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그녀의 비밀이야기 14

14)) “편지 내용은.. 은아에게 비밀로 하자꾸나.” “하하하하하하. 제 생각도 그래요. 은아는 생각 없이 사는 애라서.. 며칠 안돼서 사빈에게 재잘재잘 떠벌릴게 뻔해요. 하하하하.” 사빈의 허리를 꼬옥 끌어안고, 사빈이 먹여주는 밥을 먹고 있는 은아를 보며 유빈과, 준희는 속닥거렸다. “그래.. 내 생각에도 그럴 것 같구나. 사빈이 일이라면 사죽을 못 쓰는 아이니..” “서준희!! 넌 거기서 엄마랑 뭐라고 얘기 하는 거야!!” “하하하하. 비밀이다, 사빈아.” “비밀은 얼어죽을.. 나 힘드니까, 네가 이리 와서 은아 밥 먹여!!” “싫어싫어!!! 난 사빈이가 먹여주는 밥만 먹을 거야!!” “제기랄.. 나 힘들 다고, 바보야.” 무슨 일이 있어도 사빈이 주는 음식만 먹겠다는 듯 사빈을 꼬옥 끌어안고 있는 은아는 귀여웠다. 5주동안 혼수상태 여서 많이 말랐는데도, 딱 보면 ‘우와! 되게 귀엽게 생겼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은아는 귀여운 외모였다. “으휴.. 애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아이고, 내 팔자야.” 죽 위에 김치를 얹은 음식을 은아의 입에 쏙 넣은 사빈은 은아의 반쪽이 된 얼굴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겁나게 말랐어, 주은아. 너 앞으로 내가 주는 건 다 먹어라. 알겠냐?”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은아의 손목을 보며 사빈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어어? 사빈이 울어? 예쁜 은아 걱정돼서?” “누가 누구를 걱정한다는 거야?! 난 그냥.. 그냥...” 얼굴이 빨개진 체 소리치는 사빈이 귀엽다는 듯, 은아는 사빈의 결 좋은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알았어, 사빈아. 앞으로는 사빈이가 주는 건 맛 없어도 다아~ 먹을게. 그니깐 뚜욱! 우리 애기 울지 마세요.” “그래. 뚜우..ㄱ. 야!! 주은아! 내가 네 애새낀 줄 알아?! 뚜욱이 뭐야, 뚜욱이!!” “피이.. 속으론 좋으면서~” “아우, 씨. 좋긴 뭐가 좋다는 거야!!” 예전처럼 말다툼을 하며 장난치는 둘의 모습에 유빈과, 준희는 기분이 좋아졌다. 뭐.. 일방적으로 단순 무식한 사빈이 밀리고 있었지만... “오케이! 나 이해됐어요, 아줌마!!” 사빈이 먹여주는 음식을 다 먹은 은아는 남장중인 사빈의 사정을 유빈에게 들었다. “사빈아! 어제 그 모습 다시 해봐아!! 그.. 지적이면서도, 굉장히 강한 인상이 풍긴 멋진 남자애로!! 어제 짱짱 귀여웠어!!! 빨리이~ 다시 가발 쓰고, 남자 옷 입어봐라. 응? 응?” 유빈은 은아 병실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사빈은 안심하고 남장을 푸르고, 편한 차림으로 병실에 있었다. “미쳤냐? 싫어.” “왜애~ 어제 그 남자애 디빵 멋있었단 말야아!!” “싫어, 싫어, 싫어.” 귀를 막고 고개를 저으며 싫다고 말하는 사빈을 은아가 가만히 놓아줄 리가 없었다. “사빈아아~ 나 자세히 보고 싶단 말야! 그럼 가발만!! 응? 가발만 써봐아!!! 저 새까만 검정색 가발 써봐라!! 응?” “싫어, 싫어, 싫어, 싫어, 무조건 싫어.” “씨이.. 씨이.. 그럼 나 네가 남장하고 다니는 학교로 전학 갈 거야!! 사우오빠가 다니는 데로!!” “전학? 푸하하하. 갈 수 있으면 가봐, 빙구야. 엄마가 안 보내주시면 그만이지, 뭐. 그리고 해성고는 남고라고, 이 아줌마야. 전학 가려면 너도 나처럼 남장 해야 될걸? 주은아, 네가 남장이라니.. 크크크큭. 상상만해도 미치겠다.” “너어.. 너어.. 지금 웃었어어! 최사빈 너 지금 나 비웃었어!!!” 은아가 사빈을 무섭게 째려봤지만 사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계속해서 웃어댔다. “씨이.. 아줌마!! 저 해성고로 전학 시켜주세요!!! 사빈이가 다니는 학교에 전학 갈래요!!” “은아야. 그건 좀 곤란하단다. 해성고는 남학교라서... 무리란다.” “하하하하. 내 생각도 그래, 은아야.” 유빈과, 준희가 사빈의 편을 들자 은아는 몸을 부르르 떨며 자신의 팔에 꽂아있는 링겔을 뽑았다. “은아야!!” “주은아!!! 뭐 하는 거야!!!”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지만, 은아는 한달 동안 누어있었기 때문에 지금 몸 상태가 많이 안 좋다. 몸도 안 좋은 상태에서 링겔을 빼다니.. 준희는 얼른 휴지로 은아의 팔에서 나오는 피를 닦았다. “사빈아!! 얼른 의사선생님 모셔 오거라!” “흥! 나 선생님 와도 링겔 안 맞아!! 사빈이네 학교로 전학 안 시켜주면 밥도 안 먹고, 치료도 안 할거야!!!” 급히 나가 의사선생님을 부르려던 사빈은 은아가 악을 쓰며 고집을 부리자 열었던 문을 닫았다. “너 지금 많이 아픈 상태다, 주은아.” “몰라, 몰라!! 나 전학 안 시켜 주면 밥도 안 먹고, 링겔도 안 맞고, 약도 안 먹어!!” 은아의 고집은 아무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있는 유빈은 한숨을 쉬었다. “후우.. 그래, 은아야. 그럼 네가 원하는 데로 전학 시켜주마.” “어머니!!!!” “아줌마!!!” 얼굴이 굳은 사빈과, 준희와는 반대로 은아는 환하게 웃으며 폴짝폴짝 뛰었다. "아싸아!! 고마워요, 아줌마! 싸랑해요!! 알라뷰웅!!!” “우린아. 오늘 어디 아파?” 우린이 양호실에 있다는 소릴 듣고 광동과, 진성은 한걸음에 양호실로 달려왔다. “아니. 안 아파. 하나도 안 아파.” “근데 왜 피구 하다가 공 맞았어? 우린이 피구 진짜 잘하잖아.” “그러게.. 왜 그럴까? 왜 그러지?” ‘왜 그 녀석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리고, 걱정이 되는 거지?’ 계속 멍하게 침대에 누어있는 우린을 보며 광동과, 진성은 진지하게 말했다. “진성아. 우린이 미쳤나봐.” “내가 봐도 그런 것 같다.” “흐음.. 어떡하지?” “우선.. 이 녀석 쉬게 놔두고 얼른 수업하러 가자. 수업도중에 나온 거 학주가 알면 우리 죽어, 임마.” “으아아악!! 맞다!” 수업하다가 양호실에 급히 뛰어온 진성과, 광동은 급하게 교실로 돌아갔다. “저 놈들 말대로.. 정말 나 미친 건가?” 우린은 정말 미친 사람처럼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4일 뒤에 퇴원하도록 하세요.” 간호사들이 은아의 팔에 링겔을 다시 꽂고 나자, 의사선생님이 말했다. “선생님~ 좀더 빨리 퇴원하면 안돼요?” 하루 빨리 사빈의 남장생활을 보고 싶은 은아가 칭얼거렸다. “호호호. 보통 10일 동안 병원에 더 있어야 하는데.. 은아양이 하도 졸라서 의사선생님이 4일로 줄인 거예요. 4일도 무척 빨리 퇴원하는 거죠.” “그래도 간호사언니! 4일은 너무 길어요!!” “한달 동안 병원에 있었는데, 그에 비하면 4일은 아무것도 아니지, 씨댕아.” 끝에 말한 욕은 유빈이 들리지 안을 정도로 작게 사빈이 말했다. “그럼.. 4일 뒤에 퇴원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달칵- 무뚝뚝한 의사선생님과, 간호사가 엉덩이를 씰룩씰룩 흔들며 나갔다. “히잉.. 빨리 학교 가고 싶은데.” “엄마. 저와, 준희 학교 일은..” 은아의 말을 무시하고 사빈이 유빈을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건 걱정하지 말아라, 사빈아. 너와, 준희가 학교에 가지 않은 것은 전학수속 밟으면서 처리하면 된단다.” “아줌마, 감사합니다. 하하하하하하. 한달 동안 학교를 안가서 어떻게 처리해야 되나.. 고민했었는데. 하하하하.” “그래. 그럼 은아와, 준희는 4일 뒤에 해성고로 전학 갈 준비를 하거라. 난 이만 가볼 테니..” 유빈의 말에 주스를 마시고 있던 준희는 무슨 말이냐는 듯 유빈을 보았다. “예? 아줌마. 저는..” “사빈이와, 은아가 있는 곳에 너도 당연히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생각 같아선 준희도 사빈이 남장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고, 놀리며 친구들과 함께 해성고에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사빈이 없는 지금.. 자신까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다면 지상여고는 많이 위험해 질 것이 뻔했다. “하하하하. 아줌마. 저는 전학 안 가겠습니다.” “학교 때문이냐?” 끄덕끄덕- “학교는 칠공주파에게 맡기면 돼지, 바보야. 어차피 5개월 후면 다시 지상여고로 돌아 갈 텐데..” “맞아, 준희야. 같이 해성고에 전학 가자아~ 응?” 준희가 결정을 짓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유빈이 따스한 웃음을 보이며 병실을 나갔다. “그럼.. 은아와, 준희는 4일 뒤에 전학 갈 준비 하거라.” 4일 동안 사빈과, 준희는 학교에 가지 않고, 은아 병실에서 살았다. 잠은 은아 옆에 있는 침대에서 사빈과, 준희가 낑겨서 잤고, 밥은 유빈이 시켜주는 음식을 먹었다. 병원 밥은 맛이 없다며 은아도 함께.. 그녀들이 4일 동안 먹고, 놀고 있을 때 우린과, 예은은 놀고, 먹지를 못했다. 유빈이 손을 써서 사빈과, 준희은 아파서 4일 동안 학교에 오지 못 할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칠공주파들은 준희가 은아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며 평소처럼 지냈지만, 우린과, 예은은 아니었다. 우린은 매일 멍하니 사빈의 빈 자리를 보며 우린 답지 않은 생활을 보냈고, 예은은 정성스레 싼 도시락을 줄 사빈이 없자, 예은도 예은 답지 않은 생활을 보냈다. 진성은 별 걱정 없이 지냈고, 광동은 ‘개빈이가 많이 아프구나...’ 라고 생각하며, 우린과, 예은의 눈치를 보며 4일 동안 조용히 지냈다. 그리고, 드디어... 행복하다면 행복했던. 끔찍하다면 끔찍했던 4일이란 시간이 흐르고.. 그녀들은 해성고에 등교했다. “씨댕아. 좀 떨어지지?” “피이.. 싫어, 싫어.” 사빈에게 착 달라붙어 팔짱을 낀 은아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어? 최사빈이다!” “진짜? 어디, 어디?” “임마! 그 동안 왜 학교 안 나왔냐? 걱정했다, 짜샤.” “근데, 네 옆에...” 사빈의 모습에 반가워 하던 남학생들은 사빈의 옆에 있는 그녀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재네.. 지상여고 부짱 최준희랑, 간판 주은아 아니야?” “맞아, 맞아. 주은아 며칠 전에 깨어났다고 하더니.. 정말 인가 봐.” “근데, 재네가 왜 사빈이랑 같이 있지? 그리고 우리 학교는.. 남고 아니었냐?” 남학생들의 술렁임에 사빈은 골치 아프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조용히 생활하기는 다 틀렸네.’ “하하하하. 걱정마라, 사빈아. 욕이랑, 싸움만 하지 않고 생활하면 아줌마께서도 뭐라 안 하실 거다. 하하하하하하. 이 든든한 누님만 믿고 따라라, 사빈아. 하하하하하하하.” 눈치 빠른 준희가 무척 즐겁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맞아.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 사빈아. 준희 믿지 말고, 나만 믿어!” ‘제발.. 주은아. 안 도와줘도 되니까.. 방해만 하지 말아줘라.’ 속 좁은 은아가 토라질까 봐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말을 속으로 꿀꺽- 삼키며 준희와, 은아를 교무실로 보내고 사빈은 교실로 들어왔다. “여어! 이제 오냐?” “어?! 개빈아아~” “오빠!!” “..............” 오늘 사빈이 올 것을 학주에게 전해들은 우린 패거리는 아침 일찍 등교 했다. 예은도 학교에 가방만 잽싸게 놓고 해성고로 달려 왔다. “일찍 왔네.” 자신보다 늘 늦게 오던 애들이 일찍 등교를 하자 사빈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오빠!! 많이 아팠어요? 그럼 저한테 말을 하죠! 제가 죽 싸 갖고 갔을 텐데..” ‘어머니가 학교에 아프다고 하셨나?’ “미안, 예은아. 난 예은이가 힘들 까봐 말 안 했지.” “아아.. 괜찮아요, 오빠. 이렇게 다시 오신 걸로 됐어요, 전.” 섭섭하다는 듯 말하다가 사빈의 변명에 조금 수척해진 예은은 활짝 웃었다. “씨이.. 개빈이는 오자마자 예은이랑만 얘기해.” 투덜대는 광동이에게 어색하게 눈 인사를 한 사빈은 자리에 앉았다. “많이 아팠냐?” “조금.. 이젠 괜찮아. 나 걱정 했냐?” “거..걱정은 무슨..” ‘후훗. 귀여운 녀석.’ 말을 더듬는 우린을 보며 사빈은 귀엽다고 생각했다. ‘에에? 귀엽다고? 저 녀석이? 은아한테 하도 시달리다 보니깐 이젠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건가?’ 딩동댕동- 종이치자 광동과, 진성은 교실로. 예은은 자신의 학교로 교실로 잽싸게 돌아갔다. “안녕하세요!!!” 종이 치자마자, 학주는 조회를 하러 그 큰 발을 교실에 들어놓았다. “어허허허. 들어와라, 얘들아.” 아이들의 인사에 고개를 대충 끄덕거리며, 학주는 앞문을 보며 생글생글 웃어보였다. “우와와!! 진짜 예쁘다! 근데.. 우리 학교에 왠 여자냐?” “그러게.. 어디서 많이 봤던 얼굴들인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새꺄. 어떻게 됐든 예쁘면 되는 거지.” “그런데, 재네.. 지상여고 최준희랑, 주은아 아니야?” 열린 앞문으로 들어온 준희와, 은아를 보며 아이들은 수근거렸다. “준희와, 은아는 사정이 있어서 특별히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단다. 여학생이 남고에서 계속 생활할 수는 없으니.. 몇 개월동안만 지내다 전학 갈 것이다. 몇 개월이지만, 다들 사이 좋게 잘 들 지내라. 자, 얘들아. 자기 소개 하렴.” 학주 선생님의 말에 준희가 먼저 말했다. “하하하하. 난 지상여고에서 전학 온 최준희다. 하하하하. 앞으로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음.. 나는 귀엽고, 깜찍하고, 섹시하고, 착한 주은아야!! 우리 친하게 지내자!!” “그럼, 준희와 은아는 빈 자리 찾아서 앉고, 오늘 조회는 이만.” 준희와, 은아가 앉을 자리는 당연히 비어있는 사빈과, 우린의 앞 자리였다. 허나.. “저기.. 되게 잘생긴 애야. 나 여기 앉고 싶은데..” 은아는 건방지게 앉아있는 우린의 자리를 탐냈다. “뭐.” “나 네 자리에 앉고 싶다구우. 너 여기 앉으면 안될까? 한 칸만 앞으로 옮기면 되는데.. 응?” “싫어.” 은아의 말에 우린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싫다고 대답했다. “왜 싫어어?” ‘그러게.. 왜 싫은 거지? 왜 이 녀석 옆 자리에 계속 앉고 싶은 거지?’ “그냥 싫어.” “에이~ 그러지말구우. 예쁜 준희랑 짝 되면 좋잖아. 응? 준희가 이렇게 생겼어도 되게 착하고, 되게 성격 좋아. 가끔은 맛있는 것도 사줘.” “싫다.” 단호한 우린의 거절에 은아의 눈에 눈물이 아슬아슬하게 맺혔다. “그냥 바꿔줘라. 저 녀석 울려고 하잖아.” ‘제발 바꾸지 말아라. 제발.. 제발.. 싫다고 계속 그래.’ 사빈은 속과 다른 말을 내뱉었다. “거봐아! 사빈이도 나 여기 앉으라고 하잖아. 응? 응?” ‘싫다고 딱! 잘라서 말해, 병신아. 난 너랑 계속 같이 앉고 싶단 말ㅇ... 에에?’ “싫다고. 난 이 자리가 좋아.” ‘은아가 내 옆에 앉으면 날 달달 볶아서 싫은 것이 아니라.. 자리를 바꾸면 우린 놈이랑 같이 앉지 못해서 바꾸지 말라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나도 그 자리가 좋아!!” “여긴 처음부터 내 자리였다. 선생님께선 분명히 빈 자리에 앉으라고 했지, 남의 자리를 뺏어서 앉으라곤 안 하셨어.” “씨이.. 그러니깐 지금 바꾸자는 거잖아!!” 사빈의 귀엔 은아와, 우린의 다툼이 들리지 않았다. 그저 ‘왜? 왜?’ 라는 의문만 들뿐.. ‘왜 우린 놈이랑 같이 앉고 싶어 하지?’ ‘왜 사빈 녀석이랑 같이 앉고 싶은 거지?’ 우린도 은아와 말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자꾸 ‘내가 왜 그러지?’ 라고 생각했다. “하하하하. 은아야, 그만해라. 내가 생각해도 이건 네 억지다.” 눈치 빠른 준희는, 사빈의 얼굴에 나타나있는 생각과, 우린과, 은아의 말싸움을 흥미롭게 바라보다가 선생님이 들어오시자 은아를 얼른 자리에 앉혔다. “왜애! 난 저 자리에 앉고 싶단 말야!!” “하하하하하하. 첫날부터 찍히면 안 되지, 은아 아가씨. 선생님 들어오셨으니까 우선 앉아.” 수업시간에도 사빈과, 우린은 같은 생각을 했다. 사빈은 생각을 해봐도 우린이 은아와 자리를 바꾸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자신이 왜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 분명 저 씨댕이랑 앉으면 날 달달 볶아서.. 내가 피곤해서 그런 걸 거야.’ 사빈은 뭔가 찜찜했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가습이 답답하고, 머리가 복잡해져서 대충 생각하고는 엎드렸다. ‘설마.. 내가 이 녀석을 좋아하나?’ 우린도 왜 자신이 은아와 자리를 바꾸기 싫었는지 계속 생각했다. ‘아니야. 이 놈은 남자고, 나도 남자야. 난 게이 같은 취미는 없다고. 그럼.. 왜 그러지?’ 곰곰히 생각하던 우린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 지상여고 부짱인, 서준희라는 기집애 옆에 앉기가 싫어서 그런 거야! 그래!! 그런 거야!’ 우린은 자신의 감정을 모른 체, 그저 저 번에 사이가 안 좋아진 지상여고의 부짱인 준희 옆에 앉기가 꺼림칙해서 그런 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점심 시간을 알리는 종이치자, 예은이 들어왔다. “오빠!! 저 왔어...요..” 기분 좋게 교실에 들어온 예은은 자신이 매일 안던 자리에 은아가 앉아 있자 얼굴이 굳어졌다. “저기.. 누구세요?” “응? 나?”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은아는 무척 귀여웠다. “네? 아.. 네.” 은아의 귀여움에 잠시 얼이 빠져 있던 예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오늘 전학 온 주은아야!” “그럼.. 옆에 분도?” “응! 내 친구, 준희. 준희야. 이 깜찍한 애한테 인사해.” 책을 읽던 준희는 고개를 들며 예은을 보았다. “하하하하. 정말 깜찍한 아가씨네. 난 서준희다.” 예은은 또 한번 준희의 모습에 얼이 빠졌다. 뭐라 딱히 말할 수 없지만, 준희는 무척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야아! 나랑 자리 바꾸자아!! 응?” 잠시 멍하니 있던 예은은 은아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싫다.” “씨이.. 그래! 그럼 넌 죽을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라!! 흥이다, 흥!” 자리에서 일어난 은아는 사빈과, 준희를 일으켰다. 그리고선, 맨 뒷자리에.. 그러니깐, 우린의 뒷자리에 3개의 책상을 붙였다. “여기는 사빈이 자리. 여기는 내 자리. 여기는 준희자리! 헤헤. 사빈아. 준희야. 어때? 좋지? 멋지지?” “하하하하. 은아야. 좋긴 한데.. 이러면 선생님께 혼나지 않을까?” “괜찮아, 괜찮아. 이 엉님만 믿어!” 은아가 중간에 앉고, 자신의 양 옆에 사빈과, 준희를 앉힌 은아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저기.. 사빈오빠.” “응, 예은아.”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진 사빈은 굳어진 얼굴로 예은을 보았다. “전학 온 언니들이랑 친한 사이에요?” 예은의 물음에 황당하단 표정으로 은아를 보던 우린은 귀를 쫑긋 세웠다. 아까부터 사빈의 옆에 필사적으로 앉으려는 은아가, 사빈과 무슨 사이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응! 우리 무지무지 친한 사이야. 그지, 사빈아아~” 사빈 대신 은아가 교과서를 꺼내며 말했다. “아.. 단짝친구요?” ”응? 단짝친구? 사빈이랑, 준희랑. 나랑 준희랑은 단짝친구 맞는데.. 사빈이랑 나는 단짝친구 아니야. 헤헤.” “네? 그럼..” “사빈이는 내 남자친구!! 나는 사빈이 여자친구!!” 은아가 방실방실 웃으며 말하자, 예은과, 우린, 사빈의 얼굴은 굳어졌다. 단 한 사람. 준희만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제길..’ 우린은 속으로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 욕을 했다. ‘빌어먹을..’ 왜 욕이 나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우린은 계속해서 욕을 해댔다. “아...” 사빈에게 처음 본 순간부터 반한 예은은 큰 망치로 머리를 한대 맞은 느낌이 들었다. “응? 왜 그래? 내가 무슨 실수했어, 준희야?” 굳어진 우린과, 예은의 표정에 은아가 물었다. “하하하하. 글쎄..” 즐겁다는 듯 웃는 준희를 째려보던 사빈이 은아에게 귓속말로 작게 말했다. “병신아. 이런 장난 치지 마라.” ”에이~ 사빈이는 너무 멋있어서, 나 같은 예쁜 여자친구가 꼭! 있어야 되.” “내가 멋있긴 하지만.. 멋있는 거랑, 여자친구는 무슨 상관이야!” “히히. 난 사빈이가 너무 좋아!!” “제엔장. 장난치지 말라고, 멍청아.” “메에에에롱.” 다정하게 귓속말을 하는 그녀들의 모습에 우린과, 예은의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이따가 학교 끝나고 다시 올게요.” 수업 종을 알리는 종이치자, 예은은 비틀거리며 자신의 학교로 돌아갔다. “이야.. 둘이 사귀는 거야? 그래서 지상여고 간판, 주은아가 특별학생으로 우리 학교에 전학 온 건가? 아무튼.. 정말 잘 어울린다, 저 둘.” “완전 선남선녀네.” “아아.. 부럽다, 부러워. 나도 저런 귀여운 여자친구 한명만 하늘에서 떨어졌으면...” 반 아이들은 선생님이 왔는데도 쉬는 시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떠들었다. “이 녀석들!! 시험이 3일밖에 안 남았는데 말이야. 이렇게 떠들고 있어? 얼른 공부해, 공부!!” 선생님의 말에 그녀들은 놀랬다. “선생님! 질문이요!!” “아.. 넌 오늘 전학 온 특별학생인가? 그래. 질문이 뭔가?” “기말고사 언제 봐요?” “흐흠.. 전학생이라서 잘 모르겠군. 기말고사 날짜는 10월 12일란다. 그 날 전과목을 다 보고, 2틀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는단다. 그러니깐, 이 녀석들아! 정신 바짝 차리고 공부 좀 해!! 시험이 3일밖에 안 남았단 말이다!” ‘제길.. 기말고사가 겨우 3일밖에 안 남았단 말야?!’ 사빈은 속으로 절규를 하다가 무엇인가 생각나자 눈을 반짝였다. ‘아! 요약정리!!’ 사빈은 책상 서랍을 뒤적거리다가, 자신의 손에 닫는 무수히 많은 노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뭐냐?” 앞에서 사빈을 몰래 보고 있던 우린이 관심 없다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보면 모르냐? 노트잖냐, 노트.” 사빈은 노트를 가방 안에 조심스레 넣고선, 선생님이 시험에 나올만한 문제를 집어주는 것에 집중을 했다. ‘꼭! 5등 안에 들어야 되. 이건 내 인생이 달린 문제야!’ 카드가 그렇게 중요했던지, 사빈은 감기려는 눈을 부릅뜨며 선생님의 설명을 하나도 빠짐없이 노트에 필기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