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5일(화) 빌레몬서 1:1~14 ‘유익한 자로 살라’ 새찬송가 331장(통 375장) 영광을 받으실 만유의 주여
오늘은 본문 빌레몬서 1:1~14절 말씀을 중심으로 ‘유익한 자로 살라’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요약하면 ‘바울은 빌레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의 사랑과 믿음을 칭찬하며,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그를 위해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빌레몬과 그의 종 오네시모 사이를 중재하며, 오네시모를 돌려보내게 된 경위를 이야기 합니다.
먼저 1절~7절에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보내는 편지 서론에서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 갇힌 자’라고 소개합니다. 1,2절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 갇힌 자’라고 소개하는 이유는 빌레몬서가 바울이 옥중에 있는 동안 빌레몬과 오네시모 사이를 중재하고자 쓴 편지였기 때문입니다. 빌레몬은 바울의 제자이며 빌레몬서의 수신자이자, 오네시모의 주인인데, 그의 이름은 ‘사랑하다’는 뜻의 '필레오'에서 파생되었으며 ‘애정있는 자’라는 뜻을 지닙니다. 바울 역시 그를 ‘사랑을 받는 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오네시모는 ‘유익한’, ‘이익’이란 뜻으로 빌레몬의 노예입니다. 주인 빌레몬의 물건을 훔쳐 로마도 도망갔다가 옥중에 있던 바울을 만나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하고 다시 주인인 빌레몬에게로 돌아갔던 사람이었습니다. 즉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로서 그 주인에게 해를 끼치고 도망쳤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바울을 옥중에서 만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된 것이지요. 만남의 축복을 받은 것이지요. 이에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것처럼 빌레몬도 희생정신을 발휘해서 자신에게 해를 끼친 오네시모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도록 권면하고자 쓴 편지가 바로 빌레몬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을 설득하기 위해서 먼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서 갇힌 자’라고 소개합니다. 물론 지금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 있는 몸인 육신의 자신을 소개하는 말이지만, 자신이 갇혀 있는 것이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을 위해서’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빌레몬에게 이 권면을 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리스도를 위해서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죠.
적용) 바울이 그리스도께 갇혀 있다면 과연 나는 지금 무엇에 갇혀 있습니까? 나의 욕심으로 인해 갇혀 있습니까? 죄 때문에 갇혀 살고 있습니까? 그 무엇이 나를 사로잡아서 나를 잡아 얽어 매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사도바울처럼 비록 몸은 옥에 갇혀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갇힌 바 된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때문에 살고, 예수님으로 인해 살고, 그분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삶이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바울은 8~10절에 오네시모를 위해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8~10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당시 사회적 관습과 법으로 볼 때 주인인 빌레몬이 도망친 종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풀어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도망친 노예, 특히 주인의 물건을 훔쳐서 도망한 노예는 무자비하게 매질을 당하는 것이 보통이고, 심지어는 십자가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예외가 있는 데 그것은 주인이 용서하는 경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제자 빌레몬에게 마땅히 매질당하고 심지어는 죽어 마땅한 오네시모를 용서해주기를 간청합니다. 특히 바울은 빌레몬에게 복음을 전한 스승의 입장이지만, 이 일을 일방적으로 명령하지 않고, 그의 이름의 뜻을 상기시키면서 사랑을 담아 간구합니다. 8절에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빌레몬은 골로새 지방의 유지입니다. 빌레몬이 에베소에 갔다가 당시에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던 바울의 전도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그리스도인이 된 후 빌레몬은 복음에 헌신적이었습니다. 심지어 빌레몬은 자신의 집을 교회로 내주어서 거기서 골로새교회가 태동되었습니다. 바울의 사랑의 간구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인격적인 설득방법입니다. 참으로 누군가를 용서해 달라고 부탁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탁을 넘어서 설득을 해야 하는 과정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경우처럼 내 권리를 주장하여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기 보다, 사랑으로 간구하는 설득은 참으로 성숙한 설득과정입니다.
적용) 나는 자녀들과 아랫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 어떤 방식으로 부탁하시고 설득하십니까? 강압적인 명령입니까? 배려하고 부탁하는 인격적인 설득입니까?
또한 바울은 11절에 그가 용서를 구하는 대상인 오네시모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니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오네시모가 전에는 무익했는데, 이제는 유익한 존재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11절에서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이제 오네시모는 바울에게뿐 아니라, 빌레몬에게도, 더 나아가 그 시대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한 사람으로 변화되었다고 선포합니다. 역사적으로도 훗날 이 오네시모는 안디옥을 담임하는 감독의 위치까지 올라갈 정도로 위대한 신앙인이 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은 쓸모 없던 사람조차 유익한 자로 바꾸어 놓는 힘이 있습니다. 오늘 이 설득을 하는 사도 바울조차도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를 심히 박해할 정도로 무익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박해하는 주님을 만난 이후로 변화되어 이제는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그곳에서 만난 ‘오네시모’라고 하는 도망치다 잡힌 노예에게 복음을 전하며, 또한 그를 위해 그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그를 주 안에서, 주의 사랑으로 용서해 줄 것을 간구하고 있을 정도로 유익한 존재로 변화되었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는 존재로 변화되었습니다. 바울은 노예가 되었던 형제 오네시모의 삶을 해방시켜주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의와 사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누구든지 복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변하게 됩니다.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서 사는 쓸모 없는 인생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존재로 바뀌게 됩니다. 쓸모 없어 보이는 내 인생에 주님이 말씀으로 찾아오시면, 주의 일에 유익한 일꾼이 됩니다. 전에는 나를 위해서 살았지만, 이제는 이웃을 위해서, 이제는 복음을 위해서, 이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꾼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 자를 주님이 마지막 날에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우리를 호칭하실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무익한 종이었으나, 이제는 내 생명의 주인이시오, 내 인생의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유익한 종’으로, 마치 바울이 오네시모를 그렇게 칭하면서 그를 용서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제는 내가 유익한 사람으로 변하였음을 믿고, 날마다 날마다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유익한 종으로 그런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주님, 예수님께서 나와같이 무익한 자를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믿음주시고, 이 땅을 유익한 자로 살도록 변화시켜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매일 매일 말씀을 통해 참된 복음을 받아 누리며 나만 누릴 뿐 아니라 내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며 진정으로 유익한 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