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이 완전히 내려, 색색의 노을이 지고 있었다.
우리는 무엇을 좀 먹기로 했다.
얼음에 재워져 여러 종류의 생선이 디스플레이 되어있고,
그 중에서 원하는 생선을 선택하면 킬로그램 별로 가격을 매겨
숯불에 구워서 가져다 주는 그런 시스템의 레스토랑이 여러군데 있었다..
바다 냄새를 실은, 밤바람이 슬슬 불어왔다.
레스토랑 근처를 지나는데,냄새가 진짜 기가 막혔다.
밤에 실기 수업 끝나고, 학교 뒤쪽으로 포장마차들이 늘어선 골목에
다가가면 나는 냄새와 비슷하다..-.-
그 중에 한곳으로 들어간다. 입구에서 늘어선 물고기는 생전 처음 보는
것이 많았다. 선택에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구워서 먹을수 있을까 싶은
아귀 보다 엄청큰 사이즈의 물고기까지 하얀 배를 드러내 놓고..있다.
눈치를 보고 있는데, 으아, 오징어가 있었다. 넘 반가워서, 반사적으로
오징어다.. 하는 한국말로 소리치니까, 아케미가 놀라서 뒤돌아 본다..
정확하게 말하면 오징어가 아니구 갑오징어에 가깝다.
숯불 구이 오징어 두 마리를 허겁지겁 입에 갖다 넣으면서, 아 간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
아케미가 와인을 시켜서, 거의 한 병을 다 비운다.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아름답게 조명이 켜진 oia 마을을 여기저기 걸어다녔다.
하얀 건물 벽에 물든 색깔이 물위에 뜬 것처럼 약간씩 흔들거린다.
바다 바람 때문인거 같기도 하고, 취기 때문인거 같기도 하고, 흔들거리는 그림자가,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
마치 내 것이 아닌, 다른 또 하나의 멋진 인생이 이 곳에서 이제 막 시작되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에 가슴 한구석이 저려왔다.
다시 소년으로 되돌아가 버린 기분이 들었다.
물고기가 달린 은색 펜던트 하나와, 고양이 열쇠고리를 사는데 옆에서
한국말이 들린다. 아, 나중에 신혼여행 꼭 여기로 오고싶어.. 한국 여자분 두분이었다.
오랜만에 한국말로 이야기 좀 했다. 부산에서 학원 운영한다는 노처녀
L 누나^^. 이 누나의 친구로 독립군, 이라는 K 모 누님.. 이 누나들이
맥주 사준다고 해서, 아케미, 알렉스 이렇게 다섯이 맥주 마시러 타베루나로 갔다.
유럽 와서 제일 술 많이 마신 날이다. 꼭 캠프파이어라도 하는 듯이 아늑했으며,
공기가 맑아서 그런지, 잘 취하지도 않았다.. -.-
다음날, 해수욕 하러 카마리 해변으로 가기로 한다.
topless 차림의 여자들 제법 많다. 그래도 별 느낌은 없었다.
노란 원피스 수영복 입은 아케미는, 물에는 들어갈 생각도 안하고,
완벽한 포즈로 누워 선탠을 하고 있다. -.-
한 두번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니까, 시시해졌다.
알렉스는, 화구 volcano 를 등산한다고 혼자 가버렸고, 아케미와 나는
thira 마을을 돌아다녔다. 예쁘장한 마을이다.
작은 갤러리들이 많이 있어서 그림 구경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리스 전통음악 녹음된 시디 하나샀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일이면 아테네로 돌아간다는 것을 꿈에도
의심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자꾸 호텔로 빨리 돌아가고 싶더라니..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주인 아저씨가 알렉스 호스피탈,,호스피탈
이러는 것이다. 항구 쪽의 병원에 아케미와 함께 달려 갔다.
알렉스는, 오른쪽 다리 골절이었다.
침대에 누워 기브스한 다리를 꺼꾸로 쳐든채 사고 당시의 상황을
아주 낙천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가파른 Nea Kammeni화구를 올라가다가 모자가,바람에 휙 날라가는
모자 주울려 다가, 굴러 떨어졌다고,,-.-
상황은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았다.
알렉스는 아테네- 산토리니-낙소스의 티켓을 끊었다. 낙소스에서는
바로 터키 쿠사다시로 건너가, 터키 일주를 할 예정이었는데...
이제 한시바삐 아테네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게 생겼고, 성수기라서
모든 배의 예약이 일주일 후까지 full이었다.
아케미에게 표를 양보하라고 할수는 없었다. -.-
어짜피,,,, 일 주일 이상 이곳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기보다....
하고 내 즉흥적인 기질이 슬슬 발동을 건다.
이스탄불에 가기만 한다면 비행기 표가 50 불이고, 4시간 만에 다시
중부 유럽으로 들어갈수가 있으니까, , , , ,
알렉스 표를 가지고 이스탄불로 가야겠다고,, ....재빨리^^ 머리 속에서 계산이 돌아갔다.
알렉스는 많이 고마와한다.
아냐, 어짜피 이스탄불 가는 시간이나, 아테네 거쳐 다시 이탈리아
들어가는 시간이나 same same이겠다...
산토리니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간다.
부두에서, 아케미와 알렉스와 주소를 교환하고 헤어진다.
아마도 평생 두 번 다시, 못볼 확률이 많겠지.. 시퍼져서 코 끝이
앵앵거리고 눈이 약간 따가왔다..
아케미는, 산토리니에서 산 엽서에 일본어로 문구를 적어 주었다.
함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언제 어디선가에서 또 만날수 있기를,..
한국에 돌아와서, 원이 형에게 물어 보니까. 뭐 대충 그런 뜻이었다.
낙소스 행 페리는 제법 크다.
페리의 그늘 갑판에 기대어, 알렉스에게서 받은, 론리 플래닛 터키 편을 읽었다.
갑자기 터키가 매력적인 곳으로 생각된다...
내 손에는 알렉스가 필요없게 되었다고 준, 터키 항공 국내선 편도 티켓까지 있었다.
낙소스까지만 해도, 천하태평이었는데, 배를 갈아타고 두 시간 만에
터키의 kusadasi 가 저 멀리 보이자, 배에는 약간 긴장의 기분이 감돈다.
여권을 꺼내어 살펴보는 사람, 입국 신청서를 쓰는 사람들로 바쁘다.
쿠사다시 항구로 배가 미끄러져 들어간다. 항구에 있는 많은 배들이
붉은 바탕에 초승달이 그려진 터키 국기를 달고 있다. 파란 바탕을 배경으로
붉은 국기는 자극적인 콘트라스트를 이루고 있다...
여행의 첫 시작이었던 런던 공항에 들어설 때처럼, 내 가슴은 방망이질친다..
입국 심사장은 아주 좁은 공간이었다.
내외국인 구별은 없고, 한 다섯줄의 심사대가 있고,
구석벽에 터키의 초승달이 크게 걸려 있고, 아마도 현 대통령임
에 틀림이 없을 콧수염 남자의 사진 한장.......
무엇 보다도 나를 주눅들게 한 것은 비자에 관한 커다란
조약문 같은 것....거기에 비자 해당국가, 면제국가, 로
나뉘어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우즈베키스탄,루마니아,요르단,투르크메니스탄, 우크라이나,
조지아....는 비자 해당국가.....아 제법 먼데까지 날라와
버렸구나 하는 당혹감이 드는 나라의 이름 들이었다.
그리고 비자 면제국가는 달랑 하나였는데, 스페인이라고 적
혀 있었다. 왜 미국이나 영국이 아닌 스페인을 예시로 들어
놓았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옛날 무슬림의
국가가 있었던 관계로 보다 친근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는지
.........
점점 내 차례가 다가왔다.
떠나기전에 분명 비자 면제 국가라는 것을 확인하고 왔지만
막 뭐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하고 불안 해졌다.
..
하지만 심사관은 한참동안이나 아무 말도 안하고 책을 뒤적거리다가
쿵 도장을 찍어 주었다........
제일 첫 번째 충격은 헤잡을 둘러쓴 여자들의 무리였다.
p.s
읽어주시구, 편지나 리플 해주신분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저, 홈페이지 주소를 문의해 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홈페이지는, 아마 제작안할거 같습니다.
처음에는 만들려고 생각했었지만,
홈페이지를 만들 정도의 대단한 여행기도 아니구요...
이 곳에서,
읽어주시는 분과 쓰는 저와의 사이에 어떤 마음의 공유가
일어나는 것,,, 정말 이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행복은,
한 번으로 충분한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여행기 반에 약간 못온거 같습니다.
......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