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초당
역사에 빛나는 학문의 세계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귤동
동백꽃처럼 붉게
피어난 학문과 사상
8월 더위도 막바지이다.
낮에는 그리 뜨거워도 아침
저녁으로는 시원함이 다르다.
자정 무렵 화실에서 늦게 귀가하는
길에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가
어제와 다르게 또렷하다.
가을이 서서히 가까워온다.
계절은 어김없다.
장마가 그치고 폭염에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 교향곡 3악장도
입추 지나고 처서로
다가가니 피날레로 치닫는다.
가을을 잉태한 계절,
늦여름이 만삭이다.
강진 다산초당 가는 길,
성전을 지나 백련이 구름처럼
피어오른다는 금당리 백련지
(白蓮池)를 찾았다.
지난해 여름 백련을 보러
이곳을 찾았건만 연꽃은
피지 않고 연잎만 무성했다.
꽃 사정은 금년도 마찬가지.
연당 가운데 한옥의 빈 여름
뜰에 풀만 수북하다.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로 정취를
달래보지만 꽃 없는 초목이
서글프기만 하다.
다시 차를 몰아 강진 읍내를
끼고 얕은 풍경 산천이 새롭다.
부드럽고 너른 맛이 바다가
어디쯤 있을 법하여 차창을 내리니
더위와
소금기 밴 바람이 확 몰려든다.
아침에 서울을 떠나 남도의
끝자락인 강진 도암면 만덕산
귤동마을 다산초당에 도착한
때는 오후 햇살이 길게
산 그림자를 드리우고 나서였다.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이
장장 18년에 걸친 강진 귀양살이
가운데 10년을 지내며,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생애의
한겨울 속에서 동백꽃처럼
붉게 학문과
사상을 피워 올린 곳이다.
이곳에서 그는 『목민심서
(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등
‘다산학’이라 일컫는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집대성했으며,
가족과 헤어져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간적 고뇌와
아픔이 뼈에
사무친 곳이기도 하다.
다산은 차나무가 많았던
만덕산의 별명으로,
정약용의 호
다산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다산, 그 생애와 학문
다산은 영조 38년(1762년)
부친 정재원과 모친
해남 윤씨 부인과의
사이에서 팔당 마재(馬峴)를
고향으로 하여 태어났다.
자(字)는 미용(美庸), 호(號)는
삼미자(三尾子)·다산(茶山),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다.
다산의 외가(外家)는 해남 윤씨
고산 윤선도 가문이다.
윤선도의 증손자인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1668~1715년)는
인물화에 탁월해 조선시대
회화의 삼재(三齋)로 일컬어지는데,
윤두서의 셋째아들 윤덕렬의
딸이 바로 다산의 모친이다.
따라서 윤두서는 다산의
외증조이며, 윤선도는
외가로 6대조가 된다.
다산의 시가(詩歌)와 서화가 지닌
예술적 품격은 외가에서 계승받은
것으로 보인다.
1776년, 다산은 15세 되던 해
풍산 홍씨 홍화보(洪和輔)의 딸과
혼인한 후 처가에 왕래하느라
서울에 출입했다.
그 무렵부터
매형인 이승훈(李承薰)과
큰형수의 아우인
이벽(李檗)과 사귀었고,
그들을 따라 이가환(李家煥)
등과 교유했다.
22세에 소과에 급제해 진사가
되었고 곧이어 생원이 되었다.
이듬해에 이벽으로부터 처음으로
서교(西敎), 즉 천주교에 대해
듣고 책도 보았다.
그는 서교를 접한 후 넓게 알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던 성벽(性癖)으로
인해 여러 사람에게 자랑하는 등
한동안 상당히 몰두했지만,
과거 공부에 바빠지고
또 서교에서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설을 접하고부터는
전혀 돌아보지 않았다.
28세에 대과에 급제해
벼슬살이를 시작했고,
34세에 정3품 당상관 동부승지에
오를 때까지 여러 관직을 거쳤는데,
그 사이 정조의 명령으로 배다리를
만들거나 수원성을 설계하고
기중기를 만들어 성 쌓는 데 쓰게
하는 등 기술적 업적을 남겼다.
다산이 사학(邪學)에 물든 죄인
이라는 죄명을 덮어쓰고
강진에 귀양 온 것은
순조 1년(1801년) 11월,
그의 나이 40세 때이다.
그해 봄 셋째 형 정약종(丁若鍾,
세레명 아오스딩)이 은밀하게
옮기려다 발각된 책롱(冊籠)
사건으로 정약용 3형제가
체포돼 의금부에
투옥되는 일이 일어났다.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정약종과
이가환, 이승환 등은 죽임을 당했고
둘째 형 정약전은 신지도로,
그 자신은 경상도 장기로 유배됐다.
가을에 다산의 조카사위였던
황사영(黃嗣永) 백서(帛書)
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서울로 불려가 문초를
받았으나 별다른 혐의가 없어서
정약전은 흑산도로 이배되고,
자신은 강진으로 유배지를 옮겼다.
강진 유배 시절
다산은 강진읍 동문 밖 오막살이
주막의 뒷방에 사의재(四宜齋)라는
지극히 선비다운 당호를 붙이고
만 4년을 지냈다.
사의재란 마땅히[宜] 지켜야 할
일을 네 가지 조목을 제시한 것으로
‘담백한 생각, 장엄한 용모,
과묵한 언어, 신중한 행동’으로
자신을 단속하겠다는 다짐이다.
이는 수양 방법인 동시에 유배
생활로 좌절해 자신의 품격을
잃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다산은 강진에 유배된 지 8년째
되던 47세 때(1808년) 봄에
윤단의 산정인 귤동 다산초당
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산은 다산초당의 차나무가
마음에 들었고, 윤단의 장서를
볼 수 있는 데다가,
멀리 강진포구의 경치와 담장 안
꽃들이 마음을 흡족하게 하였다.
다산은 다산초당의 풍광을
무척이나 사랑하여 초당 주변에서
가까이 보고 경험할 수 있는 광경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피며
애정 어린 눈길을 주었다.
담을 스치고 있는 작은 복숭아나무
[拂墻小桃], 문발에 부딪히는
버들가지[撲簾柳絮],
봄 꿩 우는 소리 듣기[暖日聞雉],
가랑비에 물고기 먹이 주기[細雨飼魚],
아름다운 바위에 얽혀 있는
단풍나무[楓纏錦石],
못에 비친 국화꽃[菊照芳池],
언덕 위의 대나무의 푸르름
[一埠竹翠], 골짜기의 소나무
물결[萬壑松波]을
다산팔경(茶山八景)
으로 삼고 시로 읊었다.
다산은 초당 주위에 매화·복숭아·
모란·차·작약·수국·석류·치자 등을
가꾸고 세심하게 감상하며
『다산화사(茶山花史)』를 지었다.
이듬해 다산은 초당 주변을 새롭게
꾸미면서 초당 앞 비탈에 돌로 단을
쌓아 채마밭을 만들었다.
이어서 연못을 넓히고 꽃나무를
심어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다.
다산초당에 2칸짜리 띳집을 짓고
송풍루(松風樓)라 이름 붙였다.
송풍루의 방이야 보잘것 없지만
산 위의 집이어서 누각처럼 높고,
밖에서 불어오는 솔바람 소리가
피리나 거문고를 연주하듯
음악처럼 들렸다.
다산초당 오르는 길. 대나무·
소나무·동백이 우거져
대낮에도 그늘이 짙다.
초봄, 동백이 피어나고 새들이 숲
사이를 날며 봄의 정취를 반겨하더니,
한여름 녹음이 매미 울음소리조차
가린다. 가는 실개천을 끼고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니 석양빛에 다산초당이 나타난다.
초당 오른편 언덕바위에 다산이
손수 쓰고 새긴 정석(丁石)에서
다산의 단아한 성품과 생에 대한
결연한 의지가 묻어난다.
다산이 차를 달이던 부뚜막 바위가 있고,
다산초당 뒤 약천 샘물에서는
맑은 감로수가 샘솟는다.
후끈한 몸에 한 모금 목을 축이니
마음이 탁 트인다. 다산은 다산초당
왼쪽에 네모진 연못을 파고
그 안에 자연석을 쌓아 둥근 섬을
만들었다. 나무등걸에 홈통을
내어 물을 끌어와 작은 폭포를 만들어
연못 속에 물고기를 키우면서,
가는 봄비 내리는 날 물고기 밥을
주며 시심을 달래기도 했다.
다산초당은 말없이 자리하고,
강진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천일각(天一閣)이 역사 속으로 걸어간다.
천일각은 다산이 서울 두고 온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흑산도로
귀양 간 둘째 형 약전을 그리며
하염없이 바라보고 심회를 풀어낸 곳이다.
천관산도립공원ㅡ1코스 양근석 ㅡ연대봉 구룡봉 진죽봉ㅡ환희대 구정봉 천주봉ㅡ대서봉 석선ㅡ금광굴산행https://m.cafe.daum.net/rnqdmsekfl/N2Wc/57?svc=cafeapp
천관산 도립공원ㅡ1코스 양근석 ㅡ연대봉ㅡ구룡봉ㅡ진죽봉ㅡ환희대ㅡ구정봉ㅡ천주봉ㅡ대서봉
천관산 723m 도립공원 호남에5대명산 전남 장흥군 관산읍 천관산 높이는 723m 청풍산지제산 이라고도 한다1998년 10월13일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내변산과 함께호남지방에 5
m.cafe.daum.net
춘화(봄에피는꽃)ㅡ여행스케치ㅡ(남도의ㅡ가보고 싶은곳) ㅡ보성 녹차밭 ㅡ
강진가우도 출렁다리 ㅡ장흥 유치 보림사 장흥 가지산ㅡhttps://m.cafe.daum.net/rnqdmsekfl/N2Wc/5?svc=cafeapp
춘화 (봄에피는꽃) 여행스케치 (남도의 가보고 싶은곳)
춘화(봄에피는꽃)의 여행 스케치 남도의 가보고 싶은곳보성 봇재의녹차밭 전남 보성군회천면 영천리 보성 녹차밭 짙푸른 차밭이 끝없이펼쳐지는 전남 보성은 마치신이내린 녹차의 천국 같다
남도여행ㅡ정남진 장흥 탐진강 ㅡ전라남도 장흥군 ㅡ장흥읍 물 축제 ㅡ강진 가우도 ㅡ강진만 한가운데에 서 있는인도교로 연결된 섬ㅡhttps://m.cafe.daum.net/dlaehddns.com/b5cr/630?svc=cafeapp
남도여행 ㅡ정남진 장흥 탐진강 ㅡ 전라남도 장흥군 ㅡ장흥읍 물 축제 ㅡ강진 가우도 ㅡ 강진만
탐진강 耽津江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전남 장흥군 유치면과 영암군 금정면의 경계에 있는 국사봉에서 발원하여 장흥군, 강진군을 흘러 남해로 흘러드는 강. 길이 5
남도여행ㅡ정남진 장흥 5일장 토요시장ㅡ동학농민운동 전적지ㅡ장흥 석대들 전적ㅡ천지인 둘레길 ㅡ장흥 읍성길 장원봉 트레킹 ㅡhttps://m.cafe.daum.net/dlaehddns.com/b5cr/629?svc=cafeapp
남도여행ㅡ정남진 장흥 5일장 토요시장ㅡ 동학농민운동 전적지ㅡ 장흥 석대들 전적ㅡ 천지인 둘
정남진(장흥)동학농민운동 전적지장흥 석대들 전적정남진은 서울 광화문을 중심에서 정 동쪽으로 정동진이 있으며, 북쪽의 가장 추운지방인 중강진과 일직선상에 위치한 정남쪽의 가장 따뜻한
첫댓글 정말 멋지네요.이토록 세세히 기록하고 올려주셔서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의 삶 속으로 잠시나마 들어가 본듯한 느낌으로 기분좋게 감상해봅니다. 고맙습니다~
첫댓글 정말 멋지네요.
이토록 세세히 기록하고 올려주셔서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의 삶 속으로 잠시나마 들어가 본듯한 느낌으로 기분좋게 감상해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