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이 소설은 닐 피스크라는 남자가 신을 사랑하게 된 과정을 담고 있으며 그 가운데 다른 사람들의 삶과 그의 삶이 교차한다. 주요 인물의 특징은 이러하다.
닐 피스크: 닐은 왼쪽 다리에 기형이 있으며 건물 관리인으로 일한다. 신을 사랑하지 않고 지옥에 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던 그는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아내 사라를 만나 행복했지만 사라가 천사 강림시에 유리 파편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는다. 이 일로 천사 강림과 관련된 간증과 격려 모임을 다니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한편, 어떻게 하든 천국에 간 아내를 다시 만나고 싶어한다.
재니스 라일리: 다리가 없는 상태로 태어났으나 그것을 장애라 여기기보다는 신의 특별한 뜻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신을 전도하는 강사로도 많은 인기를 누리다가 어느 날 천사 강림을 목격하고 다리가 생긴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치유와 축복으로 보았지만 정작 본인은 이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혼란을 느끼며, 할 수만 있다면 이전 상태로 돌아가거나 축복을 남에게 양도하고 싶어한다. 닐은 재니스가 자신과 달리 행운을 경험했으면서도 이를 불만족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에 분개한다.
이선 미드: 부모는 그들이 누리는 건강과 경제적 지위를 신의 은총으로 돌렸으나 이선은 계속해서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특별한 역할을 찾으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천사 라시엘의 강림을 목격하고 드디어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알게 되리라 기대한다. 그 후 천사 강림과 관련된 격려 그룹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일종의 패턴을 발견한다. 부상을 입은 사람,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한 사람, 그때 만난 사람과 결혼을 하거나 극적으로 직업을 바꾼 사람 등, 이선 자신만 빼고 모두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게 된 것 같았다. 이선은 그런 사람들의 목록을 점검하고 재니스를 만나 천사 강림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시작한다.
닐은 (천사가 인간계로 들어오거나 나갈 때만 새어나오는) 천상의 빛을 쫓는 라이트 시커가 되기로 한다. 천상의 빛을 만나면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사람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에 그 기회를 통해 신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아내 사라가 있는 천국으로 가려는 것이다. 그리고 재니스와 이선은 각각의 이유로 사막에 있는 성지 순례에 나선 결과 세 사람은 같은 지역에서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닐은 트럭을 타고 천사를 쫓아가다가 바위에 부딪쳐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이때 천상의 빛 한 줄기가 닐의 살을 꿰뚫고 그 빛은 그의 시력을 앗아가고 닐에게 신을 사랑해야 하는 모든 이유를 보여주었다. 닐은 과거의 모든 분노와 갈등을 버리고, 모든 고통에 대해 감사하고 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삶은 사랑이며, 고통조차, 아니 고통이야말로 사랑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닐이 과다출혈로 사망했을 때 그는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닐을 지옥으로 보냈다. 그곳에서 닐은 지옥의 고통이 인간계의 고통과 달리 존재하는 모든 것에 신이 부재하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임을 알았다. 닐은 신에게 사랑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조차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무 보상도 없이 신을 사랑한다. ‘진정한 신앙이란 본디 이런 것’이라는 말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감상
이 소설은 천사 강림이 수시로 일어나 사람들에게 극적인 영향을 주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전개되지만 여기에 등장한 기독교 신앙과 신에 대한 관념들은 내가 수십 년간 교회에 다니며 경험한 다양한 사람들을 한 자리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같은 천사 강림을 목격하더라도 어떤 이는 치유를 받고 어떤 이는 죽게 되는 것, 닐이 죽을 당시 구원받을 만한 사람이 되었음에도 천국으로 올려지다가 지옥에 가게 되는 것 등 설명되지 않는 부분은 인과관계로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신앙과 삶의 관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남편의 폭력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종교를 전전했다. 불교 사찰을 다니며 스님들에게 상담을 하고, 무속신앙에 의지하여 그들이 원하는 제를 드리기도 하고, 남묘호랭교에도 다녔으며 초등학생이던 나에게 주문을 외우라는 종교생활을 강요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최종적으로는 모든 종교가 창조주 아래 있는 것이 아니겠냐며 개신교에 안착했다. 어느 날 갑자기 억지로 매 주일마다 엄마가 정해준 교회에서 종교생활을 하게 된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후 오랜 시간 몇몇 교회와 여러 목회자와 선교단체 등을 거치면서 다양한 형태의 믿음을 보았고, 나의 신앙도 변해갔다. 사람이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사명을 완수하지 못해서 생긴 것이라는 의견은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던 친정 엄마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종교단체,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한다면 죄가 된다며 연애결혼이나 심지어 혼자 과자를 사 먹는 행동도 금기시하는 금욕적인 신앙을 가진 선배,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아 수면부족에 시달리며 일과 육아를 하는 나에게 “집에서 놀면 뭐하냐”며 주중에 수차례 교회 모임에 출석할 것을 권유했던 전도사는 이후 ‘충성 서약서’를 쓰라고도 했다. 대놓고 “돈은 벌어서 뭐합니까. 헌금하세요.”라고 설교하던 교회를 떠나 지금은 노년층이 많다는 것 외에는 유별난 특징이 없는 교회를 조용히 다니며, 성경에서 예수님이 꾸짖었던 “차지도 덥지도 않은” 교인이 되었다.
한때는 이선 미드처럼 신이 나에게 부여한 소명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으나 이제는 그것도 내려놓았다.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려 무진 애쓰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나에게 사랑을 내놓으라 요구하는 채권자가 아니며 없는 것을 강요하는 분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호박 만한 머리로 이해하지 못할 큰 존재이기에 죽는 날까지 혹은 죽음 이후까지 그분을 겸허히 알아가는 과정이 종교라고 생각하고 있다. 예전에 지인이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을 비롯하여 자기네 교회에서 하나님이 정해주신 방식대로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며 나를 설득하려 했을 때 “아…그러면 저는 지옥에 가도 어쩔 수 없겠네요”라고 말하고 말았다. 특정 단체에 헌금을 많이 하고 그곳에서 정해진 방식대로 종교 활동을 많이 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면 나는 그런 천국에 갈 수 없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