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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일 오늘의 역사
2022년 한국 16년 만에 월드컵 16강 진출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최종 3차전에서 포르투갈에 극적인 2-1 역전승을 거뒀다. 경기 시작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16강에 오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기만 했다. 한국은 이날 H조에서 가장 강한 상대인 포르투갈을 반드시 이겨야 했고, 같은 시간 열리는 가나-우루과이전의 결과로 승점을 따져봐야 했다.
하지만 벤투호는 불가능 같아 보였던 승리를 만들어냈고, 가나를 2-0으로 꺾은 우루과이와 승점(4점), 골 득실 차(+0)에서 동률을 이룬 끝에 다득점에서 4-2로 앞서 극적으로 조 2위를 확정했다.
2021년 진도 명량대첩로 해역에서 닻돌과 도자기 등 유물 60여 점을 수중 발굴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올해 진도 명량대첩로 해역에서 수중발굴을 통해 닻돌(사진) 3점과 용도 불명의 금속 유물 2점, 도자기 등 유물 60여 점을 발견했다
닻돌은 닻이 물속에 잘 가라앉도록 매다는 돌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도자기는 대부분 고려청자로 분류됐다.
이로써 명량대첩로 해역에서 2012년 이후 찾은 유물은 모두 1200여 점으로 늘었다.
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포항지질자원실증연구센터와 EOS3D라는 장비를 활용해 바다에 묻힌 문화재 추정 물질을 확인했고,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발굴조사를 진행해 유물을 수습하는 성과를 거뒀다.
조사 지점은 1597년 충무공 이순신이 왜군을 격파한 명량대첩 발생지 울돌목(명량해협) 인근으로, 조류가 매우 빨라 많은 배들이 난파했다고 알려진 곳이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확인된 유물은 대부분 도자기이며, 조선시대 개인 화기인 소소승자총통(小小勝字銃筒)과 돌포탄인 석환(石丸) 등도 나왔다
2020년 영국 보건당국 우르 샤힌(55세) 외즐렘 튀레지(53세) 부부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긴급사용 승인, 파이낸셜 타임스가 이들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
2016년 정부예산 첫 400조원 돌파 2017년도 예산안 국회통과
2016년 이화여대 최순실의 딸 정유라 영구퇴학 입학 취소
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 샌버너디노 발달장애인 복지재활시설 총기난사로 14명 숨짐,
2014년 2015년도 예산안(375조4천억 원) 12년 만에 법정시한 내 국회통과
2010년 영국 20cm 넘는 폭설 주요 공항 폐쇄, 7천여 학교 휴교령
2008년 타이 헌법재판소 선거법위반 근거로 집권여당 포함 3개 연립정당 해산 결정
2008년 '한국 중문학 태두(泰斗)' 차주환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호가 한당(閒堂)인 고인은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춘천공립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7년 교내 항일 학생결사인 상록회(常綠會)에 가입해 활동했다. 1938년 가을 일본 경찰에 체포됐고, 이듬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일제 말에는 학병으로 끌려가 버마(현 미얀마) 전선에 투입됐다가 탈출한 뒤 연합군의 포로 수용소에 갇히는 고초를 겪었다.
광복 후에는 서울대 문리대 중문과에 입학해 1968년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서울대 중문과 교수를 지냈으며, 특히 고전 번역과 시(詩)·사(詞)의 연구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역대 중국시 품평서인 '시품'을 주석한 '종영시품교증(鍾嶸詩品校證)'은 해외에서도 인용하는 명저로 꼽히며, 번역서 '맹자'는 지금도 가장 널리 읽히는 번역본 중의 하나다.
그는 또 국내 처음으로 '도연명 전집'을 완역했으며 83세가 되던 2004년에는 중국 둔황(敦煌) 막고굴 출토 문서를 연구한 '돈황사 문학논고'를 냈다. '중국시론' '한국도교사상연구' '공자' 등의 저서가 있다. 수필문학진흥회장을 지내며 '동양의 달' '허물 없는 이와의 대화' 등의 작품을 내는 등 수필가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2007년 이일규 전 대법원장 사망
2002년 로또복권 발매 시작
로또는 최고 당첨금액에 제한이 없는 복권을 가르킨다
1971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처음 판매된 이후 1980년대 캐나다, 유럽 등에도 소개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국내에서는 2002년 12월2일 첫 발매되었다
1부터 45까지 자신이 원하는 숫자 6개를 임의로 고르는 방식이다
직접 번호를 고를 수 있다는 점 외에도 당첨자가 없으면 당첨금이 이월되는 점, 구매자가 많을수록 당첨금이 늘어나는 점 등이 기존 복권과 다르다
2002년 장병희 영풍 명예회장 사망
2002년 기아차 국내업체로는 처음으로 중국형 신차 현지 합작생산
기아자동차가 국내 업체로는 처음으로 중국형 신차를 발표, 본격적인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기아차의 중국 현지 합작회사인 둥펑위에다기아(東風悅達起亞)는 2일(현지시각) 베이징(北京) 소재 중국대반점에서 중국형 신차 ‘천리마(千里馬)’를 발표하고, 판매에 들어갔다.
천리마는 국내에서 현대차가 94년부터 99년까지 생산했던 소형차 엑센트를 개선한 소형차이다. 배기량 1600㏄급 엔진을 장착했고, 에어컨·가죽시트·CD플레이어·ABS(브레이크 잠김 방지장치)·운전석 에어백 등의 부품을 기본품목으로 장착했다. 가격은 약 10만6800위안(약 1500만원).
둥펑위에다기아는 천리마 출시에 맞춰 영업지역부를 기존 5개에서 10개로 확대하고, 산하 61개 대리점에서 판매는 물론 애프터서비스와 부품공급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기능을 강화했다.
또 중국이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함에 따라 현재 44~50% 수준인 수입관세율이 2006년에는 25%로 낮아지고, 자동차의 수입쿼터도 폐지될 예정이어서 수입차 시장은 폭발적으로 커질 전망이다.
2001년 미국 최대 에너지 기업인 엔론사. 뉴욕법원에 파산 신청
미국 최대 에너지 기업인 엔론(Enron·자산기준 미국 7위)이 14개 계열사와 함께 기업 회생절차인 파산신청을 뉴욕주 남부지방법원에 제출했다. 또 엔론 인수를 막판에 포기한 다이너지에 대해 100억달러 보상을 요구하는 계약위반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에서 엔론의 파산신청을 받아들이면 엔론의 부채상환은 동결되고, 엔론은 법원 관리 아래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하면서 정상영업을 할 수 있다. 현재 엔론은 최소한 168억달러(20조원상당)의 부채를 지고 있다.
엔론은 천연가스업체에서 출발, 에너지 거래사로 획기적인 변신에 성공, 미국 전체 천연가스 및 발전에너지 공급의 4분의 1을 책임지면서 자산이 620억달러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무모한 투자계획과 분식회계 혐의 등 문제점들이 드러나면서 위기를 맞이했다. 엔론은 막대한 사업 확충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주식발행 대신 내부자 거래나 제휴사를 통해 자금을 조달, 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999년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출범. 영국의 25년 통치 마감
북아일랜드 자치정부가 2일 0시(이하 현지시각)를 기해 영국으로부터 통치권한을 공식 이양받았다. 이로써 1974년 이후 계속돼온 영국의 직접 통치는 25년만에 끝나고, 신-구교간 권력 공유의 자치 체제로 들어섰다.
북아일랜드 초대 자치정부는 2일 오후 역사적인 첫 회의를 갖고, 향후 북아일랜드 운영 방향 등을 논의했다. 자치정부 수반인 ‘수석장관’을 맡은 데이비드 트림블 얼스터연합당(UUP) 당수는 “자치정부는 더 이상 협상 장소가 아니다”라면서 “우리는 북아일랜드 주민들을 위해 책임있는 제도를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일 오전 영국의 북아일랜드 담당 장관과 아일랜드 외무장관은 ‘아일랜드 남-북 위원회’ 설치에 관한 문서를 교환했다. 아일랜드 정부는 이어 북아일랜드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헌법 2조와 3조 등 관련조항을 삭제하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의 기·예능보유자 하보경 사망
1997년 9개 종금사 영업정지
1990년 마샬군도, 유엔안보리 신탁통치로부터 독립
1990년 미-소 정상 지중해 몰타에서 함상회담 갖고 냉전종식 선언
1990년 일본인 최초 우주비행사, 소련 우주선 ‘소유즈 11호’ 승선
1990년 12월 2일 발사된 소련 우주선 ‘소유즈11호’ 에 도쿄방송(TBS) 특파원 아키야마 도요히로가 2명의 소련 우주비행사와 함께 승선해 일본인으로서는 최초의 우주비행을 체험했다.
지난 1961년 소련의 가가린 비행사가 인간으로서는 처음으로 우주비행에 나선 21개국에서 2백43명의 우주비행사가 탄생했지만 아키야마는 우주에 파견된 첫 기자로서 지구밖에서 첫 번째 생방송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래서 그가 소속한 도쿄방송은 그에게 우주특파원이라는 사령장을 건네주었으며 그는 8박9일간의 우주특파원 재임기간동안 매일 라디오와 TV에 출연, 우주뉴스를 생방송했다.
일본기자가 우주출장길에 오르게 된 것은 소련정부의 우주상업화전략 덕분이었다. 소련은 1989년에 1천만달러씩을 받고 외국 대기업들에게 우주여행 티켓을 판매했고 이것을 계기로 도쿄방송을 비롯한 일본기업들이 50억엔을 모아 이번 우주쇼를 만든 것이다.
1989년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 몰타회담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1989년 12월 2일 지중해 몰타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가졌다. 회담 후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우리는 미국을 더이상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선언함으로써 반세기 가까이 인류를 짓눌러 온 냉전체제 붕괴의 서막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 역사적 순간을 연출한 주인공은 부시 미국 대통령이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로 공산권에 자유화 바람이 불어 닥치는 시대 상황을 지켜보던 부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군축협상이 1990년에 예정되어 있었지만 부시는 고르파초프에게 여러차례 친서를 보내 회담을 재촉했다. 부시의 노력은 몰타섬에서의 함상 비공식 회담을 이끌어냈다.
이틀간의 회담 후 미소 정상은 3일 소련 여객선 막심 고리키호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세계가 냉전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선언하였다. 이 회담은 실질적 실천에 대한 합의 도출은 없었으나 양국 지도자간의 신뢰를 확인하고 앞으로 상호협력 가능성을 높인 점에서 성공한 회담이었다는 판단이다. 부시는 유럽에 배치된 재래식무기와 화학무기의 대폭 감축과 대소 경제제재 완화를 약속했다. 몰타 회담으로 부시는 냉전 종식을 몇 단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8년 베나지르 부토 파키스탄 첫 여성 총리 취임
베나지르 부토여사가 1988년 12월 2일 파키스탄의 첫 여성 수상으로 취임했다.
1953년 파키스탄 신드州에서 출생한 부토는 총리였던 아버지 줄피카르 알리 부토의 후광에 힘입어 서구문화를 익히며 유복하게 성장했다. 그러나 1977년 아버지가 부하인 지아 울 하크 장군에 의해 축출되고 1979년 끝내 처형되자 그녀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1986년 영국에서 귀국했다. 조국에 돌아온 부토는 부친의 뒤를 이어 파키스탄 인민당(PPP)의 지도자로서 지아 대통령에 대한 맹렬한 반대운동을 주도했다.
총선에 임한 부토의 정치감각은 탁월했다. 선거기간동안 PPP의 기본노선에도 불구하고 반미구호를 중단했고 이슬람교도인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항상 베일을 쓰고 다녔으며 극도로 언행을 조심했다
1984년 인도 보팔에서 가스폭발
미국 유니언 카바이드 사의 살충제공장 지하 가스탱크 폭발, 2시간 동안 유출된 메틸 이소시아네이트 가스 45톤으로 도시초토화, 4주 동안 공중 떠돔
세계 최악의 환경 재해, 사망 6천9백 명 중경상자와 후유증에 시달리는 불구자, 성장이 멈춰 버린 어린이 등 피해 50여만 명
1983년 특정 재래식무기 금지 협약(CCW) 발효
1983년 미국 우주선 콜롬비아호 과학자들 우주서 아연과 알루미늄 합금 성공
1983년 소련 폭격기 9대 독도근해 출현
1982년 스페인 사회당수 수상에 취임
1982년 미국 유타대학 메디컬센터에서 세계 첫 인공심장 이식수술 성공
1980년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 자살
1914년 5월 8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로맹 가리는 13세 때부터 프랑스 니스에 정착해 성장했다. 1934년 파리 법과대학에 입학해 법학을 전공했으며, 이듬해인 1935년 프랑스로 귀화했다.
1935년 2월 15일 단편 ‘폭풍우’가 문예지 ‘그랭구아르’에 당선되며 문단에 데뷔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참전, 전쟁 중에 ‘로맹 가리(Romain Gary)’라는 이름을 사용해 집필했던 첫 장편소설 ‘유럽의 교육’을 1945년 발표, 프랑스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30세 때 레슬리 블랜치와 결혼한 뒤, 프랑스 외교관으로 불가리아, 스위스, 페루, 볼리비아 등에서 체류하며 작품 활동을 병행해 왔다. 그 결과 1956년 장편 ‘하늘의 뿌리’로 프랑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하였다. 또 같은 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프랑스 총영사관 총영사로 발령되었다. 로맹 가리는 미국에서 생활하며 1958년 자신의 소설 ‘하늘의 뿌리’를 영화화한 작품 ‘천국의 뿌리’의 각색에 참여하면서, 할리우드에 입문했다. 그리고 영화 ‘네 멋대로 해라’(1959)의 여주인공으로 미국 여배우 진 세버그를 만나게 되었다.
1980년 12월 2일 로맹 가리는 파리의 자택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1980년 대청다목적댐 완공
* 우리나라 3번째로 큰 댐, 대청댐 *
대청다목적댐은 높이 72m, 길이 495m, 체적 123만 4,000㎥의 콘크리트 중력식댐과 석괴식댐으로 구성된 복합형 댐이다. 금강 하구로부터 150㎞ 상류지점인 대전시 동북쪽 16㎞, 청주시 남쪽 16㎞의 대전시와 충청북도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금강은 우리나라 중부 내륙에서 서해로 흐르는 유로연장 401㎞, 유역면적이 전 국토면적의 약 10%에 해당하는 9,886㎢에 이르고 있다. 대청댐의 주요시설로는 저수용량 14억 9,000만㎥의 본댐과 조정지댐이 있으며, 본댐 주변에는 저수지의 물이 다른 지역으로 넘치지 않게 해주는 3개의 보조댐이 있다. 또한, 대전과 청주지역으로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도수로와 시설용량 9만㎾의 수력발전소가 있다. 이 댐은 1975년 3월에 공사를 착수해 5년 9개월의 공사 끝에 1980년에 완공했다.
1980년 경남 남해도 무장공비사건
1980년 12월 2일 새벽에 일본 영해에 근접한 대마도 서남방 해역과 남해도에서 각각 해상전투와 육상전투가 벌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이 침투시킨 무장 간첩선이 격침되고 특수 공작원 9명이 간첩선과 함께 수장되거나 육상에서 사살되고, 육군 39사단 남해대대의 8중대장을 포함한 아군 3명이 전사하였다
1980년 부여 정림사 터 발굴.
1980년 서해서 고기잡이하던 제2호 태창호 납북
1977년 아랍강경국 수뇌. 반(反)사다트 회의
1975년 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 수립, 왕제 폐지
1972년 남북조절위 본회의 제1차 회의(서울).
1972년 서울시민회관 화재로 53명 사망
1972년 12월 2일 저녁 8시 27분경 서울시민회관에 전기 합선으로 불이나 53명이 소사했거나 질식사했고 76명이 부상했다. 불은 연건평 3천4백32평(지하1층, 지상4층) 중 소강당을 제외한 3천여평을 모두 태우고 2시간 만에 진화됐다.
이날 화재는 오후 6시부터 문화방송국 개국 11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10대 가수들이 청백전을 끝내고 마무리하던 중 무대 뒤쪽에서 일기 시작했다.
국내 최대 공연장인 시민회관이 불길에 휩싸이자 화려한 무대와 회관 안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바뀌었다. 불길이 치솟자 시민회관을 빠져나오려는 관객들이 계단으로 한꺼번에 몰려들어 어린이와 여자들이 이들에 깔려 피해가 더욱 컸다.
1971년 아랍에미레이트연합, 영국으로부터 독립
1968년 신탁은행 개점
1965년 베트 레이더 유도 미사일을 개발한 미국의 물리학자 드라이든 사망
1962년 인도 파키스탄에 불가침조약 제안
1961년 서기연호 사용 법령공포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더불어 ‘연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단기(檀紀)가 공용연호로 채택됐으나 국제조류에 맞춰 다시 서기(西紀)로 돌아와 현재에 이른다.
정부가 1961년 12월 2일 ‘연호(年號)에 관한 법률’을 공포하고 이듬해 1월 1일부터 단기 연호대신 서기를 공용연호(公用年號)로 사용한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밝힌 변경이유는 국내문서와 외교문서가 연호를 달리쓰는 데서 오는 불편, 교육현장에서 느끼는 연대개념의 혼란 등이다.
군주국가에서 군주가 자신의 통치 연차(年次)를 표시하는 연호는 중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사용된 ‘건원(建元)’이 최초의 기록이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도입됐는데 광개토대왕비에 기록돼 있는 ‘영락(永樂)’이 첫 사례다.
마지막 연호는 대한제국 때 순종이 사용한 ‘융희(隆熙)’.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연호 ‘다이쇼(大正)’과 ‘쇼와(昭和)’를 사용하다가 1945년 美군정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서기가 처음 도입됐다.
1961년 MBC 개국
1961년 제3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 개막(프랑스 파리)
1961년 국토건설단설치법 공포
1961년 재향군인회 결성
1961년 세제를 전면 개편(호별세, 교육세 폐지. 재산세 신설)
1956년 카스트로, 체 게바라 등 82명, `그란마호`를 타고 멕시코를 출발해 쿠바섬 상륙. 쿠바혁명 시작
1954년 석공광부 7천여명 파업
1954년 미국, 대만 상호방위조약 조인
1952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당선자 내한
1952년 12월 2일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선거운동 기간 중 발표한 자신의 공약사항을 지키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당선되면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겠으며 한국전선을 직접 시찰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부터 5일까지 4일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전방부대를 두루 시찰했으며 이승만 대통령과도 두차례나 면담, 한국전쟁의 종결방안 등을 긴밀히 협의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한국방문에는 윌슨 국방장관 클라크 유엔군사령관, 밴프리트 주한미군사령관 등이 수행했다. 이한 직전에 기자회견을 갖고 "전쟁을 끝내기 위한 계략도 없고 만병통치약도 없다. 그러나 UN의 위치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할 것이며 또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의 방한은 휴전협상의 지지부진, 전선의 소강상태 등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한국전쟁을 종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1951년 지리산 공비토벌작전 개시
1947년 장덕수 전 동아일보 부사장 피살
1947년 12월 2일 오후 6시 50분경, 우익 민족진영의 최고이론가 설산(雪山) 장덕수가 제기동 자택에서 손님들과 환담을 나누던 중 종로경찰서 소속 경찰관 박광옥과 공범 배희범이 쏜 총탄을 맞고 자택에서 숨졌다.
그는 1918년 여운형·조동우·김규식·선우혁·김철 등과 함께 신한청년당을 조직하고 파리 강화회의에 김규식을 파견해 독립청원을 제출하는 한편, 국내와 일본·노령 등지에 동맹원을 파견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19년 2월 귀국했으나 곧 일본경찰에 체포돼 전라도 하의도에서 거주제한을 당하다 여운형의 ‘도쿄회담’에 통역으로 선정돼 거주제한에서 풀려나기도 했다. 1920년 4월 ‘동아일보’의 창간과 더불어 초대 주필로 활동했고, 이듬해 6월에는 상하이에서 결성된 고려공산당(상해파 고려공산당)의 재무위원 및 국내부 간부로 참여하기도 했다.
1945년 8·15해방과 더불어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외교부장·정치부장 등으로 활약하다 1946년 신탁통치문제로 좌우 세력간에 의견이 상충되자 1947년 9월 김성수와 함께 웨드마이어 특사에게 단독정부 수립이 불가피함을 강조하다 이날 피살됐다.
1946년 이승만 도미. 남한 단독정부 수립 주장
1945년 알바니아 총선(민주전선 압승)
1944년 이탈리아계 프랑스 작가 필리포 마리네티 사망
1942년 시카고대 페르미, 우라늄 핵분열 연쇄반응실험 성공
미국 시카고대 실험원자로에서 우라늄 핵분열의 연쇄반응 실험이 성공했다. 이탈리아 출신 물리학자 페르미의 지도로 행해진 이 지속적 연쇄반응장치의 최대출력은 0.5w에 불과했지만 이 성공은 원자력 이용의 개막을 의미했다.
11월 중순 시카고대 운동장에 실험원자로가 완성되자 천연우라늄과 흑연이 격자모양으로 쌓아올려졌다. 1942년 12월 2일 오후 2시20분 우라늄과 흑연더미는 57층 높이가 됐고 원자로가 마침내 임계(臨界)에 달하자 핵분열의 연쇄반응이 실현됐다.
실험을 지휘한 페르미는 193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을 계기로 미국으로 이주했고 제2차대전이 발발하자 원폭개발계획(맨해튼계획)에 참여, 원폭제조 연구에 몰두했다.
1923년 오페라 소프라노 가수 칼라스 출생
1918년 프랑스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 사망
1915년 원세개 황제를 잠칭
1911년 혁명군 남경 점령
1902년 한국 최초의 극장 협률사, 일반인을 상대로 `소춘대유희(笑春臺遊戱)` 공연
1901년 질레트, 일회용 안전면도기 발명
19세기까지 남성 상징은 수염이었다. 그러나 20세기는 남성 얼굴 에 수염이 없는 세기였다. 이같은 남성 혁명의 일등 공신은 인류 최초 안전면도기를 발명한 킹 캠프 질레트였다. 1901년 12월 2일 세일즈맨 출신 발명가 질레트는 동료 닉커슨과 공동으로 안전 면도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1902년 대량 생산에 들어갔지만, 51개 면도기와 168개 면도날을 파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듬해 질레트는 9만개 면도기와 1,240만개 면도날을 생산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 속에서 생활했던 병사들에게 질레트 면도기가 지급됐고, 종전 후 귀환 병사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대중화됐다. 오늘날 질레트사는 매일 1억2,000만명이 지구촌 각지에서 질레트 면도기 를 사용한다고 자랑한다. 초창기 질레트 면도기 광고는 갓난 아이가 면도하는 그림이었다. 질레트 면도기는 인류에게 대체 개념도 불어넣었다.오늘날 장기 이식 수술은 그같은 `대체 문명`의 최정점을 보여준다.
질레트는 면도기 발명가로만 생애를 마치지 않았다. 공상적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민중의 협동`(1924)이란 책을 통해 경쟁은 비합리적이라면서 민중이 모두 주주로 참여하는 거대 회사를 통해 제품을 생산하는 경제 체제를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이상주의는 면도기만큼 인기를 얻지 못했고, 그 책은 일회용품처럼 잊혀졌다.
1899년 미국-영국 사모아군도 분할협정 체결
1897년 러시아 금본위제 채택
1885년 그리스 작가 카잔차키스 출생
1863(조선 철종 14) 대종교 교조 나철 출생
1823년 먼로 미국 대통령, 고립주의 외교노선 천명
미국의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유럽 열강으로부터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간섭배제를 천명한 이른바 `먼로독트린`을 1823년 12월 2일 의회연설을 통해 발표했다.
먼로는 의회 연단에서 "만약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 어디라도 식민지로 만들려 하거나 아메리카의 어떤 나라든지 억압하고 통제하려 한다면 이는 미합중국의 안전과 평화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될 것"이라고 유럽에 경고성 메시지를 보냈다.
먼로독트린은 스페인의 간섭없이 남미에서 자유무역을 원하는 영국의 전폭적인 지지가 뒷받침됐다. 영국은 당초 불간섭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영미선언 공동발표를 주장했었다. 먼로의 발표에 가장 당혹한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였다. 그는 스페인과 공동으로 군사를 동원해 남미지역에서 일고 있는 혁명바람을 차단할 계획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814년 `새디즘`이란 용어를 낳은 프랑스의 작가 사드 사망
1804년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1804년 12월 2일 교황 피우스 2세가 참석한 가운데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황제 대관식을 가졌다. 프랑스 제1제정(帝政)이 본격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나폴레옹은 1804년 5월 28일 제정을 선포하고 황제에 오른 바 있다.
1769년 코르시카의 아작시오에서 태어나 프랑스인도 이탈리아인도 아닌 회색인의 정체성으로 유년기를 보낸 나폴레옹은 이탈리아어로 ‘황야의 사자’를 뜻하는 그의 이름처럼 프랑스혁명의 물살을 타고 ‘유럽의 사자’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혁명의 탈취자이자 전파자였다. 1799년 브뤼메르의 쿠데타로 제1통령이 돼 군사독재를 펼침으로써 민주주의를 배반했고, 마침내 황제가 됨으로써 프랑스혁명의 공화주의를 부정했지만, 연이은 침략전쟁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자유 평등 박애’라는 프랑스혁명의 이념을 유럽 곳곳에 뿌렸다
1547년 스페인 군인 에르난 코르테스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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