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이 내린 秘境... 야생화, 용아장성, 그리고 천불동 계곡
☞산행일자: 2022년 07월 29일~30일(무박산행)
☞산행날씨: 오전에 맑은날씨...오후에 흐림
☞산행거리: 도상거리11km + 8.5km / 11시간 55분소요
☞참석인원: 안내 산악회 따라서 나홀로 산행
☞산행코스: 한계령-설악루-위령비-1,306.3m봉-안부-1,292m봉-암봉-귀때기청봉 갈림길
안부-1,324m봉-쉼터-쉼터-1,450m봉-1,454.9m봉-암봉-안부-1,464.8m
1,472m봉-1,460.7m봉-쉼터-1,504m봉-끝청봉-암봉-안부-이정표-대청봉갈림길
중청대피소-헬기장-대청봉-부처바위-중청대피소-다시 대청봉갈림길-전망대
소청봉-봉정암 갈림길-쉼터-조망바위-암봉-조망바위-깔딱고개-쉼터-희운각 대피소
전망대-무너미 고개-쉼터-와폭-천당폭포-양폭포-양폭대피소-오련폭포-귀면암
잦은바위골 입구-금강굴(마등령)갈림길-비선대-와선대-군량장-설원교
이름모를 자유용사의 비-신흥사 갈림길-금강교-통일대불-신흥사 일주문
설악산 소공원
☞소 재 지: 강원도 양양군 서면 / 인제군 북면 / 속초시 설악동
연일 상한가를 치고있는 폭염에 정말 힘이든다.
이번주부터는 휴가 계획을 잡고 있는데(사실 맨날 휴가인데) 마땅히 갈 곳도 없다.
동네 친구들이 2박 3일간 남해안으로 골프나 갔다오자고 하는데
잔디에서 올라오는 열기에다 내기하여 돈을 잃어면 그것도 스트레스다.
당일치기면 몰라도 2박 3일간 골프 가면서 산행을 빠진다는 건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닐것 같아서 포기를 하고 금요일 저녁에 후배가 소개해준 산악회를
따라서 설악산을 가기로 한다.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설악산은 좀 나을것 같은 막연한 호기심에...
이 산악회는 내가 가끔 산악회와는 달리 회비(엄청나게 쌈)만 받고 장수대,한계령,
오색약수에다 내려주고 뭔 짓거리를 하던지는 각자의 사정이고, 17시까지
설악산 소공원 C지구 식당에서 무조건 출발하며, 산행대장도 없고, 지도 한장은
고사하고, 하산후 밥과 물 한잔도 안주는 산악회이다...엄격하게 보면 산악회라기
보다는 관광버스를 운행하면서 버스비에서 이익을 챙기는 산악회인 모양이다.
난생 처음 이 산악회를 따라서 금요 무박으로 가는데 아는 사람도 한명도 없다.
물론 알 필요도 없지만 각자의 나름대로 산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사람인 듯하다.
밤 11시 30분에 신사역에서 출발하는데 출발시간을 1분도 안 늦게 정확하게
출발하여 인제읍내에 있는 하늘내린 호텔 주차장에서 30여분간 휴식을 취한
다음에 2시 30분에 장수대, 한계령에 정차하여 산꾼들을 내려주고는 가버린다.
한계령에 내리니 악명 높은(?)은 바람은 온데간데 없고 서울보다는 덜하지만
이곳도 덥다...바람한 점 없는 날씨이기는 하지만 습도는 별로없고 견딜만하다
하늘에는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것만 같은 느낌인데 한계령 광장에는
새벽 3시에 출입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산꾼들이 꽤나 많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한계령 (寒溪嶺:920m:02:35)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북면과 양양군 서면을 잇는 고개로 대청봉과 그 남쪽의 점봉산을
잇는 설악산 주 능선의 안부이며,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의 분수령을 이루며, 과거에는
양양군에 해당하는 산을 설악산이라 하고 인제군에 해당하는 산을 한계산이라 했다.
고개의 이름은 한계산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산도둑이 들끓어, 해가 지면 이 고개를 넘지 말라는
뜻으로 고개의 길목인 양양군 서면 오가리의 길 옆 바위에 금표라고 새겨두었다.
지금도 그곳에 바위가 있으며, 한계령에 오르는 길에는 금표교가 있다
일명 재내·와천이라고도 하며, 고개의 동해쪽 사면으로는 경사가 급하고,
오색을 거쳐 양양을 지나 동해로 흘러드는 남대천의 계곡으로 이어진다.
서쪽은 북한강의 지류인 소양강 상류에서 동쪽으로 분기하는 북천의 계곡과
연결되며, 따라서, 도로도 이들 양 계곡을 따라 개통되고, 예로부터 인제군을
중심으로 하는영서 중부지방과 양양군을 중심으로 하는 영동 중부 지방을 연결하였다.
특히, 한계령에서 인제에 이르는 서쪽 사면의 도로는 한계리를 거치는 길 외에
한계령에서 남서 방향의 계곡을 따라 가리봉(加里峰, 1,525m)의 남쪽을 돌아
흑석리를 거쳐가는 두 갈래의 길로 분기되는데 옛날에는 소동라령(所東羅嶺)이라고도
불려 해안 지역과 내륙 지방을 잇는 험한 고개였다.
그러나 1971년 12월에 도로가 확장되고 양양에서 인제까지 도로가 포장, 정비되어
내설악과 외설악을 연결하는 구실뿐 아니라, 설악산국립공원의 관광 자원 개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고개 서쪽 계곡에는 대승폭포·장수대가 있고, 고개를 넘어
남대천의 상류 오색천에 이르면 개울가의 암반에서 솟는 오색약수가 있고, 약수터에서
온정골 쪽으로 2㎞쯤 올라가면 오색온천이 있다.
오늘날의 한계령은 동해안의 낙산사·의상대를 거쳐 비선대·비룡폭포·신흥사의
외설악을 잇는 관광 도로의 요충지 구실을 하고 있다.
오색계곡의 한계령 능선상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한계령풀(매자나무과의 2년초,
높이 30∼40㎝, 5월에 황색꽃이 핌.)로 유명하다.
또한, 한계령 위에 돌로 쌓은 둘레 6,287척, 높이 4척인 한계고성(寒溪古城)터가 있는데
지금은 그 문자리만 남아 있으며, 이 지역은 몽고침입 때 조휘(趙暉)의 모반으로 원나라에
투속(投屬)되었다가 공민왕 때 탈환된 곳으로서, ‘至正十八年’(1358)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된 바 있다.
강원도 인제군과 양양군의 경계인 한계령(寒溪嶺)의 본래 이름은 오색령(五色嶺)이다.
한계령(寒溪嶺)에 대한 기록은 조선조 간행된 사서나 지리지 등의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한계(寒溪)는 현재 인제군 북면 한계리의 마을명으로, 한계령은 1970년대초 44번국도
도로공사후 붙여진 고개의 이름으로 한계령의 옛 이름은 소동라령(所冬羅嶺, 所東羅嶺)과
오색령(五色嶺)이라고 한다.
1530년에 간행된 양양도호부 산천조(山川條)에는 소동라령에 대하여, “부(府) 서쪽 60리에
있으며 겹치고 포개진 산맥에 지세가 험하고 궁벽지로 예전에는 서울로 통하는 길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는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살펴볼 때 신증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 간행된 조선 중종25년(1530)
이전에 이미 소동라령은 도로의 기능을 상실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또한 남대천에 대해
“부 남쪽2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강릉부 오대산에서 나오며 소동라령의 물과 합치고
부의 남쪽을 지나 바다에 들어 간다” 는 기록을 보면 소동라령이 지금의 한계령 길을 의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후기에 간행된 지리지에 오색령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오색령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여지도서(輿地圖書:1757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밖에 관동지(關東誌:1870년 전후), 대동지지(大東地志:1866)], 현산지(峴山誌:1910년대 초반)]에는
소동라령과 오색령이 함께 표기되어 있으며, 오색령의 지명은 오색에서 찾을 수 있다.
이미 오래 전에 도로의 기능을 상실한 소동라령의 존재는 잊혀지고 한양을 통하는 고갯길로
오색령이 등장한 하는데. 1800년대 만들어진 해동지도(海東地圖)등 대부분의 고지도에도
오색령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미 오래 전에 도로의 기능을 상실한 소동라령의 존재는 잊혀지고 한양을 통하는 고갯길로
오색령이 등장한 하는데. 1800년대 만들어진 해동지도(海東地圖)등 대부분의 고지도에도
오색령으로 표기되어 있다.
양양 서면 오색리 주전골에 고즈넉이 자리한 보물 제 497호 [양양 오색리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성국사의 원래의 이름 또한 오색석사(五色石寺)이니 오색(五色)지명은 양양이란 지명이 사용되기
시작한 1416년보다도 훨씬 이전에 불리워진 양양의 역사를 간직한 우리의 소중한 지명이다.
그리고 이조 선조 때 강원도 관찰사가 되어 이 고개를 넘었던 송강 정철은 이 고개의 아름다움을
관동별곡(關東別曲)에 담아 노래하였었다. 또 이곳 한계령 정상에는 휴게소와 도로준공을 기념하는
108계단의 설악루라는 정자가 있으며, 이곳에는 당시 사단장인 김재규 장군의 친필 현판을 볼 수도 있다.
한계령 출입문
설악산을 향한 산행 출입은 정확하게 새벽 3시에 문이 열리는데 아직까지 20분정도 남았다.
산에 오르기전에 화장실에 들린 다음에 성질 급한 산꾼들은 먼저 가려고 입구에서
문이 열리기만 기다린다...출입문 좌측에는 ‘百八階段’이란 표시석이 보이고 정확히
3시가 되니 출입문은 열리고 뭣이 급한지 어느새 등산객들은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나는 10여분 정도 기다렸다가 맨 나중에 산행을 시작한다(03:10)
108계단 표시석
1968년 공병부대가 한계령 도로 공사가 인제군 한계리에서 시작 1972년에 개통되였고
1978년에 포장은 완공 되였다...그 당시 공사를 하면서 숨진 병사가 108명이라고 한다.
그 분들 때문에 우리들이 이렇게 편하게 설악산을 오를 수 있으니 그 분들에 대한
예를 갖추고 출입문을 지나면서부터 빡센 시멘트 계단 108개를 올라서니 설악루라는
정자가 나온다...초반부터 가슴이 터질듯한 고통에 백팔번뇌(百八煩惱)를 뼈저리게
경험한다
설악루(雪嶽樓:03:14)
인제에서 구절양장의 한계령을 거쳐 양양으로 이어지는 44번 도로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1968년 군단장으로 있었던 1102 야전 공병단에서
1971년에 이 도로를 완공했는데 그 한계령 도로 완공을 기념하여 108계단 위에 설악루라는
정자옆에 공덕비를 세웠으며 “雪嶽樓” 현판 글씨는 김재규가 직접 썼다고 한다
야심한 새벽에 설악루를 한바퀴 돌아봤으나 공덕비는 보이질 않고 머릿돌에는 2010년
설악루를 다시 세웠다고 하는 공닥비만 보이는데 슬픈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보는듯한
쓸쓰레함을 느끼면서 어둠속에 대청봉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긴다
어둠속에 당시의 도로공사 유공자의 비가 있으나 낡아서 글자 판독이 어렵다
위령비(03:15)
설악루를 지나자마자 위령비를 만나고...
한계령 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데 이곳부터 빡센 오르막이다.
같이 버스를 타고온 사람들은 어둠속에 사라진지 오래이고 처음으로 이 산악회에
온 나는 아는 사람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그러다보니 아무런 부담이 없다.
뭔 짓거리를 하던간에 17시까지 설악산 소공원 C지구 식당가까지 도착만 하면 되니까...
첫번째 이정표(1,085m:03:35)
설악산 한계령 탐방 지원센터를 지나면서 계속되는 빡센 오르막에다 철계단의
연속이고, 한계령에 늦게 도착한 등산객들이 뒤따라 오면서 모두 다 나를 추월한다.
어둠속 산행을 지독히 싫어하는 나로서는 최대한 천천히 가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걷다보니 심장에 과부하는 걸리지 않지만 그래도 설악산이 아닌가.
빡센 오르막길에 바람이라도 좀 불어주었으면 좋으련만 바람한 점이 없어
나뭇가지가 미동조차 하지 않는구나...수도 없이 설악산에 들었지만 바람이
없는 오늘같은 날은 처음이다.
1,306.3m봉(04:07)
계속해서 오르막길에다 어둠속이라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된다
철계단도 지나고 암릉구간을 거치면서 無念無想으로 걷다보니 지도상에
표기된 1,306.3m봉에 도착하는데 얼마나 느리게 걸었는지 1km의 거리를
1시간이나 걸렸다...이곳부터 다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가는데
행여 길을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의 내리막이다.
계속 올라가야 하는데 내리막길로 내려가니...실제 내 뒷쪽에서 오는 등산객중
한 분이 조금 앞서가는 나를 향해서 그쪽 길이 맞느냐고 소리를 지른다
안부(04:25)
1,306.3m봉에서 안부까지는 마치 천국에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산이란 참으로 인간이란 존재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듯한 느낌이다.
1시간동안 빡센 오르막길을 올라오느라 고생했으니 휴식을 주는듯한 느낌이다.
20여분간의 편안한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꼴맛같은 휴식을 취하다보니
안부에 도착한다
1,292m봉(04:37)
다시 귀때기청봉 갈림길로 향하는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산행시간 1시간 30분이 지난 이후라 그런지 몸이 서서히 예열되는 느낌이라
조금씩 산행 속도도 낼수 있을건만 같은데 어둠속에 그리 무리할 필요는
없을듯 하여 최대한 느린 발걸음으로 걷는데 아직 어둠이 걷히진 않았지만
조금씩 산의 봉우리가 식별되기 시작한다...급경사의 오르막길이 계속되긴
하지만 데크목 계단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어 큰 어려움없이 1,292m봉에 도착한다
암봉(04:53)
1,292m봉에서 15분 넘게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촛대(범여의 생각中에서)처럼
생긴 바위를 옆에두고 오르막 계단을 올라서니 서서히 날이 밝아오면서 사물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나 아직까지 완전히 여명이 걷히진 않았다.
헤드렌턴을 끈 다음 베낭에 집어넣고, 귀때기청봉 갈림길로 향한다
귀때기청봉 갈림길(05:01)
귀때기청봉 갈림길이라고도 불리는 한계령 삼거리 이정표가 있는 서북능선에 올라선다.
능선에 올라서니 20여명의 등산객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휴식을 취하면서 간식을 먹고있다.
나도 여기서 휴식을 취할까 생각을 하다가 요즘에 다시 창궐하는 역병 때문에 조금은
찝찝하여 그냥 계속 걷기로 하고 대청봉 방향으로 향한다
여명이 완전히 걷히진 않았지만 길가의 풀섶에서 말나리가 산꾼들
땜에 잠에서 깬듯 부시시 눈을 비비며 얼굴을 내미는데 오늘은
야생화가 주목적으로 걷는 범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일출이 시작되려나 보다
동해안 방향으로의 능선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능선에 올라섰건만
악명높은 설악의 바람은 더위에 지쳤는지 오늘따라서 微動도 하지 않는다.
평소의 설악이라면 여름이라도 추워서 바람막이 자켇이라도 입어야 하는데
오늘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옷이 다 젖어 버렸다.
안부(05:07)
갑자기 밝아진 날씨...오름길에 뒤돌아 보니 나타나는 멋진 선경.
왜 산꾼들이 설악산에 맛이 가는가를 알 것만 같다.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설악산을 한번도 안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와본 사람은 또다시 설악산을 찾게 된다는 말이 빈 말이 아닌듯 하다.
조금전에 지나온 1,306.3m봉 너머로 가리봉과 주걱봉이 살짝 얼굴을 내민다.
뒤돌아보니 조금전에 어둠속에 지나온 1,307m봉은 운해에 갇혀 섬처럼 보이고
이 멋진 仙景에 입을 다물지 못하겠다...지난주 산행내내 짙은 안개속을 걸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설악산이 그걸 보상해 주려는 모양이다
대청봉을 향하는 오르막길...어둠속에 빡세게 걸었던 초반에 비해
조금은 수월한 듯 하지만 그래도 설악산이 아니던가...이름값을 한다.
毫釐有差(호리유차 ) 터럭 끝만치 작은 차이에
天地懸隔 (천지현격 ) 하늘과 땅처럼 간격이 생겨나니
欲得現前(욕득현전 ) 이것이 눈앞에 나타날듯 하려거든
莫存順逆(막존순역 ) 맞느니 틀리느니 말지어다
違順相爭(위순상쟁 ) 틀리느니 맞느니 다투는 건
是僞心病(시위심병 ) 이것이 마음의 큰 병통이라
不識玄旨(불식현지 ) 현묘한 이치를 알지 못하면
徒勞念靜(도로염정) 생각을 고요히 함도 헛수고니라
圓同太虛(원동태허 ) 뚜렷함이 창공과 같아서
無缺無餘(무결무여 ) 모자람도 남음도 없건만
良由取捨(양유취사 ) 취하고 버리는 분별심으로 말미암아
所以不如(소이불여 ) 그래서 실상과 같지 않도다.
승찬대사의 信心銘 中에서
* 감지승찬(鑑智僧璨:510〜606) 대사는 중국 선종불교의 제3대 조사로 제2조 혜가대사의
문하에서 수년간 불학을 연마하고 심인(心印)을 받아서, 3조가 되었고, 원적하기 전에
제자 도신에게 의발(衣鉢)과 법을 전했다.
신심명은 요즘으로 말하면 일종의 선시(禪詩)로 ‘지도무난(至道無難)이요 유혐간택(唯嫌揀擇)이니’로
시작하는데, 지극한 도(道)란 곧 무상대도(無上大道)를 말하며 이 무상대도는 전혀 어려운 것이
없으므로 오직 간택(揀擇)하지 말라는 말이다. 간택이란 취하고 버리는 것을 말함이니,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있으면 지극한 도는 양변(兩邊), 즉 변견(邊見)에 떨어져 마침내
중도의 바른 견해를 모른다는 것이다.
당겨본 귀때청봉의 모습
봉정암을 품고있는 용아장성 너머의 속초앞 바다는 구름바다로 변해 버렸다.
용아장성 너머의 공룡능선은 고려시대 개경에서 뭇남성들의 애간장을
다 태웠던 황진이의 치맛자락처럼 보일락말락 하며 雲海와 遊戱를 즐기고 있다.
예전엔 없었던 데크목 계단 전망대에 올라서니 가야할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암릉구간 끄트머리에 보이는 봉우리가 1,454.9m봉이고 안부에 내려섰다가 올라선
봉우리가 끝청봉, 구름을 이고있는 중청봉까지는 시야에 들어오고, 설악산의 뎃빵인
대청봉은 자존심 탓인지 아직까지 얼굴을 내밀지는 않는다.
서서히 야생화들이 범여의 발걸음을 더디게 만들기 시작한다.
다른곳에서는 진작에 시들어버린 노루오줌이 고운 자태로 범여와 눈맞춤을 한다.
꿩의 다리...너는 언제보아도 곱고 청순한 자태가 첫사랑의 그녀를 보는듯 하여
늘 가슴을 설레게 하는구나...첫사랑!...세파에 찌든 탓인지 이제 기억조차도 없다.
나도 빠질순 없제...말나리와도 눈인사를 나눈다.
안부(1,324m:05:30)
안부에서 오르면서 암릉구간의 너덜길이 시작된다.
너널겅이긴 하지만 커다란 바위로 되어있어 걷는데 큰 불편함은 없다.
우측으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구름바다에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독주골과 온정골로 이어지는 계곡인데 지금은 雲海로 변해 버렸다.
국공파들의 눈을 피해서 늘 가슴조리면서 3번이나 올랐던 점봉산도 얼굴만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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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제4차 - 한계령에서 무너미 고개까지 (tistory.com)
첫댓글 형님
수고하셨습니다.
역시 설악은 설악입니다.
큰산답게 산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군
왜 설악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대청봉 주변의
야생화는 넘 멋쪄부러...
형님
더운날씨에 수고하셨습니다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