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부만이 대장부의 진정한 공부라고 생각듭니다.”
“듣기로는 은사스님이 계시다고 하는 것 같던데....”
“예! 송광사 문중이십니다.”
“틀이 참 좋습니다.”
“..............”
“나가보세요.”
원주스님과의 간단한 면담을 끝내고 드디어 그는 천배 정진에 들어갔다.
면벽한지 8일이 지난 아침이었다.
일주일 넘게 면벽을 하면서 온갖 번뇌망상이 그의 뇌리속에서 춤을 추고, 그와 함께 몸뚱이 또한 좀이 쑤시다 못해 미칠 지경이었는데, 드디어 그 방에서 해방이 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천배정진을 해야 비로소 행자복을 입을 수 있기에 그는 지난 8일보다 오늘이 더 긴장되었다.
시자행자의 안내에 따라 지장전으로 향했다.
어느 사찰의 지장전이나 마찬가지 이겠지만, 송광사 지장전은 참회기도를 하는 사람들로 늘상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물론 그 사람들의 대부분이 속인이 아닌 출가자가 대부분이지
만....
학부 졸업을 앞둔 겨울방학때 그는 일주일간의 지장기도를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 은사스님의 권유로 지장기도를 하면서 그는 지장기도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미 절감하였다.
밤마다 나타나는 온갖 이상한 징후들, 너무도 혼란스러워 끝내는 실패하고 은사스님 앞에서 통곡을 하였다.
“네가 아직 기운이 익지 않고, 기도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런것이니 너무 상심하지 마라. 원래 지장기도는 그 가피가 큰 만큼 어려움 또한 크다. 큰 공부했다고 생각해라.”
물러서지 않겠다는 불퇴전의 심정으로 염주를 손에 쥐고 일배일배 참회기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장보살이시여! 제가 지은 모든 죄업장을 참회하옵나니, 부디 보살펴 주사와 모든 죄업장을 씻고 출가수행의 바른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참회는 불보살에 대한 참회가 아닌 나 자신과 인연 지어진 모든 대상에 대한 참회만이 진정한 참회라고 믿기에 그는 이제껏 자신이 알게 모르게 상처주었을 사람들에게 참회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이 길을 가는 것은 저 하나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부디 여지껏 어머니의 속을 태웠던 이 아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아버님! 지금은 어느 세계에 계신지 모르지만, 부디 극락왕생하시고 아버님 살아생전 지었던 죄를 참회하옵니다.’
이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 석자가 있었다.
‘아~ 너에게도 나는 참회를 해야 겠구나!’ 그는 출가하기전 사귀던 한 여자와 아니 정확히 말하면 후배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주었다.
“선배! 정말 이유가 뭐에요?”
“그냥… 우리는 인연이 아닌가 보다.”
“내가 싫어졌어요?”
“그래!”
“거짓말하는 것 다 알아요.”
“더 이상 할 말 없다.”
학교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3년간을 사귀어 왔던, 후배에게 너무도 매정한 이별만을 안긴 채 떠나왔다.
그가 후배를 만난 것은 대학 4학년 봄이었다.
그녀는 이제 갓 입학한 1학년 신입생.
학교 도서관에서 근로학생으로 일하던 그에게, 수업이 없을 때면 찾아와 함께 책정리도 해주고, 그대신 과제물을 도와달라며 시작했던 만남이 그가 문화원에 취직한 후 행사때면 의례히 빠질 수 없는 준직원의 역할까지 해가며 자연스럽게 모든 이들에게 둘은 실과바늘로 인식이 되었었다.
그가 출가를 결심하면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사람도 어머니보다는 후배였다.
그의 출가선언이 있은 후 일주일간을 그의 방에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 했지만,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그가 생각해도 매몰찼다.
결국 후배는 “갈께요!”라는 말 한마디만을 남긴 채 그의 방문을 나섰고, 그런 후배에게 그는 이런 부탁을 하였다.
“네가 눈을 감는 그날까지 나를 원망한다해도 나는 너에게 아무런 할말이 없다. 만약 내가 너였더라도 그럴거니까. 하지만, 마지막 부탁이 있는데, 눈을 감는 순간에는 나에 대한 원망은 풀어주었으면 한다.”
후배가 그를 얼마나 의지하고 있으며, 아직은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 대해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의 이 상황이 어렵고, 충격이 클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사랑과 그 사랑만큼의 원망의 마음이 다음생에 까지 이어져 다시금 인연의 채바퀴에 돌아가는 것은 안된다는 생각에 그런 부탁을 하였던 것이다.
‘네가 나를 사랑한 만큼 나에 대한 원망도 클 것이지만, 부디 사바세계에서의 인연은 이 것으로 마치고 부디 좋은 도반으로 만날 것을 발원하며, 이 마음 다 바쳐 참회한다.’
절을 하는 것은 자신이 있었지만, 천배는 역시 힘들었다.
절을 하는 동안에도 온갖 망상은 머리와 마음속에 끊이지를 않았다.
지장전 한쪽 귀퉁이에 좌복을 깔고 지장보살을 염하며 계속 절을 해 나갔다.
땀이 비오듯 쏟아져 이마가 닿는 부분은 흥건히 젖어 있었고, 참배나 관광 온 사람들은 지장전 문을 통해 빼꼼히 쳐다보고 지나간다.
갈증이 나면 어느 행자인지는 모르지만, 주전자에 담아다 준 꿀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절을 했다.
참으로 달콤했다.
절을 하면 온몸의 당분이 함께 소모되기 때문에 꿀물을 타다 준 행자의 그 마음 씀씀이에 다시 한번 고마워 했다.
마지막 천배를 끝내고 그는 펑펑 울었다.
마음속에 맺힌 모든 때들을 벗어버리고 싶어 좌복에 엎드린 채 소리내어 울었다.
너무도 힘들어 울 힘조차 없었지만, 그는 이제껏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과 업장으로 인해 고통받아온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아침 7시부터 시작한 천배정진은 저녁공양 무렵이 되어서야 끝났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입에서는 단내가 났지만, 마음만은 한결 가벼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행자들의 눈빛이 몹시도 부드러워졌다.
그리고는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고생 많았습니다.”
전혀 그에 대해 관심조차 없는 줄 알았던 행자들이 오늘을 기다렸다는 듯이 지나가면서 따뜻한 눈빛으로 받아주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그는 삭발식을 하였다.
모든 행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음으로 들어간 행자방에서 호계합장을 한 행자들의 참회진언이 온 방안을 장엄하게 울려펴지는 가운데, 한줌의 머리카락을 창호지에 남겨놓고 드디어는 삭발을 하였다.
고개숙인 머리에 삭도가 지날때마다 머리카락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행자들은 정성을 다해 참회진언을 염송했다.
그들이 고마웠다.
자신을 위해 그토록 참회진언을 해 준다는 것이 그로서는 너무나도 감동적이었다.
'불가에서는 머리카락을 무명초라 합니다. 왜 무명초라 하느냐하면 저 끝도 없이 알수없는 곳에서 시작된 무명번뇌가 마치 잘라도 나오는 머리카락과 똑같다고 해서 머리카락을 무명초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무명초를 자르고 수행에 길에 들어서기 위한 한발을 내딪었으니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그를 삭발시켜주신 스님은 조용한 목소리로 그에게 당부하듯 말씀하시고 그에게 고개를 들어 스님이 앉아계신 뒤편 벽에 걸린 글을 읽어보라고 하셨다.
그는 고개를 드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스님이 앉아계신 행자방 정중앙 벽에는 서산대사의 말씀이 적혀 있었다.
출가하여 중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몸이 편안하려는 것도 아니며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삭발식이 끝나고 또 다른 행자를 따라 후원 뒤편 산아래로
갔다.
“성이 어떻게 됩니까?”
“강씨입니다.”
“이제부터는 강행자라고 부르겠습니다.”
“예”
“강행자님, 이건 행자님 머리카락인데, 태우세요. 난 먼저 갈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사르륵 타들어가는 머리카락의 냄새가 풍겨왔다.
이로써 그는 행자가 되었다.
첫댓글 오늘은 여기까지만 ...........나머진 다음에
원행각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이제 자주 카페에 글 올리세요 ... 관세음보살...()...
()()() 삭발식때 다른 행자님들이 함께 참회진언을 외우는군요..불자라면 누구나 출가의 꿈을 꾸어보기 마련인데요, 이 글 통해서 함께 눈물도 흘려보고 간접경험 해 봅니다..ㅠㅠ
넋 놓고 한참을 읽었습니다. 이런 좋을 글을 경험하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