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조산 정상엔 낡은 리폰 뿐이다. 중국 사신이 오가던 길-
매조산<미타원& 블루베리농장-벽제관지-선유동입구> 제2239024008호 2024-02-04(일)
◆자리한 곳 : 경기도 고양시 ◆지나온 길 : 필리핀참전비-미타원-매조산-대양로-벽제관지-선유랑마을-오로시(이직묘)-안장고개 ◆거리및시간: 2시간42분(08:38~11:20) ※도상거리 : 약8.8km <보행수(步行數) : 12,934보> ◆함께한 이 : 계백 혼자서 ◆산행 날씨 : 구름조금 비교적 맑음 <해 뜸 07:34 해 짐 17:58 / ‘최저 0도, 최고 10도>
-필리핀 참전 기념비, 대자리 역사묘지 안내도-
아무리 바빠도 30년을 함께한 부부(夫婦)인데 설날 소홀할 수 없다. 오늘(음력 12월25일)은 어머님 첫 번째 소상(小祥)날이고, 닷새 뒤인 9일(섣달그믐)은 선친(先親)의 여섯 번째 기일이라, 우리지방의 관혼상제(冠婚喪祭)에선 빠질 수 없는 주요 제물 홍어와 산 낙지(목포의 지인에게 특별히 전화로 부탁했는데, 신선도를 유지하고자 고속버스 화물 편으로 보냄)(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으나 어머님 제사에 준비하느라 바빠 광명에 사는 아우에게 찾아오도록 지시하고, 제기와 병풍 제사상 양초 향 모사그릇을 정리하고, 영정사진(위패대신), 축문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아무리 바쁘더라도 대명절(설)을 앞둔 시점인데, 부부(夫婦)의 인연을 맺고 애증(愛憎)으로 인고(忍苦)의 30년이란 시간들을 추억하며, 가문에 최고의 선물로 슬하(膝下)에 남겨두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장중보옥(掌中寶玉)의 남매(男妹)가 올곧게 성장해 혼인날을 받았음을 하늘에 계신 엄마께 고(告)해야 하겠다는 마음에서 내자(內子)자 잠든 해인사미타원을 찾아 나선다.
-야트막한 야산인 매조산 들머리와 주요능선 풍경-
매조산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양로에 자리한 높이 150m 내외의 야산으로 인근(대자동과 관산동) 주민들이 여유로운 휴식 공간으로 한가로움을 즐기는 중요한 공간이며, 산 관자놀이 부분엔 해인사 미타원(납골당)이 자리 있고 인접한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최영장군묘‘ 서울시립 화승원이 가깝다. 생존경쟁으로 지친 도시인들이 편안하게 산책하기 좋은 오솔길에서 진정 힐링하기에 적격이다.
부부(夫婦)는 무주상보시(無住相菩施)가 아닐까? 착각에 빠져든다. 수도권 지하철 6.3호선과 시내버스로 환승 관산동(필리핀참전용사기념비)정류장에서 도로 따라 1.2km 거리에 위치한 해인사마타원 2층 봉안실을 찾아 집안대소사를 시시콜콜 들려주고 1층의 처부모님께 인사올리고, 간이주차장 뒤쪽으로 이어진 산책로에 올라서 매조산 정상을 경유해 대양로 버스정류장(청너머굴씨묘입구)에 내려서 블루베리농장 벽제관지 중국사신로 선량체험마을 안장고개(선유동입구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며, 아무런 집착 없이 베풀음을 의미하는 무주상보시란 불교교리가 생각나며, 엊그제 지나간 생일로 머릿속이 복잡한 까닭은 윤성열 정부가 화급을 다투거나 국민생활에 영향을 주는 중대사도 아닌 문자 그대로 숫자에 불과한 나이를 만으로 통일하면서 나의 경우는 계사년 섣달 보름 생인지라 두 살씩이나 젊어져 70대에서 하루아침에 60대로 내려앉았으니 좋아해야 할 일인지는 차치하더라고 오래전부터 관공서, 행정서류는 공식적으로 만 나이가 사용하고 있는데 굳이 나이 셈법을 통일하기 위한 법제화까지는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보통사람이라 그런지 깊은 뜻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만의 고유한 나이관습(어머니 태중부터)대로 설날을 기해 국민모두가 한 살씩 더 먹는 전통문화 정도는 남겨두어도 크게 손해 볼 사람은 없지 않겠나? 하는 마음에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고양동누리길 벽제관지에서 안장고개 사이에서 만난 풍경-
의좋은 7남매(七男妹)의 훈훈한 미담(美談) 맛보기 귀가하니 딸아이와 제수씨들께서 제물 준비하시느라 바쁘셨고, 몸이 불편하신 누님께서 아들의 부축을 받아 먼저 도착해 계셨고 차례로 아우들이 들어왔고 아직 현직이라 근무를 끝낸 넷째와 다섯째, 막내아우가 딸 셋을 대동하고 마지막으로 등장 30명에 이르는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경건한 분위기에서 어머님 제사 모셨는데 놀라운 사건이 발생했으므로 간단하게 옮겨본다.
-선유동 입구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둘째 아우가 차 내오라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다. 어머님 덕분에 형제들이 모두 모였으니 짚고 넘어가자며 장손이 죄졌냐? 집안의 큰 행사를 오로지 형님 혼자서 책임지고 계시는데 내력이라도 알고 싶다며 작년 11월 고향 선산에 증조부모, 조부모 상석과 동네잔치 경비와 어머님 제사 경비를 형제들에게 포괄적으로 말씀해 달라는 요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대략 비석 세우는데 700만원 남짓, 어머님 소상 제수장만(흑산도 홍어 9kg 1마리 낙지 3접:60마리)포함 150만 원쯤 지출했으나 종손으로써 당연한 지출이니 괘념치 말고, 내일을 일과를 위해 밤이 늦었으니 그만들 돌아가라고 서둘러 자리를 파했고 형제자매들이 모두귀가 하고 청소하다 탁자 밑에 흰 봉투가 여러 장 놓여있어 들여다보니 거액의 수표가 들어있다 깜짝 놀라 차례로 전화를 걸었더니 실력에 알맞도록 형제들 각자가 전하는 마음이니 나무라지 마시고 받아주시라는 아우들의 마음 씀에 눈물이 쏟아져 한잠을 펑펑 울고나 서야 수표들을 모아보니 1,500만원이다. 장형이라는 사람이 형제들을 상대해서 장사치처럼 수백만원이란 큰 이문을 남겼으니 하늘에 계신 부모님의 꾸지람은 두렵지만, 그래도 즐거운 까닭은 현대판 의좋은 7남매(七男妹)의 훈훈한 미담(美談)에 입가 미소가 잔잔하게 번져나간다. -끝-.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山을 찾아서~
2024-02-23 계백 (배상)
클릭하시면 저에 관한 조금 더 많은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goodhong.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