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08환언(강석준집사님 정리)
요 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주의 진리 앞에 무릎 꿇게 하시고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려 모두가 다 주의 사명자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모든 온 세계에 나가 모든 족속으로 제자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 명령하심같이 제자를 삼을 수 있는 사명자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종이 혼자 이렇게 60년 동안 일하므로써 전설의 존재가 되지 않게 하시고 우리 모두가 보편적인 허락받은 이 권세를 가지고 정말 사명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종의 입술에 기름 부으셔서 역사하여 주옵소서. 겸손한 자들에게 복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송죽암)
당부의 말
송죽암을 들으신 것 같이 우리 신앙이 매일 진보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가면 갈수록 더 많은 유혹과 시련이 우리 영적 생활을 훼방한다.
우리가 믿으면 믿을수록 이 세상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내 신념이나, 내 지혜나 지식이나, 감정을 배설물처럼 버리지 않으면 갈 수가 없다.
우리 육신이 숨을 거두는 날, 이 세상에 남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영혼만이 살아서 낙원에 가 기다렸다가, 몸으로 부활하여,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마치 과일나무가 열매 맺고, 익어서, 잎사귀도 다 떨어지고, 열매만 가지에 달려 있는 것 같이, 우리도 육신이 떠날 때, 손해 볼 것이 없어야 한다.
육신이 떠나고, 우리 영혼은 온전케 되어, 낙원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불완전하면 안 된다.
우리 신앙생활은 시간이 갈수록 자기와 자기 영과의 싸움이다.
혼이 이기는가, 영이 이기는가.
혼은 자기의 인격이 있지만, 영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와서, 그 말씀이 영의 인격이 된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혼의 지, 정, 의를 이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계속 싸워서 승리해야 한다.
사람들이 젊을 때는 열심히 하다가, 늙어서는 어차피 죽을 테니, 적당히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마라톤하는 자가 마지막 순간까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질주하듯 우리는 질주해야 한다.
나는 어렸을 때와 젊었을 때와 장년과 노년을 골고루 체험했다.
이제 마지막 눈을 감을 순간만 기다리고 있다.
그 때까지 내가 있는 힘을 다해 내 영혼을 사랑한다.
누가 내 영혼을 도울 자가 없다. 오직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역사하고 계시다.
그가 준비해두신 낙원을 통해 영생에 들어갈 날만 남아 있다.
어떤 사람은 늙고, 죽는 허무함을 생각하면서, 매우 연역하지만, 나는 기쁨이 충만하다.
낙원에 들어갈 기대가 충만하다.
낙원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은 육체를 떠나는 것이다.
어떻게 육체를 떠날 것인가.
이 세상에서 효자를 종신한 자라고 한다.
아버지가 죽을 때, 아버지 곁에서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의 숨이 끊어지면, 세 시간 안에 온몸이 굳어진다.
늙은이가 병들어, 오그라들어 있다가 숨이 끊어져 세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다시 펴는 것이 너무 힘들다.
예전에 우리 교회 어떤 분이 돌아가셨는데, 펴느라고 너무 힘들었다.
30촉짜리 전등 밑에서, 오그라든 시체를 둘이 펴는데, 펴놓으면 오그라들고, 펴놓으면 오그라들었다.
때로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사람이 죽으면, 바로 주물러서 손발을 반듯이 펴야 한다.
그래서 손과 발을 줄로 매어서 똑바로 한다.
아들이 아버지가 죽는 것을 보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혼자 죽으면, 그냥 오그라든 상태로 있다.
나는 잘 때도, 반듯이 자는 연습을 한다.
그러나 몸이 힘들어서, 반듯이 눕기가 힘들다.
아무도 없이 나 혼자 가버리고, 세 시간이 지나서 나를 발견하면, 오르라든 것을 누가 펼 수 있겠는가.
그 시체를 보면, 그 집에 효자가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아들이 열이라도 누가 종신하는가, 누가 아버지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지켜주는가.
세상이 하도 험악해서, 부자간에 같이 사는 사람도 많지 않고, 심지어 관심도 없다.
이와 같이 내가 마지막에 정신 차리고, 원하는 것은 내 몸이 반듯이 누워서 숨이 끊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누가 옆에서 주물러 주는 자가 있으면 더 좋다.
그것만이 내 희망이고, 다른 것은 다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 육신이 힘이 있고, 근력이 있을 때만 신앙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끝까지 견디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말씀
침례를 통해, 옛사람, 종교, 죄 아래 있던 사람, 마귀의 자녀였던 신분을 장사지내고, 하나님께로 완전히 넘어간다.
그래서 침례가 그렇게 중요하다.
의식으로 받은 사람은 이런 체험을 할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 진리다.
침례는 의식이 아니고, 진리다. 하나님의 명령이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 부탁하신 것이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삼아.
예수님 당시에도 3만 가지의 언어가 있었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다.
언어는 그들의 문화요, 생활이요, 정신이다.
수많은 사상과 문화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다 하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제자삼아 침례를 주어야 한다.
침례가 그렇게 중요하다.
베뢰아 하는 사람이 침례 받았어도, 다른 곳에서 들은 소리로 내 말도 그렇게 들을까봐 매우 걱정스럽다.
침례는 완전히 나를 바꾼 것이다.
요한의 침례는 의롭다하는 자들이 죄인이라고 하는 고백을 끌어냈지만, 예수이름으로 받는 침례는 성령으로 침례 받는 것이다. 완전히 그리스도 안에 들어왔다는 고백이다.
침례에 대한 확신이 나를 주장해야 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아무도 볼 수 없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의 영을 말씀으로 표현했다.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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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영이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이가 우리에게 어떻게 자기를 나타내시는가. 말씀으로 나타나셨다.
그 말씀이 영이다. 곧 하나님이다.
여러분이 지금 말씀을 배제하고, 하나님을 부르짓는다면, 절뚝발이 신앙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인간에게 자기의 모습을 나타내셨다.
예수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시다.
그러나 우리가 그 육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다.
독생자의 영광은 은혜와 진리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말씀으로 하나님을 듣는다.
그래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신다.
우리 신앙은 듣고 배우는 것이다.
반드시 듣고, 배워야 한다.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베드로의 고백에 대해 예수께서는 사람에 의해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알게 하신 것이라 하신다.
설교는 하나님으로부터 듣는 것이다.
수원지에서 물이 흘러나온다. 직경 2미터 넘는 관을 통해서 계속 흘러나오면서, 점점 작은 관으로 이어진다.
가정에서 받는 물이나, 수원지의 물이 똑같다.
과정이 변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전기도 발전소에서 변전소로 고압선에서 일반전기선으로 가정까지 이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발전소에서 보낸 전기가 변한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영이신데, 그 영이 어떻게 우리에게 접근하시는가.
말씀으로.
영은 눈으로 볼 수 없다. 그래서 귀로 듣는 것으로 하신다.
성경은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계속 말하고 있다.
그래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대해, 예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이는 사람이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알게 하신 것이라 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시몬에게 예수께서 너는 베드로라 하셨다.
베드로는 암반,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 반석에 내 교회를 세운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교회는 페트라 위에 세우는데,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이 알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이 그대로 페트라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요 5: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 하는도다
요 5:41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요 5: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지금 설교자들이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요즘 설교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 지식을 자랑한다. 교만하다.
성경은 예수를 말한다.
설교는 예수만 증거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를 증거 하는 것을 초월하여, 도덕을 강조한다.
도덕적으로 완전한 것은 바리새인이다.
바리새인은 성결주의자라는 말이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경문을 몸에 차고 다닐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예수님은 화있을 것이라 하셨다.
그것이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
신자라면, 자동적으로 그렇게 빛 된 생활을 하는 것이지,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니다.
설교는 도덕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는 이전에도 말했지만, 복음이 아니다.
바리새인이나, 이스라엘 사람같이 이미 율법 안에 있는 사람에게만 전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복음을 영접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다.
침례 요한이 회개의 침례를 전파했지만, 천국에 못 들어갔다.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케 하는 침례다.
회개할 것이 없다고 하는 자들에게 회개해야 할 죄인임을 깨닫게 해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해야 한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는 침례 요한으로부터 침례 받은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이다.
이는 구원받은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구원받기 위해, 요한의 침례를 받아, 회개할 준비한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것을 자꾸 복음으로 생각하니까 문제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복음이라고 생각해서, 예수가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율법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율법을 온전케 하는 것이다.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마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침례요한에 의해 회개케 할 침례를 받은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왔다고 하신다.
이들은 요한의 침례를 받았어도, 여전히 율법에 매달려 있었다. 오늘날 신자들이 침례 받았어도, 여전히 율법에 매달려 있는 것과 같다.
도덕중심의 바리새인의 의, 이것이 종교인데, 이보다 더 나은 하나님의 의가 없이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한다.
율법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것이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다.
이들은 율법대로 살면 구원받는다고 오해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율법이 무엇인지 알려주시는 것이다.
율법은 살인하지 말라고 한다.
사람 안 죽였으니까, 나는 살인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회개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다.
예수께서는 형제를 미워하면 살인자라 하셨다.
율법을 완전케 하시는 것이다.
마음으로 음욕을 품어도, 간음한 자요, 미워하면 살인한 자요, 남의 것을 탐해도, 도둑질 한 자라 하신다.
요즘 내가 법정에 서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사람이 생각하고 있는 것도 다 따지고 있다.
그 당시에 생각한 것을 근본으로 하여 법리를 따진다.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지, 훔치려고 했지, 그 생각으로 따지고 들어간다.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도, 율법을 잘 모르는 자들에게 율법을 강화시키신다.
예수 앞에 오면 다 살인자요, 간음자요, 도둑이요, 흉악한 자가 되고 만다.
의가 전혀 없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사는가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의를 알게 하신다.
예수가 하나님의 의다.
예수의 공로를 의지하고, 예수의 피를 의지하라.
지금도 못 알아듣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직도, 자신은 살인하지도 않았고, 간음도 않았고, 그저 못나게 착하게 산다고 하면, 아직도 율법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율법의 근본은 끝까지 가서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율법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 할 자가 없다.
예수께서 율법을 완전케 하므로, 율법을 벗어날 자가 없게 되었다.
의인이 없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율법이다.
요한의 침례 받은 사람과 복음의 중간 사이에 있는 사람을 깨우치는 것이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종종 가르쳐야 한다.
교회 안에 종교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과 같은 도덕신자가 있기 때문이다.
도덕주의 신자가 종교인이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도덕적으로 점잖으니까, 완전하다고 오해하고 있다.
마태복음 8장부터는 드디어 복음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의를 깨닫고, 그 의를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그런데, 성경에다가 세상지식, 세상 상식, 자기감정, 자기 신념을 더해서 전하고 있다.
그러니까, 순전한 복음이 나오지 않고, 성령이 일할 수 없는 바탕을 만들고 있다.
내가 처음 신앙생활 할 때, 그 때부터 나는 갈등했다.
나는 성경에서 예수를 알고 싶었는데, 소크라테스 이야기를 하고, 세상 철학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촌놈들을 겁주고 있었다.
우리는 철학을 거부한다.
인간으로서는 철학이 가장 고상하다. 인간 최고의 지성이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대적하여, 높아진 지식을 파하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베뢰아 설교자들에게 가능한 본문해석을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본문은 이해만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자기의 영감으로 말씀을 전하라는 것이다.
성령의 영감이 부족한 사람들은 영감은 의지하지 않고, 자기 머리로 어떤 지식을 도입하고, 철학을 도입하고, 감정을 도입해서 말한다.
그러면, 그 설교는 성령에 의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목사가 지식이 많다고 칭찬하겠지만, 신령한 제자는 나올 수 없다.
우리 베뢰아 목사님들 잘 좀 이해하라.
왜 성경에다가 세상지식, 세상철학(도덕), 자기 신념(감정)을 더하는가.
자기감정, 자기 신념이 샤머니즘, 신비주의다.
그럴듯하지만 망하는 것이다.
진한 원액이 있는데, 원액에다가 물을 타고, 설탕, 식초를 섞으면 무엇이 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원액인데, 세상지식 같은 것들을 섞으면, 원액이 주는 맛이 없어진다.
고후 10:3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고후 10: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고후 10: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후 10:6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고후 10:7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고후 10:8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파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
오늘 설교단에서 세상지식이 너무 많으면, 세상지식에는 빠르지만, 영에서는 멀어진다.
또, 철학적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빨려 들어가지만, 철학의 종이 될 뿐이요, 영에서는 멀어진다.
또, 자기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이 빨려 들어가지만, 성령에서는 멀어진다.
우리는 학교에서 많은 상식과 지식을 얻었다.
우리 신자들이 이런 것을 아는 것은 복음을 위해서 배제할 부분을 깨달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그것은 신학이라는 학문이다.
학문이라는 것은 과학이라는 말이다.
그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다. 신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그대로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설교할 때, 배제해야 할 이유를 알고, 복음이 말려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정말 공부 많이 한 사람도 신앙이 있으면 성경 이야기를 더 많이 하지, 다른 것을 말하지 않는다.
나는 김성현 목사에게도, 성경 본문 해석하지 말라고 하였다.
본문을 읽으면 말하고자 하는 제목이 있다. 제목으로 설교요지가 만들어져 있다.
우리 교회에서 쓰는 설교요지 사람의 지식으로 쓰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 지식, 철학, 자기 신념을 배제하고, 경계하여, 오직 성경의 본문의 제목을 드러내고, 나타내려 하는 것이다.
나는 굉장히 고령자다.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
떠날 때까지 내가 할 일은 제자를 삼는 것이다.
우리 교회 80년대 평신도들이 베뢰아를 알고, 역사할 때, 3년 만에 6백 명이던 교회가 6천명이 되었다.
교단의 목사님들, 베뢰아 사람들,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시고, 말씀하시게 하려면, 내 말을 들으라.
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왜 가르친다고 하지 않고, 책망이라고 하셨을까.
성령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는 지식이나 철학을 때리는 것이다.
그것을 버리라고 때리는 것이다.
그리고 율법에 대해서 듣지 못한 말씀을 하신다.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요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율법은 죄와 의와 심판을 말하지만, 육체에 관한 것이지, 영에 관한 것은 하나도 없다.
성령은 믿지 않는 것이 죄요, 의인은 오직 예수뿐이요, 세상 사람들이 이미 심판받았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생명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 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성령은 예수의 것을 나타내신다.
사람의 도덕과 윤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보혈에 대한 영광을 말씀하신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이 오셔서, 알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가르치신다.
행 1: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행 1:2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행 1:3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 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행 1:4 사도와 같이 모이 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세상철학이 있고, 세상지식이 있지만,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신다.
성령이 오셔야, 예수의 증인이 된다.
우리 설교는 성령으로 하려고 해야 한다.
설교 준비한다는 것이 참 딱하다.
나는 성령으로 설교준비하지, 세상지식이나, 철학이나, 세상 윤리, 신념으로 하지 않는다.
세상 것으로 예수를 변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설교요지를 써도, 고민하지 않고, 그냥 쓴다. 한편에 4분이면 구성되고, 완성하는데 25분정도 걸린다.
내가 가르친 것을 배워서 그대로 하는 교회가 한두 개 있다. 굉장히 큰 교회다.
설교요지 구성을 이렇게 하라.
설교요지 구성
성경 본문을 정해서 읽고
본문전체 내용을 하나의 제목으로 축소시킨다.
하나님의 속성
수능 시험생들은 문장을 읽을 때, 말하려고 하는 제목에 대해서만 논술하면 된다.
내가 73년도 주일학교에서 학생들을 그렇게 가르쳤는데, 아이들 성적이 굉장히 향상되었다.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축소시켜서, 제목이 나오면, 그 제목에 대해서 쓰면 된다.
설교요지 50년간 정리한 책이 출판되어 있다. 그것을 참조하라.
설교자는 고민하면 설교자가 될 수 없다.
설교는 고민에 의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하는 것이다.
본문해석을 하려면 세상지식을 말할 수밖에 없다.
설교요지를 작성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말할 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면, 아들을 사랑으로 세상에 보내사 이런 식으로 전개한다.
또, 아들이 하신 일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시고, 성령이 이를 증거 하셨다.
성령으로 사람들의 심령 속에 말씀이 들어간다.
성령은 그 말씀을 확실히 증거 하기 위해 능력을 나타내신다.
여러분이 능력이 없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는 성탄절 때, 성탄전야, 성탄절, 주일 연달아 설교가 있다.
또, 송구영신, 신년, 주일이어서, 6번을 연달아 한다.
해야 할 설교가 많지만, 그것보다 당장 할 것만 생각하라.
미리 염려하면 좋은 설교가 나오지 않는다.
성령이 말할 것을 주신다.
성령을 거역하고, 무시하면 결국 죄를 짓는 것이다.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 12: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마 12: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마 12: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마 12: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성령 거역하고, 무시하고, 훼방하는 것은 현세도 내세도 사함 받지 못할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성탄절이라고 해서, 다음 설교를 생각하고 있으면 절대 영감이 나오지 않는다.
그날 당해서, 당일 설교만 생각하라.
미리 생각해 놓으면 말이 막혀버린다.
내일 해야 하는데, 오늘 다하면 어떻하나 한다.
그러다가 설교 죽쑨다.
내가 쓴 설교요지 21줄까지는 사전과 같다.
시무언이 세상으로는 무식하나, 성경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고, 성령을 힘입어 하고 있다.
내 설교요지 마지막 부분은 우리가 듣고, 해야 할 일이다. 제목과 일치된다.
설교요지를 봐도, 다 각각 해석은 다를 수 있다.
그 요지를 갖고 말을 시작하라.
설교요지가 말문의 시작이다.
한줄, 한줄 마다 말문의 시작이다.
그러면 설교가 왔다갔다 복잡하지 않다.
본문설교를 하면 제자가 나오지 않는다.
예수께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고 하셨다.
내가 말한 것으로 제자가 나오지, 다른 것을 읽게 하면 제자가 나오지 않는다.
나는 아들이나 손자에게만 가르쳐 주고 싶지만, 그들과 만날 시간이 없다.
나는 우리 교인들을 다 아들과 딸로 여기고, 아주 중요한 메시지의 비밀을 말하고 있다.
교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설교를 해야 감동이 된다.
모르는 설교를 하면 감동되지 않는다.
알고 있으니까, 아멘 한다.
모르는 설교하면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설교요지 21절까지는 알게 하는 것이고, 마지막은 아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거기서 아멘하고, 역사가 일어난다.
설교 고민하지 말고, 설교요지 책 하나 가지고 가서, 그 내용에서 말을 시작하라.
제일 설교 못하는 사람들이 영감이 없으니 본문 설교하는 것이다.
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을까.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승천하셨다. 성령이 예루살렘에서 임하셔서 바톤을 이어받으신다.
성령을 받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성령으로 감독자를 세우셨다.
목자 없는 양은 흩어지게 되어 있다.
우리 교회가 이간 자들에 의해서 절반 이상이 떠나갔다.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 하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불쌍하지 않은가.
다른 교회에 가서도, 성락 교회에서 왔다고 하면 이단자라고 할까봐, 숨기고 몰래 신앙 생활하는 것 생각하면 눈물이 나온다.
이간 자들이 갈라놓은 곳에 무슨 목자가 있는가.
우리는 침례 받아 성령으로 사는 것이다.
이제부터 성령으로 사는 방법을 철저히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도 성령으로 깨닫고, 배우고, 성령으로 들은 말씀을 성령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능력도 이적도 나타나야 한다.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 아버지가 이 땅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 그가 보내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알고, 그를 모신 성전 되어, 우리 안의 주인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 아버지가 이 땅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 그가 우리에게 보내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아들과 성령을 완전히 알고, 모시고 그를 모신 성전이 되어서 그가 우리 안에 주인 되도록 역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