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기도 이천 도자기가 영국에 간다. 오는 2월 22일부터 25일까지 나흘 동안 런던 사치(Saatchi Gallery)에서 영국 공예청(Crafts Council)이 주최하는 14번째 컬렉트(Collect)를 개최한다. ‘갤러리LVS & CRAFT’(서울 신사동 소재)는 한국의 현대도예 작가를 조명하며 영국에 선보여 왔다.
영국은 ‘본차이나’의 나라다. 뜨거운 홍차를 좋아한 탓에 도자기 문화가 발달했다. 안목이 남다르지만 한국 도자기를 대하는 시선도 특별나다. 이번 전시에 출품될 곽경태의 〈수레질 항아리〉는 자기에 흙냄새가 배어 있을 듯한 형상이다. 도자기 너머의 울림이 있다. 한국 전통인 ‘옹기’ 만드는 기법과 ‘분청’의 페인팅 기법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오래 두고 가만히 쳐다보면, 자연스러운 형태미와 질료의 힘을 느끼게 한다. 좌우 대칭인 아닌 불완전한 형태의 미(美)가 속삭인다. 이 불완전함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은 독특하다. 매끈한 유약을 (발랐을 테지만) 바르지 않아도 그만이다. 인간 내부의 일그러진 ‘심성’이 덩그렇게 녹아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그 ‘원죄(原罪)’에 돌을 던질 수 없다. 예수가 간음한 여인을 둘러싼 군중에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고 하셨다. 그 여인 같은 도자기다.
곽경태의 〈수레질 항아리〉는 옹기를 재해석한 자기다. 유약의 재(ash·불에 타고 남은 가루) 함량을 조정해 가마 내부의 불이 지나가는 이동경로, 온도의 높고 낮음의 변화를 리드미컬하게 흘러내리게 해, 재의 색감 변화를 자기에 고스란히 담았다.
김복한 / 청자 상감다완 15×15×6cm, 청자토, 청자유약, 2011.
김복한의 〈청자 상감다완〉은 우선 은은한 느낌이 든다. 자기 선의 흐름이 고급스럽다. 실용적인 그릇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다완(茶碗)은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사발을 뜻한다. 김복한의 다완은 투박하게 한 손으로 쥘 수 없을 것만 같다. 항상 양손으로 떠받쳐야 할 것 같다. 사랑하는 이를 대하듯.
박경리의 《토지》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천천히 작설을 덜어서 넣고 주전자를 기울여 물을 부은 뒤 다완에 옮겨 붓고 두 손으로 다완을 싸안는다.’
다완은 ‘싸안는다’는 서술어와 잘 어울린다. 〈청자 상감다완〉 안에는 투명한 구름이 노닐고 있을 것만 같다. 실제로 기물의 두께감을 최소화시켜 40% 빛이 투과되도록 반투명하게 제작된 작품이다. 놀랍다.
〈빗살문 발〉과 〈청자 달항아리〉
김판기 / 빗살문 발 50×50×20cm, 청자토, 철유, 청자유약, 2017.
김판기의 〈빗살문 발(Comb-pattern Bowl)〉은 인상적이다. 빗살무늬가 신라토기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오래된 무의식의 전통이 도자기에 잠재돼 있다는 의미에서다. 빗살무늬는 선이 엇비슷하게, 어긋나게, 촘촘하게, 직선적으로 반복된 형태다. 마치 여름날 소낙비처럼, 가을 억새처럼 힘차게 기울어진 모습이다. 빗살무늬는 추상적인 무늬의 표현치고는 대단히 심오하다. 어떻게 그런 문양을 고안해 냈을까.
김판기는 〈빗살문 발〉에 대해 “문양의 깊이에 따라 각기 다른 농도로 스며든 유약이 자연스럽게 빛의 변화를 표현했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자연스럽게’와 ‘빛의 변화’라고 한 표현이 함축하는 바를 떠올려 본다.
표면에 사용된 철유(유약의 종류. 산화철)는 기물의 내부에 숨겨진 청자유의 깊이 있는 빛과 대조를 끌어낸다. 상반된 선명한 이미지가 윤곽선에 의해 강조된다. 전통기법과 현대적 형태의 질감이 결합된 모습이다.
서광수 / 청자 달항아리 44×44×44cm, 청자토, 1995.
서광수의 〈청자 달항아리〉에 나오는 항아리는 흡사 보름달 같다. 둥둥 떠가는 달덩이다. ‘황색 청자’는 푸른빛이 도는 청자(예를 들어 고려자기의 주류인 순청자나 상감청자)와 느낌이 전혀 다르다. 구름 위 만월(滿月)처럼 넉넉하다.
넓은 입 언저리, 어깨에서 내려와 동부(胴部)에서 최대로 팽창했다가 다시 좁아진 몸체, 그리고 입 언저리와 같은 굽다리… 균형 잡힌 완벽한 몸체다.
‘황색 청자’라 해도 청자는 청자다. 청자토를 썼기 때문이다. 황색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질까. 굽는 과정에 산소가 충분한 경우 황색 혹은 붉은빛을, 산소가 부족한 경우는 푸른빛을 띠게 된다고 한다.
58년 개띠… ‘가장 위대한 예술가 100인’ 중 27번째
프린스의 6집 앨범 ‘퍼플 레인’은 1996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1300만 장, 전 세계적으로 2000만 장 이상이 팔렸다.
2016년 4월 21일 사망한 팝 스타 프린스(Prince)는 천재 뮤지션으로 통한다. 생전 주류 음악계에 반기를 들었고 언론과도 불편한 관계였다. 그가 사망했을 때 미국 CNN 방송은 속보로 “‘키스(Kiss)’와 ‘퍼플 레인(Purple Rain)’과 같은 노래로 80년대 음악을 규정하고, 창조적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음반업계에 반항했던 프린스가 목요일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오바마 전 미(美) 대통령은 프린스의 광팬(Huge Fan)이었다. 대통령 재임 시절 비밀리에 백악관으로 불러 ‘극비쇼(A Top Secret Show)’를 가졌을 정도다. 프린스의 사망 소식을 듣자 오바마는 “그의 사운드와 재능에 많은 아티스트들이 영향 받았고 탄도의 궤적처럼, 그리고 뚜렷하게, 많은 사람을 어루만졌다”고 애도했다.
기자의 기억으로, 프린스가 TV에 등장할 때면 신비주의 연금술사처럼 드라이아이스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항상 일렉트릭 기타를 어깨에 메고 무대에 올라 면도날 같은 기타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그 모습은 천재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를 연상케 했다. 칼칼한 기타 소리만큼이나 가냘프고 날카로우며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파워풀한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사생활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수줍은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유년기와 청소년기 시절, 부모의 양육 방식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프린스는 1958년 6월 6일 미국 미네소타 주(州)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프린스 로저스 넬슨(Prince Rogers Nelson)’이다. 군말이지만, 58년 개띠 뮤지션 중에는 마돈나(8월 16일생), 스티비 원더(5월 14일생)가 있다. 그의 아버지는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인물로 낮에는 공장일을 했고, 밤에는 재즈 댄스밴드에서 연주했다. 프린스의 아버지 존 넬슨은 프린스가 〈웬 도브스 크라이(when doves cry)〉에서 묘사했듯 난폭한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아내를 때리곤 했다고 한다.
결국 그의 부모는 프린스가 7살 때 갈라서고 말았다. 이혼한 부모가 아들에게 남겨준 것이라곤 낡은 피아노 한 대였다. 프린스는 내성적인 성격이 더욱 굳어졌고 점점 피아노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이후 숙모 집에서 자랐는데 혼자서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고교 시절, 몇몇 밴드(샴페인)를 만들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안 되자 뉴욕행 기차에 오른다. 데뷔 앨범 ‘For You’를 발표할 당시 프린스 나이는 18살. 1인 밴드처럼 기타와 드럼, 베이스에다 노래까지 불러 음반 제작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백인 중심 음악에 저항했으나 ‘파괴’를 양식화하지 않아
프린스는 미국 백인 주류 음악에 저항한 천재 뮤지션이었다.
사망할 때까지 32장의 정규 스튜디오 앨범을 발매했고, 그중 6집에 실린 ‘퍼플 레인(Purple Rain)’은 세계적인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이 노래는 동명의 영화 주제곡으로, 영화는 무명 그룹사운드의 애환을 담았다. 사운드트랙 앨범 ‘퍼플 레인’(1984년 작)은 마이클 잭슨이 참여한 잭슨즈(Jacksons)의 ‘빅토리 투어’가 시작될 무렵 발매됐다. 당시 앨범 차트에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앨범 ‘본 인 더 USA(Born In The USA)’가 1위를 지키고 있었는데 예상을 깨고 1위에서 끌어내렸다. 1996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1300만 장, 전 세계적으로 2000만 장 이상이 팔렸다.
싱글 ‘웬 도브스 크라이’ 역시 스프링스턴의 ‘댄싱 인 더 다크(Dancing In The Dark)’를 제치고 싱글 차트 1위로 올랐다.
앨범 ‘퍼플 레인’은 프린스의 개성이 두드러지긴 했지만 기본 음악 방향은 그가 지향해 왔던 크로스오버 계열에 속한다. 독특한 목소리와 더불어 펑크의 체취가 팝적인 선율과 뭉쳐져 음악적 완성을 이뤄 냈다는 평가다. 프린스는 미국 팝 음악계에 가장 권위 높은 ‘그래미 어워드’를 7차례나 수상했고 2004년에는 음악전문지 《롤링스톤》이 선정한 ‘가장 위대한 예술가 100인’ 중 27번째 인물로 등재됐다.
그는 나이가 무색케 할 만큼 장르를 파괴하며 음악적 개성을 끊임없이 드러냈다. 그의 개성은 백인 중심의 음반시장에 저항하는 것처럼 비칠 만큼 미국 주류 팝시장에서 외면당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어쩌면 대중 친화적인 기호에 철저하게 저항했으나 그렇다고 전위예술가처럼 ‘파괴’를 양식화하지 않았다. 철저히 세속적이면서 세속적이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퍼플 레인’은 이미 팝팬 사이에 명반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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