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 산행일자: 2022년 08월 14일
☞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안개와 높은 습도
☞ 산행거리: 도상거리 12.9km + 들머리 7.5km +날머리 6.3km=26.7km / 13시간 4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와운마을 입구-탁용소-금표교-병소-병풍교-병풍소-명선교-옥류교-대웅교
제승대-신선교-소원교-함박골 입구-반달교-출렁다리-간장소-유유교
박영발 비트 갈림길-연하교-막차-선봉교-화개교-샘터-화개재-1,343.1m봉
토끼봉-쉼터-안부-운봉무덤-쉼터-명선봉-연하천대피소-음정마을 갈림길
삼각고지-암봉-석문-외부자 바위-너럭바위-부자바위-쉼터-형제봉
형제바위-전망바위-안부-조망바위-석문-벽소령대피소-조망바위-바른재
안부-1,478m봉-안부-덕평봉-선비샘-선비샘 전망대-안부-안부-망바위
칠선봉-안부-1,608m봉-안부-영신봉-세석대피소-음양수 갈림길-세석교
1,400고지 전망대-북해도교-천팔교-홍수 예.경보기-거림탐방지원센터
☞ 소 재 지: 전북 남원시 산내면 /경남 하동군 화개면, 함양군 마천면, 산청군 시천면
갑자기 지리산의 야생화가 그리워진다.
원래 계획은 다음주에 지리산에 가서 반야봉의 落照를 감상하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곳에 있는 절집 묘향암에서 하루밤을 留宿한 다음 성삼재에서
세석산장까지 지리산 구간을 마치려고 계획을 잡았는데 후배산꾼들과의 일정
조율이 잘 안되어 이러다가는 안되겠다 싶어서 토요일에 오전만 근무하고
휴식을 취한 다음에 지리산 산길을 걸으려고 했는데, 세상사가 내 맘대로
안되듯 갑자기 예정에 없던 고객과의 늦은시간까지 상담을 하고나니 진이 빠진다.
그래도 이 나이까지 정년 퇴직이 없는 직업에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게 생각하며 집으로 와서 간단하게 1시간정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밤 11시경에 동서울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동서울발 → 인월행 버스표
자정 1분전에 지리산 백무동으로 출발하는 버스에 탑승한다.
토요일 늦은 밤에 백무동으로 향하는 버스는 23:50, 23:55, 23:59분 3대가
거의 동시에 출발하는데 모두 다 滿車 수준이다...차에 오르자마자 피곤했던
탓인지 깊은 잠에 빠졌다가 고속도로에서 차가 심하게 흔들리는 바람에서
잠에서 깨어나 차창밖을 바라보니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서상i.c를 지나고
있는데 최근에 비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고속도로 노면이 많이 파인 모양이다.
잠시후에 버스는 함양i.c를 빠져나와 함양터미널에서 1명이 내리고 잠시후에
인월 버스 터미널에서 나혼자 내리고 버스는 백무동으로 향한다.
인월버스 터미널(03:10)
터미널에 있는 편의점에 불이 켜져 있으나 택시 승강장에는 택시가 한대도 안 보인다
이곳에 오면서 자주 이용하는 인월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질 않는다.
하기사...이 시간에 전화를 한 다는 자체가 예의가 아니제...
마땅히 물어볼 곳도 없다...편의점 앞에 대엿명의 사람들이 있어서 물어봤으나
자기들도 휴가를 나왔는데 펜션에서 자기들을 태우러 오는 차를 기다리는 중이란다.
날이 밝으며 택시가 오겠지하고 택시 승강장 의자에서 멍때리기를 하고 있는데
20분쯤 지났을까...택시가 한대 보이기에 손을 들었더니만 차를 세워준다.
이곳에서 성삼재까지 예약한 등산객을 태워주고 오는중이란다
택시를 타고 와운마을로 가자고 하니까...이 기사는 와운마을 방문객인 알았던 모양이다.
와운마을을 왜가요 하는거다... 화개재로 올라가려는 등산객이라고 하니까.
택시비가 25,000원 나오는데 30,000원을 달라고 하기에 일단 가자고 하고는 탄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반선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는데 반선마을에서 와운마을
입구까지는 약 2.5km의 거리라 와운마을 입구까지 택시를 타기로 한다.
가는 길에 기사양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와운마을 입구에 있는 와운교에 도착한다.
택시 요금은 22,500원이 나왔는데 30,000원이 좀 과하지 않냐고 하면서 돈이 없어서
걸어다니는 산꾼이 불쌍하지도 않냐고 하니까...기사양반! 쿨하게 5,000원을 깍아준다.
기사양반과 유쾌한 작별을 하고 택시에서 내린다.
오늘 이곳으로 오면서 산행코스와 교통편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다.
1, 버스를 타고 백무동까지 가면 곧바로 산행을 시작하면 택시비를 아낄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백무동에서 한신계곡을 거쳐 세석으로 오르는 길은 거리도 길고,
경사도 심해 뱀사골로 오르는 등로보다 1시간 반정도 더 걸린다.
거기다가 날머리를 화개재로 하여 반선마을에서 어차피 인월까지 택시를 타야하고
인월에서 서울가는 교통편이 불편하지만 산행 코스는 역산행이 아닌 정산행으로
하는 점은 유리하다.
2, 오늘 내가 시도하는 와운마을 입구에서 뱀사골을 통과하여 화개재로 오르는 코스는
한신계곡 능선보다는 등로가 완만하고 거리가 짧아 초반에 시간을 좀 줄일수 있고,
세석에서 거림으로 내려와서 원지로 나가면 서울 남부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20분
단위로 있어서 설령 서울에 늦게 도착하더라도 남부터미널에서 집까지는 거리가
얼마되지 않아 큰 걱정이 없어서 이곳으로 산행 들머리로 잡았다.
와운마을 입구(04:05)
택시에서 내리니 와운마을로 통하는 와운교가 보이고 어둠속에 뱀사골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소리가 엄청나게 크다...와운마을 유래판과 국공파 초소를 비롯한
여러개의 표지판이 어지럽게 서 있는 와운마을 입구에서 나홀로 산행을 준비한다.
와운(臥雲)마을은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의 지리산의 첩첩산중에 있는 마을로
1595년 임진왜란을 피하여 鄭씨 일가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고, 일제시대와 6.25동란때는
수난을 겪기도 했으며 강점기에는 목기를 제작하여 생계를 유지했고, 1980년대는
한봉(韓蜂)으로 생계를 이었다.
와운마을은 이곳에 도로를 따라서 30분 걸리는 거리에 있다고 하며 10여가구가
민박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데 과거에는 산골마을로 영화촬영 장소로도
유명했고 수령이 500~800년된 천년송(千年松:천년기념물 제423호)이 이 마을의
자랑거리라고 하는데 지금은 도로가 잘 나있어 옛 정취는 많이 훼손됐다고 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4:10)
국공파 초소를 지나니 데크목으로 설치한 뱀사골 탐방로란 시설물이 나오고
어둠속에 보이지도 않는 뱀사골의 계곡물이 마치 천둥 번개를 치듯이 굉음을
울리면서 들려오지만 어둠속에 홀로걷는 산꾼에겐 그건 큰 장애물이 되질 않는다.
헤드렌턴에 몸뚱아리를 의지한 채 걷다보니 탁용소 안내판을 만난다.
뱀사골 등로는 백무동과 함께 지리산 북쪽 능선의 산행 관문이긴 하지만
백무동과는 달리 접근하는데 교통이 불편함 때문인지 들머리보다는
날머리로 많이 이용하는 편이라 등산객이 한명도 없구나...오늘 산행을
하면서 화개재 정상까지 오르는 동안에 뱀사골 계곡을 전세되어 걷는
바람에 한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탁용소(濯龍沼:04:15)
큰 뱀이 목욕을 한 후 허물을 벗고 용이되어 하늘로 승천을 하나 이곳 암반위에 떨어져
100여m나 되는 자국이 생겨나고, 그 자국위로 흐르는 물줄기가 용이 승천하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붙혀진 지명이라고 하며, 탁용소 주위가 뱀사골 계곡중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라고 하는데 어둠속에서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되지만 호젓하게 홀로걷는
독립군에겐 아무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탁용소에서 금포교까지의 거리가 10여분정도 밖에 안 되지만 뱀사골에서 계곡미가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는데 어둠속이라 慧眼으로만 감상한다.
뱀사골은 가파르게 파인 협곡형 계곡이 아니라서 큰 폭포같은 곳은 발달해 있지
않지만, 그 대신에 계곡 암반은 오랜 세월에 걸쳐 매끄럽게 파이고 다듬어져서
기기묘묘한 소(沼)와 담(潭)을 만들어 놨다.
금표교(04:24)
와운마을을 출발하여 화개재로 향하는 길에서 첫번째 만나는 다리이다.
해가 많이 짧아진 모양이다...1개월전만 하여도 이 시간대이면 黎明이
시작될 시간인데 뱀사골의 계곡은 黎明은 생각치도 않는 모양이다.
어둠속에 걷는 무박산행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범여이지만, 牛步 걸음으로는
지리산이나 설악산은 당일로 걷는다는 언감생심이라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다.
肉眼이 아닌 慧眼으로 들어선 지리능선...이것도 나름 괜찮은 산행인 듯 하다.
더군더나 뱀사골 계곡길은 지리산을 찾는 대부분의 탐방객들에겐 들머리가 아닌
날머리로 선택하는 등산로이기에 어둠속이긴 하지만 홀로 걷기에는 더 없이 좋다.
계곡에서 살짝 멀어졌는지 뱀사골의 물소리는 데시벨이 살짝 줄어든 느낌이다.
지난해 6월에 묘향암에서 이 길을 내려올 때 걸었으니 1년이 조금 넘었구나.
자꾸만 빨라지는 인생시계가 야속하기만 하다...가야할 산은 많은데 시간은
流水같이 빠르고 그에 반비례하여 체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니...
그래!...順應하면서 현실을 받아들자꾸나.
어둠속에서 용이 못되고 이무기가 살았다는 뱀소는 어딘지도 모르고 통과하여
녹슨 철계단을 오르면서 다시 물소리는 폭포수처럼 크게 들리고 철난간 아래로
어둠속에 병소(甁沼)라는 소(沼)를 만난다.
병소(甁沼:04:43)
뱀사골 계곡에는 많은 명소들이 있는데 요룡대(搖龍臺), 탁용소(濯龍沼), 뱀소 등은 용이나
뱀에 관련된 소(沼)이지만, 병소(甁沼)는 소(沼)의 모양이 마치 호리병처럼 생겼다고해서
붙혀진 지명이란다.
어둠속이라 소(沼)가 잘 안보이긴 하지만 똑닥이카메라에 후레쉬를 장착(?)하여 찍었더니만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계곡에 흐르는 소(沼)의 물길은 보이는구나.
병풍교(屛風橋:04:45)
병풍교를 지나서 뱀사골 계곡을 건너니 지난해엔 없었던 쉼터가 새로 생겼다.
아직까지 쉴 시간은 아니라 꾸준히 걷는다... 바람한 점 없는 날씨에 습도가 높긴
하지만 물가를 걸어서 그런지 아직까진 큰 어려움없이 화개재로 향한다.
병풍소(屛風沼:718m:04:50)
뱀사골 계곡에는 여울과 소(沼)가 교대로 분포하여 수생태계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소(沼)는 계곡물이 흘러가다 균열이 많이 생긴 약한 바위를 만나면 집중적으로 바위를 깎아
형성되게 되는데 뱀사골 계곡에는 간장소, 병풍소, 병소, 등 다양한 소가 존재하며 그 중에
병풍소(屛風沼)는 계곡물에 의해 깎인 모양이 병풍(屛風)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다
병풍소는 뱀사골의 제1경으로 소(沼)의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짙푸른 소와 폭포로
이루어져 있지만 계곡으로 난 등로에서는 많이 떨어져 있어 등로에서 뚜렸이는 안 보인다.
명선교(明善橋:04:52)
옥류교(玉流橋:04:54)
뱀사골 계곡에서 보물찾기 하듯 몇개의 다리를 들락거리면서
조금씩 고도를 높이며 화개재로 향한다.
대웅교(大熊橋:710m:04:58)
뭔 넘의 다리가 이렇게도 많은지 그래도 고마운건 무명다리가 아닌 지명이 붙어있다.
제승대(祭僧臺:720m:05:00)
1,300여년 전 송림사 고승인 정진스님이 불자들의 애환과 시름을 대신하여 제(祭)를 올렸던
장소로 소원의 영험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제승대라 불린다고 하는데 어둠속이라 확인은
어려우나 민초들의 애환을 대신한 스님에게 감사의 예를 표하고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신선교(神仙橋:05:01)
어둠속이지만 간간히 뚜렸하게 보이는 계곡의 무명폭포가 世俗에 찌들었던
범여의 肉身을 편하게 해준다...그러기에 매주 산에 오르는지도 모르겠다.
소원교(所願橋:05:03)
예전의 철제로 되어 있었던 다리는 너무 낡아서 그랬는지
데크목을 재료로 한 새로운 다리로 변신하였다.
이름없는 예전의 철계단을 지나니 출입금지 팻말이 있는 함박골 입구가 나온다.
함박골 입구(05:20)
이곳에서 우측으로 올라가면 뱀사골 계곡에서 아주 멋진 이끼폭포가 나오고
그 윗쪽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최고 높은 곳에 위치한 묘향암을 지나서
중봉(지리산에는 중봉이 2군데 있음), 반야봉, 심마니골로 이어지는 능선인데
등로가 아주 난해한데다 1년내내 국공파들의 감시가 심한 비탐구간이다.
요즘에는 이끼폭포로 이어지는 등로의 감시가 아주 심하다고 한다.
얼마전에 이끼폭포에서 등산객 한명이 사진을 찍다가 실족사하는
사고가 있은 이후부터는 국공파들이 이곳에 CCTV를 여러대를
설치하여 탐방객들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2016년 8월 27일에 나홀로 반야봉에서 월담하여 묘향대, 이끼폭포를 지나
험하고 험한 함박골 계곡인 이곳으로 내려온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이끼폭포를 다시한번 갈 수 있으런지 모르겠다.
묘향암을 수호(?)하고 계시는 호림스님을 잘 계시는지?
스님!...엊그제가 우란분절(칠월 백중)이었는데 우째 잘 보내셨나요.
빠른 시일내에 한번 찾아뵙겠습니다...그때 茶談이나 한번 나눕시다.
이끼폭포에서 인증샷...2016년 8월 27일
반달교(05:30)
“뱀이 죽은 골짜기”란 뜻의 뱀사골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실제 뱀이 많이
잡히는 골짜기로 유명했다...약효가 좋다고 소문난 흑질백장(黑質白章), 홍사(紅蛇),
청사(靑蛇) 들을 잡아서 팔면 큰 목돈을 쥘수 있었기에 자루와 집게를 들고 숲을
누비며 뱀을잡는 마을 주민들이 많았고, 소득도 짭잘했다고 한다.
그 당시 무분별하게 뱀을 남획하는 바람에 요즘에 뱀사골 뿐만 아니라
지리산에서 뱀을 만날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뱀사골에 서서히 여명이 시작되면서 주위의 사물들이 보이고 음력 칠월
열이렛날의 새벽달은 서서히 저물어가기 시작하는데 화개재로 향하는
범여의 발걸음은 비온후의 높은 습도의 영향인가...초반임에도 발걸음이 무겁다.
뱀사골에는 옛날 골짜기에 송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매년 칠월칠석날 밤이면
주지스님이 다음날이면 매번 스님이 사라져 마을사람들은 스님이 부처님으로
승천하였다고 믿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서산대사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칠석날에 주지스님에게
소매에 비상약을 달아 입혀 예년과 같이 독경(讀經)을 하도록 시켰다.
새벽녘이 되어 큰소리를 내며 뱀이 계곡을 따라 올라가기에 서산대사가 뱀을 따라
올라가서 보니 용이 못된 큰 이무기가 죽어 있어 배를 갈라보니 주지스님이 죽어 있었다.
그 동안 사라진 스님들은 이무기의 재물이 되었던 셈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서산대사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칠석날에 주지스님에게
소매에 비상약을 달아 입혀 예년과 같이 독경(讀經)을 하도록 시켰다.
새벽녘이 되어 큰소리를 내며 뱀이 계곡을 따라 올라가기에 서산대사가 뱀을 따라
올라가서 보니 용이 못된 큰 이무기가 죽어 있어 배를 갈라보니 주지스님이 죽어 있었다.
그 동안 사라진 스님들은 이무기의 재물이 되었던 셈이다
그후로 뱀이 죽은 골짜기라 하여 뱀사(死)골이라 하였고 끝내 용으로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를 반선(半仙)이라 불러 동네이름을 언제 부턴가 반선(伴仙)으로 불렀다고 한다.
날이 밝으면서 바라보이는 하늘은 먹구름이 끼었있고, 예전같으면 寒氣를
느낄만큼 추웠던 뱀사골 계곡이지만 오늘은 바람한 점이 없어서 초반부터
컨디션 조절이 그리 쉽지는 않는구나...출발전에 확인한 이곳의 날씨는
오전에는 잔뜩 흐린 날씨였고, 오후부터는 맑은 날씨라고 했는데 요즘의
기상청 날씨는 하루전 날씨도 제대로 못맞추는 구라청이 되어 버린지
오래이고,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구라청의 예보를 그리 믿는 사람도
많지 않은듯 한데 범여도 그 중에 한사람이다.
출렁다리(05:35)
뱀사골하면 한국의 명수(名水)로 통하는데 지리산의 깊고 깊은 산록에서 맑고 깨끗한
물줄기가 빚어져 즐비한 징담(澄潭)을 거쳐 거침없이 흘러내리는 뱀사골의 청정계류는
가히 손색없는 우리나라의 으뜸 물줄기라 부를만하다.
반야봉, 삼도봉, 토끼봉, 명선봉 사이의 울창한 원시림 지대에서 발원된 물줄기가
기암괴석을 감돌아 흐르면서 절경을 일구어 놓아 뱀사골의 계곡미 또한 장관이다.
우리나라 계곡의 대명사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인데 그만큼 잘 알려져 찾는
이도 많지만 그 품이 너무도 넓고 깊어 쉽게 오염되지 않는다.
남원시 산내면 반선리 집단시설지구에서 토끼봉과 삼도봉 사이의 화개재까지 12km,
장장 39여리의 물줄기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화려한 소(沼)와 담이 뱀사골의 가장 큰 자랑이다.
대표적인 것만 하더라도 선인대,오룡대, 뱀소, 병소, 병풍소, 제승대, 간장소가 그림같이
전개돼 절경을 연출하고 있으며 그리고 뱀사골의 완만하고 고른 경사도를 들 수 있다.
이 때문에 뱀사골에는 연중 등산객뿐만 아니라 가족단위의 행락객들이 많이 찾아든다
데크목으로 만든 둘레길을 따라 걷는 기분으로 참으로 편하게 산행을 할 수 있는 계곡이다.
출렁다리를 지나면서 쉼터의자가 보이고...
의자 앞에는 소금장수의 哀歡이 서려있는 못인 간장소의 안내판이 보인다.
간장소(05:38)
간장소는 옛날 영.호남 상인들이 물물교환을 했던 화개재에서 약 2.7km 아래에
위치한 소(沼)로서 시원한 검푸른 색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옛날 화개재를
넘어오던 소금장수의 소금짐이 이 소에 빠져 간장이 되었다는 설과 이 소의 물을
마시면 간장(肝腸)까지 시원해진다하여 간장소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후기에 화개장터에서 거래된 소금이나 해산물이 민초들의 등짐을 수송
수단으로 하여 화개재와 뱀사골을 통해서 인월이나 산내 등 내륙지방으로 이동하면서
간장소의 전설같은 것이 유래되었을 것이다.
간장소를 지나면서 화계재를 향한 고도를 조금씩 높히기 시작한다.
전 세계가 기후변화의 탓인가?...한 여름이긴 해도 예전에 이맘때쯤이면
바람막이 자켓을 하나 걸쳐야 할 정도의 寒氣를 느끼는 뱀사골이었지만
오늘은 바람한 점 불지않고 높은 습도로 인하여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땀이 쏟아지니 이것 또한 무슨 조화인지...세상사가 다 변해가는데 나만
낙오자로 시대에 뒤쳐지는 걸까?
유유교(幽幽橋:05:50)
유유(幽幽)을 직역하면 “깊고 그윽하다”는 뜻인데 뭘 의미하는지?
와운마을 입구에서 간장소를 지나 유유교까지는 완만하고 부드러운 길이
이어지다가 유유교를 지나면서 부터는 너덜길 오르막이 이어지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이름없는 폭포의 물소리가 청량제을 역할을 하니
아직까지는 그런대로 걸을만하다.
박영발 비트 갈림길(05:55)
우측의 돌무더기 우측으로 박영발 비트가 있는 폭포수 계곡을 따라서
올라가면 박영발 비트와 묘향암~반야봉으로 이어지는 비탐구간 등로가 있으나
원시림에 가까운데다 국공파의 단속이 엄청 심한 곳으로 지난해 6월말경에
묘향암에서 이곳으로 내려오면서 가슴 조이면서 걸었던 길이다.
지리산 어느 골짜기인들 동족상쟁의 아픔을 간직하지 않는 계곡이 있으랴마는 폭포수계곡도
그 아픔을 비켜나지 못한 곳인데 그 이유는 6.25동란 당시 남로당 전남도당위원장을 맡았던
박영발(朴榮發:1913~1954) 이 이곳에 은거하면서 국군토벌대에 저항하며 빨치산의 유격대를
지휘하면서 저항하다가 최후를 맞이한 비트가 있는 곳이다.
러시아 모스크바 유학을 떠날 즈음에 촬영한 36살 박영발. 임경석 제공(한겨레 신문 인용)
경북 봉화군 출신인 박영발은 1930년대에 봉화 지역을 중심으로 한 좌익 항일 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1940년대에는 만주에서 항일 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과정에서 경찰에 체포되었을 때
고문을 받아 1945년경에는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적색노조 운동을 벌이면서 토목노동자 일하던 중 1945년에 태평양 전쟁이 종전되었다.
미 군정 초기에 좌익운동이 활발해졌을 때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에서 토목노조위원장을 맡았고,
전평의 집행위원도 겸임했했으며 1946년에는 남조선로동당을 창당하여 간부가 되었다.
남로당 활동이 불법화되면서 1947년경에 월북하였고, 전문일꾼 육성 정책에 따른 박헌영의 추천으로
모스크바의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유학했으며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 초기에 조선인민군이 낙동강
전선까지 남하하였을 때 합법적으로 결성된 조선로동당 전남도당 위원장에 올랐다.
그러나 곧 전세가 역전되어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전남 지역에 남아 김선우와 함께 유격전을 지휘했던
인물이다.
2021년 6월 20일에 갔었던 박영발 비트
2005년 2월 14일 3회에 걸친 수색 끝에 박영발 전남도당위원장의 최후 비트를 발견했다.
어마어마힌 바위 안에 형성된 자연동굴이 있으며 밑으로 내려가 사다리를 이용해 올라가야
하는 복층구조로 이곳에서 '조국출판사' 라는 이름으로 각종 유인물들을 발행했다.
일제로부터 받은 고문후유증 때문에 한쪽 다리가 불편해 비트를 주로 사용했다.
이 동굴에서는 박 위원장 이외에 연락병, 여성비서, 보위병, 무전사, 견습 무전사, 의사,
간호사 등 8명이 거주했으며, 그리고 여성비서를 제외한 일곱이 이곳에서 전사했다.
박남진(54년 12월 체포)의 증언에 따르면, 1953년 9월 18일 이현상 5지구당 위원장이
빗점골에서 전사하자 박영발 위원장의 보위대가 암벽 지대가 많은 반야봉 아래에
비트를 마련해 그 해 10월 말부터 다음 해인 1954년 2월 박 위원장 전사까지 약 4개월
동안 이곳을 이용했다고 했다.
* 비트란 뜻은 비밀아지트의 준말이다.
여태껏 편하게 등로는 잊어버라는 얘기인지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물기를 잔뜩 머금은 돌로된 등로는 생각보다 상당히 미끄럽다.
안영교(安永橋)를 지나면서 고도는 갑자기 높아지기 시작한다.
다리를 건너 山竹사이의 돌로 된 등로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지리산의 야생화와의 交感을 시작한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맨 처음 만나는 야생화가 짚신나물이다.
줄기에 달린 털들이 짚신에 달라붙어 짚신과 함께 여기저기를 여행했다는데에서
유래했다는 짚시나물꽃...학명의 ‘agrimonia’는 ‘가시가 많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pilosa’는 ‘부드러운 털’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온 것이다.
서양에서는 한 왕이 독살의 위험에서 짚신나물을 먹고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어 마법의 풀이라고 일컫기도 하는 유용한 식물이다.
본격적인 야생화와의 遭遇로 인하여 범여의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조금씩 느려지는데 남의 눈치 안보고 걷는 독립군의 특권이 아니던가...
산수국...생존을 위한 벌들을 유인하기 위해 헛꽃(무성화)과 참꽃(유성화)의
완벽한 하모니는 가히 환상적이다...식물도 이럴진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은
남을 비방하고 약점을 들춰네 온갖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추악한 형태가
역겹기만 하다...세속의 지저분한 잊어버리기에는 산만큼 좋은곳이 없는듯 하다.
돌로 된 등로를 지나서 철계단으로 올라서는데 연하교란다.
연하교(煙霞橋:06:30)
야금야금 고도를 높혀서 올라가니 예전에 없었던 쉼터가 있는 막차에 도착한다
막차(1,088m:06:35)
이정표 아래에 ‘막차’라는 표시가 나오는데 예전에 지리산 벌목을 할 때
산판 차량이 드나들 때 쓰는 표시라고하며, 이곳까지 차량이 올라온 모양이다.
막차 쉼터...아직까지는 쉬지않고 여기까지 꾸준히 올라왔다.
예전에 없었던 데크목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서 조금은 편하게 올라간다.
선봉교(先鋒橋:06:45)
폭포수처럼 우뢰같이 들리던 물소리는 이제 앙증맞은 실개울의 물소리로 변해 버렸다.
선봉교를 지나면서부터 뱀사골의 상류지대는 원시림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껏 편하게 걸어온 등로는 꾸미지 않은 투박한 돌길로 변하지만 그래도
독립군(나홀로 산행)으로 활동하는 지맥길에 비하면 고속도로이긴 하지만
오늘 산행길에는 조금 힘이드는 구간이라는데 아직까진 그런 느낌이 오질 않는다
이곳을 ‘들돌골(擧石谷)’이라 부르는데 이 돌밭길을 두고 하는 말이란다.
화개교(花開橋:06:53)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는 오르막을 오르니 좌.우로 희미한 등로들이 겨우 보이는데
이 길은 예전에 도벌꾼들과 해방 전후에 지리산에서 숨어지낸 빨치산들의 루트였다고 한다
우측으로는 반야봉으로 이어지고 좌측으로는 명선봉으로 연결되는 길은듯 싶다.
고단한함은 인간사에만 있는건 아닌가 보다...
화개재가 가까워질수록 야생화의 종류가 늘어나는데 그중에서도
참나물의 개체수가 가장 많이 보이는구나...너가 참 많이 보고 싶었다.
게으름을 피우는 투구꽃은 아직도 꽃이 필 생각조차 없는 모양이다
긴산꼬리풀도 서서히 자기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흰진범도 명함을 내밀어대니 어찌 너와의 눈맞춤을 아니 할 수 있단 말인가.
흰진범(꽃말:용의 모자, 용사의 모자)
원래의 본명은 진교(秦荞)였으나 이것을 잘못 표기하여 진봉(秦芃)이 되었고
또 다시 누군가에 의해 왜곡되면서 내 의지와는 전혀 다른 진범(秦凡)으로
잘못 읽히면서 진범이 되었다는 슬픔을 간직한 꽃이다...홍길동이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는 庶子처럼 말이다.
진범은 본래 오독도기라도 불렸는데 일제강점기에 한자로 표기를 하면서
진범(秦范)이라고 불렀으며, 오독도기는 한라투구꽃의 뿌리를 말린것을
말하는데 진범도 한라투구꽃과 비슷하여 줄오독도기라고 부른다
맹독성이 강하지만 뿌리는 말려서 진통제나 치풍제 등 각종 약재로
사용하나 독성이 강해 주의해야 하며, 민간 요법으로는 광견병에 걸린
개에 물렸을 때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요염한 자태로 범여를 유혹하는 참나물꽃
긴산꼬리풀도 다시한번 눈맞춤을 하고...
한참을 올라왔건만 아직도 고도를 100m이상을 더 올라가야 하는구나.
지리산은 아무에게나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 모양이다.
정상을 오를수록 짙은 안개가 몰려오기 시작하는데 오늘 산행중에
지리산의 멋진 仙景을 감상하기는 애초부터 포기해야 할 모양이다.
입을(봉오리) 닫은채 다소곳이 물기를 머금고 있는 피나물꽃
물기를 잔뜩 머금은 모싯대도 보이기 시작한다.
샘터(07:05)
水量은 그리 많지 않으나 그냥 지나치는 건 샘터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
시원한 물 한바가지를 들이키고 화개재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샘터 맞은편에는 뱀사골탐방지원센터가 있는데 페가처럼 보인다.
숲속에 묻혀버린 뱀사골탐방지원센터
예전에는 국공파들이 이곳에 상주하면서 산꾼들에게 엄청나게 갑질을
했는데 지금은 상주를 하지 않는지 풀섶에 묻혀서 폐가처럼 보인다.
뱀사골탐방지원센터에서 200여m를 따라서 올라가면 화개재 정상이 나온다.
참취꽃도 보이고...
물봉선도 보이나 생각보다 뗏갈이나 꽃의 상태가 온전치 않아서 조금은 실망스럽다.
와운마을 입구에서 출발하여 7.5km를 3시간 조금 넘게 쉬지않고 논스톱으로 화개재에 도착한다
초지가 무성하게 자란 넓은 공터에 황량하기만 하다...옛날 남원과 하동사람들의 물물교환
장소 역할을 톡톡히 했고 장사치와 민초들의 왕래가 분주했던 화개재는 지리산 주능선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이곳부터 오늘의 본격적인 대간 마루금이 시작된다.
화개재(花開峙:1,316m:07:15)
전북 남원시 산내면과 경남 하동군 화개면의 경계에 있는 지리산 종주 코스중 가장 저지대에
속하는 곳으로 먼 옛날 하동의 화개장터와 남원의 산내장터 봇짐장수들이 물물교환을 했던
고갯마루를 말하며, 옛날 산내장터에서 올라온 70대의 소금장수가 이 고개를 넘다 너무 힘들어
죽었다는 가슴아픈 전설이 서려있다.
옛날 화개장터의 소금과 해산물, 남원의 산내와 운봉 그리고 하동의 화개의
내륙 특산물을 봇짐장수들이 물물교환을 했던 고갯마루로 헬기장으로 쓰였던
넓은 공터(장터)에는 지금 식생대 보호를 위해 출입을 막고있다.
뱀사골계곡 상류에 소금장수가 발을 헛디뎌 빠졌다는 '긴장소'에 얽힌 전설도
있는 걸로 보아 화개장터를 거친 해산물과 소금등이 인월, 운봉, 마천, 산내지방의
내륙 특산물과 함께 이 길을 통해 거래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1970년대 가수 김상진이 불러서 히트쳤던 「이정표없는 거리」
“이리가면 고향이요 저리가면 타향인데”.....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박대림 작사, 정민섭이 작곡했다.
진주가 고향인 작사가 박대림은 1970년 뱀사골을 거쳐 화개재로 올라와서 이
이정표를 보고서 지리산의 넓고 장대한 산줄기에 매료되어 이 곡의 가사를 썼다고 한다
화개재에서 바라본 삼도봉(날라리봉)은 갑자기 밀려온 짙은 안개에 숨어버렸고,
피아골(전남)과 목통골(경남)의 도 경계 역할을 하고 있는 불무장등봉(일명:날나리봉)은
흔적조차 보이지도 않는 오리무중이다.
쉼터가 있는 직진의 내리막길로 이어지는 등로는연동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초지 아래쪽의 화개재 쉼터에는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등산객은 한 명도 안보인다.
이곳에서 아침상을 펼치려고 했으나 아직까지 조금은 더 걸을수 있을것 같아서
토끼봉까지 가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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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범여 형님 수고하셨습니다.
밥은 언제 먹을 수 있는지요
연금 받아 생활하는 백수에게 밥을...ㅋㅋㅋ
그래 죽을 때 가져갈 것도 아닌데 젊은이 소원함
들어 줄께...날짜 정해라...이번주는 코로나 4차맞고
컨디션이 안 좋으니 안된다
이원규님의 시 "행여견딜만하면 오지마시라"
어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행여 견디지 못할 때에도, 행여 견딜만할 때에도 묵묵히 받아주는 지리산과 같은 '나'였으면 좋겠습니다."
자리산 종주, 화대종주, 서북능선외 별로가본곳이 없네요.
글을 읽는 동안 묘향대, 이끼폭포, 뱀사골, 출렁다리, 박영달비트...짚시나물꽃, 등
아직은 견딜만 하여 찾지 않지만 언젠가는 찾아가고 싶네요...언젠가는....
산행후기 멋지고 제가 못본 부분까지 볼수 있어 좋았고
훌쩍 떠나고싶게 하는 글입니다. 아주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원규님의 좋은 시에 좋은 해설 그리고 언제나 가고픈 지리산의 풍경까지.....
오늘은 이것으로로 하루의 행복을 담아갑니다.
쟝르와 형식의 경계를 넘어버린 범여님의 지리 산행 일기 경이롭습니다.
이 글을 읽고 제 버킷리스트를 3번째 가고 싶은곳으로 적어놨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남겨 주시길 빕니다.
https://youtu.be/yEtrvJZEVco
PLAY
예전에 지리산만 400번 올랐다는 분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400번정도 지리산 구석구석을 다녀보니 좀 알것만 같다는
얘기에 충격을 받은적이 있었죠...내가 자주 만나는 현오라는
후배가 있는데 지리산 산신령 수준은 아니지만 지리산 구석구석을
쑤시고 다니면서 쓴 현오와 걷는 지리산(리더북스 출판)을
한번 읽어 보시면 좀 이해가 될 것입니다... 늘 健安하십시요
전 이번주에도 반야봉의 마고할매 만나러 갑니다
@범여 네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늘 안산 하시고요 산행기행문 많이 남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꾸벅.
수고하셨습니다.잘보고 갑니다
아그야!...행님 이자뿌고 세상 그렇게 사는게 아니다
니는 안 늙을줄 아나...세월앞에 장사없다.
이빨 빠진 늙은 호랑이라고 넘 무시하지 말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