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용 시인>>
<<한경용 시인의 양력>>
* 1956년 제주도 출생. 제주도 김녕리와 부산 영도에서 성장.
* 인하대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국제관광대학원 졸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정 수료.
* 2009년 시집 『잠시 앉은 오후』로 작품 활동 시작.
* 2010년 《시와 에세이》 신인상 수상.
* 시집 : 『잠시 앉은 오후』, 『빈센트를 위한 만찬』, 『넘다, 여성시인 백년 100 인보』, 『고등어가 있는 풍경』.
* 2020 포에트리 슬램 문학상을 수상.
<<한경용 시인의 시>>
아침과 이별을 하다/한경용
언제나 승자인 그가
빛무리의 유리벽을 나갈 때
나는 그의 산 그림자에 묻힌 음지식물이었다.
그가 강의실에서 바오밥나무를 말하고 있을 때
나는 벤치에서 시간의 나무를 자르며
나이팅게일의 울음을 귀로 마셨다.
한 번은 그가 투우 조련사처럼 경기장을 제압한 날,
나의 오토바이는 미루나무에게 위로 받으며
부스러기 잠을 잤다.
나에게는 오지 않는 간절한 환희가
냄새 없는 햇살로 그 곁에서만 맴도는 것인가.
그의 지식이 소금 창고가 되어 환호를 받을수록
눈 속에 무거운 바다를 넣고 다닌 나,
그가 장미원에서 들국화를 그리워할 때
굴곡이 심한 나의 못물은
차디찬 구름꽃으로 내 얼굴을 그려 주었다.
그믐이 저만큼인데 연극무대를 내려오는 내게
행방불명 된 내 속의 누군가
알람으로 알려준
인형에게도 생일이 있다는
애완견이 떠도는 길에서
나는 천사의 책을 태우고
달을 싣고 가는 마차에서
노을을 탄 커피를 마셨다.
나는 아침마다 이별한다.
버려졌거나 찢어진 계급장과
쓰러진 침대,
검은 예복의 지난날들을
파도는 언제나 골짜기로 밀려갔었다.
오후의 유리창 속 거실 저편
아다지오가 흐르는 그의 종신형 의자,
내 안의 갈바람이 비바체로 부는
계곡의 항명
달빛 조각/한경용
노인도매상가라는 병원에 계신
어머니의 종합고독세트를 디스플레이 하면
참외를 깎아 먹던 어릴 때의 냄새가 있습니다.
건반 위에서 키운 향긋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제주도의 4·3 구덩이에 숨었다가
눈꽃 속의 총알을 피해 살아나신
달빛 조각이 있습니다.
그 멜로디의 굴레에서 즉흥 모자를 쓰고
국제시장에서 비로도 장사를 하며 여덟 식구를 먹여 살리셨던 당신의 스무 살,
맹렬한 시장터에 연꽃 향기를 세일 하신 부처님이
타월로 지친 마음을 닦아 드리고 있습니다.
강렬한 묘사와 터치를 하며
제주도의 산과 바다를 누볐던
바람은 당신의 악보
환상의 올레를 연주하는
페인트가 벗겨진 단층집 나일론 빨랫줄 위로
팔짱을 낀 햇빛이 어슬렁거리면
어머니의 뒷겨울에서 나오는 안개 바람으로 말려 올린 아이들
병실에 놓인 팬지가 설레던
하늘에 속살이 묻힐 시간,
눈먼 정원에 버무려질 봄을 입히는 밤
바지선을 예인하는 아버지를 따라 가시고 계십니다.
쉰/한경용
지나가는 바람과 함께 캄캄한 극장으로 들어갔다.
“생일 축하합니다.”
삼십 년 다닌 회사의 액정 문자 관리인이 조기 퇴직을 알려 왔다.
곡예 비행하듯 살아온 날들이
만 볼트의 빗방울로 쏟아지자
나는 감기에 걸려 블라인드를 내렸다.
지난여름이 아픈 친구는 다시 몸조리를 하여 앞서 가고
이번 가을이 아픈 한 친구는 아예 돌아오지 않았다.
나의 멀미는 쌀가마니를 운반하다
진흙 위에 와르르 쏟아 버렸다.
흙덩이, 돌덩이까지 섞인 쌀을 주섬주섬 담다가
도미노 게임같이 기쁜 일이 모두가 사라져 버렸다.
퇴직하던 날부터
목을 죈 넥타이와 케시미어의 머플러가 소동을 일으키며
쉰을 스캔으로 떠서 들고 다녔다.
자재 적재장의 가시 철망인 내가
쌩쌩하게 잘도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이 하늘처럼 보였다.
삼백 원짜리 즉석 위안을 마시려다
버튼을 잘못 눌러 얼음을 먹었다.
검은 다이어리에서 깨어나
장거리 역전 슛을 날리는 독감 걸린 시
보헤미안의 들판을 달리는 바람과
내 안에서 코러스를 하는
잠시
쉰
달 지기/한경용
달은 밤에 비치는 것이 아니라 박혀 있는 것이다
누구도 알 수 없이 내면에서 올라온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다
자정 무렵 퇴근길에서 보면 구만리 하늘에서 보내는 눈빛인지도
내가 한세상 돌아간 후에도 당신은 지켜보고 있으리라
나의 등이 쓸쓸하다 생각하여
당신은 마음을 달구어 존재를 내밀고 있는 것인가
어느 날 문득 가방이 무거울 때
어깨를 잡아주는 지하철의 손잡이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목구멍 모양이 뻗은 손마다 잡아주다 가방을 내려놓자
하루살이들이 내 등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가방 속에 달라붙는 것을 보았다
가로등도 밤에는 등골이 아프겠지
등(燈)은 아파트로 가는 길목마다
멀리서 자기를 보며 하루의 생을 끌고 가는 달 지기가 되는 것인가
병든 측백나무가 밤에 금빛같이 보일 때
얕은 땅에 박고 사는 영혼이 흐르는 것이라 한다
빈센트를 위한 만찬/한경용
지네를 자른다.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린다.
지하실의 복도는 마디가 있다.
후미진 달이 갇힌 창 문이 내 안으로 길쭉하게,
깨진 유리창 속의 기억이 소름 끼친다.
지네를 자르듯 잘라 버려야지
긴 손가락으로 질끈질끈 자르듯 묶으니
살아 있는 피가 뚝뚝 떨어지며 목도리에 묻힌다.
죽어가지 않을 것 같다.
뒤돌아 본 내 지하실 복도
지네는 마디로 산다.
나는 죽지 않는 마디가 무섭고 열 개의 손가락이 무섭고
그보다 더 어울려 그려져 잊힌 목도리가 무섭다.
나의 닫힌 유리창을 열어보곤 언제나 목을 조른다.
목이 긴 해바라기를 바라보다 쏟아진 핏자국의 양귀비
아이리스에 젖어,
데이지 꽃잎으로 몰아쉬던
언덕마다 노을이 채색된다.
수도원의 첨탑 위로 달조각이 걸리면
까마귀 나는 밀밭풍은 또다시 이글거리는가.
젖은 불빛 아래 카페에서
압셍트*로 칵테일한 눈동자의 자화상을 그린다.
내 노오란 집이 떠가는
강물은 마디가 없다.
*고흐가 그린 에메랄드 빛깔의 술, 가난한 예술가들이 즐겨 마셨다 한다.
라마 / 한경용
마추픽추가 잠들 무렵
라마는 안데스를 가르던 바람을 싣고 걸어온다.
우름밤바 강이 허기진 옥수수밭을 휘감을 때까지
독수리의 전갈을 들으려
신전에 묻힌 혼들을 위해 귀를 씻는다.
예언이 끝나는 곳에 푸른 하늘을 믿는
검은 눈동자가 머언 산을 바라본다.
모래에 묻힌 메아리를 기다리며
잊히지 않기를 다시 기원해 보지만
정복을 무너뜨리지 못한 요새
발목에 묻힌 풀벌레들
께나와 산뽀니아를 들려줄 성곽은 어디에도 없다.
이제
몰락을 삼킨 태양신의 후예가
매트로 전철역 광장에 와 있는가
날아간 철새의 곡조가 지하도를 따라 떠돈다.
잉카의 정령들이 먼지로 씻은 밤
오지에서 홀로 취해야 하는 적막을 알기에
산정에서 내려온 새들이 아침을 알려도
라마는 구비전설로 떠돌던 광야를
지우지 못한다.
질투는 푸른 색 / 한경용
안녕 빈센트, 젊은 목선이 타히티로 왔네
자네와 다투고 헤어진 게 미안하던 참에
도록을 위한 서문을 부탁한다는 편지를 받고 반가웠네
파리의 무게를 놓아준 목선은 에메랄드 위를 떠돌다가
총독부 관저 첨탑 아래 바다로 흩어졌네
일몰이 외침을 지니고 흔들리기 시작했네
나는 어둠을 삼킨 심장에서
바람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네
흔들리는 그림들은
어쩌다 벽 위에 선 내가 꿈꾸던 표정들이라네
보라보라 섬을 휘도는 햇살은
안개를 걷어 헤치고 온 내게 무척 낭만적이었네
지금도 자네는 자화상을 그리고 있을 테지
검은 배경에 야윈 볼과 고집스러운 매부리코
팔레트와 붓을 들고 이젤 앞에서
두려움으로 응시하던 자네의 모습을
난 뚫어지게 바라보곤 했었지
나는 섬 한 바퀴를 돌고 야자수 나무 아래에서
낮에는 여인들을 그리고 있다네
사람들이 무어라고 수군거리는지 알 수가 없네
노을이 질 때까지 수렵은 일상이며
파도가 몰아치는 밤도 있었다네
녹청색 유혹을 하는 기슭까지 달려가 비를 주룩주룩 마시며
떨어진 열대과일도 먹으며
파도타기 하는 나를 상상해 보게
파리는 지금 안개가 끼거나 눈발이 꽁꽁 언 겨울이겠지
살롱 '푸른 방'에 드나들던 세잔과 마네, 모네의 그림들은
잘 팔리고 있을 테지
이따금 몽마르트르가 그립지만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을 것이야
녹색 구렁이가 여기서는 넘실거려
그것이 나르바나이지 않겠나
난 진정 무능하기를 원했네
평론가와 화상들로부터 팔리지 않는 추궁에서
벗어나고 싶었지
파리의 삶은 가장의 무책임, 아내의 이혼 요구,
도덕적 양심
어느 하나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네
목가적인 삶과 캄캄한 궁륭 사이에서
나의 잠은 정글 속에 있었고
회복기, 예술가의 눈에 비친 황량한 허무주의
그것이 나의 유미주의였다네.
나의 이브와 당신의 이브를 비교해 보게
날 것의 언어가 타협과 오해로 오렌지색에
주눅이 들지 않고
빨간 개가 옆에서 잠이 들 때
원초적인 파랑 그림자가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다네
어떤 식물학자도 몰랐던 그 세계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가?
오직 나만이 그릴 수 있었던 낙원이 아닌가 싶어
그럼 다시 파리의 공기를 마시러 갈 때까지
기다리게
폴 고갱으로부터
그리스의 연인 / 한경용
그리스여 소피아여
하얀 면사포
벗지도 않고서
입을 맞추네
누구나
신이 되어 머무르는 곳
산토리 섬
하얀집 살고파서라
파르테논 신전 위에
푸른 하늘을
소녀들이
원주(圓柱)되어 이고 있지
태양이 있는 곳에
신화가 있나
아크로폴리스 올리브나무야
아테네를 떠나간
나의 님프여
제우스 신전의 폐허를 봐라
찬란한 당신이 서사시 되니
에게 해의 파도가
울음을 참네
아폴로스 섬 지키는
사자상 보며
빛바랜 너의 슬픔
노을이 지네
등나무 의자에서
그리스 와인을
앗티카 평원에
옛물이 샘솟네
나비의 뼈 / 한경용
나는 한때 북촌이 만든 경계석인
감고당 길을 날던 나비
오동나무 위에서
폭풍우 가르던 날도 있었지
여름이면
난향(蘭香)에 취해 나래를 접거나
십장생 연꽃자수 궤목 안에서
숨 막힌 적도
결마다 방향이 다른 연잎
수놓은 물은 화려했어라
고가(古家)의 사랑방에서
내려놓지 못한 가야금 산조에
사대부는 언어의 샘이 타들었나
퇴청 마당에 핀 나리꽃은
바람이 탈색한 무늬
육신이 재가 되어 부는 날
한 줌의 기록은 꽃대의 흔적으로 무너진다
딸기와 블루베리가 얼붙은 글라스
용달에 가득 펼친 가회동 삼거리
길에서 만난 양반탈과 말뚝이탈이
북촌의 정적을 깨운다
연어/한경용
“아버지, 저 돌아왔어요.”
이 소식은 사할린 강바닥에서도 들려왔다.
따스한 해류에서 느끼는 정감,
나는 물살을 거스르는 파란 힘줄과
물결에 뜯길 지느러미를 준비한다.
해원의 무늬살이 애향을 가리키며
겨울을 생산하는 바람 속에 오호츠크해가 있다.
조류란 먼 바다에 계신 당신이 끄는 물의 힘을 찾는 것,
태어난 강바닥 위, 흙모래 냄새도 코끝을 당겼으리라.
움직이며 물밑을 더듬는 찰나,
거품이 방울지는 산호더미
용왕 전에서 굿을 하고 남대천으로 돌아오나.
구름의 농도를 재는 무속으로
해가 솟는 물목마다 군무다.
그물이 쳐진 여울목에는 늘 길이 부서지지만
연어에게는 앞으로 가는 유영법만이 있을 뿐,
저 멀리 고향의 등대가 보이고
상처로 달군 몸의 피도 뜨겁다.
고등어가 있는 풍경/한경용
어부들은 그물 속에
찰랑거리는 투명을 길어 올린다
포구의 바닥에는 눈알들이 부러져 있다
물로 그린 형상이 시간 속에 무엇을 남겨놓았나
심해에 무덤을 남겨놓을 수 없는 운명
종족의 기억으로 핏자국을 씻을 때
아득한 개펄 너머 물컹물컹 울음이 번진다
허리 질끈 묶은 아낙의 도마 위 칼질
대가리 갑각류 비릿한 내장을 싹둑 훔쳐낸다
좌판대 아래 플라스틱 통에서
미추(美醜)의 한 생이 절여진다
양은 냄비 보글보글 상념 끓는 소리
빈한한 몸은 겨울 한 병 마시는가
낡은 연안에서
잡혀 올린 물떼 주변의 깃대와 밀대
한 여름철 바다를 향했던 초로(初老)의 장화
뿌연히 비 내리는 어시장에 호객소리 멈췄는데
파드닥!
바닥에서 마지막 눈을 부릅뜨는 자의 항거
어등(魚燈)은 타오른다.
시집 『고등어가 있는 풍경』 2021. 서정시학
일월日月/한경용
냉기를 먹는 다람쥐 한 마리
겁에 질린 눈으로 바스락
시방, 햇살이 먼저 야산을 하얗게 먹고 있다
지금부터 궁핍을 산오름에 지피는 달
어디선가 푸후후후!
담홍색 과실이 내내 거주하다 떠난 곳
과즙이 아직 공중에 머물러 있다
녹청색 당신이 숲을 비운 사이
바람에 익숙한 나의 흔적이 널려있다
모두가 쓸쓸한 갈대는
가을 강이 온기를 말아 올리자
쓰다 남은 절기 속에 구애가 절절하다
허밍을 부르던 빈터 위
달이 먼저 간밤에 기울어져 갔다
너도밤나무에 달린 철딱서니
등 돌린 계절과 화해하는 동안
당신을 끌고 앉은 야산의 궁리
반 모금의 볕으로 언덕배기를 덥혔는가
얼레, 다람쥐 한 마리
갇힌 덫 속에서
이제 또 쳇바퀴를 돌리고 있다
죽은 시인의 노래/ 한경용
-황병승 시인을 위하여
잠은 무거울수록 역한 냄새가 나는 법
아까부터 자꾸 냉장고를 열고 싶었다
비틀어진 밀빵과 반 쯤 남은 우유를 마셔야 목이 풀렸다
터널을 빠져나온 저녁에 들려오는 소리는
먼 이방의 문을 두드리다 가는 종소리를 닮았다.
책상 앞에서 하얗게 말라붙은 눈물자국을 발견했다
눈물이 모래처럼 모여지기 위해선
많은 바람의 수련이 필요하다
오랜 갈증은 이렇게 잔잔히 부서지는 거다
바위에 새겨진 기록이 얼마나 참아야 할 부서짐이 였던가
알갱이로 다져진 기록, 다갈색 먼지가 되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바닥에선
어제로 흐르는 내일이 되는 것이다
잉태를 한 나무들은 날이 저물 때 까지
신기루를 져 나른다
그늘을 말리는 날에는 당신은 곤줄박이의 무늬를 닮았다
숲의 거처를 바라보는 강물이 입김을 쏟을 때
바람은 무한대의 음악으로 변화되었다
티 테이블에서
딱 한 개의 설탕 봉지를 남겨 놓듯,
당신의 뒷모습은 언제나 씁쓸함을 찾는다
어디서 날아 온
청둥오리가 천변의 개울가에서 알을 낳는다
일월日月 위에 입혀진 무늬를 보고 자기 그림자를 찾는 것이랴
아침 햇살이 있다간 순간
한 모금의 물을 마시기 위해선
더 많은 순결을 지녀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서퍼/한경용
장생포 앞바다나 김녕리로 나가 보면
흔들리는 것 또한 고래들뿐이 아니란 걸 안다
고래의 생존법에는 곡선으로 미끄러이
율동선이 있다고 한다
절벽 아래 파도를 연모하는 것 또한 새들뿐 아니란 걸 안다
그간, 얼음 등대 밖에 있었어
저 봄이 나를 미치게 하였지
는개가 낀 날
오랫동안 목까지 밀려온 밀물
멈춰버린 독방수감이 된 시계
궤짝 속에 가둬 놓고
불량 죄수의 직사각형 침실로
놀러 온 햇살을 보곤
철조망 아래 달도 별도 탈출을 꿈꾸었지
물이 자물쇠로 채워져 있을 때
좋은 파도가 오면 그것처럼 참기 힘든 일이 없어
스리랑카나 발리
뉴질랜드의 와이마마쿠 스왓에서
갑자기 출몰한 돌고래 떼를 만난 적도 있어
우리는 그들과 함께 춤을 추었지
라인업에 나가서 수평을 보면,
먼 바다로 부터 들려오는 당신의 함성
바다가 깨지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나
운이 좋다면 말이야
태풍의 영향을 받은 멋진 물결이 올 수가 있어
이번 주 차트 상엔 금요일 정오
파도 터널 지나면 다시 한 번 폭풍 속으로
수염고래여, 프런트 사이드 ‘360- 4’* 를 보여 줄까
이곳은 검문소, 높은 담 검은 망루.
푸른 고독이 누룩이 될 때까지
*공중으로 뛰어 횡으로 360도 회전하는 모습
오랑캐꽃/한경용
곡절이 많아도 살 수가 있어
못나 보이거나 흔들릴 때마다 챨스
이젠 당신을 패러디할 거야
날마다 당신의 액정 화면에 달라붙는 달팽이
소망이 있다면 멋진 사랑 시 몇 편을 불끈불끈 낳고 싶은 것
책에서 태어난 자는
한낮까지 내쳐 자는 법이 커피를 젓는 것보다 어려워
게으름의 미학으로 행간마다 어슬렁
이따금 교회 옆 술집에 가서 낮술을 마시지
부패로 발효된 설교보다
쓴 호프 한 잔이 희망을 끼니로 떼 울 수 있어
무료한 시집 읽고 나면
쓰레기통 속으로 머리를 처박아 보아
어쩌구 저쩌구 빵을 먹는 아비의 냄새
아비의 죽음으로 강하게 정글을 헤쳐 나왔으니
‘달빛 소나타’라 할 수 있을까
할부 대출은 꼬리를 치며 한 생을 끌고 가고
가로수는 가로등을 증오하며 추월을 하고
타자의 면허증으로 달리다 보니
거울을 보며 개가 짖듯 줄창 싸우게 되지
시 공간을 오르내리락(樂) 이번 생
don't try, 애쓰지 마라*
지옥행 열차의 창밖에도 오랑캐꽃은 피어
후생은 차선을 변경해야 묘비명이 보일 거야.
* 미국의 아웃사이더 시인 찰스 부코스키 ( 1920-1994)의 묘비명
귀선(歸船)/한경용
나의 할아버지는 어부셨다.
작은 배 한 척이면
노을이 물결 위에 잠들 때까지
어망 속으로 태양을 걷어 올리셨다.
파도를 저어가며
시름을 건져 올린 팔뚝의 힘줄에는
살아있는 고기들이 노래하곤 하였다.
바다를 메고 오실 만선의 가슴을 위하여
달음 쳐 나간 폭풍우 치던 갯가,
남은 가족 모두가 울음을 토하고
할머니는 슬레브 지붕에 올라가
와이셔츠를 흔들고 계셨다.
남쪽으로 흐르는 신화
선홍빛 염주 터뜨린 연어들
빈 그물을 빠져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