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서울과 카자흐스탄 선교 (2) (5/24/24)
5월 3일 금요일 밤 11시 30분에 에스더기도운동본부에 가서 그곳 환영위원들의 접대를 받았다. 예쁘게 과일과 차와 케이크를 내 오고 예전부터 잘 아시는 분들의 접대를 받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365일 매일 깊은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나라를 위한 기도 집회를 하고, 여러 분야의 강사님들을 초청하여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우리도 한국에 나오면 꼭 말씀을 전한다. 자정(子正)에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고 새벽 2시 쯤에 우리는 박 본부장님이 우리를 숙소까지 데려다주시고 다른 분들은 4시까지 차가 다닐 때까지 계속 기도한다.
날마다 뜨겁게 기도하는 이 안타까운 기도가 하늘에 상달 되어 속히 복음으로 남북통일이 되고 탈북자들의 고난의 행렬이 없어지고 먼저 온 통일인 탈북민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을 돕고 그들이 고향에 돌아가서 크게 사역할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6일은 휴일로 조카와 형님과 둘째 시아주버님의 납골당에 가서 찾아뵙고 기도드리고 파주의 오리고기 전문 식당에 갔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갈비와 문어를 탕으로 끓이는 식당에 시누이와 큰 형님을 조카 남매가 두 차로 모시고 와서 식사를 대접하고 고모님 생신이라고 케이크도 사 와서 예술인 마을 카페에 가서 생일 축하도 해 드리고 케이크도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유능하고 젊고 환하게 빛나는 두 남매 조카들의 섬김으로 다섯 명의 어른들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7일부터 14일까지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가서 목, 금요일에 선교사 세미나를 하고 그곳의 예쁜 신혼부부의 집에 가서 가족 예배도 드리는 계획으로 밤 비행기를 타고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밤에 도착하였는데 한국보다 4시간이 늦어서 밤 9시에 도착하였다.
꽃다발을 들고 환영나온 젊은 부부가 우리를 태우고 자기들이 일주일 전에 너무 커서 팔려고 내놓은 시부모님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는데 우리를 그 집으로 안내를 했다. 자기네 집은 위층에서 공사를 하는데 너무 소리가 커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공사가 끝날 때까지 이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한국 사람이 지은 아파트라고 한다.
큰 엘리베이터가 황금색으로 여러 가지 무늬도 그려져 있고 사방이 거울이고 꼭 호텔 엘리베이터같이 화려했다. 방이 4개에 화장실은 3개이고, 크고 하얀 침대에 새 이불로 화장실도 따로인 안방을 내주었고 우리가 공부하고 노트북을 할 수 있는 공부방도 있고 너무 깨끗하고 좋았다.
러시아에서 유학생으로 있을 때에 남편이 전하는 말씀에 큰 은혜를 받고 한국으로 와서 작년에 남편의 주례로 결혼을 해서 이곳으로 와서 신혼살림을 하고 있다.
이곳 회사 사장님의 둘째 아들로 형과 같이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영국에 유학도 다녀왔고 나이도 동갑이고 신부는 7년 동안 러시아에서 유학을 했고 러시아어를 잘하는 유능한 인재로 두 젊은이는 알콩달콩 너무 사랑스러운 부부였다.
아직 카자흐스탄이 낯설고 시부모님이 계시고 신혼부부인데 우리가 가겠다고 연락을 하니 대 환영을 한다고 했지만 나는 걱정이 되었고 마음에 부담이 되었다. 카자흐스탄은 예전에 선교사님들을 다 추방하였다고 했는데 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
기도하면서 그곳의 한인 선교사님들을 모아서 세미나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니 자기는 현지인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그러면 현지인 교회에서 설교하고 식사를 한 끼 대접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주님께 좋은 선교여행이 될 수 있기를,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하슬이가 결혼하고 이곳에 온 것도 1년밖에 안 되어 현지인 교회 예배에 참석하여 예배드리는데 옆에서 한국인 목소리가 들려 사귀게 된 분은 위그루에서 쫓겨나온 선교사님으로 세 딸이 카자흐스탄어를 배우게 하려고 현지인 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어 하슬을 만난 것이다.
하슬은 러시아를 잘 하는 고로 부부가 이 교회에 다니는데 이 교회는 아주 큰 교회라고 한다.
하슬이가 그 선교사님께 미국에서 목사님이 오시는데 한국인 선교사님들을 모시고 성경 세미나를 하려고 하시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의논하니 그분이 이곳 한인 선교사회의 회장 목사님께 이야기를 해서 회장님이 인터넷으로 남편을 다 검증하고 세미나를 목, 금 이틀 동안 하기로 기적이 일어났다.
우리가 화요일 밤늦게 도착하였는데 수요일 점심식사를 회장님께서 댁으로 초청해 주셔서 식사를 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하슬 남편이 인터넷으로 포스터도 다 만들어 20여 명의 한인 선교사님들을 모집하여 세미나를 하게 되었고 점심식사를 대접하기로 하였고 타코마의 행복한 교회에서 선교비를 주셔서 식사대접과 주최한 교회에 감사헌금을 하였다.
목, 금요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장자권의 비밀”을 강의하였는데 선교사님들이 은혜를 너무 잘 받아서 감사했다. 하루에 한 개씩만 강의하기로 하였는데 하루에 두 개를 다 강의하였고 모두 너무 좋아하셨다.
하슬이는 이곳에 온 지 1년 만에 선교사 세미나를 주최한 유명 인사도 되었는데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셨다. 주일에도 그곳 한인 허브교회에서 설교하였고,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화요일 밤 10시, 한국으로 떠나는 날 저녁에 식사대접을 하시겠다고 하신다.
하슬이가 시부모님과 형님 가족을 초청하여 토, 일 이틀 동안 집에서 식사를 대접하며 예배를 드리면서 성경공부를 하였고 월요일 저녁에는 형님댁에서 예배를 드리고 우리가 가지고 간 저서를 나누어드렸는데 하슬 동서가 너무 좋아하고 남편이 매일 “오늘의 만나”를 올리는 우리 “한미세”기도 카톡방에도 가입을 하고 성경 질문도 하면서 너무 보람이 있었다
하슬이가 호텔 같은 좋은 집 안방을 우리에게 내주고 끼니마다 정성껏 식사대접을 하고 식당에 데리고 가서 생전 처음으로 말고기를 먹었는데 너무 부드러웠고 맛있었다.
알마티 시내를 다 구경시켜주고 평풍같이 도시를 둘러싼 천산산맥의 눈산에도 갔는데 전기차로 갈아타고 꼭대기로 올라가 좋은 식당에서 아름다운 산을 보여주었다. 일주일이 금방 갔는데 미국에 가지고 갈 선물도 사주고 너무 아쉬워하고 섭섭해해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우리를 소개한 사모님은 은혜받았다고 감사의 손편지와 여자와 남자의 카자흐스탄 모자도 선물해 주셔서 선교사역의 보람을 느끼게 해주셨다. 하슬이가 임신 3개월인데 아무 입덧도 없고 너무 건강하다고 하며 우리에게 알리면 부담이 될까 보아 이야기를 안 했다고 한다.
하슬이는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아직 낯선 땅에서 선교사님들 집회를 주최한 유명인사가 되었다고 시어머님께서 말씀하신다. 두 형제가 이곳에서 크게 사업이 형통하고 이 나라를 주님의 품으로 인도하는 복된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준다.
알마티는 구 수도로 지금은 경제도시가 되었고 좋고 깨끗한 아파트들이 높이 솟아 있고 자동차도 많고 한국과 비슷하고 너무 잘 사는 것 같았고 한국인들만 다니는 한국인 교회도 있고 한국 사람을 우대하고 또 한국을 너무 좋아한다고 한다. 사면이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이기에 한국의 식료품은 없는 것이 많고 비싼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 가고 올 때는 필요한 것을 잔뜩 사 온다고 한다.
기회가 많은 발전하는 나라라고 사장이신 시아버지께서 말씀하신다. 화요일 저녁 5시에 하슬 남편 건(建)이 와서 짐을 다 싣고 허브교회 강 목사님 내외를 만나러 넓고 크고 좋은 양고기 식당에 가서 양고기와 야채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다.
사모님이 이곳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시고 목사님은 아침 식사와 픽업도 해주시는데 결혼 전에 그렇게 약속을 하셔서 지키신다고 하신다.
목회하면서 한때 어떤 사람에게 시달리면서 너무 많이 아파서 죽을 만큼의 큰 고통을 당하고 낙심하고 있을 때에 현지인 제자가 나타나서 기도해 달라고 하고 자기가 개척한 교회에서 설교해 달라고 했을 때에 불치에 시달리던 병이 순간 씻은 듯이 나아서 그때부터 식사도 하시고 재기하게 되셨다고 한다.
은퇴하면 선교사님들 교회를 돌고 밥을 사주면서 살고 싶다고 하시고 한국의 국제학교 체육선생인 딸이 교회에 장학금을 해마다 많이 보내주어 목회를 돕고 있다고 하신다.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져서 건이 우리를 공항으로 데려다주는데 교통체증이 심하고 U턴을 두 번이나 하는데 너무 위험하다. 차는 너무 많은데 도로가 너무 좁다고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한다. 10분이면 갈 거리를 교통체증으로 1시간씩 가야 한다고 땅이 넓은 나라가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답답하다고 한다.
차 속에서 내가 우리에게 편지와 모자를 선물로 주신 딸이 3 사람인, 방금 위구르에서 이곳으로 쫓겨나신 정 선교사님께 100불을 전해달라고 하슬에게 주다. 세미나에 컵과 커피 등도 사오셨고 회장님께 세미나를 부탁하기도 하셨다. 가지고 온 달러를 이렇게 다 쓴다.
공항에 와서 우리를 내려놓고 그냥 가라고 하니 가시는 것을 보아야 한다고 굳이 들어와서 도와주고 비행기 안에서 읽으시라고 봉한 편지봉투를 주다. 안으로 들어와서 정성껏 쓴 편지를 읽다.
러시아에서 유학하고 돌아와서 한국 직장에서 일을 열심히 하다가 이곳에 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살면서 임신하고 무기력증에 빠졌었는데 목사님이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일주일이 하루같이 너무 금방 갔다고 부모님 모시고 드린 예배와 두 형제끼리 모인 두 번의 예배로 앞으로 계속 이렇게 같이 모여 예배를 드릴 것이라고 하며 너무 좋았고 즐거웠다고 하고 우리가 선교비를 주었는데 남은 돈을 드린다고 하며 550불을 선교비로 쓰시라고 도로 주었다.
하슬은 새신부로 이곳에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우리를 데리고 다니면서 쓴 경비도 준 것인데 좋은 식당에 다니고 오늘 산에 가면서 택시도 많이 타고 우리에게 꿀과 여러 가지 선물도 사주고 식사 때마다 정성을 다하고 애썼고 너무 예쁘게 해서 미안하고 감사했고 신랑인 남편도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저들이 이곳에서 좋은 사업을 해서 가난한 지방의 현지인 선교사님들과 카자흐스탄 사람들을 크게 돕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남편이 이곳에 오기로 했을 때에 걱정하고 선교비를 주겠다고 하고 기도했는데 하슬이가 너무나 일을 잘 해서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모두 역사하셨다.
이번에 시부모님께서 팔려고 하신 좋은 아파트에서 너무나 호사스러운 날들을 보냈는데 하나님께서 80의 남편에게 은혜를 내려주신 선교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