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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구조단체 리버스가 출동한 경기도 광주 신종펫숍 모습. 리버스는 현장에서 오랜 굶주림으로 탈진한 개, 고양이 40여마리를 구조했다. 동물구조단체 리버스 제공
“얼마 전 버려진 펫숍에서 개와 고양이 수십 마리가 죽어간다는 제보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습니다. 이 펫숍은 강아지공장에서 태어난 새끼들을 가져다 파는 기존 펫숍과는 다른 수법으로 운영됐더군요. 키우던 동물을 포기하려는 사람에게 접근해 돌봄비로 수백만 원을 요구하고, 넘겨받은 동물 숫자가 많아지자 버리고 도주했어요.”
-동물구조단체 리버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반려동물을 파양하고 싶다는 사연이 종종 올라옵니다. 결혼부터 이사, 유학까지 이유도 다양합니다. 하지만 파양된 동물들을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거의 없죠. 최근 이런 상황을 이용한 신종 펫숍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파양을 원하는 사람에게 접근해 고액을 요구한 뒤 이 동물들로 ‘유기동물 펫숍’을 오픈합니다. 그러고는 유기동물을 돕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악용해 다시 이 동물들을 수백만원에 팔아넘깁니다. 팔리지 않으면 동물들을 버린 채 잠적해버리죠.
이번 사연의 주인공 2살 비숑 빵떡이도 이런 위장 유기동물 펫숍에 버려졌습니다. 다행히 빵떡이 목덜미에는 주민등록증 역할을 하는 내장등록칩이 있었습니다. 사기 펫숍에 버려진 동물들을 구조한 동물구조단체 리버스 측은 이 내장칩을 조회해 이전 견주의 연락처를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견주 반응은 싸늘했죠.
리버스 김용환 대표는 “견주는 자신이 파양비를 지불했으니 사기 피해자라고 주장했다”며 “개는 알아서 처분해달라고 하더라”고 설명합니다. 그렇게 빵떡이는 전 주인에게서 한번, 펫숍에서 또 한번 버려진 겁니다.
파양견 데려다 재판매 혹은 잠적…무서운 신종펫숍
지난 3일 리버스는 경기도 광주의 펫숍에 품종견과 품종묘 수십 마리가 버려졌다는 제보를 받고 출동했습니다. 현장에서 발견된 동물은 고양이 20마리와 개 24마리. 이미 굶어죽은 동물도 4마리나 됐습니다. 살아있는 개체들은 심각한 탈진 상태였죠. 게다가 펫숍 내부에는 전열기구와 조명이 그대로 작동하고 있어 과열로 인한 화재 위험도 큰 상황이었습니다. 구조자들이 빈 그릇에 사료와 물을 부어주자 굶주린 녀석들은 허겁지겁 먹어치웠습니다. 며칠만 늦었어도 다들 아사할 상황이었던 겁니다.
리버스는 현장에 방치된 고양이 20마리, 개 24마리를 구조했다. 이 중 4마리는 주인이 찾아가고, 34마리는 전국의 동물단체 및 시민 봉사자가 나눠서 보호하고 있다. 리버스는 전체 치료비 2000만원을 부담하고 소형견 6마리를 돌보기로 했다. 리버스 제공
펫숍이 망한 뒤 점주가 동물들을 버리고 도망가는 일은 드물지 않게 벌어집니다. 그런데 이 펫숍은 조금 달랐어요. 불법강아지공장에서 태어난 지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어린 개체들을 판매하는 보통 펫숍과 달리 광주의 펫숍에는 이미 2살이 넘은 성견과 성묘가 가득했습니다. 펫숍 벽면에는 이상한 메모도 빼곡했죠. ‘연지, 곤지, 11월26일, 420만원’ ‘망고, 12월3일, 163만원’…. 파양당하기 전 보호자가 지어준 이름과 펫숍에 넘겨진 날짜, 파양비용을 기록한 겁니다. 리버스 김 대표는 “해당 펫숍은 기르던 동물을 파양하려는 사람들에게 파양비를 요구한 뒤 인계받은 동물을 유기견으로 속여 되파는 신종 펫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신종펫숍 벽면에는 입소한 동물의 이름과 전 주인이 지불한 파양비용이 적혀 있었다. 펫숍 주인이 청구한 파양비용은 최대 420만원에 달했다. 리버스 제공
동물보호법상 타인의 동물을 위탁받거나 동물을 판매하는 업자는 관할 지자체에 사전 신고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경찰 수사 결과 해당 펫숍은 미등록 업체였습니다. 게다가 동물들을 방치했으니 동물학대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광주경찰서 관계자는 “시의 수사의뢰를 받아 불법 펫숍을 운영한 31살 김모씨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추적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나도 피해자, 알아서 해라”…버림받은 40마리, 운명은
문제는 버려진 생명들입니다. 리버스는 2명이 운영하는 작은 동물구조단체입니다. 이 많은 유기동물들을 돌볼 여력이 없었죠. 다행히 개들 중에는 몸에서 동물등록칩이 발견된 경우가 있었습니다. 칩에 담긴 동물등록번호를 확인하면 견주의 연락처와 정보를 알 수 있죠. 리버스는 구조한 개 6마리의 견주와 통화했습니다.
견주들이 개를 맡긴 사정은 다양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배우자 측에서 반려견에 반대해 파양한 이도 있었고, 이사 준비를 하느라 몇개월 임시로 개를 맡겼다고 말한 견주도 있었습니다. 구조한 유기견의 위탁 보호처를 찾던 중 ‘좋은 가족을 찾을 때까지 돌봐주겠다’는 펫숍의 말에 속아 개를 넘긴 경우도 있었죠.
사정을 들은 견주 6명 중 4명은 곧장 현장에 찾아와 개를 데려갔습니다. 하지만 같은 반응은 아니었습니다. 김 대표는 “본인은 (파양비를 지불한) 사기 피해자인데 개를 데려가라고 몰아붙이지 말라는 분도 있었다”며 “동물을 구조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자면 돈을 주고 버렸다는 게 다를 뿐 동물을 버린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결국 리버스는 남은 40마리의 운명을 책임지게 됐습니다. 만일 안락사가 집행되는 시보호소로 이송되면 대부분 법정 공고기간(10일) 뒤 안락사를 당할 겁니다.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리버스 측은 모든 걸 감당하기로 결정합니다. 김 대표는 “단체 후원금 계좌에 남은 금액이 200만원밖에 없었다”며 “한두 마리 치료하기에도 벅찬 금액이지만 현장에서 노력하면 분명 도와주실 분들이 있을 것으로 믿었다”고 합니다.
십시일반으로 구사일생…구조된 동물 가족을 모집합니다
리버스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자 전국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습니다. 동물단체 여러 곳이 나섰고 개인 봉사자들도 힘을 보탰습니다. 20마리의 고양이는 동물단체 나비야사랑해, 동고동락이 전부 데려가고, 개 20마리 가운데 14마리는 동물단체 라이프 및 개인봉사자들이 나눠서 보호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리버스는 남은 개 여섯 마리를 단체 사무실에서 직접 돌보고 있으며, 구조한 동물의 치료비 2000만원의 모금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국민일보는 리버스의 사무실 겸 반려견카페로 운영 중인 경기도 평택의 리브어스를 방문했습니다. 이날 현장에는 구조된 동물의 입양 적합도를 평가하기 위해 12년차 행동전문가 미애쌤이 동행했습니다.
리버스 김용환 대표가 구조한 견공 6마리를 소개하고 있다. 주인공 비숑과 검은 라사압소, 흰색 푸들, 갈색 푸들, 치와와등 2~3살 추정 어린 개체와 10살 몰티즈 등이다. 모두 건강하고 사람을 잘 따르며, 가족을 모집 중이다. 최민석 기자
김 대표가 펫도어를 열자 주인공 빵떡이를 비롯한 여섯 마리의 견공들이 쪼르르 달려 나와 취재진을 반겼습니다. 다행히 모두 건강에 이상이 없고 성격도 밝더군요. 특히 빵떡이는 취재기자 무릎에 앉아 있다가 다른 개가 다가오면 자리를 양보할 만큼 의젓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미애쌤은 “치아 상태를 보면 2살 정도로 추정되는데 흥분도가 적고 의젓하다. 이런 성격은 영리하고 적응력이 뛰어나서 새로운 곳에 금세 정착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빵떡이라는 이름은 유튜브 채널 ‘개st하우스’ 라이브방송을 통해 구독자들이 지어준 애칭입니다. 비록 전 보호자가 소유권을 포기한 딱한 처지이지만 지금은 새 이름을 선물 받고 입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빵떡이 그리고 함께 구조된 다섯 견공들도 가족을 모집합니다. 희망하는 분은 기사 하단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시기 바랍니다.
"한달 전 죽은 반려견, 합성사진 내밀며 금품 갈취"…이어지는 추가 제보
지난 2월 25일 기사가 보도된 이후 해당 펫숍에 대한 제보가 이어졌습니다. 추가 피해자는 80여명. 이들은 반려동물을 단기 위탁했다가 현재는 동물의 행방조차 알 수 없게 된 피해자들입니다. 이들은 반려동물의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피해자들은 공동 모임을 결성해 서울, 강원도 원주, 경기도 평택 등 전국 각지의 피해 사례를 수집하고 형사고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모임을 운영하는 피해자 전모씨는 “모임에 참여한 피해자들은 동물을 파양한 게 아니라 소유권을 유지한 채 위탁보호 개념으로 펫숍에 맡긴 사람들”이라고 설명합니다. 반려동물을 2~3개월 단기 위탁하고, 펫숍 일당에게서 주 2~3회 근황 사진을 제공받았다고 합니다.
펫숍 측은 동물의 근황을 요구하는 보호자들을 속이기 위해 사진을 합성하는 등 교묘한 수법도 썼습니다. 위탁받은 동물이 이미 사망했음에도 얼굴을 오려붙인 정교한 합성 사진을 전송해 살아있는 것으로 꾸민 뒤 해당 동물의 보호자에게 돌봄비를 요구하는 식이었습니다. 일당이 펫숍을 닫고 도주하기 직전 위탁했던 반려동물을 보러왔던 피해자도 있습니다. 그는 맡긴 반려동물의 체중이 급감한데다 약속했던 중성화 수술도 이뤄지지 않은 걸 확인하고 항의했지만 별다른 조치는 없었습니다.
전씨는 “일당은 방치현장이 적발되기 불과 이틀 전까지 피해자들에게 합성사진을 보내고 위탁비, 동물병원비 명목으로 수십만~수백만원을 송금할 것을 요구했었다”며 “현장을 방문해 본인 반려동물이 1개월 전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한 피해자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아픈 과거 딛고 가족 기다려요…비숑 빵떡이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2살 추정, 6㎏, 수컷(중성화 x)
-사람을 좋아하고, 의젓한 성격
-건강에 이상 없음. 예방접종 재실시 중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아래 SNS로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인스타그램 rebirth.or.kr (동물구조단체 리버스)
-리버스를 후원하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계좌로 동참할 수 있습니다.
농협 301-0296-4244-31 (동물구조단체 리버스)
빵떡이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07번째 견공입니다. (89마리 입양 성공)
-빵떡이의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이성훈 기자(tellme@kmib.co.kr)
최민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