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자(이) : 평화방송, 평화신문 시청취자 여러분 애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신묘년 토끼해가 밝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지난 한 해 우리는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정녕 실감 나는 한 해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온갖 시련 속에서도 지금 우리는 새해 새 역사의 장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또 한 번의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는 기대와 희망 속에 그 누구보다 먼저 앞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 길을 열 수 있을까요?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님을 모시고 함께 그 길을 찾아가는 평화방송 평화신문 신년 특별대담을 시작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추기경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지난해 주교님께서는 주교수품 40주년을 지내셨습니다. 또 올해는 사제수품 50주년 금경축을 맞이하십니다. 반백 년을 주교로 또 사제로 50년을 살아오신 추기경님의 감회를 듣고 싶습니다.
정진석(정) : "50년 전에 우리 한국천주교회는 교세가 1%도 안 됐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이 전국에 300명 정도 계셨습니다. 제가 사제로 서품된 지 2년 후에 저를 신학교에 보내주신 신부님이 은경축을 지낸 지 불과 3년 만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사제서품 25주년 은경축을 지내신 분도 드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 신부 때 내가 10년을 살 수 있겠나. 10년만 살아도 참 대단하겠다,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어쩌다 보니까 금경축이란 말이 저에게 해당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혜다, 그렇게 한마디로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것이 다 은혜였습니다. 어려운 고비도 많았지요. 그 어려운 고비라는 것이 정신적인 어려움도 있고, 또 신체적인 어려움도 있고 이랬습니다만 하느님은 고비 때마다 예상치 못했던 방법으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나날이 큰 어려움 없이 지내도록 안배해 주셨습니다.
이제 돌이켜보면 평생 어려웠던 일이 뭐냐 이렇게 질문을 받으면 선뜻 기억나는 것이 없어요. 어려움이 없지 않았을 텐데 뭐가 어려웠느냐 그러면 생각이 안 나요. 그래서 어려움이 전혀 없었겠느냐, 어려움이 있었겠지요, 그런데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날이 하느님께서 잘 인도해주시니까 그 어려움을 잊으면서 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말씀하신 데로 사제서품 10주년이 되기 전에 주교로 임명받았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주교가 될 자격이 있었다는 것보다도 우리 한국천주교회 전체의 사정에 비추어서 제가 어린 나이에도 교구장 직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그런 어떤 상황이 벌어졌겠지요. 그래서 제가 분에 넘치게 또 자격 미달이라는 것을 절실히 통감하는 생활을 오랫동안 했습니다. 이렇게 지역에 행정관들 도지사 또는 이러한 분들 또 법원장 이런 분들이 다 나보다 연장자가 돼서 인제 도에 기관장 모임에 가면 그 당시에는 제가 가장 연소했어요. 그러니까 조금 어려운 점이 많았지요. 세속 사람들이 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가 큰 말을 하잖아요. 그러다가 한 10년이 지나니까 기관장들이 모두 바뀌면서 기관장들이 도지사나 법원장이나 이런 분들의 임기가 2년 내지 3년으로 교대가 되더라구요. 그러니까 나는 교구장으로서 10년을 그 자리에 앉아있으니까 기관장 모임에 가면 내가 제일 고참 기관장이, 그래서 그때 10년 지내고 나니까 조금 익숙해졌지요. 그렇게 교구장 직무를 수행을 했는데, 그다음에 30년 가까이 되니까 이제 서울교구장으로 교황님이 발령을 내주셔서 서울에 왔는데, 김 추기경님이 워낙 국가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거물이셨으니까 그 후임자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지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셔서 이 직무를 이렇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나날이 보살펴주셨습니다.
사실 이 서울교구라는 곳이 지금 인구 대비해서 (선교율) 13% 되니까, 이게 굉장한 거예요. 전 세계적으로 신자 수 100만이 넘는 교구가 흔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서울은 대교구라는 칭호에 걸맞는 교세를 가지고 있고, 또 우리 신자들의 열성으로 우리 교구 전체가 아시아에서는 아주 대표적인 큰 교구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교세가 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이지요. 근데 이 교구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건강도 주시고 저의 능력이 모자라는 것을 보충해줄 수 있도록 훌륭한 협조자들을 주변에 늘 함께 있게 해주셨습니다. 우리 교구청 신부님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각 본당의 본당 신부님들, 지부장 신부님들 또 지역교구장 대리, 이런 모든 분들이 아주 저 이상으로 좋은 사목 활동을 보여주셨고, 또 우리 각 본당에서 평신도 사도직 간부 여러분들도 본당 발전을 위해서 애써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난 10년 동안에 서울교구장으로서 근무하는 동안에 우리 신자들이 해마다 매년 평균 10개의 본당을 신설해주셨습니다. 이건 참 기가 막힌 은총이에요. 본당 하나 신설하려면 땅을 한 4,500평 사야 되는데, 그 돈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또 성당을 건축하는데 그게 아주 엄청난 돈이 들지요. 그러니까 성당 터 사고 성당 건물 짓고 이러는 거 합하면 뭐 100억 가까이 됩니다. 매년 10개의 본당을 신설했는데 10년 동안 보니까 100개가 됐어요. 그래서 저는 우리 교우들에게 어떻게 감사드려야 될지 몰라요. 본당 비용 다 감당하면서 또 신설 성당 건축하면서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우리 교우들에게 정말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신학생들 참으로 훌륭합니다. 우리 가정에서 아주 훌륭한 아들 딸을 성직자 수도자로 봉헌해주시는 우리 교우 가정 여러분들께 하느님께서 풍성히 갚아주실 것을 믿습니다.
제가 아까 50년 전에 한국 천주교회 신부가 300명 정도 된다고 그랬는데, 오늘날에는 한국 전체에 신부님이 5천 명이 넘어요. 그럼 수녀님은 얼마나 되느냐 하면 두 배 됩니다. 그래서 국가의 통계로 보면 한국 천주교회 성직자가 만 오천 명 이래요, 대충 얘기할 때. 그리고 개신교회의 성직자가 10만 명, 그리고 불교의 성직자가 5만 명 그럽니다. 그래서 한국의 3대 종교의 성직자를 합하면 16만 5천 명이래요. 그런데 우리 신부님들은 목사님과 달리 독신 생활을 하잖아요. 가정이 없지요. 그러니까 성직자 수도자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부모님 측에서 볼 때에는 아들 딸이 결혼 안 하고 성직자 수도자가 되니까, 부모님이 하느님께 희생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나 신학교나 수도원에 갈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한국의 성직자 수도자가 전 세계에서 볼 때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구에 지금 현재 대신학생이 300명이 돼요. 그러니까 이게 다 교우들이 봉헌한 것이지요. 그래서 이런 거 저런 거 볼 때 제가 지난 50년 동안 사제로 살면서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이 모든 은혜, 내가 개인적으로 받은 은혜뿐 아니라, 교구장 직무 수행하는 동안에 그 임무 수행에 필요한 은총을 헤아리면 말할 수 없이 참으로 감격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지난 50년 동안 나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 또 주변에 나를 돌봐주신 은인들, 성직자 수도자가 나한테 협조해준 것도 감사스럽지만 나한테 직접으로 보답을 받을 수 없는 은인들이 많지요. 그런 은인들에게는 어떻게 보답해야 되나 그렇게 사랑의 짐을 이렇게 느낄 정도로 감사합니다.
그래서 지난 50년 동안 저에게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은총, 또 하느님의 은총이 성직자 수도자들을 또 평신도들을 통해서 나에게 베풀어진 거, 또 우리 국가에서 우리 주변에 신자 아닌 분들이 나에게 베풀어준 거, 또 국가에서 나에게 베풀어준 것도 많죠. 또 내가 50년 동안 건강을 유지하고 살 수 있도록 보살펴주신 분들 또 내가 어쩌다가 병원에 갈 때가 있었어요. 살다 보니까 이런저런 일이 있으니까 병원에도 다녔지요. 그때에 의사 선생님이 건강을 유지하도록 보살펴주셔서 오늘날까지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사실 50년 전에는 금경축? 정말 꿈도 못 꿨어요. 어떻게 바라겠어요. 꿈도 못 꿨지요. 그 당시에는 은경축 지내시는 신부님도 수가 아주 드물었으니까, 그때는 아마 금경축이라는 말도 흔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우리 국민의 평균 수명이 늘어가면서 이제 은경축 지내시는 신부님들도 많고, 금경축 지내시는 신부님들도 좀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흔하지 않은 금경축을 맞게 되니까 감개가 무량해서 이렇게 짧은 시간에 다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그냥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 나를 보살펴주신 주변의 모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뿐 아니라 신자 아닌 은인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이 : 네, 주교님 거듭 축하드립니다. 방금 지적하셨습니다. 한국교회는 50년 전 추기경님께서 사제품에 오르실 때에 비해 그 성장세가 계속 놀라우리만치 지속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형적 성장만큼 내적 성장이 뒤따르지 못한다는 지적 역시 계속 따라오고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이번 서울대교구 올해 사목지표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는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이렇게 정하신 뜻이 있으신지요?
정 : 네 지금 말씀하신 대로 우리 한국천주교회가 50년 동안에 외적으로 교세 면에서 아주 세상 사람들이 다 놀랄 정도로 비약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1퍼센트 미만이었는데 교황님이 우리나라에 방문하신 1984년도 그때 목표가 200만 명 신자 돌파하자, 이게 아주 캐치프레이즈였어요. 그때 200만 신자가 안 됐다 그런 소리죠. 그런데 교황님이 84년도에 오시고 89년도에도 또 성체대회 때 오셨습니다. 이렇게 교황님께서 두 번 한국에 오신 기회에 우리 교세가 아주 놀랍게 늘어서 이제는 500만 신자를 돌파했습니다. 아시아권에서 이렇게 인구대비 신자 10%가 넘는 곳은 필리핀하고 우리나라뿐입니다. 다른 나라는 10% 미만이고 또 아시아 평균으로는 2% 정도입니다.
근데 우리나라가 이렇게 외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반면에 거기에 걸맞게 내적으로도 내실 있는 신자 생활을 하자는 뜻에서 ‘새로운 복음화’ 이런 말을 꺼내게 됐습니다. 이 ‘새로운 복음화’라는 단어는 작고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처음 시작하신 말씀입니다. 유럽에서 우리 가톨릭교회가 2000년의 교회 역사에서 새롭게 복음화될 필요가 있다는 의미에서 이 단어를 쓰셨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복음화가 된 지 230년 정도밖에 안 됐으니까 이 새로운 복음화라는 의미는 외적인 의미보다도 내적으로 신자의 신앙생활의 질적 향상, 이것을 강조하시는 뜻으로 우리가 해석을 해야 되겠지요.
그런데 다행히 이즈음에 우리 신자들 중에 성경공부에 몰두하시는 분이 참으로 많아졌어요. 아주 이거는 놀라운 일입니다. 제가 이렇게 볼 때에 전 세계적으로 우리 평신도들이 성경을 이렇게 열성적으로 공부하는 나라가 또 있겠느냐, 아마 없을 거예요. 내가 다른 나라 폄하하는 거 아니고, 우리 평신도가 정말 성직자 버금가게 성경에 대해서 박식해요. 이렇게 얘기하다 보면 아주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성경공부 열심으로 합니다. 또 성경 필사하잖아요. 일일이 쓰는데 그것도 참 놀라워요. 구약성경 읽기만 해도 힘든데 그거를 다 쓰잖아요. 야 이거 하느님의 축복을 안 받을 수 없겠구나. 성경을 쓰면 어떻게 살겠느냐, 그 가정이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게 분명하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성경공부 열심으로 하는 분들의 가정은 질적으로 신앙생활이 향상돼 있다. 그렇게 평가를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우리 평신도 중에 성경공부 열심히 하시는 분들, 또 평신도 단체가 여러 개 있는데 평신도 단체에 가입한 신자들 보면 참으로 놀랍게 많은 사람에게 자원봉사 열성적으로 하시는 분들 보면 다 무슨 평신도 단체에 가입하신 분들이 많아요. 레지오 마리애, 꾸르실료, 매리지 엔카운터, 성령쇄신운동 이런 데 가입하신 분들은 자원봉사를 아주 열성적으로 많이 하세요.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이 질적으로 높은 단계에 이르신 것의 표현이지요. 그래서 우리 한국 천주교회 전체가 이렇게 신자들이 국민 전체에게 진짜로 소금과 빛의 모범을 보여주시는 삶을 더한층 높게 살자, 그런 것이 새복음화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에 경찰사목 방면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어요. 또 병원사목에도 많은 성과를 거두었는데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경찰서마다 경신실이 설치됐고, 또 대형병원마다 우리 신자들이 봉사하는 그런 병원사목부서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성직자 수도자들은 소수고, 평신도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세요. 경찰사목도 보면 경찰서에 신부님이 다 계시는 게 아니고 수녀님은 몇 분 계시지만 자원봉사하는 우리 평신도들이 실제로 거기서 경신실을 운영하는 거예요. 교도소 사목도 그렇습니다. 큰 대형병원마다 우리 평신도 자원봉사자들이 호스피스 그 봉사를 하세요. 그래서 성모병원은 말할 것도 없지만 다른 병원에도 신자들이 병원에 입원하시잖아요. 그러면 교회 병원 아닌데 입원하시는 우리 신자들을 위해서 신자 호스피스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는데 성직자 수도자 못지않게 더 잘 사목적으로 활동하세요. 그래서 이런 것도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은 특별히 이렇게, 호스피스는 참 어려운 일이잖아요. 호스피스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굉장한 봉사하시는 것이다. 이런 분들이 신앙 면에서 아주 높은 단계의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이다.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우리 교우가 다른 사람에게 모범을 보여주면 좋겠다. 또 우리 생명 존중의 면에 있어서도 우리 신자 가정이 모범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이 : 고맙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의 생명수호 운동, 그 중심에 있습니다. 이같은 교회의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낙태를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는 생명을 거스르는 죽음의 문화가 계속 만연해가고 있습니다. 교회의 생명 운동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좀 짚어주십시오.
정 : 생명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주신 큰 은총이지요. 생물에게 있어서 생명이 첫째가는 가장 소중한 의미이지요. 그런데 우리 국민은 생명 존중에 대해서 전 세계의 평균에 좀 미달할 정도로 생명을 경시하는 측면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통계로 볼 때에 우리나라가 저출산의 아주 심각한 나라로 되어 있고, 또 서글프게도 자살률이 아주 우려될 정도로 심각한 나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지난 50년 동안에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해서 전 세계가 놀라고 있는데 그 반면에 생명 문화가 이렇게 좀 어둡게 돼서 이 점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시 새롭게 출발해야 되지 않는가 이러한 생각이 듭니다.
경제적으로 우리가 가난한 나라에서 지금 선진국의 문턱에 이를 정도로 발전을 했는데 윤리 도덕면에 있어서는 가정이 파괴되는 속도도 아주 비관할 정도로 어두워서 우선 가정이 건전해야 되지 않겠나, 가정이 건전해야 생명 존중도 거기에 걸맞게 같이 간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낙태가 일어나느냐 그러면 미혼모의 경우도 있을 수 있고, 또 자녀교육 문제 때문에 여러 자녀를 양육할 수 없다는 이유로 낙태하는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만일 낙태만 하지 않는다면 저출산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낙태가 해소될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미혼모의 경우를 볼 때 미혼모가 낙태하지 않고 출산을 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이 먼저 이뤄져야 되지 않겠나. 미성년자가 임신하는 경우에 그것을 보살펴주는 그런 시설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되겠고. 또 미성년자인 경우니까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제도도 있어야 되겠다. 미성년의 경우, 미혼모가 낙태하는 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우선 미혼모들은 미성년자니까 미혼모의 사건이 벌어지지 않도록 청소년들이 윤리 도덕적으로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해주시기를 우선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실수로 임신하게 되면 낙태하는 것보다 어떤 경로로든지 생명을 존중하는 그런 결의를 가지고 그런 방법을 찾으시기를. 또 사회적으로 그런 미혼모들을 소외하지 말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또 보살펴주는 그런 사회 분위기, 또 사회 시설 이런 것을 우리가 마련해주면 좋겠습니다. 또 기혼자의 경우에 낙태하는 수도 있는데, 그것이 보며는 교육 문제와 연관이 된다고 그럽니다. 한 자녀만 키우기도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두 자녀를 키우기는 더욱 어렵다 그럽니다. 그래서 이런 것도 사회적으로 뭔가 제도적으로도 해결이 돼야 되고, 사회분위기도 뒷받침이 돼야 된다. 어린 자녀들이 있어도 여성이 직장에 다닐 수 있도록 직장에서 유아보호시설을 마련해주시면 좋겠고, 이런 것들 또 두 자녀 이상에 대해서 학비에 대해서도 좀 학부모가 부담을 덜 느낄 수 있도록 이렇게 마련해주시면 그러면 기혼자의 경우 낙태가 그만큼 줄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생명존중 문제에 있어서는 자살문제를 우리가 염려할 수밖에 없는데, 자살률이 우리나라가 선진국 중에 가장 우려스럽대요. 그래서 이거는 안 되는 일인데. 우리가 경제적으로 성장하더라도 자살이 많으면 행복한 나라가 아니잖아요. 행복한 나라가 돼야 되는데 행복한 나라가 되려면 물질적으로 발전할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삶의 행복을 느끼도록 그런 분위기가 되어야 하고, 제도적으로도 마련이 돼야 되겠다.
그리고 노인들 문제도 고려해야 되죠. 노령사회가 되는데, 여기도 생명존중의 문제가 여기에 절실히 필요합니다. 노인이 되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잖아요. 그러니까 노인들의 경제적인 측면 또 육체적으로 건강도 힘드니까 건강을 보살펴 주는 문제, 또 노인들이 삶의 의욕을 느낄 수 있도록 기쁨이 되는 환경, 보살펴 드리고 그다음에는 안락사의 문제가 있어요. 노인이 죽음을 맞이할 때 인격적으로 존중받는 가운데 편안하게 삶을 마칠 수 있는 그러한 사회환경, 사회제도가 마련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여러 가지 얘기를 했습니다마는 이게 법률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것이 많아요. 그래서 우선 청소년들의 미혼모에 대해서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돼야 되지 않느냐. 또 기혼자들이 경제적인 문제라도, 직장을 가졌을 때 아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문제, 이런 것도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되지 않느냐. 그리고 노인 문제도 노후에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도록, 너무 힘들지 않도록, 건강 면에 있어서도 보건복지 면에서 노후에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 또 세상을 떠날 때 인간적으로 존엄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제도, 이런 것들이 또 낙태를 방지하는 법, 또 자살을 예방할 수 있는 법적 뒷받침,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에 있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이 : 고맙습니다. 남북갈등 문제입니다. 6ㆍ25전쟁 이후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최악의 국면으로 빠져든 적이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천안함 사건에 이어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에 우리 국민들은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계속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동안 이 땅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히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요?
정 : 평화지요. 우리가 같은 민족인데 평화롭게 살아야지요. 그런데 이 평화를 위협하는 게 뭘까 생각하면, 북에 대해서 우리는 북의 국민들하고 그 정권하고를 구별해야 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북의 국민은 참으로 우리가 보살펴 주어야 될 동포들이지요. 그런데 그 정권은 어떠냐 그러면, 좀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북의 국민이 저렇게 굶주리는가. 그런데 외부 소식을 아무것도 못 듣는 거는 진리를 차단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종교의 자유가 없습니다. 해방 직후에 우리나라에 남쪽과 북쪽 합해서 천주교 신자가 15만 명이었어요. 해방 당시 1945년에. 남쪽에 우리 천주교 신자가 10만 명, 북쪽에 5만 명, 5만 5천 명이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 성당에 신자 수는 남쪽이나 북쪽이나 본당이 있고 신부님이 상주하는 본당에는 신자 수가 대략 500명, 그리고 본당마다 공소가 있잖아요. 신부님이 순회하는 공소. 그러니까 본당은 읍에 있고, 공소는 면에 있잖아요. 그러면 면이 대게 한 본당에 공소가 평균 5, 6개씩 있었어요. 해방 당시에. 남쪽에는 10만 명의 신자가 있었는데, 성당이 100개, 그다음에 공소가 500, 600개 됐지요. 그러니까 한 본당 전체가 천명씩이에요. 그게 100개면 10만 명이잖아요. 북은 어떻게 되느냐. 북에는 5만 5천인데 본당이 본당과 공소 합해서 55개 있었어요. 그러니까 55개 본당이 있으면 신부님이 거기에 필요한 만큼 있고. 신부님과 보좌신부 수녀님이 두세 분 있었어요. 그런데 1949년에 5월달에 성직자 수도자들이 한꺼번에 안 보이게 됐어요. 한꺼번에 안 보이게 됐으니까 뭔가 문제가 있는 거잖아요. 그게 1949년 5월달이었어요. 그다음에는 북에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한 분도 없게 된 거죠, 그 이후로. 그러면 신자들은 어떻게 됐겠느냐. 그게 1949년이니까 지금부터 따지면 61년이에요. 그러면 61년 전에 5만 5천 명이었는데 그 신자들 중에 10살이라고 해도 지금 71살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동안에 돌아가신 분이 많겠지요. 그런데 신부님 수녀님이 없으니까 세례받은 사람은 없다고 말할 수 있잖아요. 새로 세례받은 신자는 없다. 그러니 5만 5천 명이 감소만 됐지 증가는 안 됐다. 그래서 지금 북에 천주교 신자가 몇 명 있는지 아무도 몰라요. 신부님은 한 분도 없고, 수녀님도 한 분도 없고. 그러면 성당은 어떻게 됐느냐? 본당이 55개, 공소가 한 300개 있었지요. 그런데 이게 다 없어요 지금. 어떻게 해서 다 없어졌느냐 그러면 말로는 그럽니다. 전쟁 중에 다 없어졌다 이래요. 전쟁 중에 없어졌겠지요. 그래서 북에는 눈에 보이는 천주교는 없습니다. 신자가 혹시 있겠지만 그 신자는 안 나타나는 거예요. 나타나면 구박받으니까. 그럼 개신교는 어떠냐 하니까 개신교도 같대요.
그러니까 북에는 신앙의 자유가 없는 거예요. 안타깝지요. 이것이 국민의 상태입니다. 그러면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게 누구냐? 정권이죠. 정권이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그다음에 외부 소식을 못 듣게 하는 게 누구냐? 그거는 정권이에요. 그리고 왜 북의 국민이 왜 굶주리느냐? 그것도 안타깝잖아요. 굶주려서 쌀 달라 뭐 달라 이렇게 손을 내미는 게 누구 탓이냐 이거지요. 국민의 탓이 아니지요. 정권의 탓이지.
그러니까 정권과 국민을 구별해야지요. 그러니까 그 국민이 그렇게 굶주리고 그렇게 자유가 없는 생활을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돌봐줄 수 있느냐? 어떻게 우리가 사랑을 베풀어줄 수 있느냐? 그 북한의 정권을 통해서는 우리가 해 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안타깝습니다. 북의 국민을 생각하면 참으로 우리가 사랑을 베풀어줘야 되고 그럴 형편인데 북의 정권을 통해서 밖에 그 표현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북의 정권은 연장될수록 백성을 그렇게 힘들게 살도록 하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우리 북의 국민, 그 불쌍한 국민들 하느님이 어떻게든지 보살펴 주십시오. 그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어떻게 마련해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리고 북의 우리 동포들을 위해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우리가 사랑의 손으로 보살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 지금 우리 사회는 정부의 사회복지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빈부격차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이웃들이 헤쳐나가기 힘든 가난으로 고통과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가톨릭 교회 공동체의 몫이 더욱 커지는데요 어떤 방안이 있을까요?
정 :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발전했다 그럽니다. 발전한 거 고마운 일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발전한 이면에는 대기업들이 국제적으로 성공한 덕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기업들이 국제적으로 성공한 배경에는 근로자들의 노력이 절대적이었지요. 그러니까 대기업이 국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대기업의 지도자들 대기업의 총수들만 잘했다, 그래서 그렇게 성공했느냐 그러면 아니지요. 근로자들이 좋은 제품을 만들었고, 그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제도적인 뒷받침도 있었고, 또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그 제품을 사줬고, 그 제품을 운반할 수 있는 교통수단도 있었고, 또 금융권에서 그 기업이 커질 수 있도록 지원도 해줬고, 이런 거잖아요. 그러니까 기업이 성공한 배경에는 기업주만 잘한 거 아니고, 거기에 상관되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룬 거다. 그리고 기업에 근무하는 기업의 사원들 그 교육을 누가 했느냐, 학교에서 해줬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유능한 학교에서 좋은 인재를 키워줘서 그 인재가 그 기업에 가서 기업활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거예요. 그러면 교육 기관도 국가 발전을 위해서 크게 공헌한 거예요. 그러니까 기업이 잘 된다 하는 거는 기업 혼자만의 노력으로 그 기업이 이득을 독점해야 된다, 이거는 아니죠. 그 기업이 커질 수 있도록 협조한 모든 협조자에게 그 이익이 골고루 돌아가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기업은 당연히 학교에 학생들이 공부 잘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주는 게 당연한 일이에요. 근로자들에게 근로에 맞도록 임금을 정의롭게 보살펴줘야 하는 거죠. 그것이 잘 이루어지면 빈부격차가 크게 해소될 수 있잖아요. 기업주만 이득을 독점하게 되면 빈부격차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거죠. 빈부격차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근로자들 몫을 정당하게 주고, 기업이 잘 클 수 있도록 협조한 국민들을 위해서도 제품값을 공정하게 받고 너무 비싸게 받지 말고, 제품값이 국민에게 이득이 가도록 보살펴줘야죠.
여러 방면으로 노후 대책도 그 세금으로 노후대책도 마련해주고, 기업이 커짐으로써 세금도 많이 내겠죠. 그런데 세금만이 아니라 빈부격차 해소에도 기업이 노력해야 된다. 그리고 요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 문제가 심각한데, 상생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대기업이 어떻게 혼자 살 수 있습니까? 안 되지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그것을 통해서 또 빈부격차도 많이 해소될 수 있다. 그래서 제도적인 뒷받침도 있어야 된다.
그런데 빈부격차가 없는 나라, 그 나라가 진정으로 복지국가예요. 그러니까 빈부격차가 없음으로서 소외받는 사람, 또 남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 장애인, 노인, 홀로된 사람, 이런 사람에게 사회적으로 보장해주는 그런 제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것이 다 이루어져야 비로소 복지국가다. 모든 국민이 다 함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 그것이 복지국가지요.
이 : 현재 우리는 지역과 연령 또 이념으로 엇갈려서 극단으로만 치닫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한국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사회통합이라고들 얘기합니다. 진정한 통합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 무엇이 우선적으로 선행이 돼야 하겠습니까?
정 : 우리가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간에 의견이 똑같지가 않습니다. 부모가 자녀에 대해서 어떤 때엔 의견 다툼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자녀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이지요? 그렇게 부모는 자녀를 태어나게 해준 사람이고 자녀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인데 부모와 자녀 간에도 의견이 다른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사람은 다 자기 생각이 있고, 고집이 있지요. 가정에서도 그런데 하물며 사회 전체가 의견이 다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잖아요. 의견이 다를 때 어떡하느냐 그거지요.
부모와 자녀가 의견이 다르다 그런 것은 상황이 다를 때 그렇습니다. 상대방 처지를 이해하면 상대방의 말을 이해할 수가 있지요. 그래서 우리가 상대방의 얘기를 들을 때 그 사람의 입장이 돼서 얘기를 들어봐라, 그러면 이해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이러잖아요. 그러니까 부모와 자녀들도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얘기를 들으면 이해하기가 쉽게 되겠죠. 그러면 이해하면 그다음에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협조를 하게 됩니다. 이해하지 않으면 협조할 수가 없지요. 이해하면 그다음에 협조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해하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들어야 되는 거죠. 상대방의 입장에서 들어야 되고 들어서 이해를 하면 그다음에는 협조를 해줘야 되고 도와줘야 되잖아요. 같이 문제를 해결해야 되니까. 협조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서로 화목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죠. 그렇게 해야 사랑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국가 사회로도 이것이 확장이 되어야 된다. 우선 가정 안에서 가족끼리 함께 사랑하고 이렇게 함께 공동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야 되죠. 그것이 함께 행복을 누리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국가 사회로서도 서로 상대방을 경청하고 이해하고 협조하면 그것이 공동 목표를 우리가 달성하는데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 공동체 전체가 상대방을 이해하고 또 이해한 다음에는 협조하고 공동목표를 향해서 함께 나아갈 때 이것이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 교회 관련해서 몇 가지 여쭙겠습니다. 아직은 저희에게는 큰 문제는 아닙니다만 사제와 수도자 성소가 예전 같지는 않다고들 합니다. 이들의 성소가 우리 교회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열쇠라는 점에서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얘기도 합니다. 성직생활 50주년을 바로 눈앞에 두신 추기경님께 듣고 싶습니다. 사제직은 과연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성직 생활 50년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 두 가지만 선정해서 들려주십시오.
정 : 사제 생활은 행복한 삶입니다. 행복하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뜻은 사제생활을 하거나 결혼생활을 하거나 만만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말 하잖아요. 결혼해도 후회하고, 결혼 안 해도 후회한다 이래요. 그런데 결혼생활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뜻하는 거잖아요. 사제생활이 그럼 쉬우냐? 쉽지 않아요, 솔직히 말해서 쉽지 않아요. 그러면 행복하냐 안하냐 그 말은 결혼생활이 행복하냐 안하냐 하는 말하고 같은 수준의 말이에요.
어떤 사람은 결혼생활을 행복하다 그러고, 어떤 사람은 힘들다 그래요. 마찬가지로 사제생활이 힘들다는 사람이 있고, 행복하다는 사람이 있어요. 어떻게 사느냐 그 사람이 어떤 자세로 사느냐 하는 게 문제지요. 결혼생활을 긍정적으로 살면 행복해지고, 아냐, 아냐, 아냐, 이렇게 살면 힘들어지는 거죠. 사제생활도 수도생활도 마찬가지예요.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살면 행복하고, 이거 힘들어, 이거 힘들어, 이거 힘들어 하면 힘들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나는 사제생활을 이렇게 긍정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50년을 못살았겠지요.
결혼생활 하는 분들 금혼축했다, 회혼축했다 이러면 존경스러워요. 저 부부가 안 싸웠겠나 이렇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싸우면서도 함께 어려움을 극복한 거예요. 그러니까 금혼식하고 회혼식 하는 분들 보면 참으로 놀랍지요. 회혼식 하는 분들 보면 참 부부가 얼마나 참고 상대방을 존중했을까, 그게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져요. 부부가 산다는 게 상대방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협조한 거잖아요. 그래야 행복하게 살 수 있죠. 그래야 회혼축, 금혼축, 은혼축 한 분들 보면 다 그 나름대로 잘 사는 노하우가 있게 되잖아요. 그걸 터득하지 못하면 거기까지 갈 수가 없죠. 그래서 사제생활도 은경축 지냈다고 하면 존경스러워요. 그동안에 기폭이 있었는데 어려운 때도 있고 기쁜 때도 있고 이랬는데 그것을 긍정적으로 극복을 해나갈 때 그때에 사제들이 은경축도 지내고 금경축도 지내고 이렇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삶은 똑같은 삶을 살 수가 없잖아요. 결혼한 사람은 사제가 못 되고, 사제생활하면 결혼은 안 되잖아요. 그런데 어떤 생활이 더 나으냐 그러면 어떤 생활이 더 낫다는 말은 안 해. 결혼생활도 행복할 수 있고 불행할 수도 있다. 사제생활도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의 마음의 자세가 큰 문제가 된다. 결혼생활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보면 훌륭해요. 사제생활 은경축 금경축하면 그것도 훌륭하지요.
이 : 에피소드나 특별히 실수담 같은 건 혹시 없으십니까?
정 : 우스갯소리를 하면 요새 부모와 자녀들이 전쟁을 한다고 그러잖아요? 예를 들면 자녀들 혼인문제가 일어나면 엄마 아빠하고 당사자가 소리를 지르고 '나는 나갈 거야!' 그러면 아버지는 '내 자식 아니다!' 이러잖아요. 그럴 때 보면 나는 결혼 안 해서 저런 문제는 없구나 생각하고 그런데 자녀들이 효도하고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아하! 결혼생활이 저런 게 좋겠구나 이러지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할 순 없잖아요.
이 : 저도 우리 기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이 기쁘게 살자는 겁니다. 일도 놀면서 하자고. 최근 한국 천주교회 평신도 신원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거론됩니다. 평신도는 교회에서 어떤 존재인지요? 그리고 교회에서, 이 세상에서 평신도는 무엇 하는 사람들이어야 하는지요?
정 : 세례받은 평신도들은 바로 또 하나의 그리스도인입니다. 세례받은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예요.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해서 세례받은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평신도들을 평신도 사도직 이렇게 얘기를 하지요. 그러니까 사제가 없는 장소에서는 평신도가 바로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람이에요. 가령 예를 들면 국회의원, 사제는 국회의원이 못 되잖아요? 사제가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은 교회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국회의원은 못 돼요 사제는. 그럼 국회에서 예수님을 대신하는 사람은 누구냐? 가톨릭 신자가 거기서는 예수님이에요. 그렇게 평신도가 위치가 뭐냐 그러면 각자가 다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람, 크리스천이란 말이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람이란 뜻이에요. 성직자 수도자만이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고 평신도도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람이다. 특별히 성직자 수도자가 갈 수 없는 장소에서 성직자 수도자가 갈 수 없는 장소가 너무 많아요. 직장 이런 데 성직자 수도자가 안 가잖아요. 그럼 거기서는 평신도만이 갈 수 있는 장소에서는 그 평신도가 바로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람이에요. 그게 평신도 사도직의 요점입니다.
이 : 지난해 통산 49번째 저서 「하느님의 길, 인간의 길」을 펴내셨습니다. 이스라엘 예언자들과 임금들 이야기를 통해서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하느님께서 역사 하신 그 생생한 증언을 저희에게 전해주셨습니다. 이제 1권만 더 채우시면 금경축과 같은 50권이 됩니다. 어떻게 50권째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정 : 책 한 권 한 권 쓸 때마다 하느님께서 뒷바라지해주시지 않으셨으면 못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앞으로 또 책을 쓸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시면 쓸 수 있는 거고, 그런 걸 인제 됐다 하시면 못 쓰는 거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내가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우선 건강이 없으면 책을 쓸 수가 없어요. 책 쓴다는 게 건강이 절실히 요구되는 거예요. 건강하지 않으면 책 못 쓰죠. 그리고 책을 쓸 수 있을만한 시간도 있어야 되지 않겠어요. 그러한 요건들, 내가 함부로 얘기할 수가 없지요. 하느님께서 책을 쓸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면 쓸 수 있는 거고, 아주 쉬운 말이에요. 하느님이 뜻하시는 대로.
이 : 고맙습니다. 추기경님, 끝으로 저희 평화방송 평화신문 시청취자와 애독자 모두에게 새해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 : 하느님이 하루하루를 우리가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는 분입니다. 하루하루가 바로 하느님의 은혜예요. 이렇게 보면 우리가 건강을 언제 해칠 줄 몰라요. 어느 날 우리가 갑자기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이런 날이 뜻밖에 옵니다. 그러니까 하루하루가 소중하지요. 그래서 저는 하루하루 24시간을 한순간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 하는 그런 기본자세를 가지고 성실하게 사시도록 이때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이때 가장 최선을 다해서 그래서 하십시오. 미루시지 말고. 좋은 일은 지금 하세요. 언짢은 일은 하지 마세요. 좋은 일만 하시면 그날그날이 매우 보람 있고, 기쁜 날이 되실 것입니다. 남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해주시면 그게 바로 나에게 기쁨이 되고 내가 그날 저녁 잘 때에 아, 오늘 내가 하느님한테 칭찬받을 일 한 가지 했어. 이러면 굉장히 기뻐요. 그게 행복의 요건입니다. 그래서 우리 청취자 여러분 우리 친애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하루하루 남에게 기쁨이 되는 일을 하십시오. 그렇게 하느님께 은총 청하십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