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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1일 오늘의 역사
2022년 하와이 카가나와코아 원주민 마지막 공주 사망(96세)
2022년 멕시코 주민들을 학교에 모아놓고 총격 7명 사망
2021년 미국 켄터키주 등 8개주 강타한 사상 최악의 토네이토 100여명 이상 사망 각 도시 폐허
2021년12월11일 시작된 토네이토로 인해지 확인된 사망자 수가 100명에 육박하고 무려 400km를 이동한 토네이도의 영향권 아래 들었던 지역에서는 전기와 물이 끊기는 등 엄청난 피해를 기록 이다 금요일 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50건의 토네이도가 동시다발적으로 켄터키와 테네시, 미시시피, 아칸소 등 남부 4개 주를 포함해 8개 주를 강타했다. 미국 국립기상청에 따르면 일부 지역에서는 토네이도의 풍속이 112㎞에 달했고 토네이도에 휩쓸려 날아간 가족사진이 240km가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기도 했으며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켄터키주에는 비상사태가 선포됐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연방 자원의 긴급 투입을 지시했다 특히 피해가 집중된 켄터키주 남서부 그레이브스 카운티의 메이필드시는 말 그대로 폐허가 된 가운데 양초공장 지붕이 무너지면서 직원 110여명 가운데 불과 40여명만 구조되기도 했다 미국 언론들은 5개주 이상을 한꺼번에 휩쓴 토네이도는 역사상 처음이라며 규모와 위력이 역대 최악이라고 보도했다
2017년 7인조 보이그룹 방탄소년단 미국 빌보드 '올해의 아티스트' 10위에 오름
2015년 북한 모란봉악단 베이징 공연 직전 평양으로 돌아감.
2015년 제1차 남북당국회담(개성공단) 결렬.
2014년 부산에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열림
2010년 백찬기 전 국회의원 별세
제11·13대 국회의원인 백찬기(78) 전 의원이 2010년 12월 11일 별세했다. 경남 마산 출신으로 항만노조 등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정계에 입문했으며, 줄곧 김영삼 전 대통령과 활동을 함께 했다.
1981년 마산에서 민주사회당 소속으로, 1988년엔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1990년 3당 합당 후에는 민자당 정책위 부의장을 지냈다.
2008년 피겨 그랑프리 파이널 한국(고양)에서 처음 열림(-12.14까지) 김연아 2위
2008년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 인근 식당에서 자살폭탄 테러 발생
2008년 12월 11일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 인근 식당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55명이 숨지고 120명이 다쳤다.
국방부는 이날 오후 일찍 키르쿠크 북쪽 15㎞ 지점에 위치한 유명식당 ’압둘라’에 들어선 괴한이 식당 한가운데서 허리에 찬 폭탄 벨트를 터뜨렸다고 전했으며, 내무부의 한 당국자는 식당 옆에 세워져 있던 차량에 폭발물이 설치돼 있었다고 말하는 등 경위에 대해서는 소식이 엇갈렸다.
테러가 발생한 이라크 북부의 유전지대인 키르쿠크는 아랍계와 쿠르드족, 터키계 등이 공존하는 다인종 지역으로 이 지역의 쿠르드족과 쿠르드 자치정부는 키르쿠크를 쿠르드 자치주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라크 중앙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지역이다.
사건 당시 식당내에는 아랍계 부족 지도자들과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이 속한 쿠르드애국동맹(PUK) 인사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함께 점심을 마친 뒤 탈라바니 대통령을 만나 이 지역의 아랍계와 쿠르드족, 터키계간 갈등을 해소할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피해자 대부분은 이슬람권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이드-알-아드하(희생제)’ 연휴 마지막 날을 맞아 나들이를 나온 가족 단위 손님들이었다.
2007년 경의선 문산-봉동 간 남북화물열차 운행 개시
2005년 호주에서 백인-아랍계 청년들 대규모 충돌
2001년 알 카에다 항복 선언
아프가니스탄 동부의 토라 보라 산악지역을 최후 거점으로 삼아 저항하던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조직 ‘알 카에다’가 9·11 테러 발생 3개월 만인 2001년 12월 11일 항복을 선언했다.
알 카에다는 이날 주로 파슈툰족으로 이뤄진 동부동맹과의 격전에서 주요 진지들을 빼앗긴 뒤 모하메드 자만 사령관 등 동부동맹측 대표들과 가진 협상에서 투항 의사를 밝혔다. 자만 사령관은 알 카에다측에 12일 오전 8시까지 항복하라고 시한을 통보하면서 잠정 휴전을 선언하고, 그때까지 투항하지 않으면 공격을 재개하겠다고 최후통첩했다.
이로써 미국과 반 탈레반 반군을 중심으로 전개돼온 테러와의 전쟁은 탈레반 정권 붕괴에 이어 알 카에다 최후 항전에 사실상 종말을 고함으로써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최종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알 카에다의 항복 선언에도 불구하고 빈 라덴과 탈레반 최고 지도자 모하메드 오마르의 소재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또 아랍계 등 대부분 외국인들로 구성된 알 카에다 대원들이 전원 투항할지 여부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2000년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사장, 포브스지의 `올해의 기업인`에 선정
한국계 일본인 손정의(43·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사장이 미국 포브스지가 선정하는 `올해의 기업인`(Businessman of the Year)에 뽑혔다. 포브스는 2000년 12월 11일 발매한 잡지에서 손사장을 표지인물로 올리고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포브스는 손사장을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로 "일본의 경기회복 지연 속에서도 손사장은 회사를 크게 키웠고 야후의 대주주가 되는 등 벤처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고 밝혔다. 포브스는 또 손사장이 벤처기업 자금조달의 장으로 나스닥 재팬 주식시장을 설립했으며 파산한 일본채권은행을 인수, 벤처·중소기업에의 투·융자에 나선 점 등을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포브스는 손사장이 일본채권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비판 등도 소개하면서 "그럼에도 불구, 그가 일본의 젊은 기업가의 모델이 될 것임엔 변함이 없다"고 결론내렸다
1998년 ‘혼불’ 작가 최명희씨 별세
대하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51)씨가 1998년 12월 1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최명희는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쓰러지는 빛’이 당선돼 등단했고, 1980년 4월 ‘혼불’의 첫 장을 썼다.
일제시대인 1930년대 이후 해방까지 전북 남원의 매안 이씨 가문에서 무너지는 종가를 일으키려는 종부(宗婦) 3대(청암부인, 율촌댁, 효원)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일제의 수탈과 근대사의 격동 속에서 양반사회의 기품을 지키려는 주인공들의 노력, 그 한편으로 평민·천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서럽게 살면서도 민족혼의 회복을 위해 몸부림쳤던 민중의 피와 눈물이 배어 있다. 요즘 감각으로는 따라 읽기도 힘들 만큼 꼼꼼한 문체로, 보석처럼 숨겨진 우리말을 찾아내 전래의 세시풍속 관혼상제 음식 노래와 관제(官制) 등을 기록한 소설은 생생한 한국학·민속학자료이다.
17년을 한 작품에 매달리는 것은 고통이기도 했다. 최명희는 하도 고통스러워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라며 때때로 엎드려 울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고통스런 집필은 건강을 조금씩 해쳤다. ‘혼불’ 5부를 집필하던 1996년 8월경 이미 암이 발병했고 무리해가며 원고를 마무리하면서 병은 더 깊어졌다. 결국 삶을 바쳐 작품을 쓴 셈이다
1997년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기후협약’ 채택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총회(일명 교토회의)가 1997년 12월 11일 이산화탄소, 이산화질소, 메탄 등 6가지 가스 배출 감축 목표율을 선진국 평균 5.2%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교토 의정서`를 채택하고 폐막됐다. '교토 의정서'의 효력은 2005년 2월 16일 발효되었다.
이 협약은 160여개국 정부 대표들이 일본 교토에서 이같은 내용의 의정서를 채택해 `교토 기후 협약`이라 불린다. `교토 기후 협약`은 지구 온난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목표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띤 최초의 국제 합의로 지구환경 보호라는 측면에서 큰 진전인 동시에 각국의 경제발전 모델과 국민생활 전반에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 등 개발도상국의 감축 의무대상국 참여 문제는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첨예한 의견 대립 속에 결국 의정서에 포함되지 않았다.
의정서는 참가국들을 8그룹으로 나눠 각 그룹별로 1990년을 기준 2008∼2012년 5년간 평균 온실가스 배출 감축률을 차등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 7%, 일본 6%, 유럽연합(EU) 8% 등으로 삭감 폭이 높게 책정된 반면 아이슬란드, 오스트레일리아, 노르웨이 등 3개국은 1∼10%의 배출 증가를 인정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2000년 7월,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4분의 1을 방출하는 미국이 자국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며 탈퇴의사를 밝히자 이에 일본도 미국의 참여없이는 동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좌초 위기를 맞게 됐다.
1996년 조선일보, `이승은 인형전-엄마 어렸을적엔` 개막
이승은씨의 인형전 `엄마 어렸을적엔`가 1996년 12월 11일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개막됐다. 전시회에는 총 1백78점의 인형이 펼치는 `만화가게` 등 37가지 작품들이 전시됐으며, 작품들은 1950~60년대의 정겨운 생활주변 풍경을 실감나고 정교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홍익대 서양화과 출신의 이승은씨가 인형을, 학교 선배인 남편 허헌선씨가 연출과 소품제작을 맡은 이 전시는, 어린이에서부터 70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폭넓은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한겨울의 추위를 녹여냈다. 가족 관람객들을 창출해내 가족간의 대화와 사랑이 영그는 문화현장이 되기도 했던 이 전시는 `미술전시는 대중성과 거리가 멀다`는 일반론을 꺾고 수많은 에피소드를 남겼으며,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서울시의회 건물 앞까지 길게 늘어선 관람객들을 노린 군것질 장사와 엿장사까지 등장시켰다.
올망졸망한 인형 작품들로 1950~60년대의 생활상을 아련한 향수로 표현해 낸 `이승은 인형전-엄마가 어렸을 적엔`은 관람객수만 10만6천명이 웃도는 가운데 폐막 예정일인 12월 27일을 한참 넘기고 1997년 1월 8일 막을 내렸다.
1994년 러시아군, 체첸 자치공화국 침공
2백여대의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운 러시아군이 11일 러시아로부터의 완전 독립을 꾀하고 있는 체첸 자치공화국을 침공했다.
이타르타스통신은 러시아 육군과 내무부 병력들이 이날 새벽(이하 현지시각) 3개 방향에서 체첸공화국 국경으로 진입했으며 시속 20㎞속도로 수도 그로즈니를 향해 진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테르팍스통신도 러시아군이 인구세티아와 북오세티아공화국에서 서쪽방향으로, 다게스탄공화국에서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정부의 알렉세이 마루구노프 대변인은 이번 군사작전은 이날 새벽 5시에 시작됐으며 체첸정부군의 저항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외신은 일부 러시아군이 이날 그로즈니 외곽 20㎞까지 진격한 것으로 전했다. 러시아는 지난 91년 독립을 선언한 체첸공화국에 대해 범죄정권이라고 비난해 왔으며, 특히 전략요충인 러시아 남부 카프카스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어 체첸의 독립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편 체첸공화국의 아부카로프 타이마즈 경제장관은 이날 체첸 공화국은 12일 예정대로 러시아와 협상을 가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도 이날 러시아 텔레비전방송을 통해 체첸공화국에 대한 군사개입은 체첸사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조치라고 말한 뒤 12일로 예정된 양측간의 회담이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1993년 에두아르도 프레이 칠레 대통령에 당선
1993년 12월 11일 실시된 칠레 대선에서 집권민주연정의 에두아르도 프레이 후보(51·기독민주당)가 압승을 거두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50대 초반의 신세대 정치인인 프레이 당선자는 지난1964년~70년 대통령을 지낸 에두아르도 몬탈바의 아들이다. 부자가 대를 이어 집권하는 셈이다.
토목기사였던 프레이는 부친의 하야 이후 30대 시절의 대부분을 1973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 치하에서 실업인으로 보냈다. 그러다 1980년 피노체트의 집권연장 개헌에 부친이 항의한 것을 계기로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이때 정경분리라는 칠레의 정치관행을 고려, 기업운영과 재산일체를 친동생에게 완전히 일임했다.
그는 하원의원을 지낸 뒤 수도 산티아고 상원 선거에서 전국 최다득표로 당선되는 등 착실하게 권력에의 계단을 밟아 올라가기 시작했다. 1991년 전당대회에서 70%의 득표율로 당대표에 당선된데 이어, 대통령후보 지명전에서 아일윈 현 대통령의 지원에 힘입어 과반수(64%)의 지지를 획득, 대권주자로 나섰다.
1992년 부산 초원복집 도청사건
제14대 대선을 앞두고 관권 부정선거 사건인 초원복집사건'이 벌어졌다.
오전7시 부산 초원복집에서 당시 김기춘 법무부 장관과 김영환 부산직할시장, 박일용 부산지방경찰청장,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 우명수 부산시 교육감, 정경식 부산지방검찰청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장 등이 모여서 민주자유당 후보였던 김영삼을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정주영, 김대중 등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시키자는 등 관권 선거와 관련된 대화를 나눴는데, 이 내용이 정주영 후보측의 통일국민당에 의해 도청되어 언론에 폭로되었다.
아파트 값을 반으로 내리겠다는 공약 등으로 보수층을 잠식하던 정주영 후보측이 민자당의 치부를 폭로하기 위해 전직 안기부 직원등과 공모하여 도청 장치를 몰래 숨겨서 녹음을 한 것이었다.
1992년 대전 충남방직 공장 화재. 건물 3만8,700평 소실, 300여억원 재산피해
1991년 유럽공동체(EC) 로마조약개정안 채택에 합의, 새로운 연합체 성립에의 진일보
유럽공동체(EC) 12개 회원국 정상들은 1991년 12월 11일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에서 회담을 갖고 EC를 보다 강화된 새로운 연합체성격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로마조약개정안 채택에 합의했다.
유럽의 정치통합과 경제 및 통화 통합을 위한 유럽통화조약으로 유럽중앙은행 창설과 단일통화사용의 경제통화동맹, 노동조건 통일의 사회부문, 공동방위정책, 유럽시민규정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EC를 EU(유럽연합)로 명칭을 바꾸고 1997년에서 1999년까지 단일통화를 단계적으로 도입할 것과 유러폴(European police intelligence agency)을 창설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EC가 시장통합을 넘어 정치-경제적 통합체로 진전하기 위한 기반을 제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991년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
1990년 제3차 남북고위급회담(평양)
1990년 조영래 인권변호사 사망
‘인권변호사’의 전설로 통하는 조영래 변호사가 폐암에 걸려 투병 중 1990년 12월 11일 사망했다. 5,6공 시절 추악한 권력에 맞서며 소외된 이들을 위해서 몸을 던졌던 조 변호사는 학창시절 이래의 인권운동과 8년동안의 짧은 변호사 생활을 거치며 민주화 운동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선후배 법조인과 지인들은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다 43살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등진 조 변호사의 죽음에 안타까워 했다. 197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나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던 그는 다시 민청학련 사건으로 6년동안의 수배생활을 한 뒤 1982년에야 변호사로 일할 수 있었다.
최초의 공익소송으로 일컬어지는 망원동 수재민 소송, 부천서 성고문 사건, ‘말’ 보도지침 사건 등 그의 손을 거쳐간 많은 사건들은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싸움이자 정당성 없는 권력에 대한 투쟁이었다
1985년 필리핀 대통령선거 야당단일후보로 코라손 아키노여사 추대
1983년 방글라데시, 에르샤드 대통령에 취임
1983년 아르헨티나 민정 출범
1982년 미국서 최루탄 원료 폭발사고
1981년 동-서독 정상회담 개막
1981년 세계 세 번째로 프로야구 탄생 한국프로야구위원회(KBO) 창립총회
1981년 유엔 사무총장에 케야르 선출(12월15일 취임)
1980년 정부, 김지하 등 8명 형집행정지결정으로 석방
1972년 설악산, 지리산, 낙동강 하류 등 철새보호구역 지정
1972년 아폴로 17호, 마지막 달 착륙
1972년 경주 민가에서 신라시대 초기 추정 금관 발견
1970년 소련 무인달표면차량 원격조종작업 성공
1969년 대한항공 (KAL) YS-11 북한에 여객기 피랍
대한항공 YS-11 여객기가 1969년 12월 11일 북한에 의해 공중피랍됐다. 승객 47명과 승무원 4명 등 51명을 태운 YS-11 쌍발여객기는 이날 낮 12시 25분 강릉비행장을 떠나 서울로 향하던 중 대관령 상공에서 납치돼 오후 1시 18분 원산 근처 선덕비행장에 착륙했다. 1958년 2월 16일 KNA 소속 `창랑호` 납치에 이어 두 번째로 발생한 항공기 납치 사건이었다.
북한은 이 사건을 정치적 흥정대상으로 삼으려다 국제적인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1970년 2월 5일 납북 민간인들을 송환키로 약속했으나 송환 당일 약속을 뒤집기도 했다. 이후 남북이 이 사건처리를 둘러싸고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닫자 북한은 종전의 태도를 바꿔 결국 납북 66일만인 1970년 2월 14일 탑승자 가운데 승객 39명 만을 판문점을 통해 송환했다.
귀환한 승객 일부는 15일 오후 3시부터 중앙정보부 강당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가졌고, 이들의 증언으로 납북경위가 상세히 밝혀졌다. 이들의 회견 결과 KAL기 납북 사건은 고정 간첩 조창희의 단독 범행으로 밝혀졌다. 승객으로 가장한 고정간첩 조창희가 이륙후 기장실로 들어가 권총으로 기장 유병하씨 등을 협박했던 것. 또 이들은 피랍 후 함흥을 거쳐 평양으로 이송된 뒤 집단별·개인별로 수용되어 북한측으로부터 정치 세뇌를 받았는데, 이에 비협조적인 승객들은 전기 고문이나 약물 고문을 받았다고 했다.
1968년 광화문 41년만에 복원
우리 근대사의 온갖 굴곡을 몸으로 겪으며 경복궁 한 귀퉁이에 버려졌던 광화문이 1968년 12월 11일 41년 만에 제자리에 복원됐다. 하지만 위치는 원래 자리로부터 14.5m 뒤쪽으로 밀려나고, 방향도 조선총독부 건물에 맞추느라 3.5도 동향으로 틀어졌다. 목조건물이던 누각은 철근 콘크리트로 대체됐고, 현판도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로 다시 썼다.
광화문은 1399년 태조 8년에 경복궁 둘레에 궁성을 쌓고 동·서·남쪽에 세운 성문 가운데 남문이자 정문(正門)으로 세워졌다. 동문은 건춘문(建春門)이고 서문은 영추문(迎秋門)이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865년 대원군이 중건했으나 1927년 일제가 조선총독부 청사를 신축하면서 총독부를 가리는 흉물로 보고 철거를 논의하던 중 일본의 문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적극적 반대로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입구로 옮겨졌다. 이마저 6·25 때 맞은 폭격으로 불타 축대만 남은 채 방치되다가 이날 현재 자리에 복원된 것이다.
1963년 수도방위사, 수도경비사로 개편
1963년 프랑스 중국과 수교
1961년 미-영-불 외상회담, 콩고 통일과 평화성취 목표에 합의
1961년 김중업 설계 주한 프랑스 대사관 건물 준공
김중업(1922~1988)은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의 요코하마 고등공업학교 건축학과에서 파리미술대 출신의 나카무라 준페이 교수의 가르침을 받았다. 1941년 12월 졸업 후에는 일본의 건축사무소에서 건축 실무를 익히다가 해방 전 귀국하고 해방 후인 1947년 3월 서울대 건축과 조교수로 부임했다.
부산에서 피란생활을 하던 1952년 9월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유네스코 주최 제1회 세계예술가회의에 참석했다가 귀국하지 않고 프랑스 파리에 눌러앉았다.
1956년 귀국 후 1957년 4월 제1회 건축작품전람회를 열고 1958년 부산대과 서강대 본관을 설계함으로써 현대 한국 건축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그는 1959년 봄 7명의 프랑스 건축가들과 경합을 벌여 ‘현대 한국 건축의 기점’으로 평가받는 주한 프랑스 대사관 건물의 설계를 따냈다. 당시 앙드레 말로 문화부 장관이 김중업의 손을 들어주고 드골 대통령은 설계 원안 그대로 지으라고 당시 주한 프랑스 대사에게 친서를 보냈다. 김중업은 1961년 완공한 프랑스 대사관 건물이 이후 자신의 작품 세계에 길잡이 역할을 했다며 강한 애착을 가졌다.
그의 대사관 설계는 개인적으로는 스승 르 코르뷔지에의 그늘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우리 건축계로는 서양 건축의 한국적 수용과 한국 전통 건축의 현대화라는 당시 한국 건축의 두 화두를 동시에 풀어냈다는 점에서 일본화된 서양 근대 건축의 마감을 의미했다. 콘크리트로 지붕 처마선을 직선과 곡선으로 처리하는 등 단아한 전체 구성과 공간 처리는 한국의 얼과 프랑스다운 우아함이 잘 어우러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중업은 대사관 설계의 공로를 인정받아 1965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공로훈장을 받고 귀족 칭호(슈발리에)를 얻었다.
1960년 알제리서 회교도와 백인 충돌(프랑스군 발포로 사상자 다수)
1958년 보안법반대 전국언론인대회
1955년 주한 그리스군대 철수
1954년 유엔총회 국제금융회사 설립안 채택
1952년 한국,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가입
국제민간항공기구는 국제민간항공조약(시카고조약)에 기초해 1947년 4월에 발족된 유엔전문기구중의 하나다. 우리나라는 1952년 12월 11일 가입했다.
이 기구는 조약의 원칙과 정신을 계승, 비행의 안전확보, 항공로나 공항 및 항공시설 발달의 촉진, 부당경쟁에 의한 경제적 손실의 방지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각국은 유럽연합 역내에서의 항공자유화의 진전과 1995년 세계무역기구의 발족을 계기로 국제항공노선의 개설이나 운임의 설정, 증편 등을 전면 자유화하는 방안을 기구내에서 검토중이다.
총회는 통상 5년마다 개최된다. 영문으로는 ICAO(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이다.
1951년 살바도르 달리 `신비선언` 출간
1946년 유엔총회 국제아동구호기금(UNICEF) 설립안 채택
1945년 페니실린 발견한 플레밍 노벨 생리학상 수상
1941년 독일-이탈리아, 미국에 선전포고
1941년 일본-독일-이탈리아, 단독불강화협정 조인
1937년 이탈리아 국제연맹 탈퇴
1932년 광혜원 설립 기초를 마련한 한말의 주한외교관, 선교사 앨런 사망
1930년 독일, 미국 영화 ‘서부전선 이상없다’ 상영금지
영화 ‘서부전선 이상없다’가 독일 개봉 7일째이던 1930년 12월 11일 돌연 상영금지됐다. ‘서부전선…’은 1차 대전을 배경으로 19세 병사의 눈을 통해 전쟁을 리얼하게 묘사한 독일 작가 에리히 레마르크의 자전적 반전(反戰)소설을 미국 유니버설사가 영화화한 작품이다. 제목은 주인공이 총에 맞아 죽어가는데 전선사령부는 본부에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판에 박힌 전문(電文)을 타전하는 장면에서 따왔다.
레마르크의 원작 소설은 부전(不戰)조약으로 평화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었던 1929년 1월 31일 출간돼 그 해 독일에서만 50만부 넘게 팔린 것은 물론 18개월 만에 세계 25개국 언어로 번역돼 300만부 이상 팔리는 화제를 모았다. 루이스 마일스턴이 감독한 영화는 1930년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당시 독일은 반전영화를 수용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3개월 전 치러진 총선에서 나치가 107석을 획득하면서 제2당으로 급부상, 파쇼화가 막 태동하고 있었다. 경제공황으로 400만명의 실업자가 거리로 내몰렸고, 몰락한 중산층은 프랑스와 유태인을 향해 증오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나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선동했고, 대중은 그런 나치에 열광했다. 나치의 광기(狂氣)는 ‘서부전선…’ 같은 소설과 영화를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레마르크는 1932년 나치의 탄압을 피해 스위스로 몸을 피해야 했고, 1933년 정권을 장악한 히틀러는 레마르크 작품들을 모두 불태우고 국적마저 박탈(1939년)했다.
1927년 중국 공산당 광동소비에트정권 수립
1918년 소련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 출생
1913년 프랑스 배우 장 마레 출생
1911년 이청천 등 대한독립군, 중국군과 항일연합군 편성
1908년 평민 의병장 신돌석 세상 떠남
1901년 육군병원 개설
1901년 마르코니 대서양횡단 무선통신실험 성공,
1856년 러시아 혁명가 게오르기 발렌티노비치 플레하노프 출생
1855(조선 철종 6) 을사늑약 때 자결한 매천 황현 출생
1843년 세균학 의학자 로베르트 코흐 출생
1810년 프랑스 시인 알프레드 뮈세 출생
1803년 프랑스 작곡가 베를리오즈 출생
1456(조선 세조 2) 원구단 조성
935(신라 경순왕 9) 신라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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