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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8일 오늘의 역사
2018년 차준환 선수 2018~2019 ISU 피겨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사상 첫 동메달
2018년 강릉선 KTX 탈선 부상 15명, 오영식 코레일 사장 물러남
2016년 미국 첫 우주비행사·최고령(77세) 우주비행사 존 글렌 전 상원의원 사망(91세)
2015년 중국 베이징 극심한 스모그로 사상 첫 적색경보
2013년 제주도 남단 이어도 포함 새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선포
2011년 원성진 9단(27세) 세계바둑 제패, 제16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우승
2009년 바그다드 폭탄테러 발생
2009년 12월 8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4건의 연쇄 폭탄 테러가 발생, 1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라크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다. 노동부, 재무부 청사와 법원, 경찰 순찰대를 노린 이날 공격으로 적어도 127명이 죽고 400여명이 다쳤다.
이날 오전 10시25분쯤 노동부 청사 앞에서 폭탄을 실은 차량 2대가 연달아 폭발한 것으로 시작으로 바그다드 서부 만수르 지역의 형사법원과 도심지인 쇼르자의 재무부 부근에서 잇따라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앞서 바그다드 남부 도라에선 자폭 테러범이 경찰 순찰대에게 돌진, 경찰관 3명과 근처 대학교 재학생 10여명이 숨졌다. 연쇄 폭발 직후 미군 헬리콥터와 무인 폭격기들은 시커먼 연기와 화염에 휩싸인 바그다드 상공을 선회했다.
누리 알 말리키(al Maliki) 이라크 총리는 국제 테러조직 알 카에다와 사담 후세인(Hussein)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바트당(黨) 잔당을 사건 배후로 지목했다. 이번 테러는 지난 10월 25일 관공서 2곳을 노린 폭탄 테러 이후 최대의 인명피해를 냈다. 10월 테러 땐 150여명이 숨지고 700여명이 다쳤다.
최근 이라크 테러들은 내년 총선을 방해하기 위해 자행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10월 테러는 이라크 정치권이 교착 상태에 빠진 선거법 개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를 열기 직전에 일어났고, 8일 테러는 정치 지도자들이 총선 실시에 어렵사리 합의한 지 이틀 만에 발생했다. 이라크 대통령 비서실은 이날 총선을 내년 3월 6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2008년 미국 거대 미디어그룹 트리뷴, 파산보호 신청
시카고 트리뷴과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을 소유하고 있는 미국의 거대 미디어 그룹인 트리뷴 컴퍼니가 광고수입 감소 속에 대규모 빚을 감당하지 못해 2008년 12월 8일 델라웨어주 윌밍턴 파산법원에 ’챕터 11’에 따른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1847년 설립된 161년 역사의 트리뷴은 23개 방송과 12개 신문, 미 프로야구 구단 시카고 컵스 등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 미디어그룹으로, 지난해 12월 부동산 재벌인 샘 젤에게 83억 달러에 인수되면서 130억 달러 규모의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자 부채를 조정하기 위해 채권자와 협의를 벌여 왔다. 볼티모어 선과 올랜도 센티넬 등도 소유하고 있는 트리뷴의 자산규모는 76억달러로 알려졌다.
트리뷴은 자금 조달을 위해 뉴욕 롱아일랜드의 신문인 뉴스데이를 매각하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시카고 트리뷴의 감원을 실시하는 한편 시카고 컵스의 매각을 추진하는 등 자구책을 추진해왔으나, 미국의 광고 규모가 올해 상반기에만 15%가 주는 등 광고 수입 급감으로 고전했었다.
1999년 '스타워즈' 20세기 최고영화로 선정
1977년 개봉돼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조지 루카스 감독의 공상과학영화 ‘스타워즈’가 금세기 최고의 영화로 선정됐다.
루카스 감독은 스타워즈 시리즈인 스타워즈 에피소드I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의 위협’과 ‘제국의 역습’을 각각 5위와 7위에 올려 톱10 안에 가장 많은 영화를 올린 감독이 됐다. 2위에는 역시 공상과학영화인 리들리 스코트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가 선정됐으며 3위에는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열연한 ‘카사블랑카’가 올랐다.
스코트 감독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각각 2편씩을 톱10에 올려 명성을 확인했다. 상위 100편의 영화 중 가장 오래된 영화는 지난 1939년에 만들어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12위에 올랐다. 한편 상위 10편의 영화중 공상과학영화가 5편이나 돼 공상과학영화가 시청자들에게 큰 인상을 남긴 것으로 분석됐다
1991년 슬라브3국 '독립국가공동체' 창설
러시아, 우크라이나 및 벨로루스(구 백러시아) 등 소련의 슬라브계 3개 공화국이 1991년 12월 8일 외교, 국방 및 핵통제권 등을 공동 관장하는 한편, 수도를 민스크로 하는 독립공동체(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를 창설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발트3국 독립 후 나머지 12개 공화국을 가능한 한 많이 끌어모아 새로운 연방을 결성하려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노력이 끝내 좌절됐으며 지난 74년간 존재해온 소련이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을 비롯한 이들 3개 공화국 지도자들은 이날 벨로루스 소재 부크강변 브레스트에서 지난 7일부터 이틀간 계속된 비공개 회담을 끝내면서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 독립국 공동체 창설을 발표했다. 성명은 독립국 공동체가 “외교-국방정책을 공동운용”하며 “역내 배치 핵무기는 궁극적인 폐기를 목표로 공동 관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비핵지대화 및 중립국 지위확보를 향한 노력에도 일절 간섭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으로 발표됐다.
1991년 서울방송, 방송허가 취득
1990년 민주화 운동가 김병곤 사망
1989년 삼성전자 4M D램 반도체 해외 첫 출하
1987년 대륙붕 6광구서 처음으로 가스층 발견
1987년 미-소, 중단거리 핵미사일(INF) 폐기협정에 서명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서기장은 1987년 12월 8일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유럽과 아시아지역에 배치된 중단거리 핵미사일(INF) 폐기협정에 서명했다. 1985년 11월 첫 회담이 열린 후 2년 1개월만이었다.
첫 회담의 의제는 공격용 전략무기 50% 감축, 유럽배치 중거리 탄도 미사일 제거, 미국이 추진중이던 전략방위구상(SDI)에 대한 협의였다. 고르바초프는 미국이 SDI를 포기하지 않을 경우 아무것도 합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답보상태에 빠졌던 군축회담의 전기는 1987년 2월 고르바초프가 유럽에 배치된 미국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제거를 다른 의제와 분리, 협상할 수 있다고 한걸음 물러난 데서 마련됐다. 이로인해 두 정상은 양국이 보유한 핵무기의 4%(소련 1천8백46기, 미국 8백46기)를 폐기하는데 합의했다. 그러나 이 협정은 미소양국이 핵무기개발경쟁 이래 처음으로 핵감축시대를 열었다는데 역사적 의의가 있다.
1985년 유명우, WBA 주니어플라이급 세계챔피언 획득
유명우 선수가 미국의 조이 올리버 선수로부터 1985년 12월 8일WBA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을 획득했다.
유명우는 1991년 12월 17일 18차 방어전에서 일본의 이오카 히로키에게 타이틀을 물려줄 때까지 6년간 챔피언 자리를 지켰다. 챔피언을 빼앗긴 지 11개월만인 1992년 11월 18일 다시 이오카 히로키에게 도전, 챔피언 벨트를 되찾은 그는 집념의 복서였다. 이듬해 7월 1차방어에 성공한 후 마침내 1993년 9월 3일 현역에서 은퇴해 영원한 ‘챔프’의 길을 택했다.
유명우 선수는 한국 복싱사에서 몇개의 기록을 갖고 있다. 총21차례로 세계타이틀을 가장 많이 치른 선수, 18차 방어전으로 최다 방어기록을 갖고 있는 선수, 가장 오랜 기간(6년) 타이틀을 보유했던 선수, 국내 최다연승(36연승)을 기록한 선수가 그의 복싱 이력이다.
1983년 브라질, 한국인 불법체류 4,500명 영주권 부여
브라질이 ‘신(新)외국인법’을 개정, 임시거주권자에 대해 영주권을 부여하기로 함에 따라 4천5백명의 한국인 불법체류자들이 브라질 영주권을 얻게 됐다.
현지 공관이 8일 외무부에 보고해온데 따르면 브라질 국회는 2일 ‘신(新)외국인법’ 개정안을 의결, 임시 거주 허가를 받고있는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해 영주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1981년 12월 발효된 ‘신(新)외국인법’에 의해 임시거주권을 부여받았던 한국인 4천5백명 전원이 영주원을 받게 됐다.
1981년 영산호 준공
영산호는1978년에 착공하여 1981년 12월 8일에 준공되었다
이 영산호는 국내기술진의 특수공법으로 시공된 동양최대의 호수로서, 총 1,452억원의 투자비를 들인 이 공사로 인해 목포와 나불도, 영암을 잇는 4,350미터의 방조제가 건립되었다.
이 방조제에는 30톤급의 선박이 영산호를 드나들 수 있도록 우리나라 간척사상 최초의 통선문을 설치하였으며 이 개문으로 인해 주민들은 해마다 고심하던 가뭄과, 강물의 범람으로 인한 홍수의 공포로부터 해방되었다.
또한 이 방조제는 영암을 비롯한 7개군과 목포간의 해상교통을 육문으로 바꿔 놓았고 광목간 고속화도로와 남해고속도로를 연결하여 목포를 일일 생활권에 들게 하였다. 영산호의 준공으로 전천후 과학영농이 가능한 새로운 농토가 마련되었으며 이를 위해 16개의 양수장과 164킬로미터의 용수로를 개발하고 나불도 해상공원을 건설하게 되었다.
1980년 존 레논 피살
비틀즈 멤버 존 레논이 1980년 12월 8일 밤 10시 50분, 뉴욕 맨해튼 자신의 집 현관 앞에서 한 정신이상자가 쏜 총에 맞고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곧 사망했다. 현장에서 검거돼 살인죄로 20년형을 선고받은 범인은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으로 자신을 레논의 열렬한 팬이라고 했다.
1940년 영국에서 태어난 레논은 16세 때인 1956년 이미 ‘쿼리멘’이라는 록그룹을 조직했고 이듬해 기타리스트 폴 매카트니를 만났다. 1958년 조지 해리슨을 합류시킨 레논은 1960년 ‘실버 비틀즈’로 이름을 바꿔 활동영역을 넓혀 나갔다. 1962년 데뷔 앨범 ‘날 정말 사랑해 줘’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자 비틀즈는 마침내 1964년 미국에까지 진출하게 됐다.
1971년 그룹의 공식 해체로 혼자가 된 레논의 삶은 다른 멤버들과 달랐다. 비틀즈 시절부터 정치적 급진주의와 인도의 초월명상 등에 심취해 있었던 레논은 팀 해체후에도 앵글로 색슨 국가의 신좌파 청년들과 어울리며 급진적 정치운동가로 변모했다. 전위예술가인 부인 오노 요코와 함께 뉴욕에 정착해 반전-인권운동에 전념한 이 시기의 레논은 닉슨 행정부의 블랙 리스트에 올랐고 공화당 정부는 FBI를 동원한 미행과 감시를 통해 그의 사생활을 옥죄었다.
1979년 긴급조치 9호 해제
1978년 부산 염직공장 보일러 폭발 사망 29명
1978년 서울대병원 신축병동 의료기기 시동식
서울대병원 신축 병동이 11년 만에 준공돼 1978년 12월 8일 의료시설 기동식을 가졌다. 1967년 12월 7일 착공, 우여곡절끝에 준공된 신축병동은 총투자액 3백60억원이 말해주듯, 동양최대·최신의 시설을 갖추었다.
대지 2만4천4백31평, 연건평 2만5천2백87평의 14층 건물에 2만2천1백80점의 각종 의료시설이 들어찼고, 병상수 1천56개, 외래환자 진료능력은 1일 2천명이나 됐다. 이날 시동식에서 선보인 최신시설중 전산화 횡단 단층촬영기는 경희대병원에 이어 두 번째로 도입한 장비이나 가격성능은 세계최신을 자랑했다. 국내최초로 도입된 1천2백50mm암페어 심혈관 촬영기는 심장 및 혈관을 입체적으로 촬영하여 각종심장 질환을 세밀히 관찰하게 해줬다. 고성능전자현미경도 국내의학계에서는 획기적인 시설중의 하나였는데 실물의 80만배(일반현미경은 8백배)까지 확대, 1억분의 1cm까지 관찰할 수 있다. 이외에도 고에너지 전자선가속치료기, 만능마취기 등을 선보였다.
신축도중 의료계변경, 차관회사교체, 유류파동 등으로 준공시기가 4년이나 늦어졌으나 시설 및 규모는 세계 10대병원에 꼽힐 정도였다.
1978년 포철 3기 설비확장공사 준공
1978년 전(前) 이스라엘 수상 메이어 여사 사망
1977년 14년 만에 쌀막걸리 제조 허용
1977년 쌀 자급자족이 이루어진 직후 쌀막걸리 양조가 허용되었다.
농수산부가 1977년 12월 쌀 수확량을 4천1백70만6천섬으로 최종집계, 발표했다. 이는 전년보다 15.2%, 평년작에 비해 35.3%가 증가한 양이다. 정부 수립이후 최대 풍작이었다. 그러나 쌀 재고량이 정부미 680만섬, 민간보유 550만섬 등 1,230만섬에 달해 농촌 쌀값이 정부수매가(80kg 정곡기준 가마당 2만6천2백원) 이하로 떨어져 생산농민의 의욕을 떨어뜨렸다.
이처럼 추곡(秋穀)이 대풍을 이룬 것은 1971년 다수확 신품종인 통일벼가 농가에 보급되기 시작했고, 이와 더불어 영농기술이 크게 향상됐기 때문이었다.
1974년 이후 연속 대풍으로 쌀을 완전 자급하게 되자 정부는 지금까지의 쌀 소비억제책을 크게 완화, 1월 무미일(無米日)을 철폐하고 12월 8일에는 지난 1963년부터 금지해 온 쌀막걸리 생산을 허용했다. 1963년 쌀막걸리 제조가 금지된 이후 막걸리는 쌀소비절약을 위해 밀가루 80, 옥수수 20의 비율로 만들어왔다.
1977년 한국-지부티 국교 수립
1974년 그리스 국민투표로 142년간의 왕정 종식
민주주의의 요람 그리스가 1974년 12월 8일 국민투표에서 1백42년간의 왕정을 종식하고 대통령제 공화국을 채택했다. 이날 투표에서는 군주제를 반대하는 도시유권자들의 압도적 투표에 의해 공화제 찬성이 군주제 찬성투표를 전국에서 5대1의 비율로 누르고 압승을 거두었으며 공화제 찬성은 73%를 기록했다.
이같은 투표결과로 그리스정부는 12월 23일 각의를 열고 과거에 국왕이 행사했던 대권과 다른 일부권한을 대통령에 부가하는 to 공화국 헌법초안을 승인했다.
새 헌법은 대통령에게 수상과 각료를 임명 또는 해임하는 권한과, 내각의 건의에 따라 국가의 중대문제에 관해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날 투표로 왕정의 폐지를 결정한 그리스는 터키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뒤 1832년 런던협약에 의해 탄생한 후 지난 1백42년간 왕정을 실시해 왔었다. 왕정이 폐지될때까지 7명의 왕이 그리스를 다스렸다
1966년 북한 권투선수 김귀하, 주(駐)크메르 일본대사관에 망명 요청
1966년 경북 울진서 버스 추락 사망 22명 부상 43명
1966년 그리스 여객선, 에게해서 침몰. 234명 사망. 생존47명
1964년 동양방송 TV (TBC) 개국
1964년 한국-독일 해운협정
1964년 미국 7함대 원자력잠수함 7척 배치
1963년 한국 독립운동가 신건식 사망
1963년 미국 메릴랜드주에서 여객기추락사고 81명 사망
1963년 역도산, 일본 동경 적판(赤坂)의 카바레서 칼에 맞음(15일 사망)
1961년 미-소 양국 신군축위 구성에 합의(동서 각5국, 중립 8국)
1958년 카이로에서 아시아-아프리카 경제회담 개막
1950년 유엔군, 원산서 철수 완료
1950년 대한여자청년단 발족
1949년 우루과이, 한국 승인
1944년 일제, 종교보국회 강제 결성
1943년 한글학자 이윤재 옥사
국어학자 이윤재씨가 1942년 10월 1일 세칭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체포돼 함흥 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43년 12월 8일 옥사했다. 56세였다.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이윤재는 대구 계성학교에서 공부하고 평북 영변의 숭덕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에 3·1운동에 가담해 3년 가까이 복역했다. 출옥 뒤에 중국 베이징대학 사학과에서 수학하고 24년에 귀국해 여러 중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조선어학회 기관지인 ‘한글’을 창간해서 편집을 주관했고, 진단학회에도 가입해 국사 연구에도 발을 들여 놓았다. 1937년에는 흥사단 계열의 수양동우회 사건에 연루되어 이듬해 11월까지 옥살이를 했고, 그 뒤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일했다.
이윤재의 공부는 본디 사학으로 출발했지만 그의 주된 활동은 국어학과 국어 운동쪽에 있었다. 그는 조선어학회의 동료 국어학자들과 한글맞춤법을 제정하고 표준어를 사정하고 조선어사전을 편찬하는 등 국어와 한글보급을 통한 민족운동에 몰두했다. 국가보훈처는 선생을 1998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941년 외국인 신부-교구장 67명 피검
1938년 독일 과학자 오토 한과 프리츠슈트라스만, 원자핵 분열 성공
1931년 동축 케이블 미국에서 특허 승인
1924년 경남도청,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 결정
1922년 미 프로야구단 초청. 국내 전(全) 조선군과 경기
1914년 독일 순향함 4척 포클랜드 부근서 침몰. 1,800명 사망
1909년 기독교, 일진회 성토문 발표
1903년 영국 철학자 스펜서 사망
1900년 태극기 규정발표, 흰바탕에 길이 2척 넓이 1척 태극 7촌 청홍색
1898년 사회주의 운동가 차금봉 출생
1880년 사학자 단재 신채호 출생
1865년 핀란드 작곡가 시벨리우스 출생
1863년 칠레 산티아고의 라 캄파니아 교회 화재로 2500여명 사망
1863년 조선 제25대 임금 철종 사망
1570년 퇴계 이황 사망
퇴계 이황 선생이 1570년 12월 8일 사망했다. 퇴계는 평생을 강의목눌한 태도로 살다간 거유(巨儒)였다. 퇴계는 칠십평생 79번이나 관직을 사양할 정도로 출세에는 초연했지만 관직과 아예 담을 쌓고 지낸 것은 아니었다.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서기도 했고 마지못해 조정의 부름에 응하기도 했다.
‘부귀는 뜬 구름과 같고, 명예는 나는 파리와 같다’고 읊조렸던 퇴계는 자기수양과 지식이 부족한 자가 공직을 맡는 것은 국가의 녹을 축내는 도둑질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또 청렴한 마음과 도의심으로 매사를 늘 조심스럽게 다루라면서 ‘경(敬)’을 강조했다. 퇴계는 한마디로 당대 제일의 이론가였다. 제자들과 토론하기를 즐겼으며, 성리학의 심성론과 관련한 다양한 저술을 남겼다.
제자 유성룡과 기호학파의 율곡 이이에 이르기까지 그의 후학들은 조선사회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주류였다. 퇴계는 ‘이기이원론’의 입장에서 아들뻘인 고봉 기대승과 벌인 ‘사단칠정논쟁’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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