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의 유인도와 91개의 무인도!
그렇게 총 99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증도!
증도가 안고 있는 8개의 유인도 중 하나는 '화도'다.
화도? 꽃섬!
섬 이름 중엔 제일 예쁘다.
화도라는 지명에는 그 유래가 있다고 하는데...
옥황상제의 딸이 죄를 짓고 화도에 내려와 귀양살이를 하던 중
꽃을 가꾸어 결국 섬에 꽃이 잘 자라게 되어 꽃섬이라고 했다는데,
한때 해당화가 온 섬에 만발해
만조때는 섬이 마치 바다 위에 떠있는 꽃봉오리 같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해당화도, 그 어느 꽃도 아닌
MBC 드라마 <고맙습니다> (2007)의 촬영지로 더 유명하다.
내가 인정하는 역대 최고의 드라마!!
주인공들의 말한마디, 행동 하나에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할만했던 드라마...
그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푸른도>가 이곳 <화도>임을 비로소 알게됐다.
내가 좋아했던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라 하니,
그곳을 향하는 마음에 설렘이 가득하다.
증도와 화도는 길로 이어져 있다.
이름하여 노두길!
노두길은 갯벌위에 돌을 놓아 통행이 가능하게 만든 길이라고 하는데,
물이 차면 사라지고 물이 빠지면 모습을 드러낸다.
증도에서 화도로 가는 노두길은 그 길이가 1.2km에 이르는데,
언제 잠길지 알 수 없으니,
물이 차기 전에 서둘러 화도를 돌아보고 나와야 할 듯 하다.
섬 안의 또 하나의 섬!
물이 차면 두개의 섬이 되고 물이 빠지면 하나의 섬이 되는 증도와 화도!
바닷물이 채워져 있어야 할 곳에 신작로처럼 쭉 뻗은 길이 있다는 것이 이색적이다.
노두길 좌우로는 광활한 갯벌이 펼쳐져 있는데,
도립 갯벌 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이곳에도 짱뚱어가 살텐데 하며 두리번거려보다가,
언제 물이 찰지 몰라 급해진 마음에 발걸음을 서두른다.
화도 입구에서 만난 알림판이
마음을 더 급하게 만든다.
가을 철, 화도의 주인은 해당화가 아닌 코스모스였다.
길 옆으로 만개한 코스모스가 손을 흔들며 반겨준다.
차량제한 속도 20km?
슬로시티 증도는 제한속도가 30km 였는데,
화도는 증도보다 더하다.
그런데...
제한 속도를 낮게 책정해놓은 곳일수록 더 마음이 가고 끌리는 건 왜일까?
빨리빨리에 익숙해져 느림이 오히려 낯설고 어색하기에
어쩌면 이런 강제조항이 간절했는지도 모르겠다.
화도의 최고 명소는 역시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촬영지다.
화도에 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바로 이 곳을 찾기 위해 오는 것이라고 하니 말이다.
드라마에서 미혼모인 영신(공효진)과 에이즈에 걸린 딸 (서신애),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 (신구)가 함께 살던 집!
그렇게 영신이네는 겉보기엔 너무나 '갑갑한' 가족들이지만,
알고보니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미혼모라는 아픈 시선 속에서도 밝고 씩씩한 영신,
어렸을 적, 잘못된 수혈로 인해 에이즈에 걸렸지만 구김살없이 해맑은 봄이,
치매에 걸렸어도 인간애로 가득한 할아버지는
마지막 가는 날까지 동네 사람들에게 초코파이를 나눠준다.
그 초코파이는 말 그대로 정(情)이었다.
"초코파이 줄까요?"
그 해 초코파이의 매출을 껑충 뛰게 만들었던 최고의 명대사였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눈을 감기 직전까지
푸른도 마을 주민에게 초코파이를 남기고 정을 나누는 모습에서 어우러진 이 대사를 들으며
나 또한 눈물을 펑펑 쏟았으니...
세트용으로 만든게 아니라, 원래부터 화도 주민이 살던 집이라는 이곳은
지금도 그 때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현재는 민박집과 식당, 가게를 겸하고 있는데,
편의점 메뉴에 신구 초코파이가 눈에 띈다.
로마의 트레비분수에 가면 <로마의 휴일>의 주인공들이 먹었던
본젤라또 아이스크림을 꼭 먹어야 하듯,
이곳 화도에 오면 <고맙습니다>의 할아버지표 초코파이를 꼭 먹어줘야 할 것 같은...
진작부터 다가오는 나그네를 주시하고 있던 개들은
절대 짖지 않는다.
오히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반기는 모습이다.
이 견공들 역시 드라마에서 봄이네 개로 나왔던 주인공들!
유일하게 이곳에 남아있는 드라마 출연자인 셈인데, 그래서 더욱 반갑다.
집은 드라마에 나왔던 모습 그대로다.
드라마 주인공들의 사진이 붙어 있어 이목을 끄는 것일뿐,
저 사진조차 없으면, 그저 평범한 시골집의 풍경이다.
이곳은 극중 기서(장혁)이 머물던 방!
내가 배우 장혁을 좋아했던 것도 이 드라마 부터였다.
촬영을 위해 이 집을 무수히 오갔을 장혁의 흔적을 느껴본다.
이 집 마당 어딘가에 찍혀 있을 그의 발자국!
이 집 어딘가에 묻어 있을 그의 손자국!
이 방은 드라마 촬영 이후 사용하지 않고 있단다.
영신이네 가족이 살았던 방이 주인집 방인듯 했다.
이 방앞에 서니 드라마 속 명대사 한대목이 생각났다.
"에이즈에 걸린 건, 뭘 그리 대단히 잘못한 일도 아니고,
대단히 미안할 일도 아니고, 그냥 남들하고 다른 것 뿐이에요.
코가 큰 사람이 있고, 눈이 작은 사람이 있고,
오른쪽 다리가 짧은 사람이 있고, 검지가 중지 보다 긴 사람이 있는 것 처럼
그렇게.. 대국민 사과문이라도 발표해야 할 사람처럼 살지 말라구요.
고개 당당히 들고, 눈 똑바로 뜨고, 어깨를 쭉 펴고!"
미혼모 에이즈 치매 등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고 있는 편견에
경종을 울리는 대목이었다.
안쪽으로는 조그마한 가게가 있고,
옆으로는 민박으로 운영하는 듯한 방이 보인다.
혹시라도 노두길에 물이 차서 나가지 못하면 섬에서 하룻밤 묵어야 하기에,
조용히 주인 아저씨를 불러봤다.
달려나온 아저씨께 민박이 가능하냐고 여쭈었더니,
바로 방을 보여주신다.
오늘 노두길이 잠기는 시간은 언제냐고 조심스레 물었더니
오늘은 잠길 일 없으니 걱정 말라고 하신다.
화도로 들어오는 노두길을 '사리' 때만 잠긴다고...
사리라고 하면, 그믐과 보름일때 간만의 차가 크게 나타날때인데
음력으로 보름이 되려면 5~6일 남았으니 걱정 안해도 되겠다.
휴우~
내내 조급했던 마음에 나사 하나가 탁 풀리는 느낌이다.
아저씨께는 다음에 화도에 다시 오게 되면 꼭 다시 들러 민박을 하겠노라 약속을 했다.
괜히 불러 귀찮게 해드린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에서였다.
집 옆으로 바닷가로 가는 길이 있었다.
지금은 물이 다 빠져 바다라고도 할 수 없는 갯벌...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는 날도 한달에 두어번 밖에 안되겠구나...
이 섬 화도는 너무나 고요하다.
꽃 피는 소리마저도 다 들릴만큼...
일상 속에서 복잡한 생각 때문에 잠시 머리를 식히러 올 일이 있다면,
이곳 화도에 와서 열흘 정도 머물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다.
물이 들어올까봐 조바심 나던 것이,
물 때가 아니어서 걱정을 덜었는데,
빨리 물이 들어와서 이곳을 섬으로 만들어 나를 고립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니...
어떤게 내 진심인지 나도 모르겠다.
<고맙습니다> 촬영지를 보고 나면
화도는 더 이상 특별함을 찾기 힘든 섬이다.
그저 평화로움과 고요함이 내 마음속에 저절로 스미는 것 밖에...
"내가 당신께 기적이 되었다면,
당신이 먼저 내 삶에 기적을 일으켜주었기 때문입니다.
당신께 고.맙.습.니.다"
드라마의 마지막 대사!
화도를 떠나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한다.
"당신께 고맙습니다"
글 & 사진
장혁같은 남자와 함께라면 기꺼이 섬에서 살고픈
김작가
첫댓글 오늘부로 장혁씨가 화도에는 발걸음도 안한다고...기사에 났던데~
그런 엄청나고도 무서운 사연이 숨어 있었군요.ㅋ
ㅜㅜ
그럼 언제 오실지 모르는 님을 기다리며 섬에서 홀로 늙어가야겠네요...
아 저도 이 드라마 눈물흘리면서 본 기억이 나요 ㅠ 신구 할아버지 연기가 정말 대박이었는데요 ㅠㅠ
그쵸? 신구 할아버지 뿐 아니라 공효진, 서신애, 장혁! 모두 날 웃게 했다는...
그 드라마의 현장에 가니 드라마 속 장면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