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 먼저다. 돈에 관한 모든 결정에 통하는 원칙이지만, 자녀를 외면해야 한다면 따르기 어려운 원칙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당신이라면 20대와 30대에 학자금 대출을 상환하는 편이 나은가? 아니면 40대와 50대에 궁핍한 부모를 모시고 사는 편이 나은가? 당신은 쉽게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 자녀에게도 쉬운 선택이다.
학자금 대출을 상환하기가 쉽다는 말이 아니라, 은퇴 자금을 마련하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말이다. 대학은 선택의 여지가 있다. 학비가 싼 국공립 대학에 입학하거나, 공부를 열심히 해 장학금을 받거나, 저금로로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은퇴 자금 마련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100%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우리 부모 세대는 은퇴 자금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정년까지 일할 수 있었고, 고성장과 고금리 시대를 살며 자산을 불릴 기회도 많았으며, 자녀들의 부양을 받는 일도 당연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다르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졌고, 경기는 위축되는데 물가는 고공행진이다. 내 집 하나 마련하는 것조차 버거운데 부모도 부양해야 하고 자식은 결혼할 때까지 뒷바라지해야 한다. 그렇다고 자녀들에게 노후를 기대기도 어려워졌다. 게다가 우리는 부모 세대보다 훨씬 많은 돈이 필요하다. 더 오래 살기 때문이다.*
항공기 승무원의 조언을 따르라. 당신부터 산소마스크를 착용한 다음, 자녀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워 주라. 당신이 숨을 쉬지 못하면 자녀를 도와줄 수 없다.
교육비 상한선을 정하라
자녀를 대학까지 교육시키는 것은 부모의 책임일 수 있다. 하지만 과도한 교육비 지출은 나의 노후를 위협하고 자녀에게도 부담을 준다. 교육비 지출의 상한선을 정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생각에 당장 사교육비를 과도하게 지출하다가 (노후를 위한 저축은 커녕) 막상 대학 학자금은 마련해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자녀가 대학억 들어간 후 학비를 대기 위해 아르바이트에 시간을 쏟느라 오히려 공부를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학비 충당에 들어가는 자녀의 노동 시간까지 함께 고려한 교육비 투자 설계가 필요하다.
직장인은 '3종 연금 세트'가 기본
지금 대한민국의 직장인은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이라는 이른바 '3종 연금 세트'를 토대로 노후를 준비할 수 있다. 피델리티에 따르면 세 가지를 모두 갖춘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후 받는 연금 수급액은 152만 6000원으로, 노후에 필요한 자금(한 달 평균 235만 원)의 약 70%를 충당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월 급여가 200만 원인 직장인이라면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은 월 35만 원씩 적립되고 있을 것이다.
남은 것은 각자가 스스로 선택하는 개인연금 상품이다. 연금저축은 세제 적격 상품으로 연간 400만 원까지 소득공제가 된다. 변액연금과 같은 세제 비적격 상품은 가입을 10년 이상 유지할 경우에만 비과세 혜택이 있다.
기업퇴직연금, 어떻게 선택하고 운용해야 할까?
예전에는 회사를 퇴직할 때 목돈으로 퇴직금을 받거나 중간정산을 받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불안전성과 위험 요인 때문에 2005년부터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되었다. 이에 따라 기업은 사내에 적립하던 퇴직금을 외부 금융회사에 위탁해 관리하고, 근로자는 퇴직한 후 그간 적립한 퇴직금을 연금이나 일시금으로 받아 쓸 수 있다.
기업퇴직연금제도는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으로 나뉜다. 확정급여형은 근로자가 퇴직할 때 받을 연금액이 미리 확정되며 적립금은 회사가 운용한다. 당연히 채권 등 안전한 자산에 투자해 목표한 수익을 받을 수 있도록 운용한다. 확정기여형은 회사가 매월 일정액을 근로자 개인별 계좌에 적립하고 적립금을 근로자가 직접 운용하는 방식으로, 투자 실적에 따라 연금액이 달라진다.
잠깐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미국의 401k 플랜은 위에 언급된 두 가지 방식 중 DC형에 해당한다. 이는 어찌 보면 몹시 귀찮은 일이 될 수도 있다. 근로자가 시간을 내어 별도로 가입해야 하고 자신이 직접 운용 방식도 정해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처음 정한 액수만 불입하거나 주가가 많이 올랐는데도 불입 비중을 그대로 유지하는 등 잘못 운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우리나라 근로자들도 이처럼 잘못된 운용 위험을 피해 간다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신중한 운용 설계가 필요하다. 자산을 자동 리밸런싱하거나 소득에 따라 납입 금액을 조정하는 일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런 부분까지 신경쓰고 싶지 않고 필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면 DB형을 선택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DC형을 선택한다고 해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처음 자신의 퇴직연금 계좌를 설정할 때 이 책에 담긴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고 지킨다면 당신의 퇴직금을 똑똑하게 운용할 수 있다.
1. 자산은 주식이나 채권 등에 '올인'하지 말고 분산투자한다.
2. 소득의 일정액을 강제 저축한 후 소비를 고려한다.(연 1200만 원까지 IRP 계좌에 추가 불입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3. 비용을 고려하여 저비용 인덱스펀드, ETF, 인터넷 전용 펀드 등에 투자한다.
4.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찾기보다 연금 형태로 수령한다.
모든 근로자를 위한 '은퇴 준비 통장' IRP
2012년 7월부터 개인형퇴직연금(Individual Retirement Pension, IRP) 제도가 도입되면서, 퇴직연금 가입자는 (DC형이든 DB형이든) 이전 직장의 퇴직금이 무조건 IRP 계좌로 들어간다. 즉 퇴직금을 받으려면 IRP 계좌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직할 때 또는 중간정산으로 받은 퇴직금을 미리 써 버리는 일을 막고 안정적으로 노후 대비 자산을 모을 수 있도록 마련한 제도이다. IRP를 중간에 해지하지 않는다면, 회사를 여러 번 옮기더라도 퇴직금이 모두 하나의 통장으로 모이게 된다.
IRP는 가입에 제한이 없다. 퇴직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근로자는 물론 아직 퇴직하지 않은 기존 근로자도 가입할 수 있다. (자영업자도 가입할 수 있지만 2017년부터 가능하다.)
IRP 계좌는 단순히 퇴직금 수령 용도로만 쓸 것이 아니라 노후 대비 자산관리를 위한 은퇴 전용 통장으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은퇴 통장'이라고 이름 붙은 것만으로도 쉽사리 손대지 않는 효과가 있고, 적립된 자금의 추이를 확인하며 노후 자산 계획을 세우기도 용이하다.
무엇보다 IRP는 세금 납부를 은퇴 이후로 연기할 수 있는 '과세이연'혜택을 제공한다. IRP에 모은 돈을 다양한 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얻더라도 이에 대한 소득세가 부과되지 않고, 나중에 연금이나 일시금을 받을 때 한꺼번에 부과된다. 복리 효과가 발휘돼 투자 원리금이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
따라서 IRP 계좌에 최대한 많은 돈을 적립하고 오래 유지하는 것이 좋다. 연간 1200만원 까지 IRP 계좌에 추가로 적립할 수 있고, 추가 적립액에 대해서는 (과세이연은 물론이고) 개인연금과 합산해 연간 400만 원까지 소득공제 혜택도 주어진다.
다양한 금융상품으로 운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예금, 펀드, 주가연계증권(ELS), 보험, 채권 등 다양한 금융 상품에 투자해 안정적인 수익을 노릴 수 있다. 언제라도 해지가 가능하고, 개인연금과 달리 중도 해지에 따른 패널티가 없다.
*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1970년에는 61.9세였지만, 지금은 80.8세다. 2050년에는 87.4세로 증가할 전망이란다. 건강한 데다 유전자가 도와준다면, 90세도 훌쩍 넘길 수 있다.