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추억 속의 사진 입니다.
좌측부터 필자, 당시 후원회 회장이시던 박? 어느분이데 기억이....
세번째분이 지금은 현 서울시장이신 오세훈 변호사(상당히 젊지요)
아쉽게도 제가 가지고 있는 사진에는 얼굴이 않나온 현 우리지주금융의 윤병철 회장
당시는 하나은행장 시절이었습니다.
1994년도인가 아니면 1995년도인가?
이제 오래된 추억속의 사진을 올려 봅니다.
서울의 국립극장
당시 국립발레단에서 (단장 김혜식) 한국초연인
해적을 무대에 올렸었습니다.
그당시의 국립극장 재정이 어려운 상태였으므로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가야 하는 해적의 공연을 할것이냐 말것이냐
고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국립 발레단 단장이신 김혜식 단장님과는
상당한 친분이 있었기에
제가 제안을 했었지요.
극립발레단 후원회를 만들어 봅시다
그리고 그 후원회원들과는 공연이후 발레리나 와 발레리노 들과
함께 리셉션 파티를 열며, 공연 초청장을 VIP. 급으로
특등석을 만들어서 가족및 지인을 초청하는 방법을 모색해보았지요.
당시의 극장장은 말도 않되는 소리라하며, 극립극장에 무슨 후원회냐?
우리 극립극장이 무슨 개인 단체냐고 막무가내로 반대를 하였었습니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던 김영수 장관을 만나 그 문제를 해결해주었지요
(당시 제가 광화문 포럼 회원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지인들과 경제계의 후원을 받아서 그 어렵다는 해적을
한국 초연을 했던 기억이 ... 많은 언론과 방송에서
당시에는 획기적인 방법의 발레 공연이라고 난리들이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공연중에 아라비아의 상인으로 출연한 사진 입니다.
지금 기억으로는 그래도 많은 시간을 무대에서 있어야 했으며
약 한달 가까이 연습도하고 많은 준비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약 일주일의 공연을 매일 출연하고(저만)
당시 하나은행장이시던 윤병철 회장님은 3일인가 출연을
현 오세훈 시장도 3일인가 4일 출연을 햇었지요
오랜만에 사진 첩을 보다가 추억의 사진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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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et, Le Corsaire ♬ 발레, 해적 - 국립발레단 2005년 4월 17일 공연 해적 1막 노예시장 - 귈나라와 노예상인 파드되 코다
아름다운 소녀들을 구출하는 해적들의 시원한 무용담 프티파 버전 초연-1863년, 러시아 황실발레단, 마린스키 극장 국내 초연-1994년 9월, 국립발레단, 국립극장 대극장
영국 낭만시인 바이런의 비극시가 천재 안무가 프티파의 유쾌한 고전발레로! '해적'은 영국의 유명한 낭만시인 바이런의 서사시 '해적 The Pirate'을 토대로 하여 천재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경쾌한 고전발레로 재탄생 시킨 스펙터클 걸작이다. 이 공연은 94년 국립발레단의 국내 초연 당시 윤병철 하나은행장, 강신호 동아그룹회장, 오세훈 변호사를 포함한 사회 저명인사를 터어키 상인으로 출연시켜 장안에 '춤추는 저명인사'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화제작.
무대 배경은 터어키에 점령당한 그리스 해안가. 악덕 부호에게 노예로 팔린 아름다운 그리스 소녀들을 정의로운 해적들이 구출한다는 내용이다. 평론가와 관객이 예찬했듯이 발레 <해적>에는 볼거리가 풍부하다. 폭풍우 장면으로 시작되는 서막. 이국적인 지중해의 해변. 북적대는 아라비아 풍의 노예시장. 바다가 보이는 동굴에서의 해적들의 장쾌한 춤. 꽃들이 만발한 하렘에서 수십 명의 여성무용수들이 화사한 튀튀를 입고 펼치는 화려하고 클래시컬한 피날레가 그것이다.
특히, 주인공들이 추는 2막의 '3인무(파 드 트로와)'는 <해적>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장면. 콘라드와 메도라가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콘라드의 충복 알리가 이들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이 춤은 기교가 뛰어난 세 무용수의 고난도 묘기와 앙상블을 즐길 수 있다.
그런데 발레와 원작에는 큰 차이가 있다. 바이런의 시에서는 콘라드와 메도라가 부부이다. 콘라드는 악덕 상인의 첩인 귈나라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를 찾아간다. 메도라는 남편이 사형당한 줄 알고 자살하는데 이에 절망한 콘라드가 어디론가 길을 떠난다. 이와 달리 발레에서는 콘라드와 메도라, 알리와 귈나라가 서로 맺어지는 행복한 결말을 택하므로서 바이런의 비극시가 프티파의 유쾌한 발레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해적>은 프티파 이전에 이미 여러 번 발레로 공연되었다. 1837년 런던왕립극장에서 알베르가 봇샤의 음악으로, 1856년 파리오페라좌에서 마질리에가 아당의 음악으로, 그리고 1858년 뻬로가 아당과 뿌니의 공동 작곡에 맞추어 공연했다. 뻬로의 <해적>에서 프티파는 남자주인공인 콘라드를 맡아 열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티파의 <해적>이 오늘날까지 인기를 얻는 이유는 경쾌한 내용말고도 고전발레의 기본기에 캐릭터 댄스(인물의 독특한 개성이 강조되는 춤)와 마임, 변화무쌍한 볼거리 속에서 발레의 절정을 완벽하게 이끌어내는 안무가의 솜씨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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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et, Le Corsaire ♬ 발레, 해적 - 국립발레단 2005년 4월 17일 공연 해적 2막 동굴 - 메도라, 알리, 콘라드 3인무
아돌프 아당이 작곡하고 마리우스 프티파 작품 해적 낭만파 시인인 '조오지 고든 바이런'의 '해적'이라는 비극시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무대 배경은 터어키에 점령 당한 그리스 해안가. 악덕 부호에게 노예로 팔린 아름다운 그리스 소녀 메도라와 귈나라는 친한 친구 사이로 해적들의 우두머리 콘라드와 그의 충복 알리에게 구출되어 콘라드와 메도라, 알리와 귈나라 커플이 맺어진다는 줄거리다.
평론가와 관객이 예찬했듯이 발레 해적에는 볼거리가 풍부하다. 폭풍우 장면으로 시작되는 서막. 이국적인 지중해의 해변. 북적대는 아라비아 풍의 노예시장. 바다가 보이는 동굴에서의 해적들의 장쾌한 춤. 꽃들이 만발한 하렘에서 수십 명의 여성무용수들이 화사한 튀튀를 입고 펼치는 화려하고 클래시컬한 피날레가 등 .....
2막의 '3인무(파 드 트로와)'는 해적 가운데서 가장 사랑받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콘라드와 메도라가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콘라드의 충복 알리가 이들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세 무용수의 뛰어난 기량과 아름다운 앙상블이 공연의 하일라이트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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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말씀 해 주셔서 누군지 알아 보겠네요..분장술 뛰어 나네요..
예 분장의 효과가 대단하지요
해적은 뮤지컬이 아니고 유명한 발레공연입니다요 하하하하. 아라비아의 상인중 거부들입니다.
아고~ 왠 추억 속으로, 박수 늦었지만 드립니다. 짝짝짝!!!!!
아주 오래된 시간속으로의 초대 입니다. 고맙습니다.
와우 멋있습니다^^*
당시는 장안의 화재엿지요
윤병철 회장님!!! 제가 현재 몸담고 있는 은행의 초대 행장이셨고, 공연당시 장안의 화제였죠...잘 기억하고 있답니다... 여기 운영자님께서도 그 현장에 계셨다니 정말이지 깜딱 놀랬습니다..ㅎㅎㅎ... 암튼, 끝없이 이어지는 사람들의 관계가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아 하나은행다니시나봐요, 당시 은행장으로 있으셨지요. 당시 언론에서 많은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던 사건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러한 공연이 그냥 묻혀버리는 시절이지만 당시만 해도....
그럼요, 당시만해도 큰 sensation을 일으켰던 '사건'이었죠....더구나 은행장이 발레를? 깨어 있는 리더만이 할 수 있는 발상임에 틀림없다 믿고 있답니다...
아마도 그 공연출연 한다고 하였더니 모든 임원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은행이 많은 광고 효과를 보았었지요.. 결국 보람은행도 인수할수있었구요.
와~! 세상에나....정말 멋진분들입니다. 아름다운 감성을 가지신 분들의 문화사랑에 참으로 푸근함을 느낍니다. inter K님 참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그런일을 마음놓고 하실수 있도록 지켜보아 주시는 사모님께서도 대단하시구요. 감동적인 이야기와 동영상 감사합니다.^^*
그리 대단하지는 않구요, 우리 루시아님도 함께 국립발레단 후원회 였었습니다.
동영상은 10여년후의 공연인데 많은 변화 (연출)가 있는 공연동영상입니다.
와우~, 인터님께서 발레를 하셨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멋지십니다.^^*
발레를 하지는 않구요 동작만 하였습니다, 상인역이라서 여자노예들을 사며 노예들(발레리나)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살펴보고 흥정을 하고 그이후는 노예들을 데리고 가며, 등등
예 지금생각하면 오래된 추억속의 사건이었지요...
음.. 물론 발레는 안하시고 서계시기만 하셨겠지만 그래도 "발레공연" 이셨으니깐 분장이 아주 잘 어울리십니다^^
그래도 마임의 동작을 하는데 얼마나 어려운데요, 오랜연습을 하였답니다. 분장은 멋지지요, 상인중에서 거상의 역활이라서 많은 시간나오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노예도 고르고(발레리나들) 다시 팔고 하는 장면의 역활이다보니
그래도 지금까지 아르망 .펫세, 턴 ..등등 많이 할수있다니까요 언제한번 시범보여줄까요
좌우지간 기도 많이 하시는 분은 역시 다르십니다~^^ 아주 멋지고 해적 내용까지 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당시에는 지금같이 기도 많이 않하는 날나리신자였습니다. 성가대도 왠만하면 도망가고 않나오고 총무하면서도 땡뗑이 많이 치던 시절..... 당시의 지휘자님이 친구놈이었는데 속 많이 썩였지요.
ㅎㅎㅎ 그렇군요~~~^^속썩인 친구 쥐자님 속 풀이 되셨겠죠?ㅎㅎ
지금은 의정부교구 **본당의 총회장 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도 딸이 셋.
영역은 벌로 없구요 그냥 호기로 한것이었습니다. 한국 초연을 위하여 함께 연구하고 논의하다보니... 물론 자금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생각하다가 그러한 발상이 나왔지요... 제안을 한사람이 공연에 출연을 해야 다른 분들도 함께 출연을 시킬수 있어서 .....
처음 사진을 보며 성탄전야 축제 연극에서 동방박사역을 했나보다...라고 생각했더니 국립발레단... 국립극장... 저도 79년도엔가 한번밖에 서보지 못한 무대인데.... 기획력이나 추진력도 뛰어나셨고 주변의 유력 인사들과의 인맥도 대단하십니다
지금은 많은 리모델링을해서 음향도 좋아지고 객석도 고급으로 바뀌고, 무대시설도 최고를 자랑한다고 합니다.고인이신 김수근 건축가가 일본에서 활약하시다가 고 박정희 대통령의 부탁으로 귀국하여 자유센터와 타워호텔, 그리고 국립극장을 짧은 시일에 설계를 하였지요, 최초의 남북회담에서 이후락씨가 평양을 다녀온뒤 그 사진을 본후 우리 서울에도 제대로 된 극장과 호텔의 필요성을 느끼고 시작을 하였다 합니다. 위치가 남산 기슬에 세운이유도 시공관이 없아진후 제대로 된 극장이 없는데다가, 타워호텔과 자유센테, 극장을 한동선에 배치한 당시의 고육지책이었다고 합니다.
그이후 엄덕문씨가 설계한 세종문화회관을 새로이 지었지요, 우선 당시의 교통수단이 없는시절이라 국립극장에 갈려면 자가용없이는 엄두도 못내는 교통의 오지였습니다. 지금도 장충체육관 앞에서 셔틀버스를 타야 하는 곳이니까... 이곳에서 육영수 여사님이 서거한 극장입니다. 74년도에.....서울지하철1호선 개통식이후 8/15광복절 행사장에서 문세광이라는 사람의 총탄에 쓰러진.... 내용과 관계없는 글이네요.....
대단하십니다. 저정도면 분장을 넘어 변장에 가까우신데요? ^^ 못알아볼뻔했습니다.그래서 수염에 관한 언급이 있으셨군요.. 오페라에선 조금 간단하게 스타킹에 수염을 붙여 귀에 걸던데요. 공연마다 차이는 있겠지만요.. ^^
제대로 된 분장은 (연출하시는 분이 정확하게 지적) 수염을 붙일때도 고무본드(무독성)을 턱에 바른후 수염을 심씀니다. 그랗지 읺으면 녹화 및 실황중계에서 크로스업했을때 분장한것이 표가 나기 때문에 절대로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최고의 공연을 연출하는 연출자분들은 의상과 분장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습니다. 무대 장치에도 돈이 많이 들어가나 무대는 연기자에 의해서 바로 망각을 하는데 의상과 분장은 사진이나 촬영의 포커스를 맞추다보니 정나라할정도로 뚜렸히 보이지요.... 아마도 비오님은 사진 전문위원이다보니 아실것 입니다. 무대는 사진이나 촬영에서 원근법의 구도로 찍다보니 문제는 없지요, 그리고 관객의...
입장에서는 당일 공연에서 연주자 또는 배우를 중점적으로 보게 되어있지요, 무대 세트는 조금의 결점이 있어도 잘 모르고 넘어갑니다. 그러나 배우의 얼굴에는 항상 촛점이 맞추어 있습니다. 사진과 촬영에서는 더욱 두드러지게 마련이니 유명한 연출자는 의상과 분장에 엄청 신경을 쓰는 입장입니다. 오페라도 대극일경우 유명 연출자는 분장사를 직접 고용하여 데리고 다니는 입장입니다.
발레를 하신줄 알았습니다.ㅋㅋ^^* 정말 멋지시네요~굉장한 추억이시네요.^^*
발레를 하다보니 지난번 지기님 글에서 처럼 10년이상을 64Kg을 유지하고 있습니다.하. 진짜로 아실라.
ㅎㅎㅎㅎㅎㅎㅎㅎㅎ 깜딱이야 인터케이님이 발레리노인줄 알았네요~~ 제목만 보구~~~ 멋진일을 해내셨군요~~
재미있게 읽으셨군요..... 사실은 우리나라의 유명 발레리노들은 많이 알고 있습니다. 얼마전 까지도한잔씩하던 발레리노도 있지요 얼마전 국립발레단장한 김긍수 .....
소중한 역사자료입니다. 우리 카페 아니면 볼 수 없는......이러한 나눔에 감사합니다.
조금은 쑥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