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님 내외분 모시고 백숙에 복분자[4반반창회]
* 일시: 2014년 8월 23일(토) 오후 1시
* 장소: 차탄천변 용바위토종닭집 (연천군 전곡읍 은대로 17 또는 토종닭집 전화번호031-835-6050)
참석자(13명): 형영우 은사님 내외, 김용석, 노용식, 서태영, 소종섭, 송재은이사, 송형옥, 심상보, 유기남, 전웅, 조금석, 채희묵
* 심상보 친구가 토종닭집 식사 등 30여만원의 비용(토종닭 6마리x 45,000원, 소주 2병, 음료수 6병, 포도 두상자)을 들였습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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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 잠실역 8번 출구에서 모임
12:38 대동공업(주)연천군대리점 도착
13:18 용바위토종닭집으로 이동(식사 및 환담)
15:50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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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한탄강 지류인 차탄천가에서 쫄깃쫄깃한 토종닭백숙을 안주로 복분자를 마시니
"저 흘러가는 물이 세상 사람들에게 뭐라고 얘기해줄까"
(퇴계 이황 선생의 시조 '청량산'을 원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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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회 담임 은사님 두분 살아계셔
전주고 47회(70년 졸업)의 8개 반 담임선생님 중 지난 7월 7일 3반 담임 박유식 선생님이 유명을 달리하시게 돼 현재는 두 분 즉 4반 형영우(국어 전공) 선생님과 6반 이용현(물리전공)선생님만 건강하게 살아계신다. 돌아가신 은사님은 1반 정진헌, 2반 오민탁, 5반 윤재술, 7반 박선규, 8반 공의창 선생님.
카풀을 위해 잠실역 8번 출구 인근에 모여
네비에 종착지를 입력해 놓아야겠네
맨 나중에 도착한 용식 친구와 반갑게 악수하는 형옥
서울외곽도로 의정부를 지나 장흥까지 갔다 돌아오다 찍은 송추역 인근에 있는 40년 전통의 유명한 중국집 '진흥관'
전곡 심상보 친구 가게에서 집합
연천군 전곡읍에서 대동공업(주)연천군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심상보 사장님의 주선으로 8월23일(토) 대리점 인근 한탄강 지류에 자리잡고 있는 용바위토종닭집에서 두 분 중 한분인 형선생님을 모시고 4반 반창회를 가지게 되었다.
여기가 3번도로 옆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정면으로 멀리 보이는 집 뒤에 대동공업이 있어
농기계를 취급하는 곳이라서 터가 넓음
가장자리에 농기계도 많네요.
은사님이 오시기 전 사무실에 들어가 커피 한잔 마시며 환담
사모님 동행
은사님께서는 다른 유사 모임에서 한 번도 동행을 하시지 않는 사모님을 모시고 나오기로 해 더 없이 반가운 반창회를 예고해 주었다. 당초 판교에 사는 양완식 친구가 모시고 오기로 돼 있었는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 평촌에 사는 조금석 친구가 오피러스 큰 차로 모시고 달려왔다.
금석 친구차에서 내려 나오시는 은사님을 맞는 심상보 친구
수줍음을 타시는 사모님
대동공업 마당에서 인증샷
대동공업(주)가게에서 ‘4반의 건승을 위하여!!’라고 손을 들어 외치며 인증샷을 만들고 점심장소로 이동했다. 철원에서부터 연천읍을 지나 흘러오는 차탄강이 전곡역 서쪽에서 한탄강과 만나기 전 약 3km 지점에 자리잡은 토종닭집이다.
은사님내외와 인증샷
군남면 왕림교(윗길)로가는 길을 버리고 아래 차탄천행 길로
내려오다 뒤돌아본 토종닭집 문패
주상절리 용암협곡
강을 마주볼 수 있도록 길게 마루를 만들어 놓았다. 비가 온 뒤라 아직 누리티티한 물이 세차게 용암협곡의 절벽밑으로 바짝 휘어 흘러내려간다. 우리나라에서 제주도를 빼면 유일한 용암지대라 지질학도들에게는 더 없는 연구 장소이기도 하다.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토종닭 계사.... 언제 죽는지 모르기 때문에 저렇게 평화롭게 살아...
마당과 입구쪽을 잡아본 것... 끝에 토종닭집이 보여
식사할 가건물 바로 앞의 시원한 차탄천을 바라보며
서쪽 단애밑으로 흐르는 한탄강의 지류 차탄천... 파주 적성에서 이곳 전곡까지 37번 국도 확장 및 직선화 하면서 다리를 놓기 위해 교각이 세워져있다. 이 다리는 전곡읍내 옆에서 한탄강과 합수하는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400m 현수교와 연결된다.
군침 도는 토종닭
우리는 탁자 네 개를 길게 맞대고 양쪽으로 앉았다.
은사님은 “하도 4반 자랑을 하니까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왔다”며 동부인한 이유를 말씀하셨다. 은사님 4년연하로 꽉 찬 70대인 사모님은 아직도 18세 꽃띠처럼 수줍음을 매우 타신다.
주인아주머니는 늦게 오는 바람에 백숙이 좀 불었다며 큰 접시 6개에 가져다 놓는다. 이집에서 키우는 것으로 잡는단다. 한 접시 45,000원. 12시에 오기로 했는데 군데군데 길이 막힌데다 시행착오들을 하는 바람에 1시가 훨씬 넘어서야 도착했기 때문이다.
다같이 은사님 내외분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쫄깃쫄깃한 토종닭... 먹고나니 또 죽을 한 대접씩 주어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복분자 한박스 꺼내
총동창회 상근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소종섭 친구는 고창산(産) 16병들이 ‘선운 복분자’를 한박스 가져왔다. 큰 일을 많이 치러봐서 그런 생각을 한다. 연세가 많으니 독한 소주나 양주보다 훨씬 좋다는 것이다. 2003년 대통령 하사주이며 ‘2005년 APEC 공식만찬주’라는 라벨이 붙어있다.
은사님 만수무강을 위하여!!!
우리는 한잔씩 따라 “은사님과 사모님 만수무강을 위하여!!!”라고 축배를 들었다. 은사님도 사모님도 맛이 좋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얘기는 저 아래 차탄천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소종섭 친구가 준비해온 고창산 복분자 16병 들이 한 상자
서로 이해하며 같이 갑시다:프란치스코 교황
내외가 성당에 다니신다는 은사님은 천주교 신부님은 술 뿐 아니라 양담배도 피운다며 술과 담배에 자유스러움을 말씀하신다.
은사님은 자연스럽게 지난 8월 14~18일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깊은 인상을 받으셨다며 교황 말씀을 꺼내신다. “서로 이해하며 같이 갑시다.”
항상 가난한 자 등 소외된 자 곁에 서겠다는 모습을 보여준 교황의 어록을 꺼내시며 “제일 좋은말”이라고 강조하신다. ‘불통과 나 먼저’가 만연한 우리 사회가 선진사회로 가기 위한 필수 조건일 것이다.
종섭 사고 쳐 은사님 댁에 들랑거려
종섭은 고3말년 시절 에피소드를 하나 털어놓는다. 한 사건에 연루돼 선생님댁을 여러번 찾아갔다며 사모님의 쪽도리에 비녀 꽂은 모습을 상기해낸다.
사모님께서는 “왜 집에까지 오게 만들었냐”며 선생님을 다그치신다. 졸업도 못했다고 하니까 사모님은 “졸업을 안시켜주었느냐”고 되받으시며 “전적으로 책임을 지라”며 “나보고 얘기했으면 해결해 주었을텐데”라고 유머섞인 말로 수줍어하시는 모습을 걷어내신다.
금석은 죄진 일 없어 문앞까지 밖에 못가
은사님 동내 위치를 상기하며 금석은 "죄진 일이 없어 문앞까지는 갔어도 들어가지는 못했다"며 “선생님이 들어올 필요가 없다고 해서 문앞까지만 갔다 왔다”고 덧붙인다. 태영도 말썽으로 한번 찾아갔었다고 하니까 금석은 “공부 잘했다고 갔을 거”라고 교정.
은사님 제일 부끄러웠던 일 고백
은사님은 교단생활중 아주 창피했었다는 44년 전을 회상하신다. 48회 담임을 하실 때란다(1970년)
용지면에 고아원이 있었단다. 원장님께서 원생중에서 말썽이 없고 장래성이 있다싶으면 뽑아서 고등학교, 대학을 보내 주었단다. 그 중 7명이 있었는데 전고생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7명은 원생 한 녀석이 일대에서 도둑질 등 나쁜짓을 해 힘을 합해 두들겨주자고 해 잡아 때려주었는데 죽어버렸단다.
전주경찰서 수사계장이 전화를 해 알려줘 전주고 출신 제자에게 생각해 주신다고 때리지 않았다고 우기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부검결과 머리에 치명타를 맞은 것. 마침 6월 학력고사가 얼마남지 않은 때. 그런데 이들 7명은 다른 친구들을 구제해주기 위해 서로가 자신이 때렸다고 버텼던 것. 후에 불기소처분으로 다 풀려났지만 그 때 좁았던 소견을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창피하시다는 것이다.
다복하신 은사님 가족
은사님은 다복하시다. 맨 위 따님은 서울에 사시고, 그 아래 아들은 서태영 동생과 함께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충북대 안과교수(’57)로 재직중이며 셋째는 카나다에 이민 가서 산다고 한다. 손자들도 다 결혼해 증손자를 보게됐다며 ‘내 나이가 어때서’의 대중가요에 얼토당토 않은 패로디를 만드신다. “내 나이가 어때서... 딱 죽기좋은 나인데...”
심사장님이따로 사가지고 온 포도
심상보의 고교시절 Deliliah
오늘의 호스트 심상보 사장으로 잠간 얘기가 돌아간다. 중학교를 수원에서 다녔단다. 점심시간에 밥만 싸가지고 와 반찬은 돌아다니면서 다른 친구들 것을 집어 먹어 완전 뷔폐로 먹었단다. 상보는 당시 점심먹기 전 딜라일라(DELILAH:1968)를 불러 우리들의 귀를 즐겁게 했다. 김규선 친구보다 잘 불렀느냐는 질문에 상보는 “탐존스(Tom Jones)보다 좀 낫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친구는 “이영구(바리톤;1반)도 째비가 안됐지, 노래가 아니었어(?),” 한 술 더뜬다.
심상보의 풋사랑 불발로
종섭은 상보의 로맨스를 들먹거린다. 상보 뒷조사 많이 했다며 불발 로맨스를 상기해낸다. 당시 기전학교에서 노래를 한번 불렀단다. 그랬더니 여자애들이 따라오더라는 것. 그래서 그 중 한 학생하고 8년을 사귀었는데 골인을 하지 못했다는 것. 영구도 기전학교 뒷산에서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 여학생 꼬실려고 그랬는지도 모른다는 뒷땅으로 흘러가기도...
이제는 청춘합창단 단장을 한 전웅 친구가 단장직을 그만 두고 프로로 전향하여 누가 당할자가 없게 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선생님은 사범학교, 전주여고 5년, 모교에서 3년, 서울 경동고에서 8년을 하시고 여의도고등학교에서도 교편을 잡으셨다고 한다.
심사장 딸 미국에서 학위마치고 삼성에 취직
심사장은 딸(‘82)이 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Raleigh)에서 화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지난 5월 귀국해 삼성연구소에 과장급으로 취직이 됐다고 한다. 9월1일부터 출근 예정. 그래서 애 엄마가 전세 잔금을 치루러 오늘 평촌에 가느라 모처럼 오신 은사님을 모실수 없다는 것. 주정부에서 한 달 2,200달러씩 5년간 장학금을 받아 돈을 거의 댈 일이 없었던 효녀. 좋은 총각을 만나 결혼하는게 남은 일이라며 미국에 눌러앉지 못하게 한 것도 결혼문제 때문이란다.
선생님은 복분자 술이 너무 입맛에 찰싹 늘러 붙는다며 기뻐하신다. “내가 좋아하는 술을 어떻게 알고 가져왔어!!!” 재경 전주고 총동창회 상임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소사장은 평소 큰 일을 많이 치루다 보니 그런 것은 잘 알고 있다.
은사님의 모교 자랑
은사님은 모교의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울대에서 최근 6.25 참전하다 전사한 학도병을 기리기 위해 ‘한국전쟁의길’을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며 전주고는 1951년 9월 6.25전쟁에 참전했다 희생된 학생과 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충혼비(忠魂碑)를 세웠다고 전해 주신다. 전국을 통틀어 교정에 충혼비가 서 있는 고교는 전주고 밖에 없다고 부언해주신다.
6.25참전 학도병 충혼비 전주고 밖에 없어
충혼비 글씨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이고, 신익희 국회의장의 投筆從戎 忠烈千古(투필종융 충렬천고: 학업을 중단하고 종군하신 올곧은 충의 역사에 길이 빛나리)글씨도 후면 하단에 있고 전성욱 선생의 寧死不屈 爲國丹忠(영사불굴 위국단충 : 차라리 죽을지언정 굴하지 않으신 나라 위한 뜨거운 충성심 )글씨가 왼쪽 옆에 쓰여져 있다고 알려주신다. 특히 은사님은 서정주 시인의 헌시 한 구절을 외우신다. “1950년 모진 붉은 난리에 벼락으로 부서지고 천둥으로 운 전주북중 충령들 여기 모여 쉬나니...”
빛이여 길이길이 여기 비취라
반 만 해 맵게 닦은 나라의 넋을 지켜
사천이백필십삼년 모진 붉은 난리에
천둥으로 울고 벼락으로 부서진
전북중학 충령들 여기 모여 쉬나니 (서정주)
이 추모비에는 “ 6.25 전쟁 발발로 학생의 신분으로 학도의용군에 입대하여 각지의 전투에서 교전중 전사한 학생과 순직교사 10명의 영령을 추모하고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1951년 9월 건립”되었다고 새겨져 있다.
당시 전주북중(現 전주고) 학도병 전사자가 52명으로 1위인 군산중학교(現 군산고교) 63명, 2위의 경북中(現 경북高) 53명에 이어 3위로 되어있다.
서울대는 '재학생 한국전쟁 참전 전몰자' 석판만 있어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아직도 서울대에는 6·25전쟁 학도병 전사자를 위한 기념비나 추모 시설이 없
다. 1996년 개교 50주년을 맞아 6·25전쟁에서 전사한 모교생 27명의 이름을 새겼던 문화관 대강당 벽
의 ‘서울대 재학생 한국전쟁 참전 전몰자’ 석판만 있을 뿐이다. 그 이후 2명이 추가돼 29명으로 돼있
다. 그런데 이 북한이 남침한 6·25전쟁에서 조국을 지킨 일은 민주화운동보다 오히려 더 기려야 마땅
한데도 서울대는 2007년 ‘현대사의 길’ 조성 사업 일환으로 함께 추진했던 ‘민주화의 길’은 2009년 완
공한 반면 ‘한국전쟁의 길’은 흐지부지 넘겨왔다. 내년 6월 완공 일정이 지켜져도 한참 늦은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 전주 오면 전고 교장부터 만나
이승만(1875~1965) 대통령이 전주에 내려오면 김가전(1892~1951; 박유식 은사님 장인) 교장선생님을 먼저 만나고 지사를 만나러 갔다고 한다. 목사이자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국회)의장을 지낸 교장선생님의 형님인 김인전(金仁全:1876~1923)선생하고 교분이 두터워 이 대통령은 친구 동생을 먼저 만나야겠다며 학교로 찾아왔다고 한다. 은사님은 “그 분 덕택에 어깨가 딱 펴지고 그만큼 그 때 중학교 교장으로서도 권위가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후에 교장 선생님은 전북지사도 지내시다 과로로 1951년 10월5일 순직했다고 한다.
불탄 적벽돌 북중교사 아까워
소종섭 친구는 북중 붉은 벽돌 건물은 자립, 자조, 자강(모교 교훈)의 정신으로 만들어졌다고 이승만 대통령이 낙성식에 참석했는데 우리반 친구가 불을 내 태워버려 애석하다고 말을 꺼낸다. 물론 목조건물인 전고 건물은 먼저 다 타버렸다. 용석은 그가 자신과 같이 앉은 친구라고 상기했다.
교사 신축 때 학생들이 소양면 나무 날라
그 당시 교사 신축과정을 다 보신 은사님은 “학생들이 소양면에 가서 베어놓은 낙엽송을 다 날랐다”고 회고하셨다. 건물 받침대로 쓰느라 필요했단다. 그러니까 은사님이 북중6학년인 1949년이었다고 한다. 그 건물은 당시 죄수들을 동원해 지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강점기 시절의 역사가 깃든 건물은 체육관(?) 하나 뿐이라고 아쉬워하셨다. 종섭은 북중 건물은 문화재로 등록될 수 있는 것이었다고 첨언한다.
제2대 교장 김가전 선생 입학생 1,000명 뽑아
석운 김가전 선생은 해방 후 1946년2월5일 2대 교장으로 부임하자 나라가 튼튼하려면 교육을 잘 해야 한다며 교육청과 합의도 없이 원하는 사람을 따 뽑다보니 1,000명이 입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 년(선생님 입학시)에 3개 학급 150명에서 배로 늘리고 난 직후의 일이란다. 그래서 건물이 필요해 죄수들을 동원해 적벽돌로 교사를 지었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형영우 선생님은 일제 때의 6년제 북중 마지막 기(1945년 입학,1951년 졸업)라고 한다.
전주사범 Vs. 전주북중
전주사범과 전주북중도 비교해주셨다. 전주사범은 농촌출신 중 1~2등 중 추첨으로 뽑았으므로 아주 우수한 농촌 학생들로 채워졌으며, 전주북중은 시험으로 뽑았는데 가정의 여유가 있거나 멀리 보는 가정의 자제들이었다고 한다. 신직수(申稙秀, 1927~2001) 전 중앙정보부장이 충남 서천생으로 전주사범 출신인데 자부심이 많아 서울에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대우를 극진히 해주어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퇴계와 율곡의 상반된 자연관
은사님은 술맛이 좋다고 또 말씀하신다. 웅 친구는 '천사팀' 지리산 여행때 종섭친구가 홍관표 친구와 밤새 복분자 한박스를 비운적이 있었다며 복분자 관련 에피소드를 소개해 준다. 이 후 이 팀이 동유럽 여행을 갔는데 권선주 친구와 자신이 술한잔 하자고 하니까 입맛만 버린다며 거절하더라는 것. 그 때 관표 친구는 동구 여행에 합류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종섭 어부인이 경북 안동 출신이라고 하니까 국문학 전공이신 은사님은 조선 중기 성리학의 두 거두 퇴계 이황(1501~1570) 선생과 율곡 이이(1536~1584)선생의 대비되는 시를 예로 들며 들려주신다.
퇴계선생의 ‘청량산’이란 시조에서
‘청량산 육육봉(12봉)을 아는이 나와 백구(白鷗)
:
:
도화야 물 따라가지 마라 어주자(漁舟子) 알까 하노라‘
라며 이 절경을 세상 사람들이 알까 걱정된다고 읊어 도학적인 반면,
(청량산 육육봉(12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날 속이랴 못 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가지 말고 어주자(漁舟子) 알까 하노라.)
주) 청량산(870m): 경북 봉화군에 있는 산
율곡 선생은 ‘고산구곡가(高山九谷歌)’의 제2곡
‘花巖春景晩(화암춘경만) : 화암에 봄이 저무누나
碧波泛山花(벽파범산화) : 푸른 물결에 꽃잎 떠
野外流出去(야외유출거) : 들 밖으로 흘러간다
勝地人不知(승지인부지) : 이 좋은 곳 남들이 모르는데
使人知如何(사인지여하) : 이 꽃잎으로 사람들에게 알게하면 어떠리‘
에서 “세인이 선경을 모르니 도화를 띄워 알려야겠다”는 서로 상반된
생각을 가졌음을 알려주신다.
이곳 한탄강 지류인 차탄천가에서 쫄깃쫄깃한 토종닭백숙을 안주로 복분자를 마시니 저 흐르는 물이 세상 사람들에게 뭐라고 얘기해줄까 궁금하다.
내년에도 동서화합 음악회 계속돼
종섭친구는 전라도와 경상도 화합차원에서 경북고와 자매결연을 맺었으며 내년에도 동서화합 음악회를 구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학에서 A학점과 C학점 학생
은사님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Dwight Eisenhower:1890~1969/‘53-’61재임)대통령은 컬럼비아대 총장으로 근무 시절 A학점 학생들보고는 모교에 와 교수를 하라고 하고 C학점 학생들에게는 큰 건물을 지어주어라고 했다며 공부머리와 사업머리가 다르니 사회에서 다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셨다. 아이크는 육군참모총장에서 퇴역 후 1948년 대학총장을 잠깐 하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게 되었다.
수학 때문에 진학학교 뒤바뀐 친구 많아
종섭친구는 머리얘기가 나오면서 수학을 잘 한 친구들이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며 오용규(전북상대 교수)의 예를 들었다. 정남식 연세대 의무부총장도 수학 때문에 연세대로 돌렸고 이모 친구도 수학 때문에 서울법대 입시에서 고배를 마셨다고 들려준다.
어느 직종이 좋을지는 후에 알 수 있어
정남식 부총장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원래 인기가 좋은 소아과를 지망했는데 심장내과로 밀려가게 되었다고 한다. DJ의 주치의를 맡는 등 지금 와서 보면 잘 된 것이다. 특히 영어를 잘 해 의대 수석으로 졸업했는데 그것과 상관이 없었다는 것이다. 영어실력이 좋아 원서 독파력이 뛰어났다는 것이다. 종섭 아들도 지금 정부총장 밑에서 심장내과를 전공하고 있다고 한다.
목사님과 술친구 되어 교회로:종섭
소종섭 친구의 술관련 에피소드 하나가 또 나온다. 안사람이 자꾸 교회에 나가자고 하니까 술을 먹게 하면 나가겠다고 했단다. 한번은 담임목사님께서 만나자고 해 조세형 선배님하고 중국집에서 만나게 되었단다. 인사로 약한 술 한잔 하시죠 그랬더니 목사님이 중국집에 왔으니 빼갈을 마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해 같이 마시다 술친구가 되었단다.
군산고 출신인 그 담임목사님은 독일 큐빙겐대학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고 독일 현지에서 7년간 봉사한 경력이 있는 분인데 독일에서는 술먹지 말라는 말이 없어 술을 잘 했다는 것. 전웅친구는 목사님이 술을 마시고 싶은데 종섭친구 핑계로 마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단다.
은사님은 우리나라 개신교에서만 금주령이 있다며 성경에 딱 한번 나오는데 “술은 과하면 하나님을 섬기는데 소홀할테니 조심하라”고 되어 있다고 소개햐셨다. 은사님은 성남에서 신도 15,000명의 분당성요한성당에 다니시며 술을 즐겨마시고 사모님하고도 한잔씩 하신다고 한다.
노래하면 젊어져: 전웅
은사님은 전웅친구가 동안(童眼)이라 볼때 마다 기분이 좋으시다며 비결이 뭐냐고 물으신다. 한 친구가 젊은 부인과 살기 때문이라고 하니까 웅친구는 “노래를 하면 젊어진다”고 화살을 비껴나간다.
세종증권 매각비리 사건 때 중립 지키느라 힘들어:전웅
세종증권사장시절 정치적으로 수사를 하는데 자신은 다른 간부들에게 절대 개입하지 말라며 중립을 지켰다고 한다. 그 당시 CEO로서 검찰에 끌려가지않은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친지 친구들로부터 7~80통의 안부 전화를 받았단다. 전웅친구는 “사실 입장은 엄청 어려웠었다”며, “은사님께서 인정해 주셔 감사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세종증권 매각비리사건은 2006년 1월 농협이 세종증권(현 NH증권) 지분 46%를 인수하기로 최종 결정하였을 때, 당시 세종증권보다 우량한 증권사들이 매물로 많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농협이 굳이 세종증권만을 고집하였고, 시장의 평가를 훨씬 웃도는 1,100억원이라는 매입가로 세종증권을 인수한 것이 빌미가 되었다.
상품권은 서태영 친구가 증정
식사가 끝나고 4반 대표인 송재은 이사는 "사모님 내복을 준비할까 했는데 색깔이 맞지 않으면 낭패라고 생각한 나머지 상품권을 준비했다"며 꺼냈다. 사모님이 잠깐 자리를 뜬 사이 은사님이 제일 사랑하시고 자타가 공인하는 공부의 달인 서태영 변호사가 증정해드렸다.
은사님은 “서태영이 학교에서 나를 인정하게 만들어주었고, 4반이 이듬해 3학년 진학반을 다시 맞게 해주었으며 경동고 교장선생님이 당시 진학지도를 위해 나를 데려갔다”고 회고하셨다. 은사님은 "전주고 47회가 생애에 큰 힘이 되었다"고 부언해주셨다.
“오랜 교직 생활중 여러분이 제일 자랑입니다. 내 말년을 이렇게 기쁘게 해주는게 여러분입니다. 여러분 제일 반갑습니다.”
돌아오셔 자리를 잡으신 사모님은 “고맙습니다. 여러분의 건강과 행운을 빌겠습니다”라고 화답을 하셨습니다.
제일 아꼈던 제자 서태영 친구로부터 상품권을 받으시고 악수를 하시는 은사님
양산을 받고 조심조심
상품권을 건네받으시고 인사하시는 사모님
내년 은사님 모시고 해외여행 고려
소종섭 친구는 “내년에는 은사님 모시고 해외여행을 계획해보겠다”고 희망섞인 발언을 해 주었고, 이 모임을 주선한 심사장은 “선생님 사모님 모시고 오셔 정말 감사드린다”며 “우리 친구들도 더운 날씨에 여기까지 와주어 감사하다”고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심사장은 은사님께 잘 익은 포도 한 상자 실어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2시간 반 가량 당시의 얘기꽃을 피우며 즐겁게 사제간의 정을 나누었다.
오늘 이자리를 만들어준 심상보 친구, 동부인해주신 은사님, 카풀을 해준 인천의 용석, 금석, 카풀 뿐 아니라 일을 진행하느라 일일히 전화해 친구들 모이게 해준 송재은 이사, 참석해준 다른 반 동기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대동공업연천대리점은 지도상 3번도로와 갈라지는 '은대삼거리'에 있음 +, -표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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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회비 결산 보고(송재은 이사)
-총기금: 773,000원
전회기 이월 잔고 183,000원
6월모임 수입: 380,000원
이날 수입: 21만원(카풀한 친구 회비안받음)
-지출: 40만원
전년 미납 동창회비 30만원 지출
은사님 상품권 10만원
-잔고: 373,000원
후묵 배상
첫댓글 희묵이!~~고마워!
이리도 상세히 모임상황을 기억해 기록해주니 놀라울뿐이야! ㅎ~~
심상보 친구의 초청으로 이리 야외 계곡물가에서 은사님 내외분 모시고 반모임을 할수있게되서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상보친구~~두루두루 고마워^^
희묵이의 글을 통해 그 날 듣지봇한 선생님의 말씀과 친구들의 대화내용까지 이렇게 빠짐없이 듣게되다니!! 희묵이! 고맙고 수고많았어.
특히 먼 길 마다하지 않으시고 자리해주신 형영우 은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좋은자리 마련해준 심상보친구,모임을 주선하느라 애 많이 쓴 송재은 반이사,카풀해준 세명의 친구들과 참석한 모든 친구들 고맙고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