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기-14차시 습작품(2024년 5월 27일 월)
1. 대리인/이정열2
1 불이 들어와 있는 장소를 확인한다. 항상 꺼져있어야 하는 곳도 살핀다. 교장실, 행정실 외 세 군데다. 각 학년의 반은 모두 켜져 있더라도 다시 같은 열의 전체 전원 버튼을 두 번 눌러준다. 이러면 전원이 빠졌다가 들어가면서 기계음이 들려 마이크 테스트 전부터 청자를 조용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곤충계 최상위 포식자인 사마귀를 닮은 학생주임 선생님 앞에 놓인 전체 방송용 마이크의 스펀지를 검지로 두 번 톡톡 두드린다. 너무 세면 교실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치는 친구들마다 왜 이렇게 시끄럽게 방송하냐고 원성을 들을게 뻔하다. 제일 무서운 선생님 앞이지만 할 말은 해야 한다. 숨을 가다듬는다. 마이크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듣는 학생들을 집중시키기 위해 아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2 한 달 후면, 학교 운영위원회에 속한 선생님, 학부모회 임원분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여러분의 머리카락에게 자유를 부여할지 아닐지를 결정하는 날입니다. 여느 공립도서관이나 인터넷에서도 검색할 수 있듯이, 신체와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고 넓게는 유엔이 채택한 인권법 중 하나입니다. 흥선께서는……. 각 반의 반장, 부반장에게 상세한 내용을 전달하겠습니다. 칠 교시에 회의실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자유를 위해 뜻을 모으는 겁니다.
3 마냥 웃는 선생님도 있고 혀를 차는 나이 지긋한 선생님도 있다. 어쩔 수 없다. 이미 여러 번 이 주제로 여론을 갈무리한 바, 지금보다는 긴 머리를 원하는 학생이 절대다수였다. 개인적으로는 머리카락 길이야 짧든 말든 상관없지만 나를 뽑은 학생들은 그렇지 않단다. 반장과 부반장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돌아가자마자 임원 회의 때 정리한 내용을 빠짐없이 일러주라 말한다. 생각해 볼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하는 점도 반복해서 강조한다. 수업할 때는 관련 메모조차 하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걸리면 괜히 책잡힌다. 학생의 본분인 공부시간에 다른 짓을 한다는 가장 취약한 부분이 공격당한다.
4 마지막으로 찬성과 반대를 나눠 기록하되 그 이유를 다양하게 수집해오라 이른다. 반대도 들어야만 이의를 제기할 구석을 미리 파악하고 그 의견을 파쇄할 가능성을 높인다. 우리 측에서 수렴한 의견이 찬성 일색이면 자칫 어른들과 대결 양상으로 회의가 흐른다. 찬성과 반대로 극명하게 갈리는 회의는 보통 협상에 이르지 못한다. 집단의식 때문에라도 서로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을 확률이 크다. 애초에 적당한 선을 설정해서 들이미는 방편이 낫다는 게 이번 임원 회의의 결실이다. 역시 머리 하나보다는 마흔이 낫고, 마흔보다는 사백이 나을 것이다. 일주일 후에는 임원 회의의 소득을 넘어서는 의견이 모일 거다. 더욱이 이 자리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존재함이 아니라 사백의 목소리를 깔끔하게 버무려 말쑥하게 내놓는 게 *레종 데트르(rasion de’tre)다.
5 그걸 잘 아는지 학교 친구들은 학생회장이라는 이유로 어려워하지도 않고,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학생회장이랍시고 해준 게 뭐가 있냐는 물음도 종종 있었다. 그러면 공약 중에 학생 편의는 대폭 향상됐지만 예산은 크게 들지 않았던 화장실 공용 휴지가 당선 두 달 만에 온 학교에 깔린 걸 내밀었다. 우리 학교의 재정을 고려했을 때 눈 감았다 뜨면 해줄 수 있을 정도라 여겨서 약속했던 사항이었는데 모두의 만족도가 높았다. 대답을 들으면 입은 튀어나오지만 삐뚠 입으로 그래 그건 동의할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6 뽑아준 사람들이 당선 후에 선출직에게 투덜대지 못하면 선거를 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 더 좋은 방안은 필시 구성원이 위아래가 없다고 인식해야 뿜어져 나온다. 대신 논리적으로는 맞지만 상대를 열받게 하기 위한 주장은 걸러서 듣는다. 교실에서 추린 의견 중 하나가 그런 류다. 여학생의 머리가 길어야만 한다는 법은 없으니 여자도 남자와 같이 5센티미터로 정하자는 견해다. 솔직히 이런 사고(思考)는 나도 재미있고 즐기는 편이지만 선생님이나 학부모님들께 씨알도 안 먹히고 비웃음만 사기에 알아서 거른다.
7 수많은 목소리를 모아 준비를 마무리한다. 확성기를 잡은 단상 위에서 아래로의 목소리가 아니라 위에서 들으면 안 들리는 곳까지의 음성을 모아 대표로 나선다. 결전의 날이다. 혼자가 아니다. 여기 모인 마흔 명도 교실에서 응원을 받으며 각자 출사표를 던지고 왔을 테다. 고작 마흔 명이 움직이지만 우리 각자의 발걸음은 열명의 발걸음이다. 나는 하나가 아니라 사백이다.
*레종 데트르(rasion de’tre): reason of being. 어떤 사물이 존재하는 이유 (고려대한국어대사전)
2. 종이컵이 된 수필 /윤일환6
1) 왜 글을 쓰는가 하는 질문은 왜 존재하는가 하는 것과 맥락이 통하는 것 같다. 글쓰기 위해서 살지는 않지만, 후회없는 생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2) 이 세상에는 컵의 종류가 많다. 그중에 중요하지는 않아도 요긴하게 쓰이는 종이컵이 있다. 단가도 싸고 정수기에서 물 한 컵 받아먹고는 휴지통으로 사라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떤 대우를 받아도 절대 서러워하지 않는다. 때로는 많은 국민의 가슴속에서 흘리는 눈물과 함께 촛불을 지키는 역활도 한다. 또 가느다란 실을 사이에 두고 할아버지와 손자를 이어주는 전화기 역할도 한다. 아무도 종이컵의 역할에 주목하지 않지만,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를 저버리지 않는다. 누군가가 믹스커피 한 모금의 여유를 마실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느끼게 하는 것도 자기 일의 하나다. 운동 후 땀을 흘리면 생각나는 물 한 잔의 고마움을 담아내는 충직함, 힘든 삶의 무게를 이겨내려고 한 잔의 소주를 부어 마실 때의 그 희열감 이때 등장하는 종이컵의 위용은 느끼지는 못해도 자신만의 자랑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이런 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수필을 쓰는 이유가 명확해진다.
3) 수필가 이승훈 선생은 “수필이 좋은 이유”에서 ‘당신의 진솔한 삶도 한 편의 아름다운 수필입니다’라도 했다. 수필의 예술성은 마치 ‘강’에 관한 수필을 쓰기 위해 그 강가에 움막을 짓고 몇 달을 몸부림치는 것처럼 대상과의 처절한 투쟁이나 자신과의 혹독한 싸움에서 얻어 진다고 했다. 수필을 불혹의 문학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그것은 성숙한 글, 수필의 무게감, 삶의 연륜 등을 의미하는 것 같다. 수필 쓰기는 다른 누군가에게 내 삶의 일부를 진솔하게 표출하고 느낌을 공유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글을 통해서 자신을 확인해 나가는 과정이 반드시 화려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가 알아주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존재가치가 있으면 되는 것이다.
4) 종이컵은 진정한 자기희생과 존재가치가 뛰어난 명품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보여 준다. 내가 수필을 좋아하는 이유를 종이컵이 대변해 주는 것 같다.
3. 방심(放心) - 이호규
1) 일부 유럽국가로 패키지여행을 다녀올 때면 늘 듣던 소리가 있다. “소매치기 조심!” 경제 사정이 어려운 동구 권에서 집시들이 많이 넘어와 있으니 특별히 조심하라는 이야기다.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를 즐기기 위해 떠난 해외 여행지에서 소지품 관리 때문에 모두 많이 움츠리게 된다. 휴대하는 작은 가방은 무조건 앞쪽으로 메라고 한다. 현지 가이드들은 본인들이 모셨던 손님 중에서 실제 당하였던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하기도 했다. 때로는 여행 중에 소매치기 당할 뻔한 모습을 보기도 했다.
2) 얼마 전에 남미 여행을 다녀왔다. 6개국을 26일간 둘러보는 제법 긴 일정이었다. 여행 상품은 자유로움이 많이 포함된 일종의 세미 패키지여행이었다. 현지에서 택시를 타기도 하고, 도심에서는 걸어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부피가 큰 캐리어는 못 가져가고 작은 캐리어와 백 팩에 짐을 넣고 다녔다. 시내 투어 때는 더 작은 백 팩을 메고 다녔다. 휴대폰도 안전고리 장치를 부착하여 가방이나 혁대 고리에 걸고 다녔다. 남미 여행에서 불문율처럼 강조되는 부분인 듯했다.
3) 내 몸을 떠난 소지품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여행사 대표는 설명회 때부터 남미의 치안 불안을 강조하며 소매치기, 퍽치기 등의 다양한 위험에 노출될 수 있으니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여성분들은 가능한 목걸이 등의 장식용 보석은 가지고 못 오도록 했다. 자칫 보석만 잃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신변까지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남미 중에도 특히 위험한 일부 지역은 좀 더 조심해 줄것을 요청하였다.
4) 이번 여행의 특성상 숙소는 거의 시내 중심가에 있었다. 호텔 방에 큰 짐을 두고 소형 백팩만 메고 걸어 다녔다. 어떨 때는 백팩도 위험하니 안전고리가 있는 휴대전화와 용돈만 조금 가지고 나오라고 했다. 우리나라 60~70년대 사정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특히 무도한 소매치기들은 지나가는 여행객에게 일부러 실수인 척 오물을 묻혀놓고 닦아 주는 시늉을 하며 주의를 분산시켜 주머니의 돈을 털어간다고 했다. 두 눈 멀쩡히 뜨고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5) 아르헨티나에서 생긴 일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투어 일정을 거의 마치고 이구아수 폭포를 보기 위해 공항으로 가기 직전이었다. 점심시간이 어중간하여 숙소 근처에 있는 대형 쇼핑몰 지하에서 자유로이 식사하기로 했다. 아내 친구와 함께 일식 코너에서 도시락을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그때 아내의 작은 백팩을 내가 계속 메고 다녔는데 식사를 하기 위해 잠시 의자 받침대와 허리 사이에 내려놓았다.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등 뒤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등 뒤의 작은 백팩이 사라졌다. 바닥에 흘렀는가 싶어 내려보아도 없었다. 아뿔사! 잠시 사이에 누군가가 내 등 뒤에 있던 작은 백팩을 슬쩍 들고 가버렸다.
6) 두 종류의 도시락을 시켜 놓고 맛을 비교한다고 서로 떠들고 웃는 사이에 우리는 주의력을 잠시 잃었던 것 같다. 어디서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던 소매치기 일당이 쥐도 새도 모르게 내 등 뒤의 작은 백팩을 들고 간 것이다. 안쪽에 앉았던 친구도 백팩을 등 뒤에 두었지만 내용물이 적어서 등받이 위로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바로 앞자리에 아내와 친구가 마주 보고 있어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잃어버린 백팩보다도 우리들의 주의력을 몽땅 도둑맞은 것 같아서 더 기분이 씁쓰레하였다. 아, 여행사 대표가 말했던 사실을 우리가 직접 체험하고 말았다. 순간의 방심이 불러온 결과였던 것 같다.
7) 그때의 상황을 복기해 보았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대형 쇼핑몰 지하 식당에 4인용 고정석 테이블이 가운데 쭉 놓여 있다. 벽 쪽으로는 다양한 종류의 음식점 여러 곳이 있다. 우리 테이블 한 칸 옆에는 같이 여행하는 일행들이 식사하고 있었다. 식당 군데군데는 정복을 입원 청원경찰 여러 명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테이블 한 칸 뒤쪽에 식사도 시키지 않고 앉아있는 노부부가 있었다. 눈이 약간 이상해서 기억에 남는다고 아내 친구가 말했다. 백팩이 없어진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그 노부부가 보이지 않았다. 합리적인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가이드가 출구 쪽으로 뛰어가 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신고해도 절차만 복잡하고 찾을 길은 요원하다고 했다.
8) 내 집중력을 빼앗긴 것 같아 더 허탈했다. 식사하며 웃고 떠드는 어설픈 여행객의 작은 백팩은 그들의 먹잇감이 되기에 충분했던 모양이다. 청원경찰이 바로 뒤에서 두 분 부릅뜨고 지켜보아도 아무 소용없었다. 하지만 그 가방에는 허름한 우산 2개와 물병, 바람막이 얇은 옷 하나가 전부였다. 아쉽다면 여행 간다고 백화점에서 새로구입한 마음에 드는 백팩이다. 무언가 큰 건 하나 했다고 호재를 불렀을 소매치기 일당의 실망스러운 모습이 눈에 선하게 다가왔다. 잠깐의 방심으로 인해 작은 가방 하나를 잃었으나 또 다른 좋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가이드가 소지품을 항시 내 몸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한 이유를 알게 된 사건이었다.
9) 방심은 모든 사건 발생의 출발이다. 살면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교통사고도 모두 그랬던 것 같다. 가끔 날라 오는 범칙금 고지서도 이와 비슷하다. 사람이 늘 집중만 하고 살 수 없지만 여러 가지 일들로 사건이 생길 때는 꼭 방심이라는 요소가 뒤따랐던 것 같다. 외국에 나가서도 주변 환경을 의식하지 못하고 평소처럼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부터는 좀 더 세심한 마음가짐으로 다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작은 사고 때문에 남미에서의 남은 일정을 정신 바짝 차리고 무사히 소화하고 돌아온 귀중한 여행이 되었다.
4. 참척 /신은선 1
1.오월 넷째 주 화요일, 그 소식을 접한 후 부터 가슴을 저미는 슬픔으로 힘든 한주를 보냈다.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입대를 한 어떤 아들이 훈련도중 수류탄사고로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군에 보낸 엄마의 입장에서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손이 덜덜 떨리고 가슴에선 '쿵'하고 바위덩어리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쉽사리 진정할 수가 없었다.
논산 훈련소에서 6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 받은 지 3주 된 늦둥이 아들의 얼굴이 떠올라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 훈련병 부모님 심정을 생각하니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아픔이 전해지는 듯 했다.
2.부모를 잃은 사람을 '고아'라 하고 아내를 잃은 사람을 '홀아비' ,남편을 잃은 사람을 미망인 또는 '과부'라고 한다. 그러면 자식을 잃은 사람은 무엇이라고 부르는가를 찾아보니 흔하지 않는 단어인 '참척' 즉 참혹할 참, 슬픈 척이었다. 이 단어로 부모의 통탄할 슬픔을 표현 할 수 있을까? 살면서 단 한번도 생각조차 해 본적 없는 낯선 단어 일 것이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슬픔과도 비견할 수 없는 참혹한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옛말에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감정이입이 되어서인지 도저히 가슴에도 묻지 못 할 것 같다. 묻는다는 것은 잊혀지기 때문이고 잊혀진다는 것은 두렵고 무섭기 때문이다. 3.꽃다운 청춘의 아들이 조국의 부름을 받고 열심히 훈련을 받다가 불의의 사고로 하늘의 별이 되었다. 아직은 하고 싶은 일도 할일도 많은 아들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아프다.
4.우리나라는 분단국가로 아직 휴전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국방의 의무를 다 해야 한다. 국방의 의무를 다 하는 그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집에선 마냥 어리기만한 아들들이 국군 장병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히니 새삼 고맙고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5.이번 사고는 대한민국의 아들들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생각하고 그 애된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 일수 있지만 당사자 부모님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줄수 있길 소망 해 본다.
6.뉴스를 보니 떠난 훈련병 부모님께서 함께 훈련중이였던 아들들을 걱정해서 트라우마가 남지 않도록 치료를 부탁하셨다고 했다. 정말 대단 하신 것 같다. 참혹 할 만큼 슬픈 감정에 휩싸였을텐데 그런 와중에서도 다른 아들들을 걱정해주시다니... 아무쪼록 떠난 아들을 위해서라도 하루바삐 부모님께서 마음추스리시길 바래 본다. 대한의 모든 장병들이 당신의 아들입니다.
5. 후끈한 결심/변미순3
1)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읽었다.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적은 책이다. 책 속에서 내게 콩하고 가슴을 친 핵심 내용은 이렇다. “행복의 출발은 철학이 아니라 생물학이다. 인격화시켜 말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다윈’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진화생물학’에 가깝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을 위해 행복이라는 ‘도구’를 이용한다”
2) 얼마나 많은 책들이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로 허망하게 잊혀져 갔는가. 철학을 무시한다는 말이 아니라 지구상에 생명을 가진 한 종의 동물일 뿐인 우리 인간도 결국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최적의 진화를 선택한다는 다윈의 <종의 기원>과 연결시킨 심리학자의 글이라는 것이 특이하다.
3) 과학으로 해석이 안되면 문학으로 이야기하고, 문학이 코너에 몰리면 철학으로 심화시킨다. 그것으로도 풀리지 않으면 종교적으로 신의 영역이라고 하는 것이 수순이다. 그러면서 과학이 가장 하급의 학문이라며 지금도 괄시를 받고 있다. 이를 반증하듯 시원하게 풀어놓은 심리학자의 생물학적인 해석이 새롭고 재미있다.
4) 세상의 모든 생물이 살아남기 위해 진화하였고, 지금의 모습이 바로 그 결과이다. 질소가 하나도 없는 토양에서 자라는 식물은 체내 단백질을 만들지 못하고, 그러면 대사과정을 돌려야하는 효소가 없어 수없이 죽어갔다. 그러다 선택한 것이 날아다니는 파리라도 잡아 먹어 단백질을 섭취하였고, 생리적 대사과정이 돌아가면서 생존하게된 식충식물의 진화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선택이었다.
5) 우리의 인생은 무엇인가 고민하고, 인간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우쭐대어봐도 결국은 생존을 위해 지금의 모습으로 유전자 코딩된 것이다. 저 멀리, 저 높은 행복을 삶을 목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기위해 행복이라는 도구를 사용해가며 아름답게 견디어 낸다는 것이다. 살아가는데 철학적인 중심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인간은 동물이며 진화 중이라는 것을 함께 기억하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6) 고래도, 강아지도 훈련에 의해 온갖 재주를 부리는 것이 우수한 지능이나 근육 때문이 아니라 그때마다 훈련사가 주는 간식을 먹기 위해서였다. 간식을 먹는 것이 좋아 그렇게 재주를 가진 고래와 강아지가 된 것이다. 끝없는 훈련만이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7) 로또복권과 같은 한방의 큰 행복이 당첨자의 일생을 행복으로 만들어 주지 못한다는 것이 경험치로 조사되어 있다. 행복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훈련사의 간식처럼 행복은 빈도가 잦을 때 만족도가 높아진다. 특히 한방의 일확천금을 꿈꾸는 우리나라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내용이 많았다.
8) 몇 년전 조사이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 잘 사는 나라 17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가 놀라웠다. 그 중 14개국에서 1위는 가족이었다. 2위는 직업, 3위는 물질적 풍요였다. 학력과 소득이 높을수록 가족과 직업에 큰 의미를 부여하였다. 우리나라는 1위가 물질적 풍요, 2위가 건강, 3위가 가족이었다. 물질만능이 얼마나 삶을 건조하게 만들어 가는지 뉴스를 통해 심각하게 느끼면서 다정한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안타깝다.
9) 인간은 생각을 하고, 뛰어난 두뇌로 세상을 더 많이 발전시켜왔다. 사람의 즐거운 쾌감, 편리한 안위 등을 위해 기준선 없이 질주하였다. 이로인해 결국은 지구를 가장 뜨겁게, 힘들게 만들어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우리의 지혜와 깨달음으로 이제는 다른 생물체들과 공존할 방법을 연구할 시점이 왔고, 인간만이 초록의 지구를 지킬 수 있는 리더가 될 수 있다. 이런 크게 문제를 보고 해결해 가려는 노력들은 자연스럽게 가족, 사랑, 따뜻함을 회복시켜 줄 것이다.
10) 행복학자 삼십년의 연구결과로 적은 마지막 글이 좋다. 원시적인 우리의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음식을 먹을 때, 사람과 대화할 때라고 했다. 가족, 벗, 지인들과 맛난 음식을 먹는 것이 그동안 정말 행복이었다. 작은 행복의 빈도가 우리의 인생 길마다 꽃으로 수놓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 어렵지 않은 인생을 굳이 복잡하게 살지 말자는 것이 나의 올해 후끈한 결심이 되었다.
6.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김병연(5)
1) 내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 맞은편에는 도서관이 하나 있다. 수필 관련 도서가 필요해서 그 곳을 찾게 되었는데, 인문학 강좌 수업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평소 관심이 있던 분야라서 주저하지 않고 신청하였다.
수업 과정은 격주제로 짜여져 있으며 강좌는 1층에 위치한 스터디 룸에서 진행되었다. 수강 인원은 10명 내외였다..수업이 시작되면 강사가 읽을 도서에 대한 내용을 간력하게 소개하고, 수강생 각자의 감상문을 2주후에 발표하는 형식이었다.이하 내용은 얼마 전 발표한 '이기적 유전자' 책에 대한 독후감상문으로써 일련의 칼럼 형식을 띈 글임을 밝힌다.
2) 이기적 유전자는 다윈의 진화론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이 책의 저자인 '리처드 도긴스'는 진화생물 및 동물학자임을 서두에 밝힌다. 첫 페이지부터 압도당하며 숨가쁘게 읽어내려갔다. 다소 난해하고, 생소한 과학 용어는 나를 몹시 당황하게 하였지만 점차 읽을수록 흥미를 더해갔다. 54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단숨에 소화해 내었으니까. 내용은 주로 인간을 포함하여 야생의 동물.조류, 물고기, 곤충, 식물 등에 내재되어있는 그들만의 독특한 유전자 풀 속의 비밀을 상세하게 파헤치는 것으로 이루어져있다.
3) 30억년 전부터 유전자, 즉 DNA 가 있었다는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전문적인 과학 서적은 아니지만 온갖 생물학적 용어들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미트콘트리아, 체세포 분열, 감수분열, 게놈, XY염색체, 유성생식, 무성생식, 획득형질, 근친교배 등이 그것이다. 학창시절 생물 시간에 배운 가벼운 지식을 토대로 해서 읽긴 했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물론 저자는 그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 아닐지라도 일반인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있음을 본다. 이 모든 용어들은 유전자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기초자료로서 손색이 없었다.
4)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이기와 이타는 과연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둘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불가분의 관계로 맺어져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차 양보 운전은 분명 이타적 행위이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은밀히 이기도 포함되어있다. 양보는 했지만 조금은 자기의 너그러움을 나타내려는 이기도 숨어 있기 때문이다. 황제 팽귄이 서로 몸을 밀착하여 몸의 열을 뺏기지 않으려는 행위는 호혜적 이타주의로 볼 수있다.여왕개미는 움직이지도 않고 평생 알만 낳는다. 이역시 이타주의다. 반면 주위에 포식자가 있음을 알리는 새의 경계음도 초원에서 펄쩍 뛰는 행동을 하는 톰슨 가젤(영양)도 대표적 이기주의 모형(이타주의적 척하면서 이기적인 경우)이다. 개미, 벌은 고도화된 사회성 집단이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번식에만 집중되어 있는 듯하다.개체 수 늘리는데만 있다. 즉 , 이기는 없고 이타만 보일 뿐이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적을 향하여 침을 쏘고 장열히 자살(가미가제 벌)하기도한다. 본능만 있고 이성은 없다. 그들 몸의 유전자 풀 속엔 그렇게 행동하도록 프로그램화 되어 있기때문이다.
5) 여기서 말하는 이기적 유전자란 모든 생명이 있는 동, 식물은 자기복제를 위하여 어떤 숙주를 이용하여 개체 수를 늘리거나 감소케도 하고, 더불어 성비의 균형을 도모하는 역설적 의미로서의 이타주의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음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보전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짜 넣은 생존 기계이다. 생존기계? 참을 수없는 용어가 아닌가. 단지 인간의 몸이란 그들 유전자의 운반과 보존을 위한 일개의 매개체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이유에 대한 해답을 다음 단락에서 명쾌하게 제시해나가고있다.
6) 유전자들은 자기복제자 즉 ' 밈'이다. '밈,이란 무엇인가? 저자가 말하는' 밈'이란 계속 모방되고 반복되어 퍼져 나가는 문화적 전달 또는 위미의 단위를 뜻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상가가 새로운 사상을 가르치고 이를 제자들이 이어 나가고 대중에게 퍼뜨리면 이 사상은 '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디자이너가 옷깃이나 치맛단을 새롭게 디자인했을 때 이것이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이어지고 대중에게 퍼져 나가면 이것 역시 '밈'이다. 유전자가 생물 개체의 특징을 셍식을 통해 퍼뜨리듯, 밈은 특정 문화의 표현 양식과 의미 요소를 세상에 퍼뜨린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시작되어 대중이 입에 올리는 유행어 등이 모두 '밈' 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저자는' 모방'을 뜻하는 그리스어 미멤 mimeme 과 유전자 gene를 조합해 '밈'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다.
7)여기서 인간 사회를 한번 돌아보자. 과거 농경사회 때는 가능하면 아이를 많이 낳아서 논, 밭을 경작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그럼 요즘의 사회환경은 어떠한가. 인구 과밀로 인하여 그 개체수를 조절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 증거로 우리의 뇌는 이기적 유전자에 배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정도로까지 진화했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피임도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인위적인 출산율의 급격한 저하가 그 한 예이다. 왜냐하면 유전자의 원리는 선남선녀가 사랑의 행위를 할 때면 무조건적인 자기 복제를 잉태하게끔 되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작정 낳을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8) 끊임없는 자기복제를 시도하는 유전자에 맞대응 하기 위하여 피임에 이어 또 하나의 대응책을 마련함이 인류에게 남겨진 마지막 숙제인 것 같다. 지금도 생명과학 연구실에선 유전자 관련 실험이 부단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요원한 영역이지만 말이다. 이기적이든 이타적이든 유전자는 불멸의 존재임을 인정해야한다. 신이 만들었던 아니던 논쟁의 대상 범위를 넘어선다. 어떤 행위가 이루어지면 정자가 유영해서 마침내 난자를 만나 자궁에 착상이 된다. 이어서 부모로부터 각각의 유전자를 반반씩 물려 받아 비로서 한 생명체의 꿈틀거림이 일어난다. 이 경이로운 유전자의 신비에 우리 인간은 겸손과 겸허해야 할 당위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한가지 덧붙힌다면, 여지껏 내 삶이 이기로 뭉쳐져 있었다면 앞으로의 삶은 좀 더 이타에 접근할 수 있는 과감한 사고의 전환을 모색해야할 것으로 다짐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