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끝에
문이 있었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봐
당신이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 기억나.
머리 위로, 소음, 소나무 가지들이 흔들리고 있다.
그러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희미한 태양이
건조한 들판 위로 깜박거렸다.
살아남는 것은 끔찍하다
의식이
어두운 땅에 묻혀있는 것처럼.
그리고 나서 끝났다: 당신이 두려워하고, 영혼이 되고 말할 수 없는 것,
갑자기 끝나는 것같고, 뻣뻣한 땅이 약간 구부러진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수풀더미를 뛰어다니는 새떼라 여겼다.
기억을 못하는 당신
다른 세계로부터 온 길
내가 다시 당신에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망각에서 돌아오는 것은 무엇이든 목소리를 찾기 위해 돌아온다고:
내 삶의 한 가운데서
짙은 푸른색의, 커다란 분수가 있다
그림자 드리워졌다 짙푸른 바닷물에
-<야생 붓꽃> 루이즈 글릭
루이즈 글릭은 퓰리처상을 받은 시 ‘야생 붓꽃’을 비롯해 삶 속에서 겪은 상실과 아픔을 자연에 빗대 썼다. 거식증을 앓았던 그는 이른 나이에 예민한 감수성을 갖게 됐고, 이것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글릭은 미국 시의 정통 흐름에선 벗어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정은귀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는 “글릭은 스스로 자연시인, 여성시인, 고백시인 등의 분류에 묶이는 걸 싫어해 늘 ‘사이’의 시인으로 남고자 했다"면서 "깊이 있는 사유와 지적인 깨달음을 자연에 투사해 어렵지 않으면서도 생동감 있는 시를 썼다”고 했다.
그는 일상의 삶을 관조하며 자연이 주는 신성한 회복력을 노래한 시들을 남겼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쓴 지금, 자연과 언어가 주는 치유력을 높이 평가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 교수는 밥 딜런이 받았을 때에도 시와 노래가 주는 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면서 “글릭의 수상은 포스트 코로나 이후 세계를 살아갈 때 우리가 어디에 기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던진 것 같다”고 했다.
시인 류시화는 루이즈 글릭의 ‘눈풀꽃’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개하기도 했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류시화는 여기 기도와 같은 시가 있다면서 이 시를 인생이라는 계절성 장애를 겪으며 잠시 어두운 시기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읽어주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