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가을 그 사이 어느 날
슈퍼태풍 힌남노가 세력이 약해지면서 큰 탈 없이 지나갔다. 비도 간밤에 과하지 않게 내렸다. 태풍이 지나간 아침, 바람도 없다. 하늘에 구름만 가득하고 말끔하게 세수한 하늘이 말간하다. 공기도 상큼하고 더러운 먼지도 싹 쓸어갔다. 닫아놓았던 창문을 다시 열어놓고 깨끗한 공기를 집안으로 들여왔다. 어쩜 하늘이 저렇게 예쁠까? 보고 또 보고 하늘만 보고 있어도 행복한 아침이다.
모처럼 시내로 추석빔을 사러 나갔다. 작은 성의 표시로 가족에게 양말이라도 선물하려고 날씨만큼 화창한 기분으로 외출했다. 예쁜 옷으로 골라 입는다고 했건만 오늘도 즐겨 입는 원피스 타입의 옷을 골랐다. 누가 보면 단벌 신사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디자인이 특별한 옷을 입는다. 내 체형과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나만의 스타일이다. 팔공산 어디쯤 카페에서 노교수님과 차를 마시면서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가 ‘김 선생은 천생 시인일세, 무엇보다 특별히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옷으로 자기만의 색깔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지. 라고 하셨다. 가만 생각하면 맞은 말씀이다. 머리 스타일도 긴 머리의 자연스러운 웨이브를 좋아한다. 그리고 언제나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한다. 대인관계에서 첫인상을 좋게 남기는 나만의 처세술이다.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으면 하루 행복하다. 자신감도 생기고 언제나 당당하게 행동하고 누구를 만나든 웃는 낯으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준다. 하지만 옷에 대해서 너무 편애하는 경향이 있어서 골고루 사랑을 나누려고 노력한다, 어느 특정한 옷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사랑은 보는 이도 질리게 할 수 있다. 집착은 사람에게도 물건에도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양말을 샀다. 과하지 않게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출 수 있는 선물을 준비한다. 받는 사람도 부담이 없고 주는 사람도 기분 좋게 줄 수 있는 행복한 선물을 준비한다. 개인적으로는 손수건과 양말을 평소에도 자주 선물한다. 내가 지치거나 슬퍼질 때. 마음이 가난해질 때 좋은 사람에게 선물한다. 케이크도 자주 사주고 꽃도 사주고 양말이나 손수건을 선물한다. 함께 사는 가족에게도 작은 것이지만 가방에 몰래 넣어주거나 잠자는 머리맡에 둔다. 누군가의 산타가 되는 일은 나를 행복한 부자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아버린 나이가 되었다.
쇼핑을 마치고 경산의 ‘엄마 품 같은 연못’ 남매지를 걸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난 후라서 그런지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아기랑 걷는 소담길이라는 이름이 정겨운 산책길을 걸었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커피를 마시며 산책하는 젊은 엄마를 보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엊그제 같은 시간이 벌써 흘러가서 추억이 되었으니 세월이 참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하늘에는 솜사탕 구름이 가득하다.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넓은 연못을 설렁설렁 걸었다. 단정하게 정돈이 된 산책길이며 쉼터 의자며 산책하러 나온 사람 모두가 한가로웠다. 연못에는 연꽃이 드물게 남아서 아쉬운 여름 향기를 전해주었다, 은사시나무 곁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나뭇잎이 보내는 초록 문자에 답을 보내면서 여름과 가을 그 사이 어느 날을 한가롭게 걷고 있었다. - 2022년 9월 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