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강아지는 잘 지내니?
주변에서, 사료만 먹어야 강아지가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고 말해줬지만 그게 잘 안 돼요. 특히 페리가 미국에서 돌아오면 '타이슨'은 몸무게가 늘어요. 제 대신 밥도 챙겨 먹이고, 똥도 치우고, 여간 예뻐하는 게 아니에요. 숙소에서 나오면서 사무실에 맡겼어요. 끝나면 다시 찾으러 가야죠./테디
스튜디오 앞 건물 주차장에는 이미 많은 차들로 마땅히 주차할 공간이 없어 보였다. 멤버들을 태운 벤 승합차는 주차할 곳을 찾아 몇 분 동안 건물 앞, 골목을 탐사하다가 결국 주차장으로 돌아와 차도와 인도를 구분해놓은 갓길 위에 나란하게 주차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애써 시간을 들여 손질한 멤버들의 헤어스타일이 망가질까 봐 염려하는 코디네이터. 지하의 스튜디오에서 낯익은 스텝들과 마주친 멤버들은 예의 그 정중한 목례(상대방이 부담이 느낄 정도의)로 인사하며 파우더 룸 소파에 기대앉았다. 남은 건 사흘 뒤의 컴백무대. 뮤직비디오 촬영도 모두 끝냈고, 이제는 숨을 가다듬는 일만 남아있었다. 서울, 스튜디오, 인터뷰랄 것도 없는 컴백 직전 마지막 근황 스케치.
One Love에는 왜 그렇게 적어? 이번 앨범에서 랩 많이 했니?
네… /진환
너의 랩은 다른 멤버들에 비해 튀는 편이야
재미있지 않아요 형? 이번 앨범에는 녹음 스타일이나 목소리에 멤버별 개성을 확실하게 담아냈다고 생각해요. 색깔이요. /진환
뮤직비디오 봤어. 예술이더라.
고마워요/진환
포토그래퍼는 스트로보 조명의 강약과 빛의 노출도를 측정한 다음 카메라를 든 채로 멤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스튜디오 촬영준비가 끝났다는 일종의 사인. 촬영 컨셉은 간단했지만 진행과정은 의외로 까다로웠고, 제법 시간이 오래 걸렸다. 컴백에 포커스를 맞춰, 1집 활동이나 Y.G 패밀리 활동 이후에 바뀐 멤버 개인의 스타일에 주목하고 심플한 느낌의 흑백 그룹 컷을 촬영할 예정이었다. 점심식사를 건너 뛴 멤버들의 요구에 따라 밖으로부터 햄버거 따위를 담은 맥도널드의 종이 봉투 큰 사이즈 두 개가 냄새를 풍기며 공수되어 왔다. 촬영은 이후에도 잠깐잠깐 중단되었다가 대니와 송백경의 CD 케이스에서 나온 음악과 함께 다시 시작되곤 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시안(試案)에 따른 촬영이 모두 끝났고 코디네이터들은 아름드리 뚱뚱해진 의상가방을 나누어 들고 제일 먼저 스튜디오를 빠져나갔다.
다시 녹음한 타이틀곡이 처음 것 보다 낫다고 생각하세요?/백경
원곡에 익숙해져서 처음에는 잘 몰랐었는데, 들을수록 매력이 있는 것 같아.
구체적으로 어떻게요?/백경
뭐랄까…. 추가된 후렴 부분 때문에 곡이 훨씬 대중적이고 하이라이트를 지니게 됐다고 할까? 1TYM 팬들은 아주 좋아할 것 같은데…, 발라드 색이 짙다보니 1집 때처럼 또 한번 도마 위에 놓여지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1TYM은 그런 생각 안 해봤어? 어떻게 생각해?
발라드 성향이 강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2집 앨범에 대해 '이게 힙합이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팬들이 있다면 그들의 인내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그런 문제제기는 지겨울 때도 됐지 싶은데…. 힙합이 얼마나 다양한 음악인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그런 말들을 하는 거겠죠. 네버 마인드에요…/진환
대니는 타이틀곡 마음에 드니?
테디가 너무 좋은 곡을 만들어 줬어요. 정말 마음에 들고 빨리 무대로 돌아가 팬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요. 그런데 후렴부분이 너무 고음이에요. 김종서씨가 만들어서(웃음)…/대니
테디는 이번 앨범에서 어떤 곡이 가장 좋으니?
저 개인적으로 봤을 때요? 9번 트랙이요./테디
마스터 CD 녹음 해 놓은 것 지금 갖고있지? 9번 듣자….
1TYM의 연습실을 찾은 BOUNCE.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쾌지나 칭칭'의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하이테크가 연습 중인 모양이었다. 우리는 키폰 전화기가 놓여 있는 그 옆 사무실에 자리를 잡았다. 나무 바닥과 진열장, 텔레비전과 오디오가 놓여 있고, 티 테이블과 소파, 업무용 책상 세 개가 보기 좋게 배치되어 있는, 여느 사무실과 다를 것 없는 실내. 컴백 첫 방송(SBS 인기가요/4월 23일)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으므로 대부분이 긴장해 있는 듯 했다. '1년여만에, 큰 성공을 거두었던 데뷔앨범 이후에,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는 일은 그 만큼 부담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준비할 게 많지만 뜬눈으로 기다려지는 축제처럼, 커다란 즐거움을 동반한다'고 그들의 매니저는 말했다.
이게 무슨 맛이죠?
복숭아 맛이에요. 괜찮은가요?/이진석(매니저)
예. 맛있어요.
CD가 나오려면 닷 세 정도 더 기다려야 한대요/이진석
컴백하면 정신없으시겠어요.
그래도 얼른 했으면 좋겠어요./이진석
예. 이해해요…. 1집 앨범이 정확히 얼마나 팔렸죠?
31만장 조금 더 나갔죠/이진석
'향해가'를 다시 들었다. '때가 왔네! 지금 기회야! 한번 찍지 안 되면 두 번 찍지 올라가지 못하면 다 때려 부시지 다만 그럴 필요 없지…' 유리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녹음기의 마이크에 '향해가' 전곡이 스며들었다. 성능이 너무 좋아서 탈이었다. 매번 느끼지만 저만치서 누군가 전화기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나 옆방의 음악소리, 온갖 미세한 주변의 잡음을 모두 잡아내고야 만다. 그래서 테이블 위에 무언가를 내려놓을 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재떨이나 컵을 내려놓을 때 '딸깍'하고 부딪히는 소리는 마이크를 통해 '증폭 녹음'되어 듣는 사람의 귓속에 컴퍼지션 폭약 50그램이 터질 때 들리는 굉음을 전달한다. 매니저는 아이스 티 몇 잔을 준비해 테이블 위에 '딸깍 딸깍 딸깍' 올려놓아 주었다.
활동 시작하면 이제 눈코 뜰 새 없겠네? 또다시 이런 휴식이 기다려지겠지?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어서 무대에 오르고 싶어요. 활동을 하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어요. 무대는 마약 같은 거예요. 자꾸만 무대 위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무대 위에 오르기 전의 떨림, 저는 그게 정말 기다려져요/대니
정말 때가 되었나보군…
1TYM 1집의 성공은 1TYM만의 성공, 그 이상의 의의를 지닌다. 그것은 Y.G의 성공이기도 하며, 오버그라운드 힙합 씬에게 확신을 가져다주는 자료이다. 데뷔 곡 1TYM의 대중적이면서도 강렬한 사운드나 미국파 멤버 테디, 대니의 랩과 노래 실력, 그리고 송백경이라는 싱어송 라이터, 힙합 댄서에서 멤버로 합류한 오진환…. 그러한 일련의 결과물 혹은 라인업이 만들어 놓은 작품, 1TYM의 1TYM이 가요순위 차트 정상을 차지하고 31만장이 넘는 앨범 판매를 기록한 일은 인기 댄스 그룹 일색이었던 당시의 가요 판에, 힙합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지를 입증하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일 예로 단 한 장의 앨범 활동으로 한동안 언더그라운드의 표적이 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부분이다. 오버그라운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노래한 언더 아티스트의 가사라 할 지라도 대중적인 성공이나, 그에 견줄 만한 음악적 성과가 없었다면 아예 그 비판 대상(List)에도 오르지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반증 말이다.
여명의 앨범에 참여한다며?
예. 참여해요/테디
피처링하는 건가?
저희도 오늘 그 얘길 들었는데, 아직까지는 '참여하게 됐다'는 얘기 말고는 들은 게 없어요. 여명이 Y.G 음악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적극적으로 여러 차례 연락을 해왔었다는 얘긴 들었어요. 지난 번 콘서트 때는 현석이 형을 VIP 초청하기도 했었고…/테디
비디오테이프와 도자기로 만든 돼지 저금통, 헤어스프레이 따위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진열장 옆에 스크랩되어지길 기다리는 4월호 월간지가 잔뜩 쌓여있었다. 하이틴 연예지와 패션지. 어떤 것의 표지에는 우수꽝스러운 표정의 1TYM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것들을 티 테이블로 옮겨놓는 송백경. 돌아가며 한 권씩 펼쳐보았다. <크로스오버 힙합으로 돌아 온 원타임> <자유로운 네 악동이 돌아왔다> <1TYM in 힙합잔치> <원타임과 함께라면 힙합 마저도 감미롭다> <컴백 도킹 완료> <성숙버전 2집 앨범 대박 예감!> … 어떤 잡지는 BOUNCE 1월호에 실렸던 사진을 '흡수' 그리고 '통일' 시킨 뒤,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최초공개! 녹음실에서 우리는…'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기도 했다. '우리 매체를 통해서만 최초!'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아무튼 각종 기사의 메인 카피만 눈여겨보는 것으로도 시간이 꽤 걸렸는데, 검지 손가락이 아플 정도인데, 마감일정에 매여 앨범에 대한 정보도 없이 기사 작성하느라, 머리털 빠졌을 담당기자들의 수고를 독자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바램…. 공치사일 망정.
'뭉치' 어디 갔다 왔어?/대니
'타이슨' 저 녀석은 주인을 보고 아는 척도 안 한다니까…/테디
진환이도 집에 강아지 있다고 했나? 이름이 뭐지?
'핑키'요. 핑키…. '뭉치'처럼 마르치스에요./진환
핑키는 어떻게 생겼을까?
저하고 똑같이 생겼어요/진환
누군가 방문할 때 들리는 출입문의 벨소리. 곧이어 '산책' 나갔던 랩 하는 강아지 두 마리가 돌아왔다. '산책 도우미'가 그들을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대니의 마르치스 '뭉치'가 주인을 보고 달려왔다. 테디의 미니어처 닥스훈트 '타이슨'은 정년 퇴직한 할아버지처럼, 천천히 실내를 한바퀴 둘러 본 뒤에 '아무런 이상이 없군!' 뚱한 표정으로 바닥에 엎드렸다. '소리 꺼짐' 능력을 발휘 중인 텔레비전의 케이블에서는 메이저리그 야구중계가 한창이었다. 갑작스런 야구얘기가 뜬금 없지만, 음악을 한다는 것과 그것은 비슷한 점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이저리그나 국내리그 할 것 없이, 지난 시즌의 신인왕은 새로운 시즌에 대한 걱정으로 밤잠을 설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나만은 그럴 리 없어…' 스스로를 위로하는 일 또한 잊지 않는다고 한다. 야구는 기록경기. 시즌이 긴 만큼, 팬들의 지루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아주 사소한 기록까지도 제공한다. 작년의 신인왕이 징크스에 허덕이는지, 극복했는지, 낱낱이 공개될 뿐 아니라, 선수 자신은 스토브리그 동안 얼마나 개인훈련을 철저히 했는지에 따라 한 시즌 내내 자기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에서 승리하거나 혹은 패배하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멋있는 룰(Rule)이고, 아이디어(Idea)이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게임(Game)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페어플레이가 더해지고, 잘 하면 박수 쳐주고 못 하면 위로해주는 선의의 경쟁 선수들이 있고, 끝까지 함께 즐기고 지켜봐 주는 진정한 팬까지 함께 한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라는 생각…. 힙합이, 그리고 음악을 한다는 것이 결코 야구와 같은 게임은 아니지만, '페어플레이'와 '선의의 각축을 도모할 수 있는 경쟁자'와 '진정한 관중'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프로'들을 위해 공통적으로, 그리고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느 한 사람만의 마인드가 되어서는 안 되며 힙합 아티스트들의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고, 그 선구자적 역할을 하는 팀 중에 1TYM도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