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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民族" 개념으로 韓의 이름은 고래로 우리나라가 "하나"민족 韓으로 그 자체 하나, 光明天地라는 의미입니다.
東 - 日木 大日[韓]으로 천제지표다. 全日이며 全一로 木亘이 하늘나라 하늘의 광명 旬이다.
朝 - 十日十日은 旬旦으로 十日[열흘] 日十[早]로 東이다 十日人=旬人으로 桓人[桓仁]이다.
十
日
十
月
大明天地다, 바로 천자지표가 大明=朝다 魚羊은 天地의 表다.
아침해빛날 간(倝) - 대일인으로 十日十人이다, 이는 하나사람으로 大다.
大日을 十日十으로 十十日로 [하나]로 바로 대광명 광명, 日明인 하나다, 하나의 음으로 이는 韓으로 일체 十日十 하나 韋로 천지다, 하나천지 韓은 바로 "광명천지"다.
환인천제=大日天帝로 하나천제로 桓帝로 바로 韓이다 韓神은 大日如來다.
우리는 천자지국, 천자의 누리, 천지라는 朝鮮이 기원전 2311년의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은 고사하고 아사달, 취음어로 쪽발음에서 온 것이라고 놀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정신병자들의 庚寅년 기원전 2311년 한자의 발명이라는 은나라/상나라 건국이 기원전 1600년경인데 우리는 서지학적으로 경인년 기원전 2311년 始稱朝鮮을 보고도, 무슨 雅言이고 취음어로 음을 취해서 중국의 위대한 한문을 빌어서 썼다고 합니다, 황당무계 그 자체로, 너무 당하니 만만하게 보고 계속 닭대가리 중심의 기독교인이 서구지성인에 지식인이라고 나라건국의 기념일 조차도, 인정도 안하면서 "나라를 사랑하네? 민족을 사랑하는 정치인"들이라고 지가 "대통령"이 되면? 이미 다 된 것처럼 행동하는 것들을 보면서 무당정치?에서 신정, 기독교정치를 하려는지 더불어유태당 [與猶堂]만세를 외치고 별 지랄을 다 떨고 있습니다.
서울대 병신 이 영훈, 전주 이가 왕족이라고 한국인은 누구나 "왕정복고"를 한번쯤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이 무슨 개소리냐고? 정말 왕정복고, 전주이가 개새끼가 다시 왕이 되어 개성 왕씨 몰살하듯이 그 백정으로 들어가라는 개새끼 여진족 말갈 개백정의 자손이 놀고 있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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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경제학 박사·교과서포럼 공동대표·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 |
삼한일통(三韓一統)
역사가들은 한국사에서 민족이 형성된 시기와 관련하여 7세기 말의 삼국 통일을 중대 계기로 평가하고 있다. 삼국의 지배층은 서로를 동류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통일전쟁의 과정에서 적대감을 강화했다. 통일 이후 신라의 지배층은 삼한일통(三韓一統)이라는 역사의식을 보유했다.
신라는 원 삼국에 각각 3개의 주(州), 곧 9주를 설치했다. 신라의 중앙군 9서당(誓幢)은 원 신라인의 3개 서당, 원 백제인의 3개 서당, 원 고구려인의 3개 서당으로 구성되었다. 신라는 해 뜨는 곳, 동해 가의 뭇 신선이 머무는 나라로 찬양되었다.
이 같은 정치적 공동체의식이 다시 한 번 크게 고양되는 것은 13세기다. 몽고와의 전쟁(1231∼1259)을 치르면서 고려인은 역사적 정체성에 대한 자아의식을 고양했다. 1281년 일연(一然)이 찬술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단군신화가 그 잘 알려진 징표이다.
단군신화는 오랫동안 삼한인의 구전으로 전승되어 온 고조선의 건국설화가 불교와 도교의 영향을 복합적으로 받으면서 문자화한 결과로 이해되고 있다. 물론 믿을 만한 경험적 근거를 갖춘 이해는 아니다. 신화가 신화적으로 해석되고 있을 뿐이다.
나는 8∼14세기 한국사에서 왕도(王都)에 결집한 지배세력이 오늘날의 민족으로 이어지는, 원형으로서 민족이라 부를 만한, 공동체의식을 보유했다는 주장에 그리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 정도의 공동체의식은 모든 종류의 정치체에서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일 터이다. 내가 의문을 갖는 것은 그런 공동체의식을 신라와 고려의 판도에 속한 모든 주민이 얼마나 보편적으로 공유했을까 하는 점이다.
신라와 고려는 왕도에 결집한 왕족, 귀족, 중앙군의 군사공동체가 전국의 대략 1200개에 달하는 군(郡)·현(縣)·향(鄕)·부곡(部曲) 등의 공동체를 지배하는 공납제(貢納制)국가였다. 11∼12세기 고려의 인구는 대략 300만이었다. 그 가운데 약 50만이 왕도 개경 내외에 밀집했다. 그 중 5만이 왕족, 귀족, 관료, 중앙군, 이서(吏胥), 산직(散職)으로서 지배공동체의 핵심을 이뤘다. 고려는 이들 국인(國人)의 나라였다.
국인이 되면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되었다. 농촌에 거주한 향인(鄕人)이 경적(京籍)을 얻어 국인이 되기는 쉽게 허락되지 않은 특권이었다. 국인이 죄를 범하여 귀향형에 처해지는 것은, 곧 출신 본관지로 추방되어 향인이 되는 것은 가장 가혹한 형벌이었다.
그런데 국인의 공동체의식과 향인의 공동체의식은 같았을까. 그들은 어느 정도나 동질적인 고려인이었을까. 그 점에 나는 회의적이다. 나는 단군신화와 같은 공동체의식은 국인에 국한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나아가 향인의 공동체의식도 군현별로 같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출처] 서울대 이영훈 교수가 한국의 민족의 형성 - 공동운명체 의식이 없으면 민족이 아니라고 보고 고려, 조선에 운명공동체의식 없어 민족은 없다, 조선은 소중화의식의 계급사회였다, |작성자 OvercomeWest
이상과 같이 고려왕조는 관료제로 잘 통합된 영토국가가 아니었다. 주민은 소속 공동체에 따라 그 사회적 신분을 달리했으며, 공동체 간에는 지배, 차별, 갈등의 관계가 일상적이었다. 그 같은 국가형태는 그에 속한 주민집단이 보편적으로 공유할 정치적 공동체의식을 원리적으로 배제했다. 내가 한국사 8∼14세기에 한국인이 하나의 민족으로 성립했다는 주장에 회의적인 다른 한 가지 이유는 그 같은 전제로서는 15세기 이후에 전개된 조선왕조의 역사를 설명하기 곤란하다는 점이다.
민족의 유입
16∼18세기 서구에서 발흥한 근대 문명의 본질적 요소는 사적(私的) 자치의 주체로서 개인이다. 그 개인의 새로운 정치적 협약체가 국민국가다. 그런데 그에 소속한 국민은 스스로를 자유의 인간으로 의식하기보다 민족의 일원으로 감각함이 훨씬 일상적이고 편의적이었다. 그것은 인간이 부족, 장원, 길드, 교구 등 역사적으로 오랜 집단에 소속하는 가운데 대를 이어 전승해 온 감성의 자연스런 발로였다.
국민국가의 지도자들은 열국쟁패의 제국주의 시대에 국민을 통합하고 동원함에 있어 민족이라는 집단감성에 의존했다. 개인의 성립 수준이 뒤처진 후발국일수록 민족의 동원력은 강대했다.
민족은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 초기에 사회가 보유하는 각양의 집단감성이 대내 결속과 대외 팽창을 위해 국가적 수준으로 재편성된 상상의 공동체다. 개인이 성숙함에 따라, 그리고 민족주의의 부작용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 교훈에 떠밀려, 2차 세계대전 이후 주요 선진국에서 민족주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국인이 민족이라는 단어나 관념에 접하는 것은 1907년을 전후한 시기로 알려져 있다. 1880년대 일본의 지식인들이 서구의 ‘nation’에 해당하는 일본어를 찾는 과정에서 고안된 그 말이 한국에 들어와서 정착, 확산하는 과정과 시기에 따라 상이했던 역할에 관해서는 아직 신뢰할 만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민족에 관한 연구물이 적지 않게 쌓여 있음에도 내가 별로 평가하지 않는 것은, 설령 민족이 구한말 국권이 상실될 위기의 시대에 외부에서 유입된 것임을 잘 인지하는 연구일지라도, 나아가 그것이 지니는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깨우치는 건설적 의도의 연구일지라도, 대부분의 연구가 민족이 유입, 정착, 확산하는 과정에 가해진 전통의 작용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민족은 독립운동, 사회개량, 계급혁명의 주역으로서 그것이 행한 역할이나 이룩한 성취 또는 끼친 부작용의 관점에서 이해되고 평가될 뿐이지, 전통과의 상호 작용에서 형성된 민족 그 자체의 특질에 관해서는 좀처럼 실체적 이해가 진전되지 않아 왔던 것이다.
여기서 전통이라 함은 15∼19세기 조선왕조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구성한 여러 수준의 인간관계, 사회단체, 정치철학 등을 말한다. 그것들은 바깥 세계로부터 그와 경쟁적이며 대체적인 새로운 원리의 문명이 유입하더라도 쉽게 소멸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활용하여 스스로를 재편성하고 강화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민족이란 것도 단지 외래의 유입만은 아니고, 그에 작용을 받는 가운데 전통이 재편성 내지 강화된 형태이기도 한 법이다.
건국을 주도한 이승만의 정신세계는 민족주의와 거리가 있었다. 1905년 조국을 떠나 40년을 미국에서 지낸 그가 그 기간에 형성, 강화된 민족주의에 물들 계기는 별로 없었다. 그가 남긴 수많은 글에서 민족은 공산주의자와 일본을 향한 정치적 공세 이상의 특별한 감흥을 내포하지 않았다.
기독교와 자유민주주의로 순치된 그의 정신세계에서 북한의 공산주의세력은 오직 무력으로만 구축될 대상이었다. 그가 평화통일과 남북협상을 주장하는 사회민주주의자 조봉암을 처형한 것은 그 같은 정신세계에서였다. 그로 인해 그도 쓰러졌지만, 그 덕분에 이후 40년간 그가 세운 이 나라는 정체성의 큰 혼란을 면할 수 있었다.
민족주의가 이성의 제약을 벗어나 한껏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후부터다. 그에 따라 소중화 역사의식, 일본 오랑캐론, 사회·국가의 혈연원리, 토지기맥설과 같은 전통 시대의 상징들이 민족의 탈을 쓰고 정치, 교육, 문화의 각 영역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정치가 그 향도 역할을 했다.
[출처] 서울대 이영훈 교수가 한국의 민족의 형성 - 공동운명체 의식이 없으면 민족이 아니라고 보고 고려, 조선에 운명공동체의식 없어 민족은 없다, 조선은 소중화의식의 계급사회였다, |작성자 OvercomeWest
이 이야기는 건국의 아바이 수령동지 기독교 장로이시며 민족의 전주 이씨 프린스로 양념대군의 후손이신 위대한 좃션의 태양이신 이 승만이 대한민국 "나라"를 건국하셨다를 무슨 민족주의사상 사관은 1960년이후의 일이다, 즉 "신라의 '삼한일통'의 지절대는 소리일 뿐 여진 이가 화녕 이가 이 영훈같은 엿뱅이가 왕정을 복고하여 이씨 세습 왕조를 세우는 이 종간나들아 따르라, 완전 쪽발이 신식민지 근대화론에 사상이 의심되는 "정신병환자"가 길거리에 활보하는 아예 "정신병동"의 몸체같다, 웃겨서 지랄도 너무 하니 꼴뚜기와 망둥이 세상이로다.
이씨좃션 엿같은 이 성계의 성공한 쿠데타로 이 방원 개새끼 종자 말종가리 인간백정으로 이런 병신 쪼가리가 신라 이씨라고 웃기고 있다 여진 이가가 나라를 말아드셨다 국밥 쳐들었다 아예 다 쳐들어라, 그러니, 새누리당 개망신 나라와 꾹가도 구분도 못하는 뻡사들의 놀고 있는 것이다.
욕쟁이 할매의 후기담:
민족주의 - 이는 "한" 일체민족주의여야 한다, 나 너 그리고 우리 일체 하나 韓이라는 개념을 상실했습니다 말살입니다.
수도 없이 강조하는 人乃天 천일 일, 지일 이, 인일 삼은 일체 하나다.
우리는 "하늘광명인' 桓族입니다 이 땅의 천지인 乾國한 일체 韓族입니다. 바로 日의 本으로 丸[●]夷 알이고 바로 三辰일체 알이 아리입니다, 이게 "아리"고 아리는 바로 一로 韓입니다. 韓은 大로 一人으로 "하나사람"으로 大弓입니다 우리가 바로 천손자손이고 백의민족 白木의 시라기 日木● 東夷라고 해도 못알아쳐먹습니다.
民은 백성입니다 지성 성으로 1자로 표합니다.
族은 천손씨로 우리는 9桓의 알[丸]으로 大十이 바로 本이고 大一이 夫로 宗으로 大弓입니다.
2자씨로 환인-환웅-왕검씨로 부루씨로 가륵씨로 2자 씨로 표합니다.
創氏改名은 헛소리로 쪽발이는 천손씨가 아니고 땅족 姓으로 바로 창성개명이라고 했어야 합니다.
2자란 문의 자로 2음운자로 2음절어를 말합니다, 풍신수길 토요토미다, 4자입니다, 고로 땅족에 미꾸라지 엉덩이 기어가는 소리입니다. 이토우 히르부미 등등 睦仁 2자니 천제다 엿소리로 특전범 "무쓰히토"입니다.
우리는 장꼴라와 전주이씨의 구테타로 자신의 씨도 명도 없는 사람이 80%였습니다, 다 백정으로 이는사회계급, 노예사회로 50%가 노비로 50대 50의 구성으로 백성이 아닌 白丁으로 만든 것이 저 간악한 여진 이가의 농간으로 나라의 역사를 왜고한 원흉이기도 합니다, 나라를 잃고도 버젓이 헛소리로 일관합니다, 황족의 씨라고 웃기고 지랄하고 있다입니다.
황현이 저술한 야사집 《매천야록(梅泉野錄)》에 따르면 전주 이씨가 많아진 이유로, 흥선대원군이 전주 이씨를 원하는 자들을 대동보에 올려주어 전주 이씨를 의도적으로 늘렸다고 쓰여 있다. 병인년(1866년, 고종 3년) 이후 성씨가 없던 천민들 중에서 전주 이씨를 자처하는 자들을 모두 대동보에 이름을 올려주어 대동보에 오른 자가 잇달았다고 한다. 종친부에서 화수회를 연 적이 있었는데 참가한 자만 7만이라 했다. 전주 이씨의 인구를 늘린 흥선대원군이 "내가 나라를 위해 십만 정병을 얻었다."며 기뻐하였다고 한다. 《매천야록》은 1864년부터 1910년까지 동학농민운동, 갑오경장, 청일전쟁을 겪으며 보고 들었던 정보를 토대로 기술한 비사(祕史)라는 점에서 기록의 특성상 교차검증이 필요하다.
조선 후기 300년 동안 효종 이후의 왕들이 어릴 때 죽어 후사를 남기지 못하거나 외동 아들만 남겼음에도 조선 후기 전주 이씨의 인구가 급증한 것은, 민적법 시행 전후 성씨가 없던 천민들이 전주 이씨가 왕족이라는 이유로 족보를 위조하거나 성씨를 차용한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많은 친일? 일제 신민가가 전주 이가 입니다, 이왕가로 일제명은 이이[Yi]로 리[Lee]대신 특질의 종자라고 이이 병신도와 같이 귀족, 왕족 영문명으로 이이[Yi]를 쓰고 있는 쪽발이 이이 영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씨로 구분하는 것이 현재도 유효한 것으로 노론의 중국성씨사용자들과 유태종으로 즉 씨는 바꿀 수 없으니 개신개화당으로 아리가또가 할렐류야로 극심한 유태인이 되기를 갈망하는 유태영모, 유태영익, 유태무종, 유태석근, 유태동식 등과 좃나라 좃나단가의 이스라엘인이 아닌, 세계 猶太 견팔아닭알을 사서 기부펀드하자는 바크족 Bark족등이 박헌영 바크헌영 마르크스족이라는 바크족까지 이이제이인지 계속 남분분열에, 동서, 신라-백제에 천주교와 개신교 공동의 종교적은 무조건 "무교, 무당"으로 무차별 폭격으로 한때는 동학-대종교-미신 무당으로 현재 "민족종교"라고 높여주는데 일견 "무당" 무교 미신잡배로 무차별 똥개가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로기 상태로 민족사학은 무슨, 완전 공격이 인신공격이 아니고 차단, 봉쇄로 일관하고 환빠라고 해서 "미친 광신교'로 무당으로 몰아, 달아매서 나오지도 못하게 태극에 십자가 박듯, 매일매일 축원하고 복음 전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시오, 불신자는 지옥유황불이요"라고 공갈협박으로 하나님은 자신들의 전유 유일신이고 하늘님은 불알때고 하느의님, 하느나라 에덴동산 에르족의 에르신이 하느님이요 할렐루아 신민혁명으로 때똥령이나 하세..
우리는 성은 분명 백성으로 "나라"칭으로 씁니다 알면서 계속 난도질하고 있습니다, 즉 청나라 만주족은 여진족으로 말갈, 예맥의 복합민족체로 물론 그속에 조선족도 있었습니다, 이에 만주족이란 지역명으로 나라명에 족입니다, 조선족같습니다 우리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 한족입니다 흔들리지 말고 하나 한족이고 나라 백성칭으로 신라족, 마한족, 발해족, 만주족 말갈족, 고려족,조선족,대한족이라고 나라칭을 쓰면 족보다는 성이라는 사실, 民이라는 사실을 환기합니다, 어떠한 성이라도 자신이 대한족이면 한민족입니다, 이유는 부계 조씨라도 4대만 족외혼이면 6.25%만이 조씨성이고 희석되어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황인종임에는 분명합니다, 현재 기독교인들은 계속 우리보고 람종인, 즉 블루-블랙종인 람종이라고 아브라함의 자손, 욕단족 단지파 등을 이야기하느데 이는 우선, 황인종 내에서 漢族, 倭族 등등을 말하는 것과는 인종을 뛰어넘어서 우리보고 "람종"이다, 즉 람종은 가만 쳐다보면 중국의 개봉에서 온 김, 이, 고, 석, 유다, 등등 아마도 이스라엘 유태인종이 아닌가합니다, 의외로 개봉 고려 개성의 사람들인지 이국적이 콧날에, 단순 씨커멍스가 아니고 블루 시커멍스로 유다, 유태, 유태염익은 그 생김이 이상야릇 외국풍으로 지들은 고귀풍이라고 하는데 영??? 아니올시다로 유태동식은 ?짜리몽탕 유태인의 형상이다.
이 말은 그래도 하나다는 이야기인데, 계속 저 전주이가 이 영훈의 왕정복고 그리워함 등등, 이 승만 찬양에 왠 씨족, 이 어녕의 1956년 "현대판 신라인들"은 아예 모욕이 아니고 모멸로, 서정주 시인을 "친일'이 문제가 아니고 그 풍이 신라를 찬미한 것에 대해 아예 우상파괴 " 현대판 신라인들은 가서 뒈지라는 소리로, 우월주의에 가득찬 폭언입니다.
이조시대 백정은 바로 白木으로 우리가 하나, 신라가 백의민족을 강조한 백목이고 바로 일본의 부여라는 일본은 白입니다 白帝 알타이로 백의민족? 백색을 숭배한다는 것은 고구려, 백제가 아닙니다 즉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夫餘는 고구려-백제와는 다른 바로 신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완전 우똥이가에 의한 조작이다.
저들 우똥이가 병신도네 우봉이가의 아킬레스건이 바로 이공정의 2세라는 이 자성으로 고려개국공신인데 공로가 "동경정벌"입니다. 신라인이 신라의 수도, 동경정벌을 했다, 반역자지요 가만히 있어도 귀부하고 한다는데 헛발질로 수도 동경을 정벌하였다 아마 이 일로, 경순왕이 더 귀부, 즉 전쟁이 아니고 백성의 안위를 생각하고 자신의 무덕을 깨달아 고려에 넘긴 것으로 그 곳이 경주, 경사스러운 땅입니나 옛 낙랑군지라는 곳이 경주인데 만약 현재 경주가 낙랑군지면 중국아이들의 이야기가 맞는지도 모르지요.
이말이라면 한국고대사만이 아니고 "한국국사" 교과서나 연구는 때려치웠으면 합니다, 특히 쓰레기 박헌영역사문제연구소의 후지이 다께시발 역사학 개론은 말 그대로 "쪽발이 한국사로 근현대사가 완전 개소리 군국주의냄새로 진동을 하고 있습니다. 때려치워버려라.
언듯 서정주 시인의 이야기,
건국의 문명사적 의의 [12]-5 애비는 종이었다
독자 여러분은 시인 서정주의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하는 <자화상>(1937)이란 시를 알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이 위대한 서정시인은 애비가 종의 신분이었습니다. 시인은 종의 신분을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조선시대의 노비문서를 보면 수개(壽介)라는 점잖게 생긴 이름이 자주 눈에 뜨입니다만, 실제론 수캐라는 뜻입니다. 시인은 자신을 그 수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처럼 헐떡이며 나는 왔다.” 저는 아직 이렇게 자신의 천한 신분을 한 시대의 아픔으로 승화시켜 노래하는 고결한 영혼을 접한 적이 없습니다. 흔히들 시인을 친일파라고 욕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이 시 하나만으로도 그를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노비라 하니 생각이 납니다만, 1920년대 전라도 구례군 토지면의 유씨 양반가의 일기는 정월 초하루에 집안의 종들이 찾아와 사랑에 앉은 주인을 향해 세배를 드리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날 주인은 “비록 세상이 변하였지만, 주노(主奴)간의 상하 의리는 변하지 않는구나”라고 일기에다 적었습니다. 그렇게 해가 바뀌면 주인집을 찾아 마당에서 수캐처럼 엎드려 세배를 드려야 했던 것이 종놈의 처지였습니다. 그 종놈의 신분이 농지개혁으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농지를 분배받은 그들은 토지를 팔고 자기의 원래 신분을 모르는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새로 토지를 구입하여 독립자영농으로 열심히 일하여 꿈에 그리던 일가를 창립하지요. 그중에는 자식농사를 잘 지어 초등학교 교사까지 시킨 사례가 채집되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사민평등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지요. 빈농의 자식이라도 머리만 좋으면 대학에 다니고 판검사도 하고 심지어 대통령까지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지요. 제헌헌법이 선포하고 있는 그대로 어떤 형태의 차별도 특수계습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은 건국의 이념이 농지개혁을 통해서 실현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농지개혁은 ‘나라세우기’(state building)와 더불어 전개되어야 할 ‘국민만들기’(nation building)의 첫걸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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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에 불덩이가 솟구친다. 저 왕족 전주 이가 개쌍놈의 여진족 개쌍놈의 개새끼종이 놀고 있다. 마한개쌍놈이 나라역사 민족의 혈통까지 팔아서 놀고 있다고, 현대가 무슨 지네 종자 자랑하고 이 승만 서얼새끼가 그리도 좋은 혈통이라고 웃기고 지랄하고 있다.
언듯 보기에는 와 대단하다, 즉 친일파라도 하나가 되어 "국민만들기" "나라만들기'를 하면 대한민국 건국의 기초다 "대한국민"이다, 그런데 맹점이 있다. 이명세나 이런 쪽발이에게 전부 명예칭을 주고는 그 족보따지기 하고, 향산광랑 이 광수도 위대한 전주이가 왕족이었다고 다 봐주면서, '기도교'인의 집권이다는 시나리오였다, 종교탄압으로 백정에게 이씨를 김씨를 하사했노라? 누가? 위대한 이 승만이???
즉 "건국"으로 인해 "말갈, 여진"의 만주족 중심의 사관을 확대하므로써 실제 신라인들 백목인들은 백정에서 현재도 무당으로 차별이 아닌 멸시속에서 말도 못하고 울고 있다 왜 이런 개똥세상일까? 송 호정 닭대가리는 송시열 은진 송씨 26세손? 별 것도 아닌 것이 꼭 내세우는 것은 송나라 송씨 쥐새끼론이다.
좃나라 좃가 좃나단 인성은 무슨 역사학을 하니, 신학, 종교학이냐고/ 위서론에 맨날 고조선 부정론 위서론이 고대사냐고/ 우똥이가 병신도 당나라 이가가 어째서 경주 이씨냐고? 그렇게 명문대가냐고? 아주 더러운 죽갔다. 어디서 오성중학교 설립자 후손이라고 놀고들 있다고... 즉 기득권으로 지들 잘났다/ 주보돈은 주원장의 후손? 뭐냐고? 놋나라 놋가 태돈에 중국에 무슨 놋시가 놋그릇 만들던 요강쟁이 훈손이 고조선의 맹주? 웃기고 있다.
역사학, 역사사실을 해석하는데 주관적인 견해가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나 이러한 집권? 정치이해득실은 필요치도 않는데 '정치세력"의 집권당의 이념으로 종교와 역사이상이 함께 하니, 참으로 웃겨 죽는다, 뉴라이트 친일 전주이씨와 노론파 식민사학파가 득세한다고, 그러니 쫄닥 망한다, 아예 거덜이 날 것이라고 했다, 박원순의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벌집을 잘못 건드려 놓았다, 그런 쓰레기 마르크스-레닌 고구리-발해-북조선의 정통성론은 먹히지도 않는다, 안승의 고구리? 그래서 환단고기 고성이가의 개소리 황제국인 발해를 남북국시대로 하자고? 김용옥의 "신라의 삼한일통론"이 아니고 한 적도 없다, "신라의 민족해체론"으로 하라???
신라가 차지하지 못한 만주의 고구려 옛 영토에는 발해(698년 ~ 926년)가 들어섰다. 신라와 발해가 공존한 시기를 남북국 시대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한민족 최초의 통일 국가는 신라가 아니라 고려라는 견해가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으며, '신라의 삼국통일' 대신 '신라의 삼국해체' 또는 '원삼국 해체기' 등으로 고쳐야 한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신라의 통일은 고구려의 영토를 상당부분 상실했다는 점에서 영토적인 면에서 분명 한계가 있었으나, 한반도 내에서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한민족 단일국가 수립의 기반이 되어 한국사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이에 대한 내용이 마치 "신라패러다임"에서 "고구려-발해 패러다임"으로 이게 한민족국가정통성이라고 하는 괴이한 "한민족" 실체론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한민족 9천년사의 국통맥에서 '신라'가 빠지고 북부여-고구려-대진국-고려-조선-대한이냐고? 허 참 황당하여 놀라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개소리냐고? 아무리 그래도 이씨좃선 개새끼들 보다는 강역이 넓었다고, 청나라가 왜 신라인이라고 지들이 "삼한인'이라고 강조하여 애신각라라고 하는지 아냐고? 고구려-말갈은 마한조선인으로 신한조선 신한이 신라다, 이 신한이 단군조선이고 번한조선이 기자조선이고 북부여 마한조선은 맨날 쿠데타하여 우화충의 난 단군이 있는데 북부여/북맥의 해모수가 어떻게 천제라고 하냐고? 말이 되는 개소리를 하라고, 해모수가 건국을 기원전 239년에 해서 고열가 단군이 너 해라고 했으면, 제48대 단군이지, 고조선 폐관이 되냐고? 아예 한시대 수 2096년의 고조선을 문을 닫았다 바로 렬국시대로 그 누구도 대권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다시 강압에 의해 기원전 232년 단군칭을? 왜 천제로 하지, 해모수야? 북맥/북막으로 북부여는 부여의 핵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강하게 노골적으로 비판한 것이 삼국사기/삼국유사 등에 나오는 것이고 고구려 고주몽이 해모수으 후손이라도 너라면 이게 대통령의 연속이냐/ 아니면 나 후손이야, 그래서 다 니것이라고? 그렇게 쓰냐고? 사관이, 해모수 후손이면 나는 단군 왕검 후손이다, 그럼 나한테 몰아주니/ 엿소리를 하고 있으니 개소리라고 한다고. 북부여에서 동부여라고 했지 누구 고주몽이라고 했냐고, 그리고 동명/부여 동명성왕이 돌아가시고 고무서 단군의 동명/부여가 재위 2년만에 즉 기원전 58년 음 10월에 붕어하시니 신한의 6부는 고두막한의 딸 황실녀 파소의 아들 박혁거세를 13세의 어린 나이에 신한, 즉 동명부여의 대부여 수도에 금성, 즉 신라의 옛 땅이다는 소리로, 이는 초기 금성이다, 동명/부여=신한이고 신한이 신라야, 그럼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부여는 동명인데 이것이 신한=신라지 왜 동부여 고구려에 망하고 고구려의 갈사국, 연나부가 부여라고 천자지국이 되냐고? 사관이 그렇게 쓰지를 않습니다, 일개, 갈사국, 동부여 정복후 제후로 삼은 부여면 갈사국이고 연나부부여는 일개 연나부 部로 부여 나라안의 연나부지 이게 무슨 천자지 대본야인 줄 알고 왜 안뿔려 주었냐고/ 그런 하찮은 고구려 강역의 내부 사정까지 일일이 쓰는것은 고구려사에 나온다는소리다,
신라의 삼한일통에 대해..
백제가 신라를 무진장 보아주었는데, 신라가 배반한 것이다, 역사학을 하지 말라!
"신라의 야욕을 보다 못한 의자대왕은 국지전쟁을 전면전쟁으로 전환시켜 신라의 대야성을 비롯한 40여개 성을 일거에 탈환하여 서라벌을 제외한 신라땅 대부분을 정벌했다.
대백제 의자대왕이 삼한일통을 무력으로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의 숨통을 끊지 않고 놓아준 까닦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신라는 어머니인 선화공주의 고국이었다 .마치 통일 고려에게 귀순한 통일신라의 전례처럼 대백제 의자대왕은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
쪽발이 백제왜 예찬론이다 말이 안된다고, 전면전으로 40개성을 탈취?? 의자왕 2년에??? 대야성을 비록하여 40여개 성을 일거에 탈환하여 "서라벌"을 제외한 신라땅을 대부분 정벌? 웃기고 지랄하고 있다 아니 경상도라 40개성을 전면전으로 하루걸이인데 무슨 봐주어서 서라벌을 제외한 전 신라를 정벌을 해?? 지긴 했지만, 전선의 40개 성이다 즉 한반도일 수 없다, 남삼한의 백제와 신라의 주 강역에서 한바탕 전면전이고 신라의 서라벌은 남삼한이라는 대륙이 아니었다고.. 물론 치고 올라올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리 만만한 신라가 아니었단다. 백제 잡놈의 개새끼에게 당했다고 고이 물러나 아이고 행님요 가이지소, 웃기고 지랄하는 소설 쓰고 있다.
"통일신라 VS 통일발해(통일 후고구려)라고 해야 만주공정(중국식 표현 '동북공정')의 음모에 맞설 수가 있다
통일신라는 백제와 가야의 합방이다,고구려는 중국 당나라에도, 신라에게도 합방되거나 망한 적이 결코 없다는 사실이다
중국 당나라가 고구려땅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핵심지배층 20만이나 잡아 갔지만,고구려합중국의 DNA는 유전되는 법이다
고구려의 전사중에 대조영이라는 인물이 고구려합중국의 부흥을 기치로 안동 도호부 (安東都護府)를 폐하고 국호를 "고려"(고구려합중국은 장수태왕이후에 고려라고 국호변경)라고 선포한다 .
일본서기에 대조영 태왕이 "고려"라고 친서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음에도, 중국 당나라는 고구려가 일어났다는 것을 숨기기위해 "발해"라고 서둘러 책봉한다고 사서에 남긴다
중국 고대국가의 위정자들은 발해의 지배층은 고구려,피지배층은 말갈족이라고 친절하게 사서에 기록하여 옛고구려에 멀쩡하게 남아있던 고구려의 백성들을 졸지에 말갈족이라는 이민족으로 둔갑시켜버린다
말갈족은 중국 당나라가 고구려족이라는 말을 멸칭하여 쓰던 말이었다
말의 재갈이라는 뜻으로 피지배층을 지칭하기도 하고
말 잘타는 동북지역의 기마민족으로로 해석되는 점도 있다
이를 보다 못한 후고구려인 발해는 중국 당나라와 몇 차례에 걸쳐 국제전쟁을 벌이다 화친을 맺고
불간섭 원칙을 준수하기로 묵시적 화친을 맺는다
발해(후고구려)는 황제국가을 선포하여 엣고구려지역은 물론, 만주일대와 연해주까지
아우르는 대제국 황제국가를 건설했다
편의상 나는 이를 '통일 후고구려' 또는 '통일발해'라고 지칭하고 싶다 "
이건 완전 소설이다, 알았고 그렇게 해라, "고구려-발해" 패러다임으로 아예 족을 다 팔아먹어라, 이게 김용옥의 "고구려/발해 패러다임"이라는 것이다, 황당하여 18세기 유태득공전까지는 일개 지방정권인 발해?대진국으로 황제를 칭하든 말든 엿같은 말갈/여진, 예맥에 료나라, 거란족에 아예 금 -청 황제국으로 대륙을 정복했지 않은가? 뭘 그리 더 발하고 밝히냐고? 이 고구려 안승이 후손아, 종교사업하냐? 도대체 뭐하는 짓거리냐고?
아예 그래 이병도가 굳혀주었고 니네는 전부 우리 북조선인민공화국이 발해야요 에잇 더럽다.
신라가 정말 경상도 경주 마한내 진한의 사로국?에서.. 그럼 다 없다, 더럽다, 정말..
틀리고 맞고가 아니고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머리가 있는 닭대가리도 금성하는데 정말 경상도 경주가 금성으로 정말 1000년동안 변하지 않고 그곳인가?? 신한=신라인데, 나는 진한, 진국한 개새끼 우똥이가 병신도는 정말 보기도 싫고 정말 저런 개새끼가 뭘 해놨냐고/
日 나〮ᅀᅵᆯ〮 衆陽之宗人君之表
月 ᄃᆞᆯ〮월〮 太隂之精隂不可抗陽故日圎月缺
星 별〯셔ᇰ
辰 별〯신 日月會次又北辰北極也又미르〮진地支屬龍
별 신이 왜 쩐이고 신이 신이지 왜 神功하면 신공이지 이게 '진구"냐고, 참 황당무계한 일이다,,,
, 삼한은 신라, 고구려, 백제의 삼국을 일컫기도 하고, 더 나아가 우리 나라를 일컫는 말로도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삼한통보(三韓通寶)는 '고려시대에 우리나라(三韓)에서 통용(通)되는 화폐(寶)'이고, 삼한고찰(三韓古刹)은 '우리나라(三韓)의 오래된 옛(古) 절(刹)'입니다
韓은 三韓인데 고조선이라는 것은 총칭이고 三韓朝鮮이 조선의 국명으로 이는 三朝로 韓朝로 일반적으로 三韓이 삼한조선의 국명으로 삼한은 "우리나라" 즉 삼한일통은 韓이다, 신한이라는 말인데 전부 왜곡하고 있다.
즉 대부여는 韓으로 三韓이로 대부여=辰韓朝鮮=辰韓으로 "신한"이 맹주인데 , 고지신한, 고조선의 신한 신국을 모두 진국이라고 하고 고조선을 옛/ 엿으로 신한이라고 國을 쓸 이유도 없는 한국 국호에서 기어코 斯盧國이라는 部가 국이다, 정말 퉤퉤퉤다.
저런 한학자라는 도올은 아예 꺼져버렸으면 한다. 고대사를 볼 자격도 없다.
이러한 대륙에서 진행되는 것도 한번쯤은 생각하면서 한반도가 과연 삼국의 쟁탈지였는지는 심사숙고한 후에 말했으면 좋겠다.
기리사독교로, 아예 탱크로 밀어서 저 대가리 닭대가리를 닭똥집으로 그래서 저 쉬개에게 줄까?
-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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