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은 외롭다. 자유인으로 정착하기까지 불이익을 당하고 죽음에 직면하기도 한다. 적막강산으로 의논 상대가 전혀 없다. 잘 지내고 있을 때, 어느날 갑자기 간첩조작사건에 연루되어 누명을 쓰고 국정원에 잡혀 조사를 받았다. 아무 연고가 없는 이 외톨이는 심문과정에서 너무나 힘들어 좌절했고 이러다가 죽는다는 생각에 전율 했다고 고백한다. 심문을 받는 도중에 이렇게 힘없이 죽어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고 말한다.
"이 남쪽의 땅에서 유일하게 자기를 아는 사람은 세례준 신부를 기억할 뿐이었어요. 신부님은 하루 아침에 내가 행방불명 된 것을 알았고 직감으로 국정원에서 심문을 받고있다는 생각에 나를 찾기 시작했고 백방으로 노력하여 나를 찾아냈고 면회할 수 있었지요."
그 형제는 세상이 온통 캄캄했을 때, 자기를 찾아 온 신부의 만남이 얼마나 기뻤을까? 그는 줄곧 이어지는 심문을 견디어내기에는 인간적으로 한계점에 와 있을 때 신부의 면회는 한줄기의 빛이었을 것이다. 그는 희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신부님은 저에게 구세주였습니다. 신부님은 기도의 끈을 놓지 말고 끊임없이 하느님께 의탁 하자고 저를 격려했어요." 그 때부터 그는 더 열심히 하느님께 매어달리며 끊임없이 기도했다고 했다. 형제의 이야기를 들으며 당시의 상황을 잘 헤아리게 해주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을 지냈다고 했다. 신부의 변론으로 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드디어 그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는 악몽에서 벗어 났고 작년에 혼인도 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고 했다. 얼마나 큰 역경을 살았는가? 오랜만에 찾아 온 그의 순경까지의 이야기를 교우들이 숨죽이고 듣다가 안도의 숨을 내 쉬며 그를 향해 힘찬 박수를 쳐주었다. 그 형제는 영화 '자백'의 주인공이기도 하고 현재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한다고 말해주었다.
이 세상에 죽음의 사각지대에 있는 적막강산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느님을 향해 홀로 외롭게 지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게 된다. 형제는 교우들 앞에서 자기가 직면했던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구원을 가져다 주신 신부님이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라고 힘주어 고백하고 있었다. 그 경험담을 듣고 있으려니 오늘 복음에서 한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 사이에 "끈질긴 과부의 기도가 생각났고 불의한 재판관의 마음을 돌려 바른 판결을 내려준 구원의 정황"(루카18,1-8)을 다시 듣는 것 같다. 우리에게 힘이들 때 끈질긴 믿음을 지닌 기도가 얼마나 구원에 큰 힘이 되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그 형제의 경험담에서 나는 하느님을 향한 간절한 믿음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배웠다. 연고가 없는 적막강산의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 힘겹게 살아간다는 것도 새삼 알게했다. 나는 그들을 떠올리며 기도를 보탠다. 또한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도 백방으로 그들을 찾아내어 쨍하고 해뜰 날을 마련해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