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ㅡ 봄맞이 서울 나들이ㅡ
봄은 저절로 오는 것처럼 보여도 결코 그렇지 않다.
자연의 순리야 인간이 어찌해보겠냐만은 그 순리에 간절한 마음이 더해질 때, 멀기만 하던 봄이 어느 날 불쑥 찾아오는 것이다.
봄이 올까?
이제는 까마득히 잊혀진 첫사랑.
그 청순한 얼굴이 불현듯 선명히 떠오르는 때가 있듯이,
가슴에 봄에 대한 간절함이 봇물처럼 넘쳐날 무렵, 거짓말처럼 바람 끝이 부드러워지고 남도 어디선가 풍문에 성질 급한 매화가 피었느니, 산수유가 노란 부리를 내보였느니, 하는 소식이 들려오는 것이다.
그렇게 봄은 오는 것이다.
애타는 그리움에 화답하듯 봄은 그렇게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춘래불사춘이네, 어쩌고 떠드는 사이로 온 듯 아니온 듯 서서히 봄은 오는 것이다.
그러할지니
봄은 기쁘게 맞이해야 할 일이다.
그런 연유로 이 중늙은이들이 봄바람 맞으러 서울로 나들이를 한것은 당연하고 꽤 의미있는 일일것이다.
지난 토요일 날씨도 놀라 수은주가 20도를 넘나들어, 어라, 불안함에 겨울옷을 아주 벗어던지지는 못하고 평소보다 얇게 걸치고 서울 한복판 종로에 모인것이다.
덕분에 햇살이 따사로워 표정이 밝아졌다.
봄햇살로 십년은 젊어졌다, 라고 봐주시라^^
여기는 요즘 핫한 종로3가 익선동 골목 퓨전식당.
젊은이들이 점령한 골목길을 돌아돌아 가열찬 용기로 들어와 앉은 곳.
수제맥주 전문점 애일당愛日堂.
수제 맥주는 봄꽃처럼 향이 강해서 냄새에 먼저 취한다.
앞에 앉은 젊은 처자에게 사진을 요청하니 흔쾌히 응해준다.
셋은 약속한다.
오늘 술은 많이 마시지 말자.
술에 취하지 말고 한양 육백년의 향기에 취하고 사람의 향기에 취하자.
이 햇살 따사로운 봄날 술에 취함은 봄을 모독하는 일일지니....
한곳에서 한잔씩만 하자....
그래 서울 술집 순례를 하자....
봄맞이 순례를 하자....
이 사진 찍을 무렵이면 2차를 거친것인데,
그래서인가 취하지말자고 다짐했음에도
봄바람에 살짝 취하고 한잔씩 마신 술에 또 살짝 취하니 길거리에 앉아도 즐겁기만 하다.
길위에 서 있는 날들이 많아야 인생이 지루하지 않는 법.
길위에 서있어야 새로운 길을 만나는 법.
그래 오늘은 발길 닿는데로 걷자, 그렇게 약속한다.
길을 잃으면?
길을 잃어야 새로운 길을 만나는 법.
막다른 길에 다다르더라도 길을 잃어보지 않으면 새로운 길은 난망일지니, 부디 남은 날들 길위에 서있기를....
걸으며 중늙이들은 읊어댄다.
저 자리에서 아마도 한 양반이 노래를 가볍게 부른거 같으다....ㅎ
난 사실 남자들과, 특히 나이 먹은 남정네들과 술마시는걸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다.
매번 돌고돌아 이야기의 끝은 돈 번 자랑일때가 많아 유쾌한 술자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양반들은 다르다.
그래서 종종 만난다.
돈 자랑이 별로없다.
온통 쓸데없는(?)말들이다.
중구난방이지만 격조가 있고 말에 향기가 있다. 상처를 받을일 없어 좋다.
여친들을 만나 떠드는 기분이다.
여친들은 돈자랑이 없어 좋다.
마치 웃기위해 만난것처럼 하나도 웃기지 않는 얘기에도 까르륵 웃어준다.
그 웃음에 다른 친구들은 또 까르르.
난 그래서 여친들과 노는게 제일 재밌다~^^
근데 이 양반들과 만나면 웃다가 끝난다.
그래서 좋다.
근엄하지 않아서 좋다.
덕분에 월급쟁이로 맨날 인상 쓰는 나도 같이 천진해져서 좋다.
내가 기분이 고양되서 막 들이대도 다 받아주는 양반들이라 좋다~^
길거리에 좌판을 핀 이 맥주집에서도 가볍게 한잔.
노가리 전문점.
스크린 9언더를 친다고 자랑하는 분홍셔츠 이 양반에게, 체크무늬 사내는 하나도 겁이 안나니 필드에서 한 판 뜨자고 들이대고 사진 찍는 볼한타스형은 그거 좋다, 고 판을 키운다.
조만간 한 판 붙읍시다, 콜?
근데 안주값이 증말 싸다.
노가리 한마리에 천오백원.
따사한 햇살 아래 봄을 만끽했으니 회개할 일이로다^^
걷다 걷다보니 명동성당까지 왔다.
저 엄숙함에 주눅들어 뒤켠에서 살짝 사진 한컷씩만 찍는다.
명동 성당에 들어서자 앞서 본 옛 미국 문화원이 떠오른다.
오래지않은 시절 이 거리에서 젊은이들이 민주화를 갈망하고 온 몸으로 그걸 실현해내고자 했었다.
그런 고난을 거처 세상은 조금씩 바뀐것이리라.
지난 겨울의 혹한을 견뎌내고 이런 봄이 오듯이
제 험난한 시대를 겪어내고 우린 여기에 있는 것일 것이다....
산수유 피었으니
마침내 봄이다!
라고 나는 선언한다.
아하,
저 아랫녘 하동이나 구례 어디쯤엔 매화, 산수유가 지천이겠지?
첫댓글 봄날의 동행 보기 좋습니다 ^^
맥주도 좋지만 막걸리에 파전이나 두부김치가 생각나네요~~^*
네, 막걸리에 파전도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