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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연재] 임영태의 남미 여행기 (14)
임영태 / 출판기획자 겸 역사교양서 저술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사이에서
1월 11일 목요일 오전에 아르헨티나 이과수를 보고 오후에 브라질 이과수를 보았다. 경관으로만 보면 브라질 쪽이 압도적이다. 아르헨티나 이과수를 보고는 세계 최고라는 이과수의 웅장함이 잘 느껴지지 않아서 속으로 약간 실망했다. 하지만 브라질 쪽을 보고는 과연 이과수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270여개의 폭포 중 대부분의 폭포는 아르헨티나 쪽에 있지만 그 장관을 한 눈에 보는 데는 브라질 쪽이 훨씬 좋다. 더구나 브라질 쪽은 폭포 바로 아래까지 사람의 접근이 가능하게 전망대가 설계돼 있어서 사람들이 느끼는 만족감이 높다. 폭포수와 내가 하나로 합체되는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만족감을 극대화시켜 준다.
아르헨티나 쪽은 그런 접근이 쉽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객관적인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크다. 무엇보다도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의 백미인 악마의 목구멍에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브라질 쪽으로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종일 우리를 싣고 다니며 고생한 아르헨티나 택시기사에게 “빨리 악마의 목구멍을 복구해야 한다, 안 그러면 브라질에 관광객 다 빼앗긴다”고 말했다. 택시기사라고 그걸 모를 리 없다. 아르헨티나 당국도 알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안 되는 사정이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경제적인 문제가 크다고 생각된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영토가 가장 큰 나라로 라이벌 의식이 강하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두 나라는 독립 초기 두 나라 사이에 끼어있는 우루과이의 독립 문제를 두고 전쟁까지 치렀다. 우루과이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 리오데라플라타 부왕령의 일부였다. 1810년 5월 혁명을 통해 리오데라플라타 부왕령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할 때 지금의 우루과이가 되는 반다오리엔탈 지역 또한 봉기해 독립을 선언하고 리오데라플라타 연합주에 가담했다. 하지만 독립 후 리오데라플라타 연합주에 참여한 주들 내부에서 반목이 일어났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앙정부에 반발한 반다오리엔탈, 코리엔테스, 산타페, 엔트레리오스 등 동부지역이 연방동맹을 결성해 중앙정부에 맞섰다.
이렇게 되자 아직까지 브라질을 지배하고 있던 포르투갈은 브라질로 공화주의가 전파되는 것을 차단하고 브라질 남부지역의 지배권을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 1816년 반다오리엔탈 지역을 침공했다. 4년간의 전쟁 끝에 포르투갈(브라질)은 독립군 세력을 제압하고 1820년 정식으로 반다오리엔탈을 병합하고, 그 자리에 시스플라티나 주를 신설,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1822년 브라질 식민지 섭정이었던 동 페드루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브라질 제국을 세우자 시스플라티나 역시 새로 독립한 브라질 제국의 1개 주가 되었다.
브라질-아르헨티나 전쟁 때 준칼 해전도
그 전 나폴레옹 전쟁 시기인 1807년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의 침략을 받은 포르투갈 왕실은 1808년 식민지였던 브라질로 도피해 수도를 리우데자네이루로 옮겨 망명정부를 구성, 운영한다. 1815년 포르투갈 왕국은 브라질 부왕령을 통합한 포르투갈 브라질 알가브로 연합왕국을 구성, 브라질에 대한 통치를 강화했다. 그러나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됐다가 1821년 사망하자 포르투갈 국왕 주앙 6세는 큰아들 동 페드루 4세를 브라질 섭정에 임명한 뒤, 포르투갈로 귀환했다. 1822년 브라질 섭정이 동 페드루 4세는 독립을 선언하고 브라질 제국의 초대 황제 페드루 1세로 등극했다. 포르투갈로부터 분리, 독립한 브라질 제국은 리오데라플라타 연합주로부터 빼앗은 시스플라타 주까지 브라질 제국에 편입했다.
그러나 스페인 식민지를 통해 언어, 역사, 문화 등 모든 면에서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과 달랐던 시스플라타 지역 주민들은 브라질의 지배를 거부하고 독립 전쟁을 일으켰다. 시스플라타주는 브라질의 상태가 되지 않았지만 리오데라플라타 연합주(이하 아르헨티나)가 지원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아르헨티나로서는 브라질이 시스플라타를 장악할 경우, 라플라타 강 유역까지 브라질의 영향력 아래 들어갈 것을 두려워해 지원에 나선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지원을 받은 시스플라타 독립운동 지도자 후안 안토니오 라바예하 등 33인의 독립운동가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세력이 1825년 브라질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투쟁을 시작하자, 브라질 제국은 아르헨티나에 선전포고해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 초기 압도적 해군력을 바탕으로 브라질이 라플라타 강을 봉쇄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일대의 무역을 차단하자 아르헨티나가 열세에 처했으나 준칼 해전에서 승리, 전세를 만회했다. 이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모두 결정적인 승기를 잡지 못한 채 밀고 밀리는 공방전을 펼치다가 1828년 8월 영국과 프랑스의 중재 아래 양국은 시스플라타의 독립을 인정하는 조약을 체결하고 전쟁을 끝냈다. 1828년 10월 시스플라타 지역에 우루과이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이 지역을 둘러싼 3국간의 분쟁은 끝났다.
아르헨티나를 떠나며
브라질은 시스플라타(우루과이) 편입을 기정사실화하려 했고, 아르헨티나는 원래대로 리오데플라타 연합주로 되돌리려 했으나 둘 다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없게 되면서 우루과이의 독립을 인정하게 됐다. 이처럼 국경 분쟁을 벌였던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세 나라가 3국 동맹을 맺고 1864년부터 1870년까지 파라과이와 전쟁(3국동맹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은 지난 회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이처럼 남미 지역의 여러 국가들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로부터 독립하면서 영토 문제를 두고 분쟁과 전쟁을 벌이면서 각각의 국가적 정체성을 갖추어 갔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쓴 『상상의 공동체』에는 이 같은 남미지역의 국가적 정체성 확립 과정,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민족주의가 형성되고 전파되는 과정이 잘 설명돼 있다. 앤더슨은 남미의 민족주의를 ‘크리올 민족주의’로 표현하며 라틴아메리카의 독립 과정에서 등장한 민족주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크리올(Criollo)은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순수한 유럽 계통이자 아메리카 대륙(나중에는 확장된 뜻으로 유럽 이외의 어느 곳)에서 출생한 사람들”을 말하는데, 보통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태어난 유럽 혈통의 백인을 말한다. 이 크리올이 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지배, 통치하는 국가를 만들고자 라틴아메리카, 특히 남미지역의 독립운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앤더슨은 라틴아메리카의 민족주의 발흥 등을 중심으로 고찰하면서 민족주의가 근대의 산물이고 실재적인 내용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상상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배네딕트 앤더슨/ 윤형숙 역. 『상상의 공동체』, 나남출판, 2006 참조). 이 같은 설명은 라틴지역에서는 일정하게 타당한 측면이 있지만 오랜 기간 국가적 정체성과 민족적 구성을 이루어온 동아시아 지역의 경우는 적용되기 힘들다.
어쨌든 독립 초기 전쟁까지 벌였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경쟁의식이 강해서 사이가 좋지는 않다. 탱고의 나라 아르헨티나와 삼바의 나라 브라질이라는 문화적 자존심, 세계 축구의 한 축을 담당하는 남미 축구의 최고 경쟁자라는 점 등도 두 나라 사람들의 경쟁의식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아르헨티나는 여러 면에서 브라질의 경쟁상태가 못 된다. 남미대륙의 40% 가까이를 차지하는 광대한 영토를 가진 브라질의 영토는 약 850만㎢로 약 276만㎢의 아르헨티나에 비해 3배 이상이다. 인구 또한 4.7배 이상 차이(브라질 2억2천만 명, 아르헨티나 4천6백만 명)가 난다. 영토와 인구의 차이만큼 소유한 자원 또한 격차가 크다.
브라질 문화를 상징하는 삼바 축제. [사진: 한국일보]
아르헨티나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탱고 춤. [사진-임영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축구 경기는 두 나라의 자존심을 건 전쟁이다. 한일전만큼이나 뜨겁다.
경제규모도 브라질은 2024년 기준으로 세계 8위 수준인데, 아르헨티나는 25위 정도에 불과하다. 1인당 명목 GDP는 아르헨티나가 약간 앞서지만(아르헨티나 12,812달러, 브라질 11,352달러) 아르헨티나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와 구매력 저하를 생각하면 브라질의 상황이 훨씬 나은 편이다. 과거 1인당 GDP에서 브라질보다 훨씬 앞섰던 아르헨티나였지만, 1980년대 이후 40년 동안 8차례의 국가부도 위기를 경험하는 등 경제위기를 반복하면서 추격당했다. 아르헨티나는 북중미의 강자인 멕시코(1인당 GDP 15,249달러, 경제규모 12위)에도 많이 뒤진다.
‘아르헨티나 병’으로 지칭되는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언론마다, 경제 정책가들마다 각기 다른 진단을 내리고 있어서 쉽게 속단하기는 어렵다.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페론주의로 대변되는 포퓰리즘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우파들이 있는가 하면, 군사독재 정권과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때문이라는 좌파의 지적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여기서 거기에 대한 답을 내릴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다만 현상을 지적하고 수준에서 끝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정부 자본주의자’를 자처하며 극단적인 처방을 제시하고 위기에 빠진 아르헨티나 경제를 구원하겠다고 나선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경제가 개선될 전망이 안 보인다. 연간 물가상승률이 20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하비에르 정부는 긴축재정과 규제철폐, 민영화, 노동권 축소 등을 골자로 하는 급진적인 자유지상주의 개혁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하비에르 정부의 과격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야당과 노동조합, 시민들이 반발해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등 사회정치적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이른바 ‘개혁’에는 고통이 따른다고 하지만, 그 고통이 노동자, 시민 등 약자에게만 전가되고 기득권의 이해관계는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설령 일시적으로 성공하는 듯 보이더라도 언젠가는 또 다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과연 아예 자국 ‘페소화를 없애고 달러화로 대체하겠다, 자국 중앙은행을 없애겠다’는 식의 극단적인 발언까지 했던 밀레이 대통령의 극단적인 자유지상주의 처방이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구원해줄 수 있을까? 아르헨티나가 반복되는 경제위기에서 벗어나 다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아르헨티나-브라질 국경을 넘어가면서 든 생각이었다.
아르헨티나 밀레이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 모습.
밀레이 정부의 극단적인 자유주의 경제개혁에 반대하는 아르헨티나 반정부 시위.
과테말라행 비행기를 놓치다
1월 11일 목요일 오후 4시 30분을 약간 지나서 브라질 포스 두 이구아수(Foz do Iguazu)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브라질 포스 두 이과수 국립공원에서 공항까지는 20분 남짓 걸렸다. 우리는 포스 두 이과수 공항에서 오후 6시 10분 출발 예정인 비행기를 타기로 돼 있었다. 브라질 아줄항공(Azul Brazilian Airlines.)은 오후 6시 10분에 포스 두 이과수 공항을 출발해 쿠리티바(Curitiba) 아폰수 페나 국제공항(CWB)에서 밤 8시 20분 환승해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 갈레앙 국제공항(GIG)에 밤 9시 55분에 도착할 예정이다.
공항에 도착한 뒤 시간은 충분했다. 하루에 아르헨티나 폭포를 아르헨티나 쪽과 브라질 쪽에서 모두 본다는 계획은 다소 무리라고 생각해서 현지에서 사정 봐가면서 안 되면 한쪽을 포기할 생각도 했으나 차질 없이 양쪽을 다 봤으니 뿌듯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고비가 있었지만 무사히 해결했다. 마추픽추에서 리마로 돌아올 때,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카타라타스(이과수) 공항에 올 때 비행기 연착으로 마음을 졸였으나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파타고니아 투어도 사전예약을 하지 못해 안개 상태였으나 잘 해결됐다.
이제 마지막 한 고비가 남아 있다. 밤 9시 55분에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해 다음날 새벽 1시 35분에 출발하는 과테말라시티 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 일정이다. 리우데자네이루 갈레앙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과테말라시티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불과 3시간 40여분밖에 시간이 없는 것이다. 그 사이 입출국 수속을 모두 마쳐야 하는 것이다. 결항이나 연착이 발생하면 안 되는 빡빡한 일정이다. 불안감이 없지 않았으나 지금까지 잘 넘어왔으니까 이번에도 잘 될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브라질의 포스 두 이구아수 국제공항 모습. [사진-임영태]
비행기에서 본 이과수 강 주변 모습. [사진-임영태]
아줄항공 직원의 연착 확인서. [사진-임영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갈레앙 국제공항 전경.
그런데 포스 두 이구아수 국제공항에서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가 연착을 하고 말았다. 공항에 도착한 뒤 맑았던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기어코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비행기는 제시간에 도작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초조한 마음으로 하염없이 기다렸다. 6시 10분에 출발해야 할 비행기는 8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2시간이나 연착한 것이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제대로 가면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됐다. 속으로 ‘빨리 가자’고 외치며 비행기를 탔지만 우리 바람과는 달리 비행기는 쿠리티바에서 또 다시 지연됐다. 비행기는 리우데자네이루 갈레앙 국제공항에 밤 12시 30분이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결국 2시간 30분 이상 늦어진 것이다.
우리가 타기로 돼 있는 과테말라시티 행(파나마시티 1회 환승) 코파 항공(Copa Airline)은 1월 12일 1시 35분 출발 예정이었다. 입국과 출국 수속을 밟고 탑승해야 하는데 1시간 남짓밖에 안 남았다.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하기 전부터 계속해서 시간을 체크했다. 마음은 초조했으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래도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입국 수속 밟고 나가서 코파아메리카 항공사로 가서 체크인 하고 티켓을 받아서 출국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절대 시간이 모자랐다.
포스 두 이구아수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코파 항공사로 인터넷 접속을 해서 체크인 하고 티켓을 다운받으려 수차례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그나마 나는 항공티켓을 예매한 여행사 앱에 접속해 예약번호를 입력해 티켓을 다운받았다. 하지만 리우데자네이루 공항에 도착해 전자 체크를 시도해보니 체크가 되지가 않았다. 무슨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제대로 안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이었으므로 결국 직접 항공사로 찾아가 체크인하고 티켓을 받아서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갈레앙 공항에 비행기가 도착하자 기내 선반에서 캐리어를 꺼내서 바로 빠져나가려 시도했다. 하지만 승객들이 모두 일어서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제치고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결국 줄지어 차례대로 비행기에서 나오자마자 국제선 연결 통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100미터 달리기 수준으로 필사의 질주를 시작했고, 숨을 헐떡이며 국제선 연결 통로 체크 지점에 도착했다. 국제선으로 연결 입구에서 직원이 항공 티켓을 요구했다. 내가 먼저 전자 티켓을 보여주며 체크인을 시도했다. 하지만 터치, 체크가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아예 그것조차도 없다. 우리는 비행기가 연착을 해서 시작이 없기 때문에 이곳을 통해 다음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직원은 냉정하게 ‘노’만 연발하며 보내주지 않았다. 티켓이 없는 상태에서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정을 설명했으나 아예 씨알이 안 먹힌다. 말도 안 통한다. 영어가 안 되는 직원이 계속해서 포르투갈어로 뭐라고 하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시간만 허비하고 말았다. 결국 우리는 환승 통로를 포기하고 공항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촉박해서 너무 서두르다 보니까 우리가 오히려 판단을 잘못한 것일까? 바로 입국 수속 절차 밟고 나와서 항공사 창구로 달려사서 티켓을 신청해 출국 심사 받고 탑승하러 갔더라면 혹시 성공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조급한 마음에 너무 흥분해서 잘못 판단한 것일까? 그렇게 했더라고 아마 안 됐을 것이다. 그래도 그게 최선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도 해보았지만 돌이킬 수는 없었다.
우리는 입국 절차를 거쳐 공항으로 나온 뒤 코파 항공사 창구로 갔다. 이미 시간이 지났을 것으로 보였다. 자포자기 심정이었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했다. 그런데 코파 항공사 창구가 만원이다. 승객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창구의 여직원 2명과 상급자로 보이는 남자 직원 1명밖에 없다. 그런데 일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한 승객이 티켓 문제로 여직원에게 격렬하게 항의를 하고 있어서 한 곳은 마비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비행기 좌석보다 티켓을 더 팔아놓고 자리가 없다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기가 찼다. 아니 티켓을 팔아놓고 자리가 없다고? 그 승객은 계속해서 큰 소리로 항의했고 직원은 같은 소리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른 창구에서는 수하물 확인과 티켓 체크인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는 창구로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빨리 처리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창구 여직원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라며 뒤로 가라고 말한다. 옆에서 상황을 통제하고 있던 남자 직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했으나 마찬가지로 줄 서서 기다리라는 말만 한다. 우리는 1시 35분 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지금 바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줄 서라는 말만 반복한다. 사무실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말한다. 어디가면 책임자를 만날 수 있느냐고 물어도 여기는 없다고 한다. 코파 항공은 중앙아메리카 지역 항공사 중에서는 가장 큰 편에 속하지만 시스템이 엉망이다. 한국의 항공사라면 이런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 방법을 찾아주었을 것이다. 사정을 들어서 바로 처리해 들여보내고 비행기와 연락해서 출발 시간을 늦추도록 조치했을 것이다. 하지만 코파 항공사 직원들은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그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부재로 보였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갔고 우리를 태우고 가야 할 비행기는 떠나고 말았다. 결국 우리는 과테말라시티 행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갈레앙 국제공항에서 노숙하다
우리가 비행기를 놓치게 된 것은 아줄항공의 연착 때문이었다. 우리는 아줄항공사 직원으로부터 비행기 연착 사실과 그 사유서를 받았지만 그걸 써먹을 곳이 없었다. 아무도 우리가 놓친 비행기에 대해 보상해주지 않았다. 모든 책임은 우리의 몫이 되고 말았다. 애초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잡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하루 정도 여유를 두고 다음날 이동하는 항공 티켓을 예약했다면 이런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비행기를 예약할 때 보니까 다음날 낮에 떠나는 티켓이 없었다. 좀 빡빡하기는 하지만 앞 비행기가 연착 없이 도착하면 공항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갈아탈 수 있다고 보고, 그 항공편을 예약했는데 그게 앞 비행기의 연착으로 틀어지고 만 것이다. 아무리 일정을 빡빡하게 잡더라도 남미 여행에서는 반드시 하루씩 여유를 두고 항공티켓을 예약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연착으로 다음 비행기를 놓치는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우리의 대응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체크인과 전자티켓을 다운받지 못한 상태에서는 공항 창구로 가서 수속을 밟는 방법이 그래도 최선이었으나 너무 급히 서두르는 바람에 오히려 시간을 30분 이상 까먹어버렸다. 급할수록 침착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었지만 너무 급히 서두르다가 오히려 잘못된 판단을 했던 것이다. 코파항공의 시스템 부재와 직원들의 무책임한 업무처리가 결정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이었으면 어떻게든 해결해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테말라시티 행 비행기를 놓친 우리는 브라질 부에노스아이레스 갈레앙 국제공항에서 밤을 새우며 노숙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공항 1층에서 밤을 지새우며 대체 항공편을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우리가 탑승에 실패한 같은 코스의 항공편(리우데자네이루-파나마시티-과테말라시티 코파아메리카 항공)은 다음날은 없었고 3일 후에나 있었다. 허탈감과 좌절감이 밀려왔다. 분노는 점차 체념과 포기로 바뀌었다.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항공편을 검색해보지만 당장 대안을 찾기가 어려웠다.
공항에서 밤을 새우면서 중간에 자리를 한번 이동했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햄버거를 먹고 노숙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자리를 옮긴 것이다. 그런데 두어 시간이 지난 뒤 나는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우리가 햄버거를 먹었던 식당에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다보니 가방을 두고 온 사실도 잊어버린 것이다. 부랴부랴 햄버거 가게로 달려갔다. 기어코 가방을 잃어버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가봐야 했다, 식당에는 손님들이 없었다. 여성 직원이 청소를 하며 정리 중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앉았던 자리에 내 가방이 그대로 있는 게 보였다.
안도감과 반가운 마음에 나는 가방을 덥썩 잡으려 했다. 그런데 공항경비 직원이 ‘노터치’라고 외친다. 나는 조용히 내 가방이라고 말했다. 공항경비가 가방을 열어 내부를 보여달라고 말한다. 아마도 공항직원은 낯선 물건 속에 혹시 폭발물 같은 위험물이라도 들어 있지 않은가 경계를 한 모양이다. 나는 천천히 가방을 열어서 내부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해서 내 가방을 되찾았다. 낮이 아니고 인적이 드문 밤이어서 가방이 그냥 있었던 것 같다. 가방을 잃어버려도 여행에 차질이 생길 상태는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물품은 가방에 두지 않았다. 돈과 여권, 핸드폰은 모두 몸에 지니고 다녔던 것이다. 그래도 그 가방에는 여행하는 동안 꼭 필요한 여러 물품들이 들어 있었다. 어쨌든 십년감수했다.
공항에서 여러 방안을 모색하던 우리는 기존 코스를 포기하고 다른 방향을 찾기로 했다. 코파 항공을 찾아가서 놓친 비행기 티켓 가격의 일부라도 돌려달라고 요구할 것인지도 고민했다. 결국 그 일도 포기하기로 했다. 우리가 끊은 저가항공 티켓은 아예 환불이 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연착이나 결항으로 비행기를 타지 못할 경우 환불을 위한 조치가 전혀 없었다. 그래도 항공사에 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환불 요구는 해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 아줄항공사 직원으로부터 연착으로 늦어졌다는 확인서는 받아놓았지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귀책사유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항공사를 찾아가는 일은 업무가 시작되는 9시 이후에야 가능할 것이므로, 그 일 때문에 한나절이 걸릴지 하루가 걸릴지도 몰랐다. 공항에서 그걸 위해 시간을 허비하고도 아무런 소득이 없을 경우 여행 전체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럴 바에야 경제적 손실이 크지만 아예 깨끗이 포기하고 다른 방안을 찾는 게 맞겠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갈레앙 국제공항 내부 모습. [사진-임영태]
리우데자네이루 갈레앙 국제공항과 코파카바나 해변 주변 지도(구글지도)
밤새 공항에서 고민하고 논의한 끝에 일단 숙소를 잡아서 향후 일정을 다시 짜기로 했다. 치안이 좋지않은 브라질에서는 안전이 담보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딱 보아도 브라질은 아르헨티나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공항 바깥으로 나서는 순간 치안을 담보할 수 없는 상태로 보였다. 애초 예정하지 않았던 브라질 일정에서 일차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신변 안전이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숙소는 치안이 좋은 곳에 잡아야 했다. 밤새 인터넷 검색 끝에 김 원장님이 코파카바나 해변에 위치한 호텔에 숙소를 잡았다.
그런데 숙소로 이동하는 것도 간단치 않았다. 공항이지만 아무 택시나 탈 수가 없었다. 어디로 갈지 몰랐다. 그래도 우버택시를 이용하는 게 가장 안전했다. 새벽 6시경 화장실을 갔다오던 중 한 아저씨가 접근했다. 공항에서 오고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척 보면 알아보는 선수였던 모양이다. 무엇이 필요하냐고 묻는다. 우버택시를 탈 것이라고 하니까 자신이 소개해 주겠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우버택시를 찾아도 연결이 잘 되지 않는 경험을 한 바 있는 상황에서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접근하자 아무 생각도 못하고 덥썩 미끼를 물었다.
역동성이 느껴지는 브라질의 향기
1월 12일 금요일. 아침 7시 즈음 택시를 타기 위해 브라질의 거간꾼 아저씨를 따라 공항 밖으로 나섰다. 택시와 버스가 오고가는 공항 앞은 도떼기시장이나 다름없었다. 공항에서 택시를 잡는 일이 전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 다른 분위기다. 멕시코와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해야겠다는 경계심이 절로 들었다. 몇 명의 거간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공항을 오고가는 모든 택시를 잡아주며 좌지우지 하고 있었다. 택시는 끊임없이 오고갔지만 거간꾼들을 거치지 않고는 잡을 수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에게 택시를 소개해주겠다고 한 그 남자는 거간꾼 사이에서도 큰 형님처럼 행세했다. 그 남자가 공항택시도 아닌 일반 노란택시를 잡아서 우리보고 타라고 한다. 노, 노, 노, 이거 말고 우버택시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아저씨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조금 기다리니 자가용 영업택시가 도착한다. 의구심이 들어서 우버택시가 맞냐고 물었다. 택시기사가 제스추어로 그렇다고 말한다. 긴가민가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우리는 뒤 트렁크에 짐을 넣고 탔다. 젊은 택시기사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한다. 못하는 것인지 못하는 척 하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된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머릿속이 몽롱한데 경계심이 사라지지를 않는다.
우리는 목적지를 말하고 기사는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한다. 갈레앙 국제공항은 우리네 영종도 인천공항처럼 섬에 위치해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있는 구아나바라 만(灣)에 떠있는 고베르나도르 섬의 갈레항 해변에 공항이 자리잡고 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거리는 짧은 줄 알았더니 실제로는 24km나 됐다. 이동하는 동안 우리는 재차 기사에게 우버택시가 맞느냐고 물었다. 기사는 제스추어로 틀림없다고 답한다.
리우데자네이루 갈레앙 국제공항
코파카바나 해변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 본 리우데자네이루 시내 모습. [사진-임영태]
택시에서 본 리우데자네이루 시내 모습. [사진-임영태]
택시는 공항이 있는 섬에서 다리를 건너서 바닷가를 따라 남쪽으로 이어진 도로를 달린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출근시간이 시작되고 있어서 간간이 도로가 막혔다. 차량들 사이를 오토바이가 요리조리 피해 달려서 위험해 보였다. 교통정체를 피하기 위해 오토바이로 출퇴근하는 모양이다. 베트남처럼 오토바이가 많지는 않지만 우리의 출퇴근과 비교하면 오토바이족들이 훨씬 많아 보였다. 리우데자네이루 거리를 보면서 활력이 넘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생존 경쟁이 너무나 치열한 전쟁터 같다는 느낌도 막연하지만 들었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아침 공기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침인데도 매연으로 매케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바다가 보였다가 안 보였다 한다. 바닷가를 달리고 있었지만 바다보다는 항구도시의 뒷골목 거리가 주로 나타났다. 도시는 어디나 비슷한 면이 있다. 항구도시는 특유의 느낌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항구도시 인천의 뒷거리 느낌이다. 건물 벽에 그려진 벽화도 보였다가 야자수 나무가 보였다가 열대 나무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교통체증이 있었지만 1시간 조금 넘게 걸려서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택시비를 계산하는데 택시기사가 800으로 영수증을 끊어준다. 아니, 아니야, 우리 80헤알(1달러=4.9헤일, 80헤알은 약 16달러, 한화로 21,000원 가량)로 예약했어 라고 말한다. 그러자 이 기사가 알았다며 80으로 영수증을 다시 끊어준다. 이게 뭐지? 앞에 끊은 것 취소하고 다시 끊어야지? 우리도 정신이 없어서 이런 생각만 했을 뿐 그걸 확인하지 못했다. 손짓 몸짓으로 앞에 것 취소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답한다. 정말이야? 믿을 수가 없다. 아무래도 네다바이(사기) 당한 것 같은 느낌이다.
브라질은 아르헨티나와 완전히 분위기가 다르다. 아르헨티나는 대부분이 백인(이탈리아계 35%, 스페인계 28%로 다수)인데 비해 브라질은 백인이 다수(52%)지만 혼혈(42%), 흑인(6%), 인디오(1%) 등 다양한 인종구성이다.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은 아르헨티나에 비해 브라질은 혼합문화다. 어느 나라보다도 역동적이고 정열적이다. 브라질은 활기가 넘치는 곳이지만 그만큼 위험성도 뒤따른다. 브라질에서는 조심해야지, 안 그러면 코를 베일 것만 같은 기분이 절로 든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두 나라 브라질과 멕시코는 역동성이라는 점에서 확실히 닮아있다. 하지만 그만큼 치안도 좋지 않아 위험성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
리우데자네이루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로 리우데자네이루에 남게 된 우리는 세계적인 휴양지 코파나아바나 해변에 위치한 전망 좋은 호텔에서 하루를 지내게 됐다. 호텔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아마도 학회나 세미나 같은 큰 행사를 치르고 있는 모양이다. 일단 우리는 호텔에 짐을 맡겨놓고 3층에 위치한 식당으로 가서 10시까지 푸짐한 아침 식사를 즐겼다. 숙소를 예약하면서 아침 식사까지 예약을 했던 것이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호텔 바로 앞에 펼쳐진 코파카바나 해변 모래사장으로 갔다. 해수욕장에는 호텔 전용 쉼터가 마련돼 있었다. 비치의자에 누워서 아름다운 해변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했다.
그러다가 너무 졸려서 어느새 잠이 들고 말았다. 공항에서 쪽잠을 자긴 했지만 긴장이 풀리니 잠이 절로 왔던 모양이다. 잠시 졸다가 깨어나 주변을 돌아보니 해변 풍경이 평화롭다. 비치의자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 바닷가를 걷는 사람들, 바닷물에 들어가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모래사장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 관광객을 상대로 물건을 팔고 다니는 장사꾼들도 보인다. 그들은 각자 다른 아이템을 갖고 다닌다. 기념품과 먹는 것이 주종이다. 비치의상을 파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이스크림처럼 먹는 게 가장 인기가 있는 듯했다.
햇볕이 너무 강렬해서 계속 해변에 있기가 힘들었다. 물속에라도 들어가 더위를 식히며 놀든지 아니면 시원한 실내로 옮겨가든지 해야 할 것 같았다. 12시 좀 넘어서 호텔로 돌아와서 로비에서 잠시 있다가 1시경 체크인하고 23층에 위치한 방으로 올라갔다. 호텔방은 전망이 너무 좋았다. 바다가 바로 보였고, 뒤쪽 시내거리와 건물들, 그리고 산으로 이어지는 경관까지 보였다.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사진-임영태]
2014 브라질 월드컵 경기장
호텔 숙소에서 바라본 코파카파나 해변 모습. [사진-임영태]
1014년 FIFA 브라질 월드컵 대회 당시 TV에서 리우데자네이루, 상파울루, 포르토 알레그레, 살바도르, 베이라하우, 포르탈레자 등 브라질의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들이 보여주는 대서양 연안의 풍광을 보면서 ‘아, 평생 한번쯤은 저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곳에 왔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풍광은 볼 수가 없다. 그냥 순간적으로 지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곳을 갔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갔다고 할 수 있지만, 갔다고 말하기도 뭣한 그런 상황이라고나 해야 할까.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까?
어쩌면 우리 눈으로 직접 보는 것보다 뛰어난 촬영기술로 찍은 영상을 보는 게 훨씬 풍광을 더 잘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서 있는 곳에서 볼 수 있는 시야가 지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요즘 드론을 띄워서 가장 좋은 위치에서 경관을 조명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과는 비교되지 않는 장점이 있는 게 분명하다. 물론 직접 눈으로 보는 것과 영상으로 보는 게 같은 느낌일 수는 없다. 어쨌든 그 아름다운 곳 중 하나인 대서양 연안의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하루를 묵어갈 수 있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코파카바나 해변은 세계적인 휴양지로 명성이 높은 곳이다. 팝송 <코파카바나>로 유명하고 동명의 영화도 있다.
영화 <코파카바나>(1947)의 한 장면
영화 코파카바나(1947)의 한 장면
프랑스 배우 이벨 아자니 주연의 영화 (2010)의 한 장면
하지만 우리는 그 아름다운 곳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다음 일정을 짜고 비행기 티켓을 끊어야 했다. 체크인 한 다음 우리는 비행기 티켓 찾기에 돌입했다. 갑자기 항공 티켓을 구하려니 가격이 비싸고 조건이 나빴다. 적당한 시간에 맞는 표도 없었다. 뒤지고 뒤져서 가격이 비교적 합리적이고 조건이 괜찮아서 들어가면 가격이 올라 있거나 아예 표가 사라져 버렸다. 오후 내내 방에 틀어박혀 비행기 티켓 찾는데 몰두했다.
과테말라시티로 가서 마야유적지를 돌아보는 것을 찾았다. 그러나 과테말라시티 행 비행기는 가격이 너무 비싸거나 시간대가 도무지 맞지를 않았다. 고민 끝에 다음 일정이 잡혀 있는 멕시코시티에서 가까운 곳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마야유적을 돌아볼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애초의 계획은 과테말라시티로 가서 플로레스와 티칼 마야유적을 보고, 육로로 국경을 넘어가 멕시코의 팔렝케 마야유적을 본 뒤 멕시코시티로 갈 생각이었다. 이제 과테말라 티칼 유적 보는 건 포기하고 팔렝케 유적이라도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으나 도저히 답이 안 나왔다. 우리는 일단 멕시코시티로 가기로 했다. 멕시코시티에서 마야유적을 보러갔다 오는 방안을 찾든지 그게 안 되면 멕시코시티 주변을 돌아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멕시코시티 행 비행기 티켓을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직행 티켓은 비용이 너무 비싸서 도저히 선택할 수가 없었고, 어딘가를 경유해서 가야만 했다. 멕시코시티로 가는데 경유할 수 있는 큰 도시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칠레의 산티아고, 페루의 리마, 에콰도르의 키토, 콜롬비아의 보고타, 파나마의 파나마시티 등이 있었다. 그런데 경유지가 적고 환승 시간이 짧은 티켓은 가격이 너무 비쌌다.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되는 게 나와 들어가면 사라지거나 가격이 갑자기 뛰어 올랐다.
처음에는 찾다보면 적당한 게 걸리겠지 낙관적으로 생각했으나 계속 실패하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너무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가야하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어영부영하다 19일 이전에 멕시코시티로 못 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까지 들었다. 수십 차례 실패한 끝에 가까스로 라탐항공, 제트스마트항공, 아비앙카항공 등 비행기를 네 번씩 갈아타고 30시간이 걸려 콜롬비아 보고타로 가는 티켓을 예약하는데 성공했다. 이처럼 네 번씩이나 환승하는 티켓이다 보니 가격은 싼 편이었다. 이어서 보고타에서 멕시코시티로 가는 비행기 티켓도 예약할 수 있었다.
코파카바나 해변 전경. [사진-임영태]
코파카바나 해변 야경. [사진-임영태]
오후 내내 비행기 티켓 예약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가까스로 항공 티켓 예약을 끝내고 나니 벌써 창밖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오후에는 해변에는 나가지도 못했다. 저녁을 먹고 나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너무 피곤했다. 지리도 사정도 모르는 상태에서 술을 마시러 나가는 것도 힘들었다.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끝내고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창밖으로 비치는 밤 풍경만 구경했다.
임영태 필자 약력
출판기획자, 저술가. 청년시절 민주화․사회운동에 관계했으며, 한국 근현대사와 세계사, 인문․사회 관련 대중서의 기획․집필에 힘쓰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공식 보고서 발간을 총괄했으며, 지금은 평화박물관의 ‘반헌법행위자 열전편찬위원회’ 조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한국에서의 학살-한국현대사, 기억과의 투쟁』, 『새로 쓴 한국현대사-해방부터 촛불항쟁까지 35장면』(공저), 『솔직하고 발칙한 한국 현대사』(공저), 『스토리 세계사 1~10』, 『두 개의 한국 현대사』, 『산골대통령, 한국을 지배하다』, 『국민을 위한 권력은 없다』, 『대한민국사 1945~2008』, 『대한민국50년사』, 『북한50년사』, 『거꾸로 읽는 한국사』(공저), 『거꾸로 읽는 통일이야기』 등이 있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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