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2 성공과 회복원칙(22) 애씀과 힘씀의 차이점[행16:6-10]24.6.2.주일1부-3부설교
2차 선교여행을 시작하는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 그들은 1차 선교여행 때 세워졌던 교회들을 돌아보며 격려하니
교회가 믿음이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이후 그들은 아시아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으로 복음을 증거 하러 가는 곳마다 문이 막혔습니다.
사도행전16장6절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사도행전16장7절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림1]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신 것”이란?
하나님의 계획된 길과는 다른 길이었습니다.
그들이 먼 길을 걸으며 복음을 전했지만 아무런 열매를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문이 닫히고 길이 막혔을 때 너무 답답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이럴 수가 있는가? 이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닌가?
이 일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목적 아닌가? 하나님이 참으로 좋아하시는 것이 아닌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탄식이 나왔습니다.
이때 바울이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선한 뜻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니 하나님은 바울에게 환상 가운데 뜻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도행전16장8절-9절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성령의 분명한 계획을 알고 출발하여서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빌립보교회를 세우고 데살로니가교회, 베뢰아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그림2]
‘애씀’과 ‘힘씀’의 차이점을 보아야 합니다.
7절 - “그들이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10절 - “그들이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라”
‘애쓰는 것’과. ‘힘쓰는 것’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성경의 여러 용례들을 찾아보니 이렇게 정리됩니다.
우리말 '애쓰다'라고 번역된 헬라어에는 '유혹받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탄에게 유혹받았던 모습입니다.
그리고. '힘쓰다'는 말은. seek ‘찾다’‘추구하다’‘모색하다’로 번역됩니다.
특별히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이 말을 기도와 관련해서 사용합니다.(눅11장)
아나니아가 사울을 찾을 때 사용하였고, 또 고넬료가 베드로를 찾을 때도 동일하게 사용합니다.
‘애쓴다’는 것은 내 생각과 욕심이 투영된 지도 모른 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고 살아가는 고집입니다.
굳게 믿음이라 생각하였지만 사실은 ‘스스로에게 유혹 받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예화]
모세가 바로 왕의 딸 공주의 양아들로써 40년 애굽에서 살게 될 때, 그의 유모의 역할을 한 사람이 모세의 친엄마 요게벳이었습니다. 친엄마로부터 모세 너는 히브리인이고 이곳에서 해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히브리인끼리 싸우고 있습니다. 동족끼리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말리던 애굽인을 때려서 죽이게 되었고 그는 그것이 발각되어서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가서 목동으로 80세까지 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의로 가득한 채 애쓰던 결과는 곧 사람을 죽이는 일이고,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하는 것이었습니다.
[예화]
누가복음2장41절-51절에는 예수님이 열두 살 될 때 유월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모든 것이 다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아들 예수를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하룻길을 갑니다. 또 사흘 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다시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예수가 성전에 계신 것을 알지 못한 채 자신들의 유혹의 관심이 이끄는대로 애쓰고 길을 갔습니다. 찾는다고 찾았지만 모두 다 헛된 방향성이었습니다.
애쓰면서 동행중에서 찾았습니다.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애쓰며 친족 중에서 찾았습니다.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애쓰면서 아는 자 중에서 찾았습니다.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자신들의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원점으로 돌아오니 그곳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2:49)
애씀보다 하나님의 본뜻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생은 이렇게 어리석을 때가 많습니다.
자신이 추구하던 고집과 자아와 신념을 붙잡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고집을 부리고 삽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그것은 ‘유혹받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힘쓴다’는 것은 우리의 무지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길을 걷는 것입니다.
나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길을 구하며 그분의 뜻을 찾으며 그분께 무릎으로 구하는 삶입니다.
그것을 힘쓰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진정한 신앙생활은 ‘애쓰는 것’이 아니라 ‘힘쓰는 것’입니다.
이제는 ‘애씀’에만 전력할 것이 아니라 ‘힘써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안달복달 애를 쓴다고 일이 다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시편37편5절-6절에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잠언3장5절-7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22:42-44)
히브리서5장7절-10절에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이제는 나의 마음에 유혹된 상태로 애쓰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한 뜻을 구하여야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길이 막힐 때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막힌 길만 바라보면 새로운 길을 볼 수 없고, 절망과 탄식으로 바닥만 쳐다보면 새로운 길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힘써서 믿음의 눈을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힘써서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귀를 열어 듣기 원합니다.
힘써서 주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기 원하며 우리는 그 음성 듣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애쓰는 것’보다, 주님의 말씀 앞에 ‘힘써’ 그 길을 찾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주님의 뜻을 알려주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내려놓으면 성령님이 인도해 주십니다.
고집을 포기하면 성령님이 인도해 주십니다.
계획하신 그 뜻을 구하면 성령님이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16장10절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에게 막힘은 성령이 인도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막힘도 또 다른 성령의 인도하심을 깨닫습니다.
세상에는 아무리 애를 써 봐도 뜻한 대로 잘 안되고 막히는 일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주님은 열심히 “애씀” 속에 꿈틀거리는 고집을 마침내 무너뜨리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이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집이 아닌 주님의 부르심과 뜻에 따라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무엇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내 삶은 하나님께서 필요를 공급해주십니다. 길을 열어주십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주님의 때에 주님이 하시도록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과정에서 인내하게 하시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은 쉬지 않고 기도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전에 그 복을 감당할만한 믿음이 있는지 그것부터 테스트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회개의 영을 부으시고 변화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내가 죽고,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이 나를 통해 일하게 하시는 그것이 바로 성령의 인도함입니다.
오늘도 막힘을 통해 기도의 문이 열리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로마서 8장13절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나의 고집의 애씀의 단계에서, 말씀에 순복하는 힘씀의 단계로 변화되면 기적이 나타난다.
예레미야29장11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욥기8장5절-7절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빌립보서2장13절-14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화]
캔터키 후라이드 치킨 창업주인 크넬 할램더 샌더스는 65세에 파산했습니다. 그리고 정신병까지 걸려서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난 다음 재기해서 치킨을 후라이 하는 것을 배워서 장사를 시작한 결과 전 세계 80여 개국 1만여 매장을 가지고 억만장자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90세에 소천하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성공적인 삶이란 거듭된 실패와 시련 후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단번에 성공이 다가오지 않는다고 낙심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타락한 아담의 자손은 인본주의란 악과 자기 교만의 우상을 깨뜨리고 탐욕의 굴레를 벗어난 이후에,
하나님의 은혜의 태양 빛 아래 서게 되고 하나님과 함께 삶을 살게 되고,
영원히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되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같은 사람도 아시아에서 실패하고 비두니아에서 낭패하고 좌절과 절망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가 드로아의 밤에 나아가 깨어져 엎드려 비로써 나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삶의 주인인 것을 깨닫습니다.
자신은 머슴이요 일꾼인 것을 알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때 하나님께서는 마게도니아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 계시를 주시고 성령을 따라 나가서 온 유럽과 그 결과로 세계가 복음화되는 성공적인 기적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여러분의 인생 속에 개입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혼자서 애쓰는 단계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복함을 힘쓰십시오!
전혀 새로운 인생을 사실 것입니다.
은총을 받은 자로 사실 것입니다.
돌아보아 참 보람된 인생이었구나! 감격하게 될 것입니다.
아름답게 사신 것을 세상 앞에 드러내실 것입니다.
다같이 찬양 –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