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조건 #취업의조건 #익숙했던것들
#울타리에길들여진사람들 #야생성을잃은사람들
#자유를누리지못하는삶
사회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가축화한다.
학교라는 울타리에 집어넣고
개개인의 인성과 개성에 관계없이 일률적이고 획일적인 사람을 키우는데 집중한다.
사회성을 가진 사람으로
전인적인 인성의 인간으로 양성한다는 말로 교육은 절대화 되고 있는 것이다.
그속에서 조금만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른 행동을 하는 순간 걸리버 여행기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마치 사회성이 부족하고
모자란 생각만 하는 루저로 몰아세우기 일쑤다.
대한민국 아이들은 유치원을 들어 가는 순간부터 학교를 졸업하는 날까지 매일 듣는 말이있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선생님 말씀 잘들어"
친구들과 잘지내고 선생님 말씀을 잘듣는 아이는 "착한아이"라는 공식을 성립시켜 십수년을 우리는 소리없이 세뇌를 당한다.
착한 아이로 성장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친구들과 싸우지 않고
선생님이 시키는 말만 잘 듣는 아이가 창의성이 넘치고 사회성이 좋은 아이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을까?
라는 의구심이다.
반복하고
연습하고
단련하는 것으로
뇌는 자신을 지배하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어린시절 배운 자전거 타기가
이십년이 지나서 타도 가능해지는 것과 같다.
장기기억 장치에 각인된 결과다.
취업 공고문을 내면서 구인 운영회사의 온라인 시스템(잡코리아,사람인.알바몬 같은)은 기업정보를 획일적으로 요구한다.
그러다보니 페이퍼의 가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지정된 양식속에 기업정보를 넣지않으면 등록이 되지 않기때문이다.
(그렇다고 페이퍼의 가치가 기존의 룰과 비교하여 높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러니 페이퍼가 원하는 방향을 알려줄 수 없으니 취업의 방식도 전형적일수 밖에없고 페이퍼가 바라는 인재를 구인하는 길도 요원하다.
지원자들도 기존의 방식에 물들어 있어 다른 방식을 얘기하면 불안해 하는 눈치다.
그러니 페이퍼 또한 기존의 틀을 깨기 어렵고 법을 넘어선 무언가를 하는 것은 더더욱 할 수 없는 일이다.
지원자님들의 생각이나 방식이 잘못된 건 아닐 것이다. 세상의 대다수 기업들이 시행하는 보편성에 따르고 있는 것뿐이니까!
근로시간과 근로조건은 근로 계약서에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 분쟁이 생길 것을 대비해서다.
근로자들에게는 노동과 시간을 제공하고
그 댓가를 받는 것이니 당연히 기재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자신의 가치를
정규직이니 계약직이니 하는 단어 몇마디로 결정 지을수 있을까?
그렇게 결정지어진다면 서글픔 같다.
기업도 지원자의 능력과 가치를 몇 번의 미팅으로 알 수 있을까?
반대로 지원자도. 몇 번의 미팅속에서 나눈 대화로 기업의 가치를 알 수 있을까?
페이퍼는 잘 갖추어진 시스템이 있는 대기업이 아니다.그러니 지원자님들이 바라는 기업상이 아닐수 있다. 그러니 더 깊히 알아보아야 한다.
자신이 오랜시간 일할 곳을 선택한다는 것은 인생을 함께할 곳을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잘 갖추어 지지 않았다는 건
잘 갖출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많은 기회가 남겨져 있다는 의미다.
특히 페이퍼같은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을 창조하여 세상에 없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기업에는 더욱 더 많은 기회가 있는 법이다.
그렇지만 갖추어지지 않는 것에서 오는 불편함과 불안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담보하고 있다.
이 사실은 페이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떤 실패를 겪을지
어떤 성공을 이루어 낼지는 알 수 없다.
우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거니까!
그런까닭에
페이퍼는 이 불확실성의 미래를 확신으로 바꿀 수 있는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규칙과 규정을 가능하면 가지지 않으려는 이유다.
자유롭게 스스로를 책임지고 절제와 통제를 합리적으로 할 사람이 필요하다.
올바르지 못하면 바른 방향으로
좋은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방식으로
구습을 깨고 혁신을 불어넣고
기존의 틀에서 또 다른 틀이 표준이 되게 만들어가는 주체성있는 사람말이다.
이런 의식을 가진 사람을 찾기란 너무도 힘든 일임을 알지만 페이퍼는 가능성을 믿는다.
아무리 근로계약서를 지원자가 바라는 방식으로 계약했다고 해도 자신이 머물곳이 아니라면 인생을 불필요한 곳에서 낭비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알리고
페이퍼의 가치를 알아가는 과정,
자신이 잘하는 일을 발견하고
페이퍼를 성장시킬 무언가를 찾는 과정,
자신의 능력과 가치로 페이퍼를 성장시킬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는 과정.
이 과정속에서
자신의 연봉을 수치화 해야한다면
자신을 타인과 대체할 수 없는 사람으로써
그 가치가 수치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것에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가치를 한 장의 종이위에 법에서 요구하는 최저임금과 휴일등의 근로조건을 몇 자 긁적이는 행위가 적절할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기업이 시스템화 시켜둔 일만하고
규정화 규격화된 것만 잘해내는 수동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어떤 조직에서 살아남은 예를 본 적이 없다.
자신을 도구나 기계로 여겨지는 순간 그 업무와 장소는 지옥과 같을 것이다.
그 공간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자신의 일이 재미없고 지루하게 될 것이다. 그 일터에서 근로계약이라는 이름으로 지속할 수 있을까?
페이퍼에서도 울타리가 당연히 있다.
고객을 맞이해야 하는 매장을 운영하는 기업이니 당연히 매장 오픈 시간과 마감 시간이 있다.
또한 그 매장을 움직여야 하는 법률,행정,경영 등의 기업 본질의 업무도 존재한다.
각자의 파트에서 자신이 정해진 중심축의 일을 해내야하고 그 일은 숙련을 통해 가치가 높아진다.
자신들의 파트가 존재한다고 해서 창의적인 업무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고
자유로운 업무 구조를 가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자신의 책임과 의무가 바탕이 탄탄하다면
스스로 자유로운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런 것을 이해 못하는 것에서 "방종"이 생긴다.
기존의 틀을 깨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여서
이 자체가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좋은 장난감을 줘도 가지고 노는 방법을 모르면 무용지물이다.
페이퍼가 찾는 인재가 만나진다면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더 밝고 빠르게 올 것이다.
그 인재도 페이퍼를 통해 삶이 바뀔수도 있을 것이다.
이 믿음이 페이퍼를 미래로 향하게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
야생성으로 무리지어 사는 늑대를 울타리속에 넣으면 말 잘듣는 개가되고
창공을 훨훨 날으는 독수리도 우리속에 넣으면 닭이 되며
거친 자연속에서 자유롭게 헤집던 멧돼지도 울타리속에 넣어 버리면 인간의 식탁에 오른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어떤 인생을 선택하던 이것 또한 자유다.
페이퍼의 구인 방식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는 분이 계셨다. 그 분의 조언을 통해 기존의 시스템을 통해 인재를 찾는 방식은 옳지 않다는 생각에 모집공고를 내렸다.
온라인 시스템에 익숙하지 못해 모집공고를 내리려니 취소를 하는 시스템 단추를 찾을 수 없게 해두었다. 그래서
전화로 모집공고 취소를 하려니 이틀째 전화를 받지않는다.
다시 되살피게 한 조언자의 감사함이다.
뭐가 옳은 세상인가?
자유를 주면 규정을 묻고
창의성을 말하면 입을 다물고
규정을 맞추면 원하는 것이 적다고 한다.
정해진 일을 주면 재미없어하고
스스로 찾아서 해보라고 하면 불안해하며
잘하는 걸 하라고 하면 머뭇거린다.
생물학적인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더 그런듯 하다. 길들여진 탓일까?
혁신,창조,창발,가치,의미.....
이런 것들이 누구에게나 익숙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익숙한 것에서는 얻을 것이 별반없고
남과 다르게 산다는 건 익숙하지 않는 일에서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특별한 존재로 살길 바란다면
남들이 하지 않는 생각을 해야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상상 이상의 행동과 인내가 필요하다.
쉽게 얻어지는 일이라면 누군들 하지 못하겠는가!
그러하기에 혼자할 수 없다.
함께 힘을 합할 때 시너지는 폭발하는 법이니까!
각 자의 다른 재능들이 결합해야
진정한 융합의 꽃을 피울테니까!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미팅을 두차례했던 어떤 지원자가 전화 왔다.
"사장님 출근 몇 시부터할까요"
무심코 말한다.
"몇 시까지 오세요"
나도 물들어간다는 비애감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