운전해 부모 집을 다녀온 사실이 언론 보도로 알려지면서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 ⓒ 뉴시스
‘당신에게 적용 안 되면 내게도 적용 안 된다’
그런데도 커밍스는 자신의 행동을 ‘자식을 위한 부모 마음’이라는 이유로 합리화하는 ‘내로남불’로 일관하고 있어 영국인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사실 영국 정부의 어설픈 코로나19 봉쇄안이 시작될 때만 해도 과연 지켜지겠느냐는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실행해 보니 영국인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잘 지켜졌다. 그런데 법을 만든 주요 인물이 법의 구멍을 이용해 위법이 없다고 우기니 영국인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법적으로는 위법이 아니지만 ‘국민정서법’에는 중대하게 저촉이 되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영국인들은 “만일 당신에게 적용이 안 된다면 내게도 적용이 안 된다(If it doesn’t apply to you, it doesn’t apply to me too)”라고 반발하고 있다. 커밍스 기자회견 다음 날 보건부 장관이 일일 브리핑에서 “아이 문제로 봉쇄 위반 벌금(60파운드·약 9만원)을 통보받은 가족의 경우 재심을 고려하겠다”라고 밝히는 코미디 같은 장면까지 나왔다.
평소에도 영국인들은 어떤 일에 자식, 부모, 아내, 가족 핑계 대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누구나 다 있는 가족인데 왜 네 가족만 특별하냐는 통념 때문이다. 이번 커밍스 사태가 바로 그런 경우다. 커밍스 집 앞에는 항의 글을 적은 팻말을 들고 몰려온 시민들도 많다. 그중에서 가장 최고는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나오는 글귀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조금 더 평등하다.(All animals are equal but some animals are more equal than others.)’ 평소 과격한 단어를 잘 안 쓰는 영국인들도 이번 사태를 두고는 “울화가 치민다(peed off)”고 말한다.
영국 언론은 커밍스가 여론의 동정을 얻기 위해 장난질(makes play for public’s sympathy)을 한다고 비난한다. 여론을 가라앉히려고 한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커밍스의 자세도 여론 악화에 큰 몫을 했다. 왜 사임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커밍스는 “이해할 만한 분노가 있는 건 안다. 그러나 국민의 분노는 진실이 아닌 언론 보도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건 아주 유감스럽게도 언론이 잘못된 제보를 받고 확인도 하지 않고 보도해버린 탓이다”라고 언론 탓을 했다. 영국 국민이 언론을 싫어하고 의심하는 걸 노려 언론 플레이 명수답게 술수를 부렸다는 평까지 나온다.
커밍스가 기자회견을 한다고 했을 때 사임을 기대한 사람들과 기자들이 많았다. 지금까지 영국 정계의 상식과 전통을 따르면 사임하는 것이 당연했다. 영국 정치에는 ‘보좌관이 뉴스 초점이 되면 그는 사임해야 한다(when an adviser becomes the story, he should go)’라는 규칙이 있을 정도다. 과거의 전례에 비춰 보면 이런 경우 일단 사퇴를 시키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토니 블레어 전 노동당 총리 정부 때 블레어의 언론홍보 담당 보좌관(spin doctor) 피터 만델슨이 바로 그랬다. 두 번이나 작전상 사퇴했다가 얼마 안 있어 승진해서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도 커밍스는 물론 존슨까지도 승패가 이미 분명해진 싸움에서 버티고 있다. 대개 이런 경우 내각 요원들은 조용히 침묵을 지킨다. 당을 해치고 정부를 위기로 몰아가는 한 사람의 개인에게 매달리지 말고 해임하라는 압력을 겸해 총리에게 일임한다면서 침묵한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조금 다르다. 존슨 총리의 정치적 단짝이자 라이벌인 마이클 고브 국무조정실장을 비롯해 주요 장관들이 트위터와 당내 중진들과의 통화에서 커밍스 보호에 적극 열을 올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영국 정치와 정계를 잘 아는 필자 지인들은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우선 총선 압승과 브렉시트 완수 과정의 주요 설계자인 커밍스 없이는 존슨 총리가 국정 수행을 해나갈 수 없다고 본다. 자신의 의견이 별로 없고 오로지 커밍스의 두뇌에 의존하는 존슨의 문제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브렉시트 투표 통과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사임했을 때 존슨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오른팔인 고브 현 국무조정실장이 갑자기 총리 경선에 뛰어들어 총리 후보 1순위였던 존슨을 물먹였다. 결국 고브도 존슨도 둘 다 총리를 하지 못하고 테리사 메이가 어부지리로 총리가 되었는데, 나중에 언론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고브가 경선에 뛰어든 이유가 바로 존슨의 무능력과 음주 문제 때문이었다. 존슨을 너무나 잘 아는 고브는 존슨이 총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고브의 능력이 필요했던 존슨은 총리가 된 후 자신의 등에 칼을 꽂았던 고브를 다시 불러들여 가장 중요한 국무조정실장을 맡겼다.
커밍스는 고브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할 때 보좌관으로 있었다. 결국 커밍스는 영국 정치의 두 기둥을 모신 셈이다. 커밍스는 영국 정계에서는 소문난 기인이고 괴짜이다. 항상 통념을 벗어나고 기존 위계질서에 도전하는 행동으로 유명하다. 보수당을 위해 일하면서도 보수당원이 되어 본 적도 없고 보수당 가치에 동의하는지도 증명된 바가 없다. 보좌관 20년 경력이면 하원의원이 몇 번 되고도 남는데도 불구하고 야심을 보인 적도 없다. 유권자에 의해 선출되어야 하는 정치인이 되기에는 너무 이단아이고, 반골이고, 거만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신념으로 뭉친 괴짜 독설가
친구들은 커밍스가 48살 중년이 아니라 9살 스케이트보더처럼 옷을 입는다고 평한다. 사무실에서 일할 때도 깃 없는 라운드 티셔츠를 주로 입는데 그나마 목선이 다 닳아버려 너덜거린다. 점퍼를 뒤집어 입은 채 기자들 앞에 나타나기도 하고, 심지어는 바지 지퍼를 잠그지 않은 적도 있다. 일종의 자신감의 표현인지 모른다고 언론은 평하지만 자신의 대중적 이미지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평소의 언행으로 보아서는 결코 포장은 아닌 듯하다는 평이 우세하다. 집 앞에서 뭔가 한마디를 듣기 위해 기다리는 기자들에게 쌀쌀맞거나 무례하기로도 유명하다. 기자회견이 있던 날에도 집 앞에서 기다리는 기자들에게 “나는 내가 여론에 어떻게 비칠지를 신경 쓰지 않는다. 이건 옳은지 아닌지의 문제다. 이건 니네들이 생각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라고 독설을 날렸다.
필자가 아는 영국 정계 중진 의원은 “존슨은 속물근성이 넘치는 자신과는 완전히 반대이고 욕심이나 영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커밍스를 엄청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사심이 전혀 없는 신념형·몰입형 일벌레인 커밍스를 광적으로 신임하고 심지어 존경한다는 것이다. 커밍스는 자신보다 덜 부지런하거나 지적이지 못하면 무시하고 심지어는 공개적 막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자신과 같은 급이 아닌 중진 의원들을 보고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참지 않아서 적도 많다. 그래서 보수당 내에서도 존슨의 신임을 받는 커밍스에 대해 “그는 구세주가 아니다. 정말 싸가지 없는 속물일 뿐이다”라는 악평도 나온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전횡에 대해 감시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영국 언론과 여론은 전통적으로 총리 수석보좌관에 대해 원초적인 반감을 갖고 있다. 특히 현직 총리들이 인기에 역행하는 정책을 펼치려고 할 때는 모든 욕을 수석보좌관들이 먹었다. 토니 블레어 정권의 피터 만델슨은 영국 언론에 하루도 등장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심지어는 게이였던 만델슨이 브라질 출신 미남 애인을 동반해서 관용차로 파티에 데리고 가는 장면이 공개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사실 존슨을 위한 커밍스의 충성은 유별나긴 하다. 특히 존슨의 업적을 위해 기존의 영국 중앙정부(White Hall)를 개혁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지난해 자신의 블로그에 총리실에서 일할 보좌관 모집 광고를 올려 총무처로부터 위법행위라는 경고를 받았는데 그 광고가 워낙 괴상하고 기이해서 유명해졌다. 이 광고는 ‘손 두 개는 아주 많다’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원하는 보좌관은 ‘괴상한 기술을 가진 괴짜와 적응불능자들(weirdos and misfits with odd skills)’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신은 주중의 야간은 물론 주말도 희생해야 한다. 솔직히 말해 여자·남자 친구를 가지기 힘들다. 아마 무척 고달플지는 모르나 대부분의 21세 청년이 도저히 경험하지 못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적었다. 국가의 미래 정책 수립자는 명문 기숙 사립학교와 옥스브리지를 나온 전통적·인문학적 소양보다는 수학과 정보처리 능력에 뛰어난 전문가여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커밍스는 총무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의 의지대로 구인을 하고 보좌진 진용을 짜서 총선 승리와 함께 브렉시트를 완수해 냈다.
커밍스는 원유 채굴 기술자와 특수아동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교 중에서도 가장 명문인 엑시터칼리지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든다는 엄청난 확신을 가지고 일한다. 그가 자신의 영광이나 지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동기에 따라 노력한다는 사실은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인정한다고 한다.
커밍스는 자신의 경력에서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항상 정면 돌파를 했다. 이번 기자회견도 그런 경우이다. 자신이 사임하지 않고 버틸수록 존슨 총리에게 불리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명이 나온다. 첫째는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굳게 믿는다는 것이다. 이는 기자회견에서 봉쇄를 깬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는 말에서 볼 수 있다. “나는 복잡한 상황 속에서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 풀려고 노력했다. 나의 행동은 모든 관련된 사람에게 가장 위험이 적게 가는 방식이었다.” 두 번째는 존슨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기괴한 광고를 보고 모인 괴짜 보좌관들이 커밍스에 대해 보이는 충성심은 유명하다. 자신들은 총리실의 ‘늘공(늘 공무원)’ 엘리트들 사이에서 ‘아싸(outsider)’이고 자신들만이 사회 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최종 상관인 존슨 총리를 보호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그런데 ‘이 정도 일’로 물러나면 이 기발한 괴짜 보좌진들을 통솔할 인사가 없다는 것이 커밍스의 생각이다. 그러면 개혁 동력이 떨어진다고 굳게 믿어 여론 악화와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 총선까지 4년이나 남아서 버텨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번 일은 존슨 총리가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닌 듯하다. 커밍스의 기자회견 이후 두 달 만에 처음으로 봉쇄해제를 발표해서 국면 전환을 해보려던 존슨의 노력은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해제 발표를 한 뒤 받은 기자들의 첫 질문을 비롯해 거의 모든 질문이 커밍스 관련이었다. 봉쇄 이후 영국인들이 지겹도록 보고 들은 말이 ‘집에 머물면서 의료보험을 보호해 생명을 구하자(stay home, protect NHS, save life)’였다. 이를 지키느라 부모 문병도 못 가고 장례식에도 참석 못 한 수만 명의 영국인이 느낄 분노는 가늠하기 힘들다. 이제 분노는 커밍스가 아니라 존슨 총리에게 향하고 있다. 그 유서 깊은 ‘장미정원’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일개 보좌관의 변명을 위해 허락해준 존슨 총리에 대해 비난까지 팽배한 상황이다. 현재의 여론과 영국의 관례로 보아 커밍스의 손절은 분명한데 그게 언제일지가 궁금하다.
권석하 / 재영칼럼니스트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