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산악 산행안내 2019. 9. 8 목 적 지 : 양산 천성산 산행
산행코스 : 내기(영산대)-능선(낙동정맥)-천성산(제2봉)-천성산-
정상식,중식-원효암-흥룡사-대석리(14.6km)
《양산 천성산920.2m 千聖山》
소금강산이라 불리는 천성산은 예로부터 깊은 계곡과 폭포가 많고 또한 경치가 빼어나 금강산의 축소판이라고 불리었다.
동쪽으로는 양산시 웅상읍, 서쪽으로는 양산시 상북면에 접해 있으며 산 아래 서북쪽에 내원사가 위치해 있다.
천성산에는 화엄늪과 밀밭늪이 있다. 이곳은 희귀한 꽃과 식물(끈끈이 주걱)등 곤충들의 생태가 아직 잘 보존되어 있어 생태계의 보고를 이루고 있다.
또한,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꽃이 만산홍을 이루고, 가을이면 긴 억새가 온 산을 뒤덮어 환상의 등산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가지산, 운문산, 신불산, 영축산과 함께 영남 알프스 산군에 속한다. 원효암을 비롯하여 홍룡사(虹龍寺), 성불사(成佛寺), 혈수폭포(血水瀑布) 등의 명승지가 있다.
<천성산 공룡능선>산하동 계곡과 성불암 계곡 사이의 암릉은 기암괴봉이 이어져 누군가가 공룡능선이라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그 능선을 타는 것도 좋지만 아름다운 성불암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며 병풍처럼 까마득하게 벼랑을 이룬 암봉과 바위낭떠러지의 아름다운 경관을 올려다보는 멋도 좋다.
봉우리도 수리봉, 옥녀봉, 집북봉, 애기암봉 등 수려한 봉우리 들이 많다. 계곡도 산하동 계곡, 성불암 계곡, 법수 계곡, 주남 계곡 등 모두 좋지만
천성산 제일의 아름다운 경관은 내원사 계곡이다. 특히 넓은 암반을 하얗게 수놓으며 크고 작은바위 사이를 흘러내리는 내원사 계곡은 절경이다.
또한 기묘한 바위들의 이름도 다양해 병풍바위, 금강바위(석문바위), 신선대, 매바위, 신선바위, 형제 바위 등 수없이 많다.
특히 천성산 고스락에서 내원암 계곡으로 내려오는 산길 곳곳에 위치한 바위들과 성불암 계곡과 내원암 계곡 사이의
산등성이에 박혀 있는 바위들은 전망이 좋아 이곳에서 주위를 조망하는 것도 천성산 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내원사 계곡의 선경 법수원계곡은 고스락에서 산 아래까지 거의 절벽으로 되어 있어 비가 많이 내린 뒤에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꽂히는 한줄기 폭포와 같다.
<산이름>천성산의 유래는 원효대사가 신라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중국 당나라 승려 1,000명 대중을 이끌고 이곳에 이르러 89암자를 건립하고
화엄경을 설법하여 1000명 대중을 득도케 하여 천명의 성인이 탄생한 산이라 이라 하여 천성산이라 전해진다.
옛 이름은 천성산(千聖山)이다. 산성을 축성한 뒤 형태가 정방형이라 하여 정방산이라 전하여지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정방산(政方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방산성政方山城>산마루에는 고려시대에 쌓고 이조시대에 보강증축한 이름난 정방산성(둘레 12㎞, 성안의 넓이 약 2㎢)이 있다.
산성의 축성시기는 나말 여초에 도선(道詵)이 창안하여 쌓았다고 전하여지나 『고려사(高麗史)』에는 전방산성에 대한 기록이 없으며,
조선시대 『문종신록(文宗新綠)』에 의하면 1451년(문종 1) 정분(鄭芬)이 새로 쌓을 성터를 답사하고 측량결과를 보고하였을 때에도 산성은 없었다고 한다.
『황주읍지(黃州邑誌)』에 정묘호란 뒤 설치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1627년(인조 5)청나라의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규모는 둘레가 2만4475척, 높이가 남쪽은 30척, 나머지 3면은 15척이며, 그 밖에 타첩(陀堞 : 활이나 총을 쏘거나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게 쌓은 작은 성벽)과
사혈(射穴)이 각각 1,336개소, 포혈(砲穴)이 4,800개소, 치성(雉城 : 성의 외부로 돌출시켜 적을 향하여 사격할 수 있게 쌓은 성벽) 7곳, 곡성(曲城) 5곳, 동서남북에 문루가 있다.
적지 않은 규모로서 1895년(고종 32)부터 수성군제(守城軍制)가 폐지되고 보수를 하지 않아 훼손되었으나,
원형보존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지비산 지맥의 말단부에 솟아 있어 산세가 웅장하며, 사시사철 경치가 아름답고 유서깊은 성불사(成佛寺)가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이 절에는 응진전을 비롯하여 극락전, 명부전, 청풍루, 운하당 등 목조건물과 고려시대의 석조물인 4각5층탑이
남아 있다.
특히 은색 대리석벽으로 된 곳에는 구슬같은 물이 천장에서 떨어지는 정방약수가 있는데, 만병에 특효가 있다고 하여 유명하다.
<천성산 전설>신라시대의 ‘천성산의 지명 유래담’과 ‘원효산 전설’을 아울러 「천성산 전설」이라고 한다.
천성산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남서쪽으로 원효산과 마주하고 있었는데, 양산시가 두 산의 명칭을 천성산으로 통합했다.
신라 선덕왕 때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결의형제를 맺고, 양주(지금의 양산시) 원효산의 원효암과 의상대에서
각각 수도에 들어갔다.
7년이 지난 늦가을 밤, 어느 부인이 찾아와 하룻밤 쉬어 갈 것을 간절히 청했다. 의상은 거절했으나, 원효는
여인을 받아들였다.
게다가 여인이 산기가 있자 아이를 받은 후 여인의 원대로 목욕을 시켜주었다. 여인은 원효에게 자신이 씻은
물에 목욕할 것을 권하고는 아이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원효는 그때서야 관세음보살이 자신을 시험한 것임을 알게 되고, 물에 목욕하는 순간 도를 깨우치게 된다.
늦게 찾아온 의상도 남은 물에 목욕하여 도를 깨우쳤다. 그 후 세상 사람들은 “원효의 불교는 대승불교이고,
의상의 불교는 소승불교였다.”고 말했다.
<주남고개>영산대학교 → 주남고개 →안부 → 천성산2봉 5.7km 낙동능선 길이다.
<천성산 제2봉812m>양산시에서 이전의 원효산을 천성산 주봉(主峰)으로 하고, 이전의 천성산을 천성산
제2봉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태백산계에 속하며, 남서쪽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산을 원효산(元曉山)이라 하였다.,
<천성산 정상> 정상은 화엄벌 인근의 922.2m봉이다, 양산시는 원효산(922.2m)을 천성산으로 이름을 변경
하였다,
가지산, 운문산, 신불산, 영축산과 함께 영남 알프스 산군이다. 이곳 정상은 한반도에서 동해의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이다.
양산시 중앙부를 남북으로 뻗은 정족산(鼎足山) 줄기의 지맥에 해당하는 데, 이 산줄기에 따라 양산시가
동·서로 갈리며, 회야강(回夜江)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맑은 날이면 멀리 부산과 일본의 대마도, 양산과 울산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천혜의 경관을 간직하고 있는
곳에 원효암이 자리하고 있다.
<원효암 元曉庵>은 원효암은 원효스님이 신라 선덕여왕 대에 창건한 고찰로, 해발 900m의 천성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원효암에는 원효가 중국에서 화엄교학(華嚴敎學)을 배우러 온 1,000명의 수행자들을 가르쳐 도를 깨치게
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송고승전(宋高僧傳)』에 전하는 원효스님의 일화에서 보듯이 이곳은 수많은 수행자들의 숨결이 흐르는
탈속의 성지이자 많은 불자들의 귀의처이기도 하다.
원효암. 미륵전·산령각·범종각 등의 건물이 있다. 법당의 동편의 석벽에는 마애아미타삼존불이 새겨져
있다.현재 원효암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중심 법당이다.
중심 법당은 공포가 없이 둥글게 깎은 도리를 얹은 굴도리식으로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하고 소박하다.
좌·우 퇴칸은 심우실(尋牛室) 등 생활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어칸과 좌·우 협칸 3칸은 예배 공간으로
석조약사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불상은 근래에 발견된 불상조성기에 의해 1648년(인조 26)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에는 범종을
안치했으며, 종명(鐘銘)은 경봉(鏡峯)이 썼다.
<천광약사여래>이러한 청정도량 원효암에는 신기한 이적이 일어나 불보살의 가피가 함께하고 있음을
드러낸 바 있다.
1991년 어느 여름에 비 없는 천둥ㆍ번개가 2시간 동안 이어지다가 원효암 동쪽 사자봉을 향해 불기둥을
내뿜었는데,
이튿날 사람들이 올라가보니 불기둥을 맞은 암벽에 부처님의 형상이 조각을 한 듯이 드러난 것이다.
당시 통도사 방장인 월하(月下) 대종사가 이를 친견한 후 하늘빛이 빚었다 하여 천광(天光)이라 하고,
동방에는 약사여래가 상주하므로 ‘천광약사여래(天光藥師如來)’라 이름 하였다.
<호국사자후범종>원효암에는 근현대의 고승 경봉(鏡峰) 스님이 국운 번창과 남북통일을 발원하여
조성한 호국사자후범종이 있다.
<홍룡사 虹龍寺> 신라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중국의 승려 1,000명에게 천성산에서 『화엄경』을 설법할
때 창건한 사찰이다.
승려들이 절 옆에 있는 폭포를 맞으면서 몸을 씻고 원효의 설법을 듣던 목욕터였다고 하며, 창건 당시에는
낙수사(落水寺)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터만 남아 있다가 1910년대에 통도사의 승려 법화
(法華)가 중창하였고, 1970년대 말에 부임한 주지 우광(愚光)이 꾸준히 중건 및 중수하여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종각과 요사채가 있고, 정면 5칸, 측면 3칸에 40평 규모의 선방(禪房)
이 있으며, 폭포 옆에는 옥당(玉堂)이 있다.
절 옆에 있는 홍룡폭포는 높이 14m인 제1폭과 10m인 제2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옛날 하늘의 사자인
천룡이 살다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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