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권 제 1장 바다(海)와 소년(少年)!-1
①
산동성(山東省) 청도(靑道).
바다는 넓었다.
특히 청도에서 바라다 보이는 바다는 드넓은 대자연의 가슴인 양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었다.
망망대해에 붉은빛 석양이 내리고... 그 붉게 노을진 바다는 진홍
색 혈광(血光)을 반사시키며 바다와 그리고 천공을 덮고 있었고,
그 해면(海面) 위에 석양을 받으며 몇 척의 어선이 한 폭의 그림
같이 떠 있었다.
바다, 석양, 그리고 어선..., 이 모든 것은 실로 한가롭고 아름다
운 한 폭의 그림같이 보였다.
그 중에 가장 작은 한 척의 어선 위에는 지금 수십여 명의 어부들
이 어망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구리빛 상체가 드러나 있는 등으로는 땀이 방울되어 맺히고 있었
고 굵은 팔뚝에는 힘줄이 불거져 있어 진정 바다의 어부들다운 모
습이었다.
허나 그들의 얼굴에는 힘들어 하는 기색보다는 하루의 일과를 마
무리하는 기쁨의 빛만이 충만해 있었다.
"어이차!"
"영차--!"
힘찬 구령과 함께 어망은 점차 바다로부터 끌어 올려지고 있었다.
이때, 한쪽에서 그들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육순노인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야, 장노삼(張老三)! 자네는 이제 겨우 나이 쉰(五十)이야! 정말
계속 꾀부릴 텐가?"
노인은 곰방대를 손에 쥔 채 여차하면 휘두를 듯한 기세였다.
"이 놈아! 내가 오십일 때는 펄펄 날았다. 펄펄 날았어!"
"아, 알았습니다요. 알았어요."
그물을 끌어올리던 어부들 중 매부리코의 뚱뚱한 사내가 미소와
함께 짐짓 목을 움츠렸다.
"해노인장(海老人長) 어른이야 과거 사해(四海)를 주름잡던 분이
아니십니까? 어련하시겠습니까? 흐흐흐...."
장노삼이라 불리운 대한은 이내 기이한 웃음을 터뜨리며 눈을 찡
긋했다.
"아무렴, 사해뿐이겠는가? 팔황(八荒)까지 배를 몰고 다니시던 분
인 걸...."
장노삼의 옆에 있던 인물이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들의 말
은 해노인이라는 노인을 조롱하는 빛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하하하!"
"우하하하!"
일순, 모두의 입에서 대소가 터졌다.
"에잉!"
해노인은 자신이 오히려 무안을 당했음을 깨닫고 혀를 찼다.
그는 곰방대를 자신의 손바닥에 탁탁 내리치며 짐짓 노기띤 얼굴
로 장노삼 등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허나 진정으로 노한 빛은 아
니었다.
"도련님, 제가 가서 좀 도와 드릴까요?"
이때 어디선가 마치 범종(梵鐘)이 울리듯 우렁찬 음성이 터져나왔
다.
"응, 산(山)아가 도우면 좀 쉬울 거야."
벼락치는 듯한 음성의 뒤로 청아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 겨우
십여 세 가량 된 맑고 귀여운 음성이었다.
해노인의 안색이 확 변했다.
"아, 아닐세. 자네는 필요 없으니 그저 구경이나 하게. 자네는 도
련님이나 잘 돌봐드리면 될 것이네."
해노인은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의 눈에
는 당혹해 하는 빛이 가득 차 있었다.
'제길! 저 산아가 그물을 당기면 모조리 찢어질 거야.'
노인은 새삼 뒤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헌데 배의 선수(船首)를 보라! 그곳에 실로 엄청난 거구의 청년
한 명이 우뚝 서 있지 않은가.
십 척(十尺)에 이르는 거대한 키에 체구 또한 장대하기 이를 데 없
어 마치 흑철탑이 솟아있는 듯 하다. 게다가 거구대한의 전신에는
시커먼 털이 마치 암기처럼 빽빽이 돋아 있어 어찌보면 사람같지
가 않았다.
천하에 이토록 거대한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눈으로 보고
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인 것이다.
거구대한의 어깨 위에는 한 명의 소동(少童)이 앉아 있었다.
십여 세쯤 되었을까?
소동의 용모는 실로 아름다웠다.
해맑은 피부와 흑백이 또렷한 맑은 눈망울, 여기에 소동의 입꼬리
에는 엷은 보조개까지 패여 있어 진정 여아(女兒)가 아닌가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할아범, 나는 괜찮아."
소동은 해노인의 만류에 고개를 젓고 있었다.
"아, 아이고, 도련님. 조심하십시오. 가만히 앉아 계시지 않으면
떨어지십니다."
해노인이 질겁했다. 거구 대한의 어깨가 아무리 넓다 해도 소동처
럼 마구 움직였다간 떨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치이! 내가 언제 산아의 어깨에서 떨어지는 거 보았어?"
소동이 맑게 웃었다.
그러한 소동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답고 귀여운 것인지라 노인은
잠시 넋을 잃고 소동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노인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동은 미소를 거두며 눈을 들어
멀리 수평선을 응시했다.
쏴아아...!
철썩!
파도는 잔잔하기 이를데 없었고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는 실로
드넓었다.
"할아범!"
"예, 도련님!"
"저 대해(大海)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문득 소동이 의혹에 찬 음성을 흘려냈다.
'어이쿠! 또 시작이시구나. 벌써 몇 번이나 물어본 질문....'
순간, 해노인은 안색을 일그러뜨렸다. 허나 어쩔 수 없다는 듯 이
내 공손히 입을 열었다. 짐짓 태연을 가장하고 있으나 당황한 기
색이 역력했다.
"예, 아마... 더 넓은 바다가 있지 않을까요?"
"에이, 매일 같은 대답뿐이야."
소동은 기대의 눈으로 해노인을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시선은 다시 멀리 수평선으로 돌려지고 있었다.
"그렇지만은 않을 거야. 더 넓은 바다가 있는 것은 사실이겠지
만... 그 외에 또 다른 세계가 있을 거야."
"...!"
"그렇지 않다면 천하가 모두 바다란 말이야?"
나직이 중얼거리고 있는 소동의 눈에서는 이 순간 너무나도 맑고
깨끗한 벽색(碧色)이 떠오르고 있었다.
신비하다고 해야 할까?
마치 가을 날의 하늘과도 같이 파르스름한 신광(神光)이 소동의
눈 밑에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해노인은 겸연쩍은 듯 곰방대를 연신 뻑뻑거렸다.
"허허...! 제가 배운 것이 없어서...."
해노인은 무안함을 감추려는 듯 다시 어부들 쪽으로 눈을 돌려 짐
짓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봐! 무엇들 하고 있어. 여태 어망을 끌어 올리지 못하다니...
빨리 서둘러!"
해노인이 다시 고함을 지르자 어부들의 입가에 고소가 떠올랐다.
"흐흐흐, 해노인께서 또 시작이시군."
"하하하...!"
어부들 사이에 부드러운 정이 감도는 대소가 터져 나왔다. 해노인
의 잔소리가 듣기 싫지만은 않은 그런 태도들 같았다.
이때, 소동의 표정 위로 어떤 결의의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산아!"
"...?"
산이라고 불리운 거구청년이 고개를 돌렸다.
"나, 저 돛대 위로 올라가고 싶다."
"예?"
"저 돛대 위에 올라가 멀리 무엇이 보이나 보고 싶단 말이야."
순간, 거구대한의 눈이 커졌다. 그는 고리눈을 껌벅이며 당황을
금치 못했다.
"도, 도련님, 아니 됩니다! 위험 합니다."
거구대한이 더듬거리자 소동이 고집스럽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괜찮단 말야! 나는 이제 일곱 살이야. 절대 어리지 않단
말이야."
소동은 귀여운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발로 툭툭 거구대한의 어깨를
차며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아이고!'
거구대한은 내심 비명을 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天)도련님의 고집은 아무도 꺾지 못하는데... 저곳을 오르시
겠다고 하니 이일을 어찌 한단 말인가?'
거구대한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얼굴로 해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소동이 벌떡 일어서며 거구대한의 어깨 위에서 발을 굴렀
다.
"어서! 나는 저 꼭대기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싶단 말야."
소동다운 응석이 아니겠는가. 허나 놀라운 것은 소동의 지금 음성
에는 일개 소동의 것으로 보기 어려운 위엄이 함유되어 있다는 점
이었다.
"도... 도련님, 저 돛대 위에서 떨어지면...."
거구대한이 힐끔 돛대를 올려다 보고 혀를 내둘렀다. 십 장 높이
의 돛대가 까마득히 보였다.
"떨어지긴 왜 떨어져! 또 산아가 있으니까 떨어져도 괜찮아."
소동의 태도는 도저히 바뀔 것 같지 않았다.
'아휴! 어쩔 수 없군!'
거구대한은 할 수 없다는 듯 돛대를 향해 걸음을 옮겨갔다.
쿵쿵쿵!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거구대한의 한 발 한 발에 배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산, 산아가 저렇게 빨리 움직이면....'
해노인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는 황급히 손을 저으며 입을
열었다.
"이... 이보게, 자네는 제발 움직이지 말게. 배가 기우네."
"할아범, 어쩔 수 없지 않소? 도련님이 저 돛대 위로 오르고 싶으
시다니...."
거구대한이 퉁명스럽게 대꾸한 후 여전히 걸음을 옮겼다.
헌데 이때, 어부들이 무엇을 발견했는지 일제히 환호성을 터트리
지 않는가!
"고... 고래다!"
"저기 고래가 왔다--! 어서 그물을 끌어 올려라!"
동시에 어부들은 황급히 어망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어선 안에
순식간에 떠들썩한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고래...?"
소동의 눈에 의혹이 스쳤다.
"도련님, 저기 바다 한가운데 한 가닥 물줄기가 솟아오르는 것이
바로 고래가 내뿜는 물줄기입니다."
거구대한이 멀리 해면을 가리켰다.
오백여 장 떨어진 해면.
언제부터인가 그곳에서 집채만한 고래가 유유히 파도를 헤치며 유
영(遊泳)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일대장관이었다. 거대한 물기둥을 뿜어내는 고래의 힘
찬 몸놀림, 여기에 고래가 내뿜는 물줄기에 핏빛 석양이 스며들어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창출해 내고 있었다.
"산아!"
소동의 눈에 야릇한 흥분이 물결쳤다.
"예, 도련님!"
"너는 저 고래를 잡을 수 있어?"
"...!"
거구대한의 눈이 커졌다. 그는 이내 소동의 마음을 짐작하고 망연
히 외쳤다.
"도... 련님!"
"나는... 저 고래를 갖고 싶단 말야."
소동은 태연히 말하며 여전히 고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순간 거구대한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이어 그는 그 큰
허리를 구부려 소동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거구대한은 소동의
옷매무시를 만져주며 다짐받듯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도련님, 제가 저 고래를 잡으면 이제 돛대에 오르시지
않을 거지요!"
"그래."
소동이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소동은 이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어 질문을 던졌다.
"헌데 정말 잡을 수 있는 거야?"
"으흐흐흐, 이 천해산(千海山)을 믿지 못하겠단 말씀입니까?"
거구대한 천해산이 기이하게 웃으며 옆구리에 걸려 있는 거대한
강궁(强弓)을 한손으로 툭툭 쳤다.
천해산의 옆구리에 걸려 있던 강궁은 그 크기가 실로 엄청난 것이
었다.
"흐흐... 도련님, 이 강궁은 열 명의 장인(匠人)들이 일 년에 걸
쳐 만든 것이지요."
"...!"
"무려 이천 근의 무쇠로 만든 명품이지요."
"히야...!"
감탄을 터뜨리는 소동의 모습은 무척이나 귀여웠다. 소동은 제자
리에 쪼그리고 앉아 무릎 위에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헌데... 그것으로 과연 저 고래를 잡을 수 있을까?"
천해산이 얼굴을 붉혔다.
"지켜 보십시요! 이 천해산은 도련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
든 해낼 것입니다."
천해산은 빈 시위를 팅팅 퉁기며 자신 있게 외쳤다.
천해산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어부들은 어이없다는 눈으로 서로
를 바라보았다. 천하에 누가 있어 단신으로 거대한 고래를 잡을
수 있다고 호언할 수 있단 말인가!
"해, 해노인!"
"왜 그러나?"
"과연 저 사람이 고래를 잡을 수 있을까요?"
"자네는 저 산아의 힘을 모르는군."
한 명 어부가 불신의 눈으로 질문을 던지자 해노인이 고개를 흔들
었다.
"저 강전 하나만 보게."
"...?"
질문을 던졌던 어부가 고개를 돌리자, 천해산이 그 거대한 강궁에
한 대의 강전(强箭)을 먹이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어휴! 저런 강전이라면...!"
그의 입이 딱 벌어졌다.
천해산이 강궁에 먹이고 있는 강전은 그 굵기가 어른의 팔뚝을 능
가하는 거대한 것이었다. 더구나 강전의 끝에는 주먹만 한 촉이 붙
어 있었다.
"허허허..., 저 강궁만 해도 천하에 아무도 당길 수 없을 걸세.
저 사람의 힘은 그야말로 천하에서 제일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지...."
해노인은 천해산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듯 부드러운 표정을 떠올
리고 있었다.
"그, 그렇군요. 저런 큰 강궁을 마치 장난감 다루듯 하니...."
어부들은 질렸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이때 천해산은 강궁을 만월처럼 잡아당기며 이제 백여 장 가까이
다가온 고래를 응시하고 있었다.
모두들 침을 삼킨 채 침묵을 지켰다.
②
고래의 모습은 붉은 노을에 비쳐져 장관을 이루고, 모두들 긴장된
표정으로 천해산의 신위를 지켜보는 순간이었다.
뚝!
파앗!
만월처럼 당겨졌던 거대한 강궁이 그대로 부러져 나가는 것이 아
닌가!
"이, 이런!"
천해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얼굴에는 당황과 함께 노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런 제길! 열 놈이 만들었다는 강궁이 이 모양이란 말인가?"
천해산이 투덜거리며 소동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도, 도련님 죄송합니다. 이것은 만들기만 했지 아직까지 한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어 이토록 약한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하, 그것은 강궁이 약한 것이 아니라, 산아의 힘이 너무 세
기 때문이야."
"...!"
그제야 어부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아니! 저 강궁이 힘에 의해 부러지다니...."
"이, 이럴 수가...! 사람도 아니다!"
천해산이 묵묵히 얼굴을 붉히다 문득 눈빛을 빛냈다.
"도련님,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요."
이때 천해산이 우렁차게 외치며 갑판의 한쪽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 천해산은 거대한 한 자루 청룡도(靑龍刀)를 들고 소동
앞으로 걸어왔다. 길이가 칠 척에 달하는 청룡도, 그것은 한눈에
인간이 사용하기에는 너무 큰 것이었다.
마치 전설 속의 사대금강(四大金剛)이 들고 있는 그러한 청룡도를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자, 자네 미쳤나?"
천해산이 청룡도를 들고 나오자 해노인이 기겁했다.
"아니, 그, 그것을 들고 물속으로 뛰어들어가 고래를 잡겠다는
것인가?"
"염려마십시요."
천해산은 해노인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소동에게 고개를 숙
여보인 후 이미 바다 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도... 도련님, 돌아오라고 하십시오. 저, 저러다가는 변을 당합
니다."
해노인이 다급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으나 소동은 태연하기 그지
없었다. 소동의 눈은 천해산이 사라진 해면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
이었다.
"걱정 하지마. 산아는 분명히 해낼 거야. 나는 산아를 믿어."
천천히 소동이 눈을 돌렸다. 약간 파르스름한 벽색이 깔려 있는
눈이 해노인의 눈을 바라보았다.
순간, 소동의 믿음에 찬 맑은 눈을 대한 해노인이 왠지 전신을 가
볍게 떨었다.
소동의 눈, 보일 듯 말듯 벽색이 떠올라 있는 신비한 눈, 그곳에
마치 두 마리의 청룡이 뛰노는 듯한 기이한 빛과 문양이 어려 있
지 않은가!
마치 지금이라도 승천(昇天)할 듯한 기세의 두 마리 청룡이 소동
의 눈 속에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기, 기이하단 말이야?'
해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도련님의 저 눈 속에는 꼭 두 마리의 청룡이 뛰놀고 있는 듯 하
니...!'
그렇다. 소동의 눈은 진정 신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게다가 소동
의 눈은 맑고 깊어 마치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듯했다.
소동이 눈을 돌려 해면을 두리번거리다가 돌연 소리를 쳤다.
"저것 봐! 산아가 벌써 고래에게 덤벼들고 있어."
거대한 고래 등으로 어느새 천해산이 올라탄 채 청룡도를 내리찍
고 있었다.
"흐흐흐, 이놈! 너는 오늘 나하고 한바탕 해보자꾸나!"
천해산의 우렁찬 일갈이 배 위에까지 들려왔다.
"천도련님이 너를 잡고 싶어 하시니 어쩔 수 없다!"
천해산, 그의 몸놀림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파도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도 고래의 등에서 조금도 떨
어지지 않음은 물론이고, 그의 거대한 청룡도는 고래의 머리 부분
을 사정없이 내리찍고 있었다.
쏴아아!
철썩....!
해면이 마구 광란했다. 거대한 고래는 천해산의 공격에 마구 몸을
뒤틀며 몸부림쳤다.
그때마다 바다 전체가 미친 듯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꾸어어! 우우...!
고래의 입에서 처절하고도 애처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놀랍게도
바다의 왕이라는 고래가 천해산의 공격에 맥을 쓰지 못하고 있었
던 것이다.
퍼퍽!
청룡도가 내리찍힐 때마다 피가 솟구쳤다.
"흐흐흐, 열심히 발악해 보아라. 이 천해산 또한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뼈가 굵어진 사람이다."
고래와 인간의 혈투, 그것은 마치 자그마한 개미와 거대한 야수와
의 대결같이 걸맞지 않는 것이었으나 천해산은 고래의 등에 착 달
라붙은 채 연속적으로 고래의 머리 부분을 공격하고 있었다.
"저것봐! 산아가 이기고 있잖아!"
그 광경에 소동은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꾸어... 어!
고래의 입에서는 연신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고래와 천해산은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치열하고도 무서운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때마다 마치 해일이 몰아치듯 바다가 광란했다. 실로 엄청난 광
경이었다.
이때, 소동의 표정이 점차 굳어가고 있었다.
"헌데 왠지... 고래가 불쌍한데...."
소동이 울상을 지었다. 그는 자신이 천해산에게 고래를 잡으라고
했지만 고래가 피를 뿌리며 비명을 토하자 마음이 아파옴을 느낀
것이다.
짧은 순간이 흐른 후, 소동이 눈을 돌리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할... 아범, 산아 보고 돌아오라고 해. 이제 됐어."
'음...!'
해노인이 내심 신음을 흘렸다. 소동의 그러한 태도에 불현듯 한
번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이었다.
'저 산아가 도련님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이유를 알만
해. 이 늙은이조차 도련님을 대하면 자꾸 마음이 흔들리니....'
마력(魔力), 그것은 마력이었다. 소동에게는 인간의 마음을 잡아
끄는 묘한 힘이 있었던 것이다.
누구라도 그를 한 번 대하게 되면 안아주고 싶은 충동과 진정을
다해 아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여보게! 도련님이 그만 하고 돌아오라네."
해노인은 고개를 흔들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육순에 달한 늙은이
라고 보기 어려운 우렁찬 음성이었다.
"알았습니다!"
그러자 천해산이 마주 소리를 친 후 다시 배를 향해 헤엄쳐 왔다.
고래는 이미 기진맥진하여 해면에 죽은 듯이 떠 있었으나 천해산
은 조금도 지친 기색이 아니었다.
"할아범, 산아는 훗날 천하제일의 무장(武將)이 될 거야."
소동이 다시 고개를 돌려 다가오는 천해산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
소를 만면에 떠올리고 있었다.
"옛? 그, 그것은...!"
해노인이 당황하여 말을 더듬거렸다.
'허허, 역시 어린아이시로군. 저 무지한 뱃놈이 어찌 천하제일의
무장이 된다고... 허허허, 도련님은 힘만 세면 천하제일의 무장이
되리라 생각하시나 보군!'
해노인의 내심으로는 고소가 맺히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일이지. 암 어울리지 않아....'
해노인이 내심 고개를 흔드는 순간 천해산은 이미 배 위로 오르고
있었다.
"후후... 산아가 최고야!"
천해산을 바라보던 소동이 어린아이답게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
며 탄성을 터뜨렸다.
"도련님,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고래를 죽일 수 있었는데 왜 부르
셨습니까...?"
천해산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다가왔다. 그의 이런 모습은 순박하
기 이를 데 없어 진정 일개 촌부에 지나지 않았다.
허나 지금의 천해산과 해노인이 어찌 알겠는가? 소동의 예언대로
단지 힘만 세고 우둔한 그가 항차 천하제일의 무장으로 성장함
을....
그리고... 천해산과 소동은 또한 후일 고금을 통틀어 가장 잘 어
울리는 주종(主從)이 되어 천하를 좌지우지하게 될 줄이야....
③
휘이잉!
쏴아아...!
잔잔하던 파도가 한 줄기 해풍에 몸을 일으킨다. 석양이 점차 어
둠에 밀려가고, 파도는 어둠을 맞으며 점차 머리를 풀어헤치고 있
었다.
그 붉은 바다 위를 다섯 척의 어선이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만선을 뜻하는 오색 깃발이 자랑스럽다는 듯 펄럭이고 있는 다섯
척의 배는 바로 천해산과 소동 일행이 타고 있는 배였다.
맑고 고운 피부에 천상(天上)의 옥동(玉童)인 양, 아름답기까지한
소동은 여전히 천해산 어깨 위에 앉아 있었다.
그는 천해산의 어깨 위에서 발장난을 하며 어둠에 잠겨 가는 해면
을 응시하고 있었다. 해면에는 석양이 반사되고 있어 실로 신비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야! 정말 멋있어! 벌써 수백 번도 더 본 광경이지만 볼 때마다
너무도 아름다워."
소동의 눈에서 맑은 신광이 뻗어 나오고 있었다.
쏴아아!
우르르!
이때, 수많은 어선들 중 선두에서 항해하고 있던 소동이 타고 있
는 가장 큰 어선이 방향을 틀며 비스듬히 좌측으로 원을 그리며
전진해 나가기 시작했다.
기이하게도 그들의 앞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마치
무엇을 피해가는 듯 우회하여 한 지점을 돌아가는 것이었다.
"...?"
소동이 의혹의 눈을 들었다.
"이상하단 말야."
"무엇이 말씀입니까?"
소동이 알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자 천해산이 고개를 돌렸다.
"이곳에서 곧장 가면 바로 해왕도(海王島)에 이를 텐데 왜 돌아가
는 거야?"
"도련님, 그건 말입니다. 저곳이 해류가 소용돌이치는 곳이라 돌
아가는 거랍니다."
천해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황급히 대답했다.
"이른바 폭풍해류(瀑風海流)의 중심점인지라 무엇이든지 저안에
빠지면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답니다."
"폭풍해류...?"
"예, 해서 저곳은 동해의 금역입니다."
"금역이라는 것은 나도 알아, 허나 내가 보기에는 그저 잔잔하기
만 한데...."
"하하하, 아닙니다. 지금은 우리가 멀리 우회하는 바람에 자세히
볼 수 없지만 일단 가까이 가기만 하면 무서운 파도와 미친 듯이
들끓는 해류를 볼 수 있습니다."
"...!"
천해산이 자상하게 설명을 했으나 소동은 여전히 의혹의 눈으로
해면의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오십여 장 떨어진 어느 해면, 일견 어느 해면과 다를
바 없는 평온한 바다가 소동의 눈에 담겨 있었다.
"아니야. 분명 지금은 잔잔해."
소동이 잠시 바다를 바라보다 단언하듯 말했다.
"하하,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평온한 바다가 이상하게도 무엇인가
접근만 하면 파도가 일고 해류가 종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 치지
요."
"...!"
"참으로 신기한 곳인지라, 사람들은 더욱 그 근처에 가기를 꺼리
는 것이랍니다."
"음...!"
소동의 두 눈에서 강렬한 신광이 뻗어나갔다.
"그러니까 저곳은 인간의 접근을 스스로 거부한단 말이지."
"예?"
천해산이 고소를 머금었다.
"하하하, 바다가 어찌 스스로 인간을 거부 하겠습니까만은 아무
튼, 저곳은 기이한 곳입니다."
소동의 말에 천해산도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해서 많은 어부들이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저 가운데에 들어 가보
려 한 적도 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
"해류가 미친 듯이 소용돌이쳐 중심부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었
던 것이지요."
"음...!"
소동이 감탄사를 흘려냈다.
그의 눈이 새삼 조용히 잠들어 있는 해면의 한곳을 뚫어지게 바라
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호기심과 강렬한 모험심같은 것이 가득
담겨 있었다.
"바다는... 참으로 신기한 곳이야."
소동이 넋을 잃고 중얼거리자 천해산의 안색이 굳어졌다.
'이크! 도련님이 또 저곳으로 뛰어들고 싶어 안달이시구나!'
그는 조심스러운 눈으로 소동의 안색을 살피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저곳은 누군가가 인공적으로 꾸민 듯한 느낌이
들어."
소동이 계속 중얼거리자 천해산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하하... 도련님도..., 누가 저런 곳을 일부러 만들 수 있겠습니
까? 바다에는 풀지 못할 신비가 많답니다. 저곳도 그중의 하나지
요."
천해산이 고개를 흔들자 소동이 문득 손을 들어 한 지점을 가리켰
다.
"좋아! 그렇다면 저 가운데를 자세히 봐! 바다 깊은 곳에서 석양
에 반사되어 은은히 어떤 광채가 뻗어나고 있잖아. 그것은 무엇일
까?"
동해의 절대금역, 그 바다 깊숙한 곳으로부터 지금 석양에 반사된
듯 은은한 금광(金光)이 솟아 나고 있었다. 그것은 극히 미약한
광채로써 자세히 보지 않으면 여간해서는 발견할 수 없는 것이었
다.
"글... 쎄요. 허나 저 빛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바다 속의 모래나 쇠붙이 같은 것이 석양에 반사되는 것이 아닐까
요?"
소동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저 빛은 얼핏 보면 석양에 반사되어 나오는 것 같지만
실은 바다 속에서 스스로 뻗어 나오는 빛이 틀림없어."
소동은 확신하는 말투로 내뱉은 후 다시 금역이라 일컫는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아! 누가 알 수 있으리오!
천 년의 신비가 그곳에서 잠들어 있음을....
소동은 그 절대금역과 자신이 어떤 보이지 않는 운명의 끈으로 연
결된 듯한 기이한 느낌을 받으며 언제까지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
었다.
그 바다 속에 항차 자신을 천하최고의 절대영웅으로 만들 어마어
마한 대역사(大歷史)의 장(章)이 펼쳐져 있음을 모른 채....
휘이잉!
쏴아아...!
잔잔하던 파도가 한 줄기 해풍에 몸을 일으킨다. 석양이 점차 어
둠에 밀려가고, 파도는 어둠을 맞으며 점차 머리를 풀어헤치고 있
었다.
그 붉은 바다 위를 다섯 척의 어선이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만선을 뜻하는 오색 깃발이 자랑스럽다는 듯 펄럭이고 있는 다섯
척의 배는 바로 천해산과 소동 일행이 타고 있는 배였다.
맑고 고운 피부에 천상(天上)의 옥동(玉童)인 양, 아름답기까지한
소동은 여전히 천해산 어깨 위에 앉아 있었다.
그는 천해산의 어깨 위에서 발장난을 하며 어둠에 잠겨 가는 해면
을 응시하고 있었다. 해면에는 석양이 반사되고 있어 실로 신비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야! 정말 멋있어! 벌써 수백 번도 더 본 광경이지만 볼 때마다
너무도 아름다워."
소동의 눈에서 맑은 신광이 뻗어 나오고 있었다.
쏴아아!
우르르!
이때, 수많은 어선들 중 선두에서 항해하고 있던 소동이 타고 있
는 가장 큰 어선이 방향을 틀며 비스듬히 좌측으로 원을 그리며
전진해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