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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디자인은 주역과 사주명리를 통합적으로 강의한 저서입니다.
음양이 상으로 드러난 것이 주역의 팔괘라면, 문자로 표현된 것이 천간입니다.
그래서 팔괘와 천간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때 완전한 앎에 도달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책 속으로
-본서는 현대 과학인 양자 물리학 이론을 주역과 사주 명리학에 접목하여 해석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오류라는 한계를 품은 채 기존의 질서를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양자 물리학적 세계를 보이는 현상의 세계로 가져와 일치시킴으로써 사주명리학의 지적 갈증을 풀어주고 있다.
- 사주팔자(四柱八字)는 음양과 오행이 상호작용을 통하여 펼쳐낸 인사(人事)를 표상합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 양자 물리학적 영역에서 사물을 만드는 기본 요소인 양자장(氣)이 보이는 세계인 현실 영역에서 정의되고 문자로 범주화된 것이 천간입니다. 천간(天干)은 사물의 근원에서 작용하는 음양(陰陽)이 시각적으로 문자화된 것이죠. 상(象)으로 표상된 것이 주역의 팔괘(八卦)이고, 문자화된 것이 사주팔자를 구성하는 간지(干支)입니다. 주역과 사주명리학은 서로 상호관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역을 알면 사주명리학의 지평을 크게 넓힐 수가 있는 것입니다.
- 우리는 현실 세계를 ‘원인과 결과’라는 논리가 지배하는 인과론적 세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식이죠. 그래서 선악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종교가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천국과 지옥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는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불확정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미시 영역의 원자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낸 물체가 바로 거시 영역에 존재하고 있는 ‘나’라고 하는 존재이니, 당연히 거시 영역도 불확정성의 논리가 통행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시 영역에 사는 우리의 인식에는 왜 인과론만이 보이는 것일까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연과 우연과 우연이 모인 확률적 구름을 통해 보편성이 만들어지고, 우리는 그 확률적 보편성을 통해 생성되는 ‘원인과 결과’의 양상을 인과론적으로 해석하고 있을 뿐입니다. ‘원인과 결과’가 거시 세계에서 우리의 눈에 더 잘 띌 뿐이죠. 불확정성이 만들어내는 우연성은 너무 미세해서 잘 보이지 않을 따름입니다. 아마도 광학 현미경으로 바라보면 불확정성의 원리가 작용하는 우연성이 제대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거시 세계에서는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할 뿐, 우연성이 만들어내는 불확실성은 여전히 우리의 곁을 맴돌며 작용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므로 사주팔자를 확정성으로 통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다양한 환경적 조건을 파악하고 상호작용을 통해 다양한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 서로와 서로를 연결하는 원리인 환(環)은 우주에 존재하는 사물들을 그물 같은 관계망으로 구성하여 사물 간의 상호작용, 상호 의존, 상호 관계를 형성하는 공존 시스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물 개체는 독존이 아니라 관계망 속에서 상호 연결되어 타자를 필수적인 구성 요소로 서로 의존하며,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보장받고 있죠. 상대와의 공존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는 것입니다.
- 송대(宋代)의 기론자(氣論者)인 장재가 “고립되어 존재하는 사물이란 없다”라고 했듯이, 우주 만물은 상호 관계망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대립과 화해라는 상호작용을 통해 중화를 찾아가면서 생로병사의 쳇바퀴를 돌립니다. 개인을 규정하는 우주 좌표인 사주팔자도 생극제화(生剋制化)라는 상호작용의 원리로써 중화(中和)를 찾아가며 최고 지향점인 우주적 대조화, 대화(大和)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 세상은 당연히 불평등합니다. 모순으로 가득하죠. 음과 양은 한쪽으로 편재된 상태일 때 상호작용이 일어나지만 완전한 균형을 이루면 상호작용은 멈추게 됩니다. 시소(seesaw)는 완전한 힘의 균형을 이루게 되면 상하작용이 멈춰버리고 말죠. 세상은 근본적으로 불균형과 모순을 숙주 삼아 작용함으로써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라고 하면서 쉽게 좌절한다면 당신은 아직 세상의 이치를 잘 모르는 것입니다.
-간토(艮土☶)가 생명을 품은 감수(坎水☵)를 터치(克)함으로써 생기를 깨우고, 진뢰(震木☳)가 간토(艮土☶)를 터치(克)하는 것은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오행상 목·화(木·火)로 상징되는 선천의 건도(乾道) 세상은 어찌 보면 약탈적 생존으로 비유되는 약육강식의 상극 원리가 작동되는 진화론적 세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반적 성질의 음양은 서로 대립하고 충돌하면서도 상대가 없으면 나도 존재할 수 없는 상호의존적 관계를 맺으며 생존합니다. 음 혼자서 생존할 수 없고, 양 혼자서도 생존할 수가 없죠. 선과 악도 생존하기 위해서는 서로 타협하며 중도를 선택함으로써 함께 공존하는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
악이 득세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
그래서 젊은이들은 세상에 나오면서 직접 부조리한 모순을 몸으로 부대끼며 분노를 느끼게 되죠. 그런데 알고 보면 모순은 오히려 창조적 동인이 되고, 음양의 대립과 화해는 만물의 생성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상극(相剋)의 원리가 지배하는 이러한 선천 건도세상을 자각하지 못하면 평생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라고 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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