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변독(便毒)
변독(便毒)의 논치(論治)는 설씨(薛氏)의 법(法)에 이미 진실로 상세하게 나온다.
그런데 오직 교감(交感)이 불결(不潔)하여 음독(淫毒)을 만나므로 앓는 경우가 가장 많다. 매번 먼저 하감(下疳)이 기(起)하고 하감(下疳)이 낫지 않을 때 변독(便毒)이 이를 계(繼)하게 되니, 이는 습열(濕熱) 예독(穢毒)으로 앓는 것이다.
초기(初期)에 종통(腫痛)하고 아직 농(膿)이 되지 않을 때 원기(元氣)가 아직 강(强)하면 속히 마땅히 먼저 거독(去毒)하여야 하니, 오직 회장산(會膿散)이나 모려산(牡蠣散)이 최선(最善)이다.
만약 이미 농(膿)이 되었으면 침(針)으로 하거나 식(蝕)하여 오직 그 농(膿)을 속히 거(去)하여야 하니, 증(證)을 인하여 조보(調補)하여 속히 수구(收口)하는 것이 좋으니라.
만약 초(初)에 일핵(一核)이 기(起)하여 그 통(痛)이 미(微)하고 그 종(腫)이 만(漫)하는 경우는 두 가지 증(證)이 있으니, 하나는 사기(邪)가 경(輕)한 것이고 하나는 원기(元氣)의 허약(虛弱)으로 독(毒)이 심(深)하여 그런 것이다.
사기(邪)가 경(輕)하면 단지 회통고(會通膏)에 사향(麝香)을 가한 것으로 첩(貼)하면 산(散)하지 않음이 없으니, 혹 강옹산(降癰散)도 된다.
만약 원기(元氣)가 허약(虛弱)하여 독(毒)이 심(深)한 것이면 산(散)하는 것은 좋지 않고(:不肯) 또 조(早)하게 궤(潰)하면 안 되니, 더 오래되면 반드시 더 심(甚)하게 되므로 가장 외(畏)하는 것이다. 급기야 궤(潰)한 후에는 대부분 불수(不收)하니, 경(輕)하여도 누(瘻)가 되고 중(重)하면 운명(殞命)하게 된다. 이 때는 오직 원기(元氣)를 대보(大補)하여야 비로소 해(害)가 되지 않다.
만약 흔종(焮腫) 통심(痛甚)하고 농(膿)이 이미 성(成)하여 세(勢)를 소(消)할 수 없다면 마땅히 강옹산(降癰散)으로 하여야 하니, 창(瘡)의 두(頭)는 남기고 이를 위(圍)하면 세(勢)가 수렴(:斂)하고 통(痛)이 해(解)하며 농(膿)이 속히 성(成)하니, 궤(潰)한다.
입재(立齋)가 이르기를 "변옹(便癰)은 족궐음(足厥陰) 간경(肝經)에 속(屬)하고 내열(內熱) 외한(外寒)한다. 혹 노역(勞役)의 과도(過度)나 방욕(房慾)의 부절(不節)이나 욕화(慾火)의 불수(不遂)나 억지로 그 정(精)을 고(固)하거나 간경(肝經)의 습열(濕熱)로 생긴다. 대체로 노역(勞役)으로 부족(不足)하고 정기(精氣)가 모두 허(虛)한 사람들이 많이 앓게 된다.
속(俗)에 이르기를 일석미창(一石米瘡)이라 하니, 이는 100일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나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만약 혈기(血氣)를 대보(大補)하면 10일 이전에 나을 수도 있으니, 어찌 100일이나 약을 쓰겠는가? 창(瘡)의 수렴(收斂)은 혈기(血氣)의 성(盛)에 있다.
또한 열독(熱毒)이 내온(內蘊)하여 생(生)하는 경우, 반드시 허실(虛實) 및 성농(成膿)의 여부(與否)를 변(辨)하여야 하니, 공약(攻藥)을 일개(:槪)로 투여(投)하면 안 된다.
부인(婦人)이 이를 환(患)하면 대부분 양 서혜부(:兩坳 양요)가 종통(腫痛)하고 혹 복중(腹中)에 결괴(結塊)하며 소변(小便)이 삽체(澁滯)한다.
하물며 치(治)하는 자가 법(法)을 얻고 환(患)하는 자가 또 조섭(調攝)할 수 있다면 족히 염려(:慮)할 것이 없다.
이 증(證)을 치(治)할 때 내소(內消)를 구하려고 대황(大黃)의 종류(類)를 일개(:槪)로 사용하여 하(下)하거나 농(膿)이 성(成)할 때 농(膿)을 대변(大便)으로 출(出)하게 하면, 낫지 않는 경우를 항상 보게 된다. 사람들이 대부분 내소(內消)하려는 것은 수구(收口)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만약 혈기(血氣)의 보양(補養)을 알면 10일이 안 되어 수(收)하게 되니, 어찌 어려움이 있겠는가? 만약 농(膿)이 이미 성(成)하였으면 소(消)할 이유(:理)가 또 어찌 있겠는가? 만약 다시 극벌(剋伐)하는 제(劑)를 쓴다면 반드시 난치(難治)에 이른다." 하였다.
또 이르기를 "변옹(便癰)이란 혈산(血疝)이다. 속(俗)에서는 변독(便毒)이라 부르니, 이는 불편(不便)한 곳에 옹(癰)이 된 것을 말한다.
족궐음(足厥陰)의 경락(經絡)이고 충맥(衝脈) 임맥(任脈) 독맥(督脈) 또한 간(肝)의 옆(:傍)의 락(絡)에 속(屬)하니, 이는 기혈(氣血)이 유통(流通)하는 도로(道路)이다.
지금 옹(壅)하여 종통(腫痛)하니, 이는 열독(熱毒)의 소치(所致)이다. 마땅히 먼저 그 체(滯)를 소도(疏導)하고 다시 탁리(托裏)하는 제(劑)로 하여야 한다. 이는 임증(臨證)하여 마땅함을 제(制)하는 법(法)이다." 하였다.
또 치법(治法)에서 이르기를 "내열(內熱) 외한(外寒)하면 우황쌍해산(牛黃雙解散)으로 하여야 한다.
습열(濕熱)이 옹체(壅滯)하면 마땅히 용담사간탕(龍膽瀉肝湯)으로 소간(疏肝) 도체(導滯)하여야 한다.
욕심(慾心)이 불수(不遂)하여 정기(精氣)를 역(逆)하면 먼저 오령산(五苓散)에 대황(大黃)을 가한 것으로 그 역체(逆滯)를 소(疏)하고, 그 후에 지황환(地黃丸)으로 간신(肝腎)을 보(補)하여야 하니, 그 정(精)을 강고(强固)하게 한다. 방욕(房慾)을 부절(不節)하면 마땅히 육미환(六味丸)의 약료(藥料)로 하여야 한다. 노권(勞倦)이 과도(過度)하면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으로 하여야 한다." 하였다.
어떤 남자(男子)가 변독(便毒)을 환(患)하여 흔종(焮腫) 작통(作痛)하고 대소변(大小便)이 비(秘)하며 맥(脈)이 유력(有力)하였다.
옥촉산(玉燭散) 2제(劑)로 하니 단번에 퇴(退)하였고, 다시 용담사간탕(龍膽瀉肝湯) 4제(劑)로 하니, 소(消)하였다.
어떤 남자(男子)가 농(膿)이 미성(未成)하고 대통(大痛)하였다. 소독(消毒) 탁리(托裏)하는 등의 약(藥)을 복용하여도 불응(不應)하였다.
진(診)하니 맥(脈)이 홍대(洪大)하므로 독(毒)이 아직 있었다. 선방활명음(仙方活命飮) 1제(劑)로 하니 통(痛)이 지(止)하고, 또 1제(劑) 하니 소(消)하였다.
어떤 유생(:儒者)이 종통(腫痛) 변삽(便澁)하였다.
팔정산(八正散) 2제(劑)로 간화(肝火)룰 청(淸)하고 습열(濕熱)을 도(導)하였더니 종통(腫痛)이 나았느니라. 다시 소시호탕(小柴胡湯)에 천궁(川芎) 당귀(當歸) 택사(澤瀉) 산치(山梔)를 가한 것 2제(劑)로 청화(淸火) 보혈(補血)하니, 소변(小便)이 이(利)하였다.
어떤 남자(男子)가 이미 궤(潰)하여 통(痛)이 부지(不止)하고 소변(小便)이 비삽(秘澁)하였다.
이는 간화(肝火)가 미해(未解)한 것이다. 소시호탕(小柴胡湯)에 황백(黃栢) 지모(知母) 천궁(川芎) 당귀(當歸)를 가한 것으로 하니, 통(痛)이 지(止)하고 변(便)이 이(利)하였다. 다시 탁리당귀탕(托裏當歸湯)으로 하니 창(瘡)이 염(斂)하였다. 만약 독(毒)이 미해(未解)하면서 통(痛)이 부지(不止)하면 반드시 활명음(活命飮)을 써야 한다.
부상(府庠) 심이문(沈尼文)이 나이 20세에 좌측 서혜부(:左坳)에 이를 환(患)하였다.
내가 간신(肝腎)의 음허(陰虛)로 보고 먼저 탁리(托裏)하는 약(藥)으로 하였더니, 궤(潰)하면서 나으려고 하였다.
입방(入房)으로 인하여 발열(發熱) 작갈(作渴)하고 우변(右邊)이 또한 작통(作痛)하며 농수(膿水)가 청희(淸稀)하니, 허증(虛證)이 모두 지(至)하고 맥(脈)이 홍대(洪大)하면서 무력(無力)하여 세(勢)가 심(甚)하게 외(畏)하였다.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에 부자(附子) 1전(錢)을 가한 것으로 하니, 맥증(脈證)이 단번에 퇴(退)하였고, 다시 1제(劑)하니, 완전히 퇴(退)하였다. 그 후에 대보탕(大補湯) 30제(劑)로 하니, 나았느니라.
어떤 남자(男子)가 종(腫)하면서 불궤(不潰)하였다.
이는 양기(陽氣)가 허약(虛弱)한 것이다. 인삼(人蔘) 황기(黃芪) 당귀(當歸) 백출(白朮)로 원기(元氣)를 보탁(補托)하고 백지(白芷) 조자(皂刺) 시호(柴胡) 감초(甘草)로 배농(排膿) 청간(淸肝)하니, 여러 제(劑)로 궤(潰)하였다. 팔진탕(八珍湯)에 시호(柴胡)를 가한 것으로 기혈(氣血)을 보(補)하기를 여러 제(劑)하니, 나았느니라.
춘원(春元) 능대지(凌待之)가 허(虛)한데 극벌(剋伐)하는 약(藥)을 복용하여 위태(危殆)하게 되었다.
내가 탁리(托裏) 건비(健脾)하는 약(藥)으로 하였더니, 나았느니라.
수재(秀才) 왕문원(王文遠)이 노고(勞苦)로 인하여 이를 환(患)하였다.
소시호탕(小柴胡湯)으로 하니 표증(表證)이 산(散)하였고 그 후에 탁리(托裏)하는 약(藥)으로 하니, 농(膿)이 성(成)하게 되므로 침(針)하니, 10일에 나았느니라.
또 호판관(胡判官)이 농(膿)이 청(淸)하고 맥(脈)이 약(弱)하여 대보(大補)하는 약(藥)으로 하였더니, 나았느니라.
신혼(新婚)으로 인하여 다시 발(發)하니, 스스로 연교소독산(連翹消毒散)으로 하,니 사리(瀉痢)부지(不止)하고 결국 불구(不拘)에 이르렀느니라.
이 증(證)은 부족(不足)에 속(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보(補)가 아니면 안 된다. 대체로 변독(便毒)은 간경(肝經)에 속(屬)하니, 초기(初期)의 견경(堅硬)은 간(肝)이 근(筋)을 주(主)하는 까닭이다. 5~7일 후에 적연(赤軟)하면 농(膿)이 성(成)한 까닭이다. 만약 아직도 견경(堅硬)하면 이는 원기(元氣)가 부화(腐化)하지 못하는 것이다. 왕왕 사람이 견경(堅硬)을 보면 단지 내소(內消)하려고 도리어 공산(攻散)하는 약(藥)을 복용하니, 대부분 허허(虛虛)의 화(禍)에 이르니라. 전에 이로 치(治)한 것이 곧 그 험(驗)이다.
어떤 부인(婦人)이 양 서혜부(:兩坳)가 종통(腫痛)하고 소복(小腹)이 비만(痞滿)하며 소변(小便)이 삭(數)하고 백대(白帶)가 시(時)로 하(下)하며 한열(寒熱)이 왕래(往來)하고 소수(小水)가 임력(淋瀝)하였다.
내가 이르기를 '비기(脾氣)가 체(滯)한 혈병(血病)이다.' 하였다. 용담사간탕(龍膽瀉肝湯)으로 하니, 점차 나았느니라. 또 가미소요산(加味逍遙散) 육미환(六味丸)으로 하니, 완전히 나았느니라.
어떤 부인(婦人)이 소복(小腹) 내에 경(梗)이 있는 듯하고 양 서혜부(:兩坳)와 질(:人門)이 모두 종(腫)하며, 소변(小便)이 임삽(淋澁)하고 경후(經候)가 부조(不調)하며, 내열(內熱) 작갈(作渴)하고 음식(飮食)이 소사(少思)하며, 복내(腹內)가 초(初)에는 계란(鷄卵)과 같더니 점차 대(大)하며, 맥(脈)이 홍삭(洪數)하면서 허(虛)하고 좌관(左關)이 더 심(甚)하였다.
간담울결(肝膽鬱結)의 증(證)에 속(屬)하니, 가미귀비탕(加味歸脾湯)으로 하니, 간화(肝火)가 퇴(退)하면서 비토(脾土)가 건(健)하고, 교대로 소요산(逍遙散)으로 노회환(蘆薈丸)을 하(下)하니, 나았느니라.
(이상은 모두 설안(薛按)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