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사학 | ① 특징 ◦ 민족 정신 강조 ◦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한국사의 주체적 발전을 강조 ② 학자 ◦ 박은식 - 근대사 연구에 노력 - 역사는 신(神 ; 정신)이요, 나라는 형(形 ; 형체)이라고 강조 - <한국통사>: 단군~국권 피탈, 특히 1864~1911년까지의 일본의 조 선 침략을 집중 서술(국혼을 강조, 아픈 역사를 통해 교훈을 배우자) - <한국독립운동지혈사>: 갑신정변~1920년까지의 일제 침략에 대한 한민족의 독립 운동 서술 - ‘민족 혼’ 강조 ◦ 신채호 - 고대사 연구에 노력 - <민족주의 역사학의 기반 확립 - <조선상고사> :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인식 - <조선사연구초> :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을 높이 평가 - <독사신론> : 삼한정통론에서 벗어나 고대사의 체계를 정립 - '낭가 사상' 강조 ◦ 정인보 - 근대사 연구에 치중 - 신채호의 민족주의 사관 가장 잘 계승 - <조선사연구> : 실학 연구에 노력 - 5천년 간의 ‘조선의 얼’ 강조 ◦ 문일평 - 근대사 연구에 노력 - <한미 50년사> : 개항 이후 역사 연구 - ‘조선심’ 강조 ◦ 최남선 - <조선역사>, <고사통>, <아시조선> 저술 - 불함 문화권 주장 |
실증주의 사학 | ① 특징 ◦ 역사적 사실의 객관성 강조 ◦ 사실 그대로의 역사 강조 ◦ 문헌 고증을 통한 역사 연구 ② 진단학회 결성 ◦ 일제의 청구 학회를 중심으로 한 왜곡된 한국사 연구에 반발하여 조직 ◦ 1934년 조직하여 1942년 일제에 의해 해체 ③ 학자 : 이병도, 김상기, 신석호, 이윤재, 조윤제, 손진태 등 |
사회 경제 사학 | ① 특징 ◦ 일제의 경제학자들이 우리 역사의 후진성과 정체성을 강조한데 반발 ◦ 유물론적 변증법에 의한 역사 연구 강조 ◦ 세계사적 역사 발전 단계설을 우리 역사에 적용함 ◦ 일제가 주장하는 한국사의 특수성론을 배척하고 보편사의 이론 적용 ② 학자 ◦ 백남운 - 유물 사관의 입장에서 한국사를 체계화함 - <조선사회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 저술 ◦ 기타 - 김석형, 이청원, 박극채 |
신민족주의 사학 | ① 특징 ◦ 민족 단결과 자주 민족 국가 건설을 강조 ◦ 개방적, 세계적, 평등적(균등적) 민족주의 강조 ② 학자 ◦ 손진태: <조선민족사개론>, <국사대요>, <한국민족문화의 연구> 저술 민족 사관에 대한 비판과 극복 ◦ 안재홍: <조선상고사감> 저술,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 주장 정인보와 함께 조선학 운동 참가 |
유사 기출문제
23회 중급 38번 문제
38. 신채호(1880~1936)의 활동 답①
사학자로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를 집필하였다는 사실에서 신채호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신채호(1880~1936)에 대해 살펴봅시다.
그는 일찍이 독립 협회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황성신문 논설위원, 대한매일신보 주필, 연해주에서 권업회의 기관지 권업신문의 주필로 활동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참여하여 국민 대표 회의에서 창조파(임시 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자는 파)로 활동하였으며, 의열단의 요청으로 민중의 직접 혁명을 강조한 '조선 혁명 선언'을 작성하기도 했습니다(1923).
역사와 관련하여서는 대한매일신보에 "독사신론”(1908)'을 연재하여 왕조 사관과 사대주의를 비판하면서 민족 중심의 자주적 역사관 수립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상고사(화랑 정신인 낭가 사상을 강조,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을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 사건'이라고 기술)>, <조선사연구초(단군~삼국 시대 기술,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 기술)> 등의 저술을 통해 고대사 연구에 주력하였습니다.
① 신채호는 대한매일신보에 "독사신론”(1908)'을 연재하여 왕조 사관과 사대주의를 비판하면서 민족 중심의 자주적
역사관 수립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습니다.
② 진단 학회를 창립에 참여한 이는 이병도, 손진태, 이윤재, 이희승 등입니다.
③ 조선어 연구회를 조직한 인물은 최현배, 이희승 등의 국어학자들입니다.
④ "조선사회경제사(1933)"는 백남운이 한국의 고대 경제사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연구서입니다.
백남운은 유물 사관에 기초한 사회 경제 사학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는 한국사가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법칙에
입각하여 발전하였음을 강조하면서 일제가 주장한 식민주의 사관의 정체성론을 정면으로 반박하였습니다.
⑤ 조선 불교 유신론은 한용운(1879~1944)이 제창하였습니다.
그는 불교 승려이자 시인, 항일 운동가였로, 3·1 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불교 대표로 참여하였어요. "조선
불교 유신론"을 저술해 불교를 새롭게 고칠 것을 주장하였고(1910), 일제의 사찰령(1911)에 맞서며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현실 참여를 주장하였습니다. 1920년대에는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 문학에 앞장섰고,
불교를 통한 청년 운동을 펴기도 했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①번입니다.
22회 중급 40번 문제
40. 사회경제 사학자 백남운(1895~1974) 답②
"조선사회경제사(1933)"는 백남운이 한국의 고대 경제사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연구서입니다.
백남운은 역사 발전을 유물 사관에 입각하여 연구하는 사회·경제 사학을 발전시켰어요. 이러한 그의 연구는 "조선사회경제사(1933)", "조선봉건사회경제사(1937)"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백남운은 "조선사회경제사(1933)"에서 우리나라의 역사가 '원시 공산 사회 → 노예 사회 → 봉건 사회 → 자본주의 사회'라는 보편적 역사 발전의 단계를 거쳐 왔다고 서술하였습니다. 그는 한국사를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법칙에 따라 기술함으로써 식민 사관의 정체성론을 비판·극복하고자 하였으며, 동시에 민족주의 사학의 정신주의도 비판하였습니다.
① 박은식(1859~1925)도 우리의 민족 정신을 ‘혼’으로 파악하여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한국통사와 한국 독립 운동지혈사를 저술하여 일제의 불법적인 침략을 규탄하였습니다.
② 백남운(1895~1974)은 유물 사관에 기초한 사회 경제 사학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는 한국사가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법칙에 입각하여 발전하였음을 강조하면서 일제가 주장한 식민주의 사관의
정체성론을 정면으로 반박하였습니다.
③ 신채호(1880~1936)는 고대사 연구에 주력해 조선상고사와 조선사 연구초를 저술하여 우리 고대 문화의 우수성과
독자성을 강조했어요.
④ 이익은 중국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우리 역사를 체계화할 것을 주장하였어요.
그는 단군→기자→삼한(마한)으로 이어지는 정통론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제자인 안정복에게 계승되었습니다.
⑤ 진단 학회는 이병도, 김상기, 손진태 등이 실증적 역사 연구를 목적으로 조직하였습니다.
이들은 랑케 사학에 영향 받아 문헌 고증 등의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역사를 연구하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일제의 어용 역사 단체인 청구 학회의 역사 왜곡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되었고 진단학보를 발간하기도 하였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20회 중급 43번 문제
43.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공통점 답⑤
문제에 제시된 ‘한국통사(박은식)’, ‘조선사연구(정인보)’, ‘조선상고사(신채호)’는 모두 민족주의 역사학들이 저술한 역사서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우리 역사 왜곡에 대응하여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한국사의 발전 주체가 우리 민족임을 강조하면서 민족 정신을 고취하고 식민주의 사학의 허구성을 밝히는 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박은식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참여하면서 ‘한국통사’와 ‘한국 독립 운동 지혈사’를 저술하여 일제의 불법적인 침략을 규탄하였습니다. 신채호는 조선 상고사와 조선사 연구초를 저술하는 등 주로 우리 고대 문화의 우수성과 독자성을 강조하여 식민주의 사관을 비판하였어요. 정인보는 ‘조선의 얼’을 강조하며 신채호의 민족주의 사관을 계승하였고, 문일평(조선심 강조), 안재홍(신민족주의 역사학), 남궁억 (역사교육 강조)등도 민족의 자주성과 독창성을 조명하여 일제의 식민주의 사관을 비판하였습니다.
한편 1930년대에는 백남운 등에 의해 사회 경제사학이 대두되었어요. 이들은 마르크스의 유물 사관을 바탕으로 한국사가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법칙에 입각하여 발전하였음을 강조하면서 식민주의 사관의 정체성 이론을 반박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인 학자들이 만든 청구 학회에 대응하여 한국 학자들이 세운 국학 연구 단체인 진단 학회(이병도, 손진태 등)를 중심으로 한 실증주의 사학도 발달하였습니다.
① 일제가 만든 조선사 편수회에 참여한 조선인으로는 이완용, 최남선, 이병도 등을 들 수 있습니다.
② 삼한 정통론으로 우리 역사를 체계화한 인물은 이익이고 이는 안정복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조선 후기 중농주의 실학자인 이익은 중국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우리 역사를 체계화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단군-기자-삼한(마한)으로 이어지는 삼한 정통론을 주장하였습니다. 그의 제자인 안정복은 이를 계승해 단군-기자
-삼한(마한)-삼국(신라)-통일 신라-고려로 이어진다는 삼한 정통론을 폈습니다.
③ 백남운의 사회 경제 사학에 대한 설명입니다.
④ 진단 학회를 설립에 참여한 이는 이병도, 손진태, 이윤재, 이희승 등입니다.
⑤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혼(박은식)', '낭가 사상(신채호)', '얼(정인보)' 등 민족 정신을 특히 강조하였어요.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⑤번입니다.
18회 중급 40번 문제
40. 민족주의 사학자 신채호(1880~1936) 답③
사학자로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를 집필하였다는 사실에서 신채호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신채호(1880~1936)에 대해 살펴봅시다.
그는 일찍이 독립 협회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황성신문 논설위원, 대한매일신보 주필, 연해주에서 권업회의 기관지 권업신문의 주필로 활동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참여하여 국민 대표 회의에서 창조파(임시 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자는 파)로 활동하였으며, 의열단의 요청으로 민중의 직접 혁명을 강조한 '조선 혁명 선언'을 작성하기도 했습니다(1923).
역사와 관련하여서는 대한매일신보에 '독사신론”(1908)'을 연재하여 왕조 사관과 사대주의를 비판하면서 민족 중심의 자주적 역사관 수립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상고사(화랑 정신인 낭가 사상을 강조,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을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 사건'이라고 기술)>, <조선사연구초(단군~삼국 시대 기술,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 기술)> 등의 저술을 통해 고대사 연구에 주력하였습니다.
① 박은식(1859~1925)도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참여하여 2대 대통령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한국통사'와 '한국 독립 운동지혈사'를 저술하여 일제의 불법적인 침략을 규탄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민족 정신을 ‘혼’으로 파악하여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② 백남운(1895~1974)은 유물 사관에 기초한 사회 경제 사학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는 한국사가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법칙에 입각하여 발전하였음을 강조하면서 일제가 주장한 식민주의 사관의
정체성론을 정면으로 반박하였습니다.
④ 이승훈(1864~1930)은 민족 운동가이자 교육자로 신민회에 참여하여 교육 활동에 힘써 오산 학교 설립하였습니다.
이후 민족 대표 33인 중 기독교 대표로 참여하였고 민립 대학 설립 운동에도 참여하였습니다.
⑤ 정인보(1893~?)는 문일평, 안재홍 등과 조선학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조선의 ‘얼’을 강조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③번입니다.
17회 중급 50번 문제
50. 박은식 답②
일제의 식민 사관에 맞서 박은식, 신채호 등은 민족주의 사학을 정립하였다. 이들은 자주적으로 민족사를 연구하여 민족정신을 세우면 언젠가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에 민족사의 연구 자체를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했고, 독립운동에도 적극 가담하였습니다.
임시 정부에서 활동한 박은식은 민족정신으로서 조선 국혼을 강조했으며,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하여 일제의 침략과 민족의 독립운동을 정리하였습니다.
신채호는 일찍이 대한매일신보에 “독사신론”을 연재하여 왕조 사관과 사대주의를 비판하면서 민족 중심의 자주적 역사관 수립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어요. 그 후 신채호는 해외에서 독립 운동에 몸바쳐 활동하면서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 등의 저술을 통해 고대사 연구에 주력하였습니다. 그는 고대사에 살아 숨 쉬는 자주적·주체적인 민족 고유의 사상인 ‘낭가 사상’의 존재에 주목하고, 이러한 정신을 되살려 민족 독립의 토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어요.
민족주의 사학자로는 이밖에도 ‘조선얼’을 강조한 정인보, ‘조선심(心)’을 강조한 문일평, 그리고 신민족주의 역사학을 제창한 안재홍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일제의 민족 문화 말살 정책에 맞서 ‘문화가 살면 민족은 죽지 않는다.’는 신념 아래 조선학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어요.
민족주의 사학이 민족정신을 강조한 것과는 달리, 백남운은 마르크스의 유물 사관의 영향을 받아 사회 경제 사학을 내세웠습니다. 그는 “조선사회경제사”를 저술하여 우리 역사도 서양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고대 노예제 사회 → 중세 봉건사회 →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단계를 거치며 발전했다고 기술하였어요. 이는 한국사에는 봉건 사회가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는 근대 사회로의 발전을 할 수 없다는 식민 사관의 정체성론을 비판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역사가의 주관적인 판단없이 역사적 사실을 원래 있는 그대로 기술해야 한다.’는 랑케 사학의 입장에서 한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이병도). 이른바 실증 사학의 학풍을 지닌 이들은 철저한 문헌 고증을 통해 우리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려 하였어요. 그리고 진단 학회(이병도, 손진태 등)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한국사 연구 성과를 “진단 학보”를 통해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정답은 ②번입니다.
효율적인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공부법
카페에서 추천하는 부담 없는 [한권으로 끝내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교재로 중요내용을 공부하고
마지막으로 카페에 올려진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출문제해설을 꼼꼼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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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인물은필히공부를해야풀수있는문제인것같아요 무조건암기
박은식의 '혼' 신채호의 '낭가사상' 정인보의 '얼' 이것만 외우고 있어도 어느정도는^^
얼마전 대전 신채호 선생 생가에 다녀왔습니다.
한국사를 공부하며 글과 사진만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많은 곳을 직접 보고 느낀다는 것! 참 의미가 있네요
앞으로 더욱 많은 곳을 보고 느끼며 역사에 대한 이해와 인물들의 정신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중급은 사진자료와 인물이름을 암기해야 겠네요
잘못공부하고 있었네요... 이런식으로 접근해야 하는 거군요!
막무가내로 공부해서는 안되는걸 재 확인시켜주네요... 인물, 그배경, 업적 등등.. 연관시켜 공부 해야하는 걸 다시 인지하고 갑니다...
큰별샘이 말씀하셨죠. 중요한건 왕, 흐름, 그리고 사진! 이라고요! 문제풀다보면 사진과 그림이 정말 많이나오는데 위와같은 해설이 정말 큰 도움이 되네요!
체계적인 학습법이네요
이번시험에박은식이나왓는데..자세한설명감사합니다^^
댓글은
감사합니다....라는 형식적인 글은 달지 말아주세요.
문제에 대한 난이도, 자료 등에 대한 느낌이나 개인적인 문제풀이 접근법 등을 달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설명이 자세하여서 넘 도움이 많이 됩니다.
어떠한인물이 어떠한작품을 저술했는지 책제목을아는것과 동시에 그 책의 핵심단어를 기억하면 좋을것같네요..
인물사가 외우기 어려운데 정리가 참 잘되어있네요.
설명이 정말 잘 되어있네요 막무가내로 공부했었는데ㅠㅠ 이렇게 흐름을 따라서 해야하는 거군여 자료 감사합니다.
설명이 정말 디테일하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가요
설명이 잘되어있어서 보기편리하네요 도움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와.. 상세한 설명 많이 배워갑니다~~~
설명이 자세해서 이해하기 쉽네요! 감사합니다
이건 암기만하면 되니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을것같지만 재시문을 읽고 찾아내야하는 문제니 3점짜리같군요!! 정신, 한국통사 하면 박은식!! ㅋ
신채호-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 (신조조)
박은식 -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박한한)
조선사 편수회 - 참여인원 이완용 최남선 이병도 (최이이)
백남운 : 유물사관으로 정체성론 부정
이병도 , 손진태 : 진단학회 설립 참여
대충이정도로 외우고 문제푸니 일단 풀리네요 감사합니다
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ㅠㅠ 항상 봐도봐도 헷갈리는 문제에요ㅠㅠ 다음에는 틀리지 않도록 다시한번 정리하면서 확실하게 외워야겟어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