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마가복음 12장 17절『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표면적으로는 세금 문제로 나타난다.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나라의 백성이라면 나라의 임금에게 세금을 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로마의 지배 하에 있으므로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것은 무엇인가?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율법에 따라, 성령 아래 있는 자는 성령을 따라 세금을 내면 되는 것이다. 율법은 레위기 27장 30절에서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구약시대는 율법에 따라 그렇게 드렸다. 율법을 반드시 지켜야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십일조를 반드시 내라는 말이다. 그런데, 십일조를 하는 이유를 알고 내야만 한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이 부분의 헬라어를 보면, ταῦτα [δὲ] ἔδει ποιῆσαι κἀκεῖνα μὴ ἀφιέναι. 『이것도 행했어야 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라고 번역된다. 목회자들은 예수님이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행하라 하였으니 여전히 십일조를 해야한다고 말을 한다. 이 말은 과거의 일을 지적하는 말이다. 예수님이 유대 지도자들을 보고 너희들이 이것도 행했어야 하고 저것도 행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행하지 못하였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들은 십일조를 철저히 했지만 정작 율법이 말하는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과거의 사실을 지적하는 말씀이다.
십일조는『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데,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했으므로,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메시야를 발견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십일조를 세상의 재물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그러나 십일조의 궁극적인 의미는 영적으로 하나님나라로 돌아가야만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여전히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으므로, 십일조를 하는 것이다.
성령 아래 있는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영원한 제사를 드린 것이다. 그래서 영적 산 제물이 되었으며, 영적 십일조를 드린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는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다. 그래서 자신을 하나님께 다 드린 것이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연합되는 것이 영적 십일조가 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자신을 전부 하나님께 드린 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드림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얻게 된다. 자신을 드린다는 것은 자신도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마가복음 12장 16절에서『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한 데나리온에 새겨진 형상은 가이사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이시다. 히브리서 1장 3절에서『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골로새서 1장 15절에서『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드려졌으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 역시 하나님께 드려진 자들이다. 로마서 12장 1-2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도키마조)』
”마음(노오스 νοὸς)을 새롭게(아나카이노세이 ἀνακαινώσει) 하므로서 변화(메타모르포스데 μεταμορφοῦσθε)를 받아”에 대해서, 헬라어 성경을 보면, 『ἀλλὰ μεταμορφοῦσθε τῇ ἀνακαινώσει τοῦ νοὸς』우리 말 번역이 잘못되었다.『변화를 받아 마음이 새롭게 되므로서』라는 말이다. 메타모르포스는 영어로 be transformed이다. 모양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은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산 제물로 드려지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다는 그 말이다. 그래서 부활한 몸을 가지므로, 영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 율법 아래 있을 때는, 부활되지 않은 몸을 가지므로, 육의 마음이었지만, 부활되므로 이제 영의 마음이 되므로, 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된다. 그것은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자가 되는 것이다.
성도들은 교회라는 모임에서 내는 돈은 십일조가 아니라, 교회를 운영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헌금을 자유롭게 하면 되는 것이다. 율법에 따른 십일조를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신이 성도라고 믿고 있으면서 십일조를 해야만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만 한다. 과연 현재적으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현재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는가를 깊히 생각해야만 변화를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의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형상이 성도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바쳐진 자가 되는 것이다. 도키마조는 분별하다 라는 말이다. 이러한 이치를 분별하여 행동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