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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5일 오늘의 역사
2022년 김민선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202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 스피드스케이팅 챔피언십 여자 1000m에서 1분16초066의 기록으로 우승
2022년 콜롬비아 산사태로 27명 사망
2020년 BTS 빌보드 톱 앨범 세일즈 차트 1위,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 1위
2019년 방탄소년단 빌보드 2019 연말차트 휩쓺,
‘톱 아티스트’ 차트 15위 ‘톱 아티스트 그룹’ 차트 2위 ‘소셜 아티스트’ 1위 ‘월드 앨범 아티스트’ 1위 ‘월드 디지털 송 아티스트’ 1위 ‘인디펜던트 아티스트’ 1위 ‘톱40 투어’ 3위
2019년 김은선 지휘자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단 음악감독이 됨
2018년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김순옥 할머니 세상 떠남
2016년 서울메트로 호칠복 기관사 국내 첫 지하철 100만km 무사고운전
2014년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대한항공 땅콩 회항사건 발생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승무원이 견과류를 그릇에 담지 않고 봉지 째 줬다는 이유로 이륙준비 중인 항공기를 탑승 게이트로 되돌려 사무장 내리게 한 사건
2017.12.21. 대법원은 조현아 부사장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 확정판결
2013년 세계 최초의 흑인대통령 넬슨 만델라(95세) 남아공 전 대통령 세상 떠남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제8대 대통령이자 세계 최초의 흑인 대통령, 흑인인권운동을 비롯하여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의 철폐를 위해 비폭력 저항운동, 무장투쟁운동을 전개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수많은 흑인들의 영웅이다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회장, 199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인종차별 정책을 추진하던 정부에 맞서 운동을 벌이다가 1962년부터 약 27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철폐와 동시에 석방되어, 흑인들의 투표권을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남아공을 이끌었다.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백인사회에 대한 보복하지 않고 화해와 평화, 단합을 주장하여 피 흘리는 일 없이 과거사를 정리했다. 정계에서 물러난 후에도 에이즈 퇴치, 어린이 교육, 아프리카 분쟁 조정 등 사회 공헌 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2013년 김장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
2013년 2017년 U-20 월드컵 유치.
2013년 한국-호주 FTA 협상 실질적 타결 선언.
2010년 '전환시대의 논리'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별세
평안북도 삭주 출신인 리 전 교수는 경성공립학교(현 서울공고)와 한국해양대를 졸업했으며 영어 교사로 일하다가 6·25전쟁 때 통역장교로 입대해 7년간 복무했다. 전역 후 합동통신(연합뉴스 전신)에 입사하면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1965~1971년 조선일보와 합동통신 외신부장을 지낸 뒤 1972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옮겨 1995년까지 재직했다. 하지만 1976년 해직된 후 1980년 복직됐다가 다시 해직되는 등 8년간 교단을 떠나야 했다. 그는 또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및 비상임 이사, 민주개혁국민연합 상임고문,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고문 등을 역임했다.
늦봄통일상, 만해대상(실천부문), 심산상, 단재언론상, 한겨레통일문학상, 후광김대중문화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2007년 개성 관광 시작
2000년 탤런트 최진실과 프로야구선수 조성민 선수 결혼
탤런트 겸 영화배우 최진실(32)씨와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팀 투수 조성민(27)씨의 결혼식이 서울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1300여명의 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화려하게 열렸다.
결혼식은 몇 차례의 편지 낭독과 한·일 톱가수의 축가로 짧은 공연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결혼식이 끝날 즈음 최진실씨는 어머니 정옥숙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내가 없는 집에서 외롭게 지낼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온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2000년 오페라 ‘영웅 이순신’ 이탈리아에서 초연
한국과 이탈리아의 합작 오페라 ‘영웅 이순신(L`erioco Yi Sun Sin)’이 2000년 12월 5일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로마의 ‘테아트로 델 오페라’에서 막을 올렸다. 이날 극장을 찾은 1400여명의 이탈리아인 초청 관객들은 장면이 바뀔때마다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성곡오페라단에 의해 이탈리아어로 무대에 올려진 이 작품은 기존의 오페라 ‘이순신’을 곡 자체를 새로 쓰는 등 재창작에 가까울 정도로 뜯어 고친 것이다. 작곡은 브루크너의 유족들로부터 위촉받아 그의 교향곡 제9번 피날레 부분을 공동으로 재작곡한 바 있는 이탈리아인 작곡가 주세페 마주카와 니콜라 사말레 등 2명이 맡았다. 이날 무대에서 주역은 한국인과 이탈리아인이 고루 맡았다. 첫날 공연에서 이순신역은 클라우디오 디 세니, 부인역은 토리 롬바르도지 클라우디오, 기생 초월역은 카티아 마르티나, 선조역은 류현승, 원균역은 김승철 등이 맡아 호연했다.
오페라 ‘이순신’은 1998년 이순신 장군 순국 400주년을 기념해 충남 아산시 현충사에서 초연된 이후 1999년 서울 국립극장 등 전국 각지에서 순회 공연됐다.
1997년 고려증권 영업 정지
증권업계 제8위(약정고 기준)의 대형 증권사인 고려증권이 외환, 상업, 한일 등 3개은행에서 돌아온 어음 15장 1천7백50억원 어치를 막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됐다. 이에 따라 증권관리위원회는 긴급 회의를 소집해 고려증권의 영업을 정지시켰다.
고려증권은 그동안 매일 콜자금을 끌어다 부족자금을 메워 연명해 왔으나 담보부족사태에 직면한데다 콜자금 차입을 위한 보증처를 구하지 못해 이날 결국 최종 부도처리됐다. 증관위는 그러나 증권투자자 보호기금을 활용해 고객들이 고려증권에 넣어둔 예탁금은 갚아주기로 결정했다.
1995년 노태우 전대통령 재벌총수 등으로부터 2,838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1994년 유럽안보협력회의, 헝가리 부다페스트서 개막
1993년 라파엘 칼데라,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당선
1993년 12월 5일 실시된 남미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선거에서 지난 1969년∼74년 집권했던 라파엘 칼데라 후보(77)가 당선됐다. 칼데라는 지난 1946년 자신이 직접 창당한 기독민주당(COPEI)에서 당권경쟁을 벌이다 1993년초 축출된 이후 `수렴운동`이라는 신당을 창당, 대권도전에 성공해 25년 만에 다시 권좌에 오르게 됐다.
베네수엘라의 농업 중심지인 야라쿠이주 산 펠리페시에서 태어난 칼데라는 중부베네수엘라대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 잠시 대학에서 사회학과 노동문제를 가르쳤다. 지난 1946년 기독민주당(COPEI)을 창당했으며 COPEI 후보로 다섯차례 대통령 선거에 출마, 지난 1968년 처음으로 승리한 뒤 1974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칼데라는 지난 1958년 베네수엘라의 마지막 군사정권 지도자인 마르코스 페레스 히메네스가 물러나자 사회민주행동당 지도자들과 신생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협력키로 하는 `푼토 피효 조약`의 산파역을 맡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칼데라는 지난 1969년부터 1974년까지의 대통령 재임시절 좌익세력의 반란을 강력 진압한 데 이어 경제여건도 견실하게 만들어 후임인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에게 정권을 넘겼다.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했던 칼데라는 1993년 2월 두차례의 불발 쿠데타 발생 후 현 정치체제를 강력히 비판하며 다시 정치일선에 복귀했었다
1991년 부시 미국 대통령, 국방부에 미사일방위체제 개발 위임하는 법안 서명
1988년 금리자유화 실시
1988년 강영훈 국무총리 서리 취임
1984년 대만 이쿤 탄광에서 가스 폭발. 95명 사망
1983년 금강 하구 둑공사 착공
1982년 아랍연맹 사절단 중국방문
1981년 한국 최초의 TV 공익광고 방송
1981년 루마니아에 동구권서 첫 반핵시위
1980년 바르샤바조약국 모스크바서 정상회담. 동맹국의 결속 강화
1978년 황룡사 터에서 최대 치미 발굴
1975년 영동선 완전 전철화 개통
동서를 관통하는 영동선 전철이 1975년 12월 5일 개통됐다. 철암-북평(61.8km)과 고한-증산(23.7km) 간 전철의 개통으로 산업선인 중앙, 태백, 영동선 320.8km 전구간이 완전전철화되어 무연탄, 시멘트, 철광석 등 각종화물의 신속한 수송에 크게 기여하게 됐다.
영동선은 1972년 12월 6일 내자 24억원과 외자 8백만 달러를 들여 산악지대의 난공사를 극복하고 3년 만에 완공됐다.
영동선의 개통으로 구걸리-북평간의 경우 급행열차는 운행시간이 종전 8시간에서 7시간 10분으로 50분이, 화물열차는 12시간 20분에서 9시간 10분으로 3시간 10분이 각각 단축됐다. 화물수송능력도 하루18회 운행에 연간 187만t이던 것이 28회에 372만t으로 증가, 연간 185만t을 더 수송했다. 철도청은 전국철도화물소송량의 40%를 감당하고 있는 이 선로에 24량의 전기기관차를 더 도입, 모두 90량을 운행했다.
1970년 소련 지식인 30여명, 제헌 34주년 맞아 침묵데모
1968년 국민교육헌장 선포
1968년 12월 5일 제3공화국 정부는 한국의 교육 지표를 제시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선포했다. 국민교육헌장은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자각하는 이상적인 국민상을 제시하고 새로운 국민 윤리를 확립하며, 그와 같은 사회적 이상의 실현이 곧 국민 교육의 새 지표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민족주의의 이상과 협동적 사회 윤리 및 발전지향적 가치관을 강조했다.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은 국민교육헌장을 한 자도 빠짐없이 외워야 했다. 박정희의 추종자들은 남달리 교육에 대한 애착과 열의를 가지고 있던 박정희가 인적 자원 개발을 위한 의지의 표현으로 이 헌장을 발표했다고 주장하지만, 정권 유지 차원에서 일제의 교육에 관한 칙어를 이름만 바꾸어 놓은 것이라는 비판이 줄곧 대두되어왔다. 1978년 전남대학교 교수들이 국민교육헌장으로 대표되는 박정희 정권의 교육정책에 반발하며 '우리의 교육 지표'를 선언하여 투옥되거나 해직당했다
1965년 미국의 생리학자 조셉 얼랜저 사망
1962년 계엄령 해제
1961년 청계천 복개공사 완료, 개통
1961년 12월 5일 오간수교에서 청계천 복개도로 개통식이 열렸다. 서울시장은 4년동안에 걸친 오랜공사기간 동안에 공로가 많은 지방기사 공하영 씨 등 5명의 시건설국 직원에게 표창장을 주고 대림 산업대표 이석구씨에게 감사장을 전달한 후 "한양천도 560여년 동안의 바램이 이제 이루어 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서울의 심장부를 꿰뚫고 흐르던 청계천이 덮임으로써 도시미관으로나 시민의 보건 위생상 또는 교통난 해결 등에 큰 도움을 주게됐지만 5세기 동안 개천과 더불어 내려온 시정과 천변풍경의 아취도 함께 묻어진 것이었다. 식이 끝난 후 평화시장3층 점포 끝과 전차차고 사이를 연결한 오색 테이프가 끊기고 이날부터 이 길을 다니게 된 버스와 택시가 첫길을 텄다.
1961년 서울 영등포서 폭탄 폭발 어린이 11명 사망
1961년 제1회 수출의 날 기념일
1961년 미국 새 대외원조기관(AID) 발족
1961년 주(駐)콩고 유엔군, 카탕카군과 충돌
1960년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 원각사 화재
1957년 소련, 최초의 원자력 쇄빙선(碎氷船) 레닌호 진수
1957년 국회 동성동본금혼안 통과
1952년 영국 런던에 스모그 현상(-12.9) 4,000여명 목숨 잃음, 원인은 자동차배기가스
1946년 북한 북조선통신사(조선중앙통신사 전신) 설립
1945년 군사영어학교 설치
1940년 영국-터키 통상협정 조인
1936년 소련, 스탈린헌법 채택
1933년 미국 금주법 14년 만에 해제
1933년 12월 5일 미국의 유타주가 금주법을 정한 수정헌법 제18조를 무효화하는 수정헌법 제21조를 36번째로 비준함으로써 미국의 4분의 3에 달하는 주(州)가 금주법을 폐지해 역사상 유례가 없던 ‘금주시대’가 미국에서 막 내렸다.
0.5도 이상 알콜이 함유된 술은 제조도, 운반도, 판매도 안된다는 ‘금주법’이 시행된 것은 14년 전인 1920년 1월 17일. 하지만 구입과 음주는 금지하지 않아 뉴욕의 경우 금주법 시행 전에는 1만5000개이던 술집이 금주시대에는 3만2000개로 증가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금주법은 교회를 중심으로 한 금주운동세력의 입김과 독일계 양조업자에 대한 반감이 작용해 시작됐다. 술을 들고 밖으로만 나가면 초범도 벌금 1000달러에 6개월 금고형에 처해졌다. 평범한 시민들이 범죄자로 내몰렸고 암흑가 조직이 급성장했다. 금주법으로 조성된 막대한 ‘검은 돈’은 정치인과 부패 경찰의 주머니를 채워줬다. 알 카포네로 대표되는 마피아 조직은 밀주(密酒)와 밀수를 통해 밤을 지배했다. 시카고 대학생들은 알 카포네를 간디·포드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걸출한 10인’으로 뽑을 정도였다. 칵테일이 생긴 것도 이때였다.
1930년 영화 `서부전선 이상없다` 독일에서 개봉
1926년 프랑스 화가 모네 사망
식품 잡화상의 맏아들로 태어난 모네는 5세 되던 해 가족과 함께 노르망디 해변 근처의 생트라드레스로 이사해 유년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바다와 함께 지낸 그곳 생활은 그에게 자연에 대한 참신한 통찰력과 자연광선에 대한 그의 재능을 일깨워주었다.
1859년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한 모네는 그곳에서 뒷날 ‘인상파’라고 불리게 될 화가들과 교유하며 지내다 1870년 프로이센과 프랑스간에 전쟁이 발발하자 런던으로 피신해 터너, 콘스터블 등 영국 풍경화가들의 작품을 접하고 그들의 명쾌한 색채표현에 반했다. 모네를 포함한 인상파가 지향한 것은 자연을 하나의 색채현상으로 보고, 빛과 함께 시시각각 변화하는 색채의 미묘한 질감속에서 자연을 묘사하는 것이었다.
1874년 파리에서는 이들의 첫 그룹전인 ‘화가-조각가-판화가-무명예술가협회전’이 열렸는데, 모네의 이 전시회 출품작 가운데 하나인 ‘해돋이-인상’에서 힌트를 얻어 어느 기자가 ‘인상파 전람회’라는 기사를 쓴 것이 ‘인상파’라는 이름의 기원이 됐다.
1925년 니카라과 독재자 데바일레 소모사 출생
1917년 러시아-루마니아 휴전
1916년 헝가리 지휘자 리히터 사망
1911년 청(淸) 위안 스카이, 북경정부 전권 장악
1909년 대한협회 등의 단체, 원각사에서 한일합방론을 통박
1906년 작곡가 안익태 출생
1901년 독일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출생
1901년 월트 디즈니 출생
신문배달 고학, 1925년(24살) 첫 아카데미상, 1932년 최초의 3원색 색채만화 ‘숲의 아침’으로 아카데미상, 아카데미상 가장 많이 받음(26개, 경쟁 부문 22 공로상 4)
1876년 미국 브루클린 극장 화재. 295명 사망
1870년 프랑스 작가 앙리 뒤마 사망
1867년 폴란드의 초대 대통령 파우수트스키 출생
1833년 의병장 최익현 출생
1830년 영국 여성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 출생
1791년 모차르트 사망
오스트리아 작곡가 모차르트가 1791년 12월 5일 사망했다. 어렸을 때부터 재능을 나타내어 4세 때 건반 지도를 받고 5세 때 소곡을 작곡했다. 그의 뛰어난 재능을 각지에 알리기 위해 당대에는 꽤나 유명한 궁정음악가였던 아버지가 계획한 여행은 그가 작곡가로서의 활동에 커다란 자극과 영향을 주었다. 특히 서유럽을 일주하면서 파리에서 알게 된 J.슈베르트, 런던에서 알게 된 J.C.바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771년까지는 주로 잘츠부르크에 머물면서 미사곡과 사교적인 작품을 많이 작곡하였으나 1780년말 뮌헨궁정으로부터 오페라 상연을 의뢰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아버지의 반대와 사표의 반려에도 불구하고 잘츠부르크를 떠나 빈에서 거주, 그의 후반부 작품세계가 시작됐다. 빈에 머무는 동안 작곡한 교향곡이나 현악4중주곡은 하이든의 것과 함께 고전파시대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확립하는 작품이 됐다. 이시기에 작곡한 작품으로 `피가로의 결혼`(1786) `돈조반니`(1787), 3대 교향곡 `제39번 E장조``제40번 G단조``제41번C장조:주피터교향곡`이 있다.
1791년 9월 징그슈필의 대작 `마적`을 완성하여 성공을 거두었으나 잦은 여행으로 인한 건강악화와 경제적 궁핍으로 `레퀴엠`을 미완성인 채 남겨두고 이날 빈에서 36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36년을 채 채우지 못한 모짜르트의 삶은 `천재적인 것`의 온갖 세속적 징표들로 가득했다. 조숙, 범절에서의 일탈, 가난, 요절 등이 그 징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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