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bravo)” “브라보” “와, 와~” 하는 함성이 비오는 창밖으로 크게 울리면서 퍼져나갔다.
일단(一團)의 남녀 등산객들이 큰 술잔을 높이 쳐들고 소리쳐 ‘브라보’를 외칠 때 필자 옆에 있던 한 여성 회원이 갑자기 ‘부라쟈’(브래지어 brassiere의 속어)라고 외쳐서 한바탕 웃음속에 분위기는 더 고조되었다.
여성 속옷이 본의 아니게 건배사로써 뜻밖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애초에 심장병 약으로 개발 되었던 비아그라가 남성 발기부전치료제로 더 유명해진 것처럼.
10여명 쯤 되어 보이는 40~60대 남녀 회원들이 긴 테이블의 양옆에 앉아서 연신 술잔을 높이 들었다. 누구 한 명 예외없이 즐겁고 유쾌한 표정이었다.
아니 개선장군(凱旋將軍)이 금의환향 (錦衣還鄕)한 것처럼 의기양양하고 득의만만했다. 얼마전까지 죽을 인상을 쓰면서 금방이라도 숨 넘어 갈 듯, 임종 직전의 환자가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 쉬는 듯 헉헉거리면서 땡볕에 산을 오르던 때와는 180도 달리 모두가 만면에 웃음과 자신감이 넘쳐났다.
생기없이 게슴츠레하던 눈빛은 새벽 별처럼 초롱초롱 빛났고 고통을 참는 듯한 찌그러진 표정 은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 환한 모습으로 돌변해 있었다.
흠뻑 물을 주니 시들던 화초가 금새 파릇파릇 살아난 것 같았고 푸르죽죽한 피부 색깔에 산송장처럼 누워있던 환자가 간이식을 받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생기가 도는 새 생명으로 환생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최소한 산돼지 한 마리라도 때려잡고 내려온 것처럼 모두가 당당하기 그지 없었다. 싸움에서 이기고 온 전사(戰士)가 무용담을 자랑하는 것 같았고 간발의 차이로 폭우를 피하고 하산한 우연을 마치 대사(大事)를 도모하는데 있어서 하늘이 도움이라도 준 것처럼 앞다투어 의미를 부여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저 취미가 같은 사람들이 동호회 모임에서 만나 그들이 하고 싶은 것을 즐기고 온 것에 불과 할 뿐 생업에 종사한것도,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파트타임으로 일을 한 것도 아니며 삶의 현장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온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름답고 즐거운 시간들이었고 자축(自祝)하는 자리였다.
등산이 삶의 여정과 닮은 점이 있다고 느낄때가 있다. 쉽고 편한 길만 가겠다고 고집할 수도 없고 고집부린다고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쉬운 길을 골라서 가려다 절벽을 마주 할 수도 있고 꽃길을 걷는가 했는데 어느 순간 가시밭길이 앞을 가로막고 오르고 내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날머리를 향해 치닫는다.
아무리 산이 좋아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하산해야하는 여정(旅程)인 점도 유사하다. 야간산행이나 캠프를 치고 수 주간 이어지는 전문 산악인의 수천미터 고산 원정대가 아니라면 날이 저물기 전에 내려와야 하는 것처럼 누구나 인생여정을 때가 되면 마칠 수 밖에 없지않은가.
멀리서 바라보면 평탄하고 특별한 위험이나 굴곡 없이 무난할 것만 같은 산이 직접 오르면 예기치 못한 온갖 상황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도 우리들 삶과 비슷하다.
숲과 나무, 암벽과 화초, 신선한 바람, 절벽과 난간, 조난과 실족의 위험등 멀리 밖에서는 예상하기 어려운 수많은 상황과 변수가 도사리고 있기에 언제 무슨일이 일어날지, 어느 한 순간에 희비가 교차할지 알 수 없는 길이다.
정상에 이르는 것이 산행의 유일한 목적이 아니고 고단함 속에서도 변화무쌍한 과정을 즐길 수 있어야 산행이 따분하지 않고 즐거울 수 있는 것처럼 인생여정도 그래야 되는 것이 아닐까.
쉬운 길이라고 자만하지 않고 어렵고 힘든 길이라고 좌절하지 않고 사전준비와 지혜, 끈기와 투혼으로 한발씩 내딛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제시간에 무난히 정상을 넘어 날머리를 거쳐 편히 쉴 수 있는 집에 이르지 않겠는가.
때로는 뛰쳐 나오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도 있지만 집은 위로가 되는 영원한 안식처이기에 집으로 가는 길은 모두에게 느긋한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